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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순재 선생님, <사랑이 뭐길래>도 똑같았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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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순재 선생님, <사랑이 뭐길래>도 똑같았나요?"

[모 피디의 그게 모!] 리얼리티가 사라진 현재의 연속극

열 일곱 모 - 연속극

우아하게 미디어 비평을 할 수 있는 가장 손쉬운 방법. 연속극을 비난하면 된다. 진부하고 뻔한 신데렐라 캔디 스토리, 그게 뭡니까. 불륜, 보고 배울까 겁납니다. 출생의 비밀, 지겹습니다. 온 가족이 지켜보는 시간대에, 혹은 산뜻하게 하루를 시작해야 하는 아침 시간대에 아무리 시청률이 중요하다지만, 이렇게 말도 안 되는 자극적인 이야기를 해도 되는 겁니까? 방송 제대로 합시다.

그 다음으로 쉬운 방법은 연속극을 옹호하는 것이다. 혹시 병원 입원실의 풍경을 알고 계신가요. 아침 저녁으로 드라마를 보며 환자들은 잠시 잠깐 고통을 잊는답니다. 또 우리 어머니, 아버지들이 하루의 스트레스를 풀면서 위안을 얻는 유일한 창구랍니다. 내용이 별 볼일 없어 보인다 해도 그게 또 우리 사는 삶 아니겠어요? 이를 통해 휴식과 즐거움을 얻는 사람이 많답니다. 그러니 욕 하기는 쉬워도 드라마란 소중한 겁니다.

연속극 비판론과 옹호론은 그 자체로 발전 없이 공회전을 하는, 김빠진 맥주 같은 담론이다. 비판은 도덕주의적이고 계몽적이다. 연속극은 온 가족이 지켜보기 좋게 따뜻하고 훈훈한 미담이어야 하는가. 심지어 동화책이나 성경도 그렇게 안일하게 이야기를 풀진 않는다. 5분짜리 미담 기사라면 모를까. 갈등과 사건을 통해 인간을 묘사해가는 가운데에 카타르시스를 주는 것이 드라마 아닌가. 옹호론도 고맙긴 하지만 제작진 입장에서 말하기엔 좀 뻔뻔하다. 어떻게 만들어도 결국은 좋아하며 볼 것이니 괜찮다고 변명하는 것처럼 들린다.

안정적인 시청률을 제외하면 일일연속극이나 주말연속극은 대체로 대중 문화 안에서의 의제 설정에 별다른 영향력을 가지지 못한다. 늘 그 얘기가 그 얘기로 보이는 것은 사실이다. 할아버지, 할머니 역할을 담당하는 원로배우들과 대화하다 보면 이는 좀 더 분명해진다. 몇십 년째 내용이야 똑같지 뭘, 입는 옷만 좀 바뀌었다 뿐이지. 이는 지금까지의 연속극 비판이나 옹호로 달라질 사안이 아니다. 생산적인 비평이 되기 위해선 연속극이 어쩌다가 이렇게 틀에 박힌 이야기로 안주하게 되었으며, 또 그것이 의미하는 바가 무엇인지를 생각해야 한다.

연속극은 먼저 6개월 이상의 대장정이다. 100회 차를 가뿐히 넘기고 심한 경우 200회 차에 육박하는 이야기를 만든다는 것은 곧 회 차만큼의 엔딩을 만들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한국 연속극 매 회 엔딩의 목표는 늘 결정적인 순간에 끊어서 다음 회를 궁금하게 만드는 일이다. 그런데 드라마 주인공이 200번이나 내용상의 결정적인 순간을 맞이하여 놀란 얼굴로 정지 화면을 맞이하는 것이 자연스러운 일이겠는가? 원래 서사란 생략과 압축에서 아름다움과 의미가 생기는 법이다. 인생에서 의미 있는 사건들과 순간들만 구성해서 내놓는 이야기와 구구절절 가능한 대로 많은 사건과 순간을 전부 꺼내 펼쳐놓는 이야기는 다를 수밖에 없다. 결국 이야기 자체에 무리가 온다. 연속극은 플롯의 입장에서 보면 필패의 여정이다. 플롯의 구성미를 통한 의미 생성이 목표가 아니라, 수많은 회 차에도 불구하고 일정한 재미를 늘 보장해줄 수 있는 스토리를 채워 넣는 일이 목표가 된다.

그렇다면 그 길이에 구구절절 채워 넣기 좋은 소재는 무엇일까. 크게 불륜치정, 출생의 비밀, 캔디 신데렐라, 반대하는 결혼으로 압축되곤 한다. 연속극은 대체로 가족 모두를 만족시키면서 특히 40대 이상 여성 시청자의 마음을 훔쳐야 하는 시간대에 편성된다. 즉 가족 구성원 모두를 다루되 가족 내 여성의 입장을 대변해야 하는 것이다. 그래서 드라마에 출연하는 모든 남자의 마음의 향방을 결정하는 것은 여자 주인공이다. 대기업의 뜨고 짐은 회장 사모님의 심사나 신입 여사원인 주인공의 씩씩함에 좌우된다. 가족 내 최고 권력자는 시어머니다. 자녀 세대의 삼각관계와 결혼, 부모 세대의 치정과 불륜, 그 와중에 성장하는 여자 주인공. 여기에 가족 간에 복잡하게 얽힌 비밀과 사연. 대체로 연속극의 골조는 이러하다. 이 정도는 되어야 긴 시간 동안 200여 번의 엔딩을 낼 수 있지 않겠는가.

