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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의도라는 게 뭐가 그리 중요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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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의도라는 게 뭐가 그리 중요한가?"

[화제의 책] 김형기 전 통일부 차관 <남북관계변천사>

김대중·노무현 정부 시절 남북대화의 현장을 지휘했던 인사들이 이명박 정부의 대북정책을 비판하는 논리는 간단하다. 남쪽이 주도하면 안 될 일이 없는데 그걸 안 하고 있다는 것이다. 북한에 꿇릴 게 없는데 뭐가 두려워서 마냥 기다리고 있느냐는 것이다.

수구세력은 그들의 주장을 북한에 굽신거리고 퍼주기로 갖다 바치라는 좌파정권 잔당들의 불순한 생각인양 매도하지만, 가당치도 않은 얘기다. 의지만 있으면 남쪽이 원하는 대로 얼마든지 끌고 나갈 수 있으니 그렇게 해야 한다는 게 무슨 좌파의 생각인가.

더군다나 남북관계를 해야 한다는 인사들의 대부분은 수십년간 대한민국 공무원을 했던 사람들이다. 좌파이긴커녕 과거 반공 정권 시절부터 정부에 있던 이들이다. 다만 냉전이 끝나고 북한이 돌아가는 걸 보니, 또 북한 사람들과 수없이 회담을 해 보니, 우리가 적극적으로 해도 되겠다는 걸 현장에서 느꼈을 뿐이다. 이명박 정부가 그들의 경험과 상식에 귀 막고 눈 감는 것은 딱한 일이다.

▲ 김형기 전 통일부 차관. ⓒ프레시안
최근 <남북관계변천사>(연세대학교 출판부 펴냄)라는 책을 낸 김형기 전 통일부 차관도 그런 인물 중 하나다. 책에서 꼭 말하고 싶은 게 뭐였냐고 전화로 물어보니 "우리가 주도하자는 것"이라고 한 마디로 답했다. 이 책은 한국전쟁 이후 60년이 흐르면서 남북관계를 어떻게 '우리가 주도하게 됐는지' 그 역사를 서술한 것이다.

"탈냉전 이후 북한은 남한의 정책방향과 메시지 하나하나를 무겁게 보고 주시하고 있다. 현재의 남북관계에서는 남한이 무엇을 원하느냐 하는 것이 중요하지 북한의 의도가 무엇이냐가 중요하지 않다. 북한을 움직이게 하려면 남한이 먼저 움직여야 하며, 이 경우에 지원과 협력은 남한만이 갖고 있는 수단이다. 전략적 목표 달성을 위한 지원과 협력이 굴복이나 평화의 대가로 폄하될 필요는 없을 것이다."

저자는 자신과 같은 생각이 김대중·노무현 정부 10년이라는 '특수한 시절'에 나온 '특수한 생각'이라는 시각을 배격한다. 1989년 노태우 정부 때 만든 민족공동체통일방안 이후 20여 년간 추구했던 대화와 교류가 남북관계사의 '본류'가 됐고, 김대중·노무현 정부는 그 물길을 따랐을 뿐이라는 것이다.

본류를 거슬러 '탁류'를 만든 때가 오히려 특수한 시기였다. 김영삼 정부 때가 분명 그러했고, 저자가 '조정기'라며 "남북관계의 흐름을 더욱 크고 강하게 하기 위한 준비"를 하고 있다고 온건하게 표현한 이명박 정부 시기도 이대로 가다간 탁류를 만든 또 한 번의 기간이 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명분과 현실, 평화와 통일, 민족과 국제의 변증법

저자는 1977년 옛 통일원에서 공무원 생활을 시작해 26년간 일하다가 2003년 초 통일부 차관에서 물러나면서 공직에서 나왔다. 과거 남북회담 대표로 현장 경험도 많았지만 정보분석실장, 통일정책실장 등을 하며 정보 해석과 정책 수립 분야에서 오랫동안 일했다. 그러다 보니 북한의 발표문이나 남북간 합의문 등에 나온 문구 하나하나에 매우 민감하고 분석적인 설명에 강하다.

<프레시안>은 2007년 남북 정상회담에서 '10.4 정상선언'이 나온 바로 그 날 김형기 전 차관 등을 초청해 전문가 대담을 가진 적이 있다. '따끈따끈한' 10.4 선언문을 훑어본 김 전 차관의 일성은 "'남과 북은 각기 법률적·제도적 장치들을 정비한다'는 2항의 문구가 마음에 걸린다"였다. 국가보안법 개정을 암시하는 것으로 비춰져 비판의 빌미가 될 수 있다는 얘기였다. 대화 현장에서 몸에 밴 그의 감각과 분석력이 그대로 드러나는 느낌이었다.

<남북관계변천사> 역시 김 전 차관의 그러한 분석적 태도가 돋보이는 책이다. 제목만 보자면 남북관계의 역사를 시간순으로 나열해 놓은 것 같지만 그렇지 않다. 역사적인 서술을 하면서도 남북관계에서 나타났던 개념과 프레임의 변화를 곳곳에서 제시한다.

특히 책 후반부에서 남북관계를 설정하는 기본 동인을 명분과 현실, 평화와 통일, 민족과 국제라는 세 쌍의 개념으로 설명하는 부분이 백미다. 남북관계의 역사를 보는 거시적인 틀을 제공하고 있기 때문이다.

"북한은 현실이 명분과 일치할 때에는 공격적인 대남혁명노선을 구사했다. 현실이 명분에서 멀어져 갈 경우에는 폭력과 대화 등 다양한 방법을 동원해 이 갭을 메우기 위해 조급해 했고, 마침내 명분과 현실이 분리되는 상황이 되자 명분은 명분대로 형해화시켜둔 채 현실에 적응하는 행태를 보였다."

"북한이 통일우선론에 빠져 있을 때는 한반도에 긴장이 고조되었고 평화와 통일은 서로 충돌했다. 그러나 북한이 상황의 변화로 불가피하게 평화를 절실한 과제로 인식했을 때는 공존의 논리로서 대화와 협력이 진행되었다. 이 경우 평화와 통일은 대립관계가 아니라 서로 보충해주는 관계가 될 수 있었다."

"(남북은) 대체로 상황이 유리할 경우에는 민족내부적 문제로 몰고 가려는 입장을 선호했고 상황이 불리할 경우에는 국제적 성격을 강화하는 방향에서 대처해 왔다고 하겠다."


▲ <남북관계변천사>(김형기 지음. 연세대학교 출판부 펴냄) ⓒ프레시안
이러한 프레임과 더불어 과거 정치·군사 문제를 우선시하던 북한과 교류를 내세우던 남한의 태도가 2000년 이후 전도되는 과정 등에 대한 설명은 60년 남북관계사의 6단계를 구조적으로 이해하는데 큰 도움이 된다.

이 책에서 저자는 전쟁 후 1969년까지를 '남북관계의 폐색기'로, 1970∼79년을 '태동기'로, 전두환 정부 때를 '정립기'로, 노태우·김영삼 정부 시기를 '화해협력 모색기'로, 김대중·노무현 정부 때를 '화해협력 진입기'로, 이명박 정부 출범 이후를 '조정기'로 구분하고 있다.

아울러 남북대화의 중요성을 실증적으로 보여주는 부분도 눈에 들어온다. 김 전 차관은 "대화 자체가 화해·협력의 정도를 결정하는 것은 아니다"면서도 "그러나 대화를 한다는 사실만으로도 긴장을 완화할 수 있다"며 회담 횟수와 남북간 긴장/협력의 추이가 그래프로 그려봐도 같이 움직인다는 것을 실증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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