배경 공간도 제약이 있다. 연속극의 주된 촬영은 스튜디오 녹화로 이루어진다. 보통 집과 사무실로 요약되는 연속극의 세트에 등장인물들을 몰아넣고 계속 이야기를 발생시켜야 한다. 한 마디로 현재의 연속극은 몇 가지 전형적인 이야기 틀을 돌려쓰면서 인물과 대사만 계속 갈아 끼워 진행하는 게임과 같다. 저예산 제작과 편성 시간대의 시청자가 편안하게 느끼는 통속적 이야기가 타협한 지점이 현재의 연속극 시장이다. 하지만 그 타협에서는 대중문화를 이끌 정도의 에너지는 없다. 시청자는 익숙한 틀거리에 다양한 배우를 넣어보며 역할 놀이를 즐기고 있을 뿐이다.

▲ 1980년대 말부터 1990년대 말까지 연속극은 대중문화의 핵심이었다. 각각의 드라마는 당시 사회와 세대의 분위기를 반영했다. 왼쪽 위 <사랑이 뭐길래>, 왼쪽 아래 <아들과 딸>, 오른쪽 <젊은이의 양지>. ⓒ프레시안

그렇다면 연속극은 언제까지 이런 모습을 유지할 것인가. 몇 십 년 전에도 같은 내용의 이야기를 했다는 노배우들의 증언이 간과하는 점이 있다. <사랑이 뭐길래>(1991), <아들과 딸>(1992), <엄마의 바다>(1993), <젊은이의 양지>(1995)와 같은 주말연속극을 기억하는가? 1980년대 말부터 1990년대 말까지 연속극은 대중문화의 핵심이었다. 각각의 드라마는 당시 사회와 세대의 분위기를 반영했다. 가족 내 권위주의의 문제를 코믹하게 다룬 <사랑이 뭐길래>, 남아선호의 사회 분위기에 일침을 놓은 <아들과 딸> 등 90년대 연속극은 당시의 시대상과 사회 정서를 반영하면서 그 때를 사는 사람들의 이야기로 굳건히 자리매김을 했다.

그런데 현재의 연속극들은 배우들의 증언처럼 과거와 대동소이하기 때문에 오히려 현재의 반영이 아닌 시대극 같은 양상을 띄게 되었다. '한국 연속극'이라는 장르 관습 안에 고착된 것이다. 연속극에서 묘사하는 20대는 2010년을 살아가는 '88만 원 세대'라기 보다는, 고대 이집트의 낙서인 '요즘 애들 버릇 없어' 정도의 구체성 없는 일반화된 모습으로 등장한다. 이는 부모 세대 건 그 윗 세대 건 마찬가지다. 세트 여러 개 안 세우고 거실 세트에서 등장 인물들이 사건을 진행시키려면 여전히 주인공들은 대가족 제도 안에 살고 있어야 한다. 그리고 보는 사람들은 이것이 현실성이 있건 없건 한국 드라마의 관습으로 보아 넘긴다. 이야기의 현실성과 진실성, 현재성은 떨어지고 '과거엔 저랬었지, 현재도 그런가봐, 미래도 저랬으면' 식의 복고 마케팅, 여기에 배우를 보며 롤플레잉게임을 즐기는 재미 정도가 연속극의 소구지점이 되었다. 이야기의 소재와 구성은 비슷하나 감상의 양상은 분명히 변화한 것이다.

그렇다면 미래의 연속극은 어떻게 될 것인가. 현재 20대 30대들에게 연속극은 그리 매력적인 장르가 아니다. 연속극이 새로운 재미도 주지 못하고 시대의 개성을 담는 데에도 성공하고 있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시청자들이 현재 연속극의 충실한 시청층과 점점 교대하게 된다. 빠져나가는 시청층을 붙들기 위해 결국 연속극은 현재 단단히 고착된 시스템을 바꿀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리고 그 시작은 결국 그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구체적인 모습을 반영하는 데서 해야 한다. 장르의 관습을 바통터치 할 게 아니라 현실을 드라마 안으로 들여와야 한다는 말이다.

따라서 연속극을 비평의 대상에 올릴 때에는 계몽적 훈시보다는, 등장인물이 현실을 반영하는 정도에 대하여 평가하는 것이 생산적이다. 만약 등장인물이 보여주고자 하는 것이 복고적 판타지라면, 그 복고적 판타지가 현실의 어떤 부분 때문에 시청자에게 기꺼이 받아들여지는지를 보아야 한다. 연속극 제작진도 관습의 감옥에 갇혀있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무턱대고 '저속하고 진부하다'는 비난보다는 구체적인 지적에 목말라 있게 마련이다. 이토록 많은 연속극이 방송되고 또 높은 시청률을 거두는 나라에서 그 '통속성'이 사회와 상호작용하는 양상을 비평하고 미래를 제시하는 일은 비평계의 중요한 역할이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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