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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맨'은 없지만 'MBC맨'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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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맨'은 없지만 'MBC맨'은 있다

[모 피디의 그게 모!] MBC와 KBS

열세 모 - 자부심과 자경단

상식이다. 그리 대단한 게 아니다. 그 상식이 KBS에는 통용되지 못했던 것 뿐이다. MBC는 싸울 것이다. 방송 장악의 최종 목표가 원래 MBC 아니었던가. <PD수첩> 무죄 판결이 얼마나 꼴 보기 싫었을까. 깡통 소리 요란했던 KBS노동조합이 혀를 빼물고 MB 특보 출신 공채 1기 사장의 발밑에 조아린 지금 MBC가 마지막 남은 눈엣가시가 아니었겠는가. 그래도 MBC는 KBS보다는 훨씬 제대로 된 싸움을 벌여나갈 것이다. 지더라도 명예롭게. 끝내 버텨낸 YTN처럼.

소속에 대한 자부심은 일단은 좋은 것이다. MBC에는 'MBC맨'들이 있다. 엄기영 사장부터가 그렇다. MBC에서 평생을 보내며 입신하고 영광을 얻은 사람들. MBC에는 늘 '스타'가 존재했다. 엄기영, 신경민, 김주하 앵커, 손석희 아나운서, 그리고 PD들. 황인뢰, 주철환, 송창의, 김종학, <무한도전>의 김태호 PD까지. MBC에서는 늘 세대마다 언론과 대중문화의 스타들이 배출되어 왔다. 그것은 그들이 지닌 개인적인 능력도 크게 한 몫을 했겠지만 MBC라는 바탕도 크게 작용을 하는 것으로 보인다. 일례로 '쌀집 아저씨' 김영희 PD가 한국PD협회장에서 <일밤>으로 돌아왔을 때 <무릎팍 도사>에서 했던 예고는 상징적이다. 감동적인 음악과 함께 <느낌표!> 시절의 화면과 김영희 PD의 캐리커쳐까지 내세우며 그를 한국 예능계의 대가로 칭송하는데 주저함이 없다. 물론 김영희 PD는 그런 평가를 받을 자격이 있으나 그것이 자사의 직원에 대한 프로그램 예고라는 점을 미루어보면 조금 민망한 감이 있다. KBS에서 <1박2일>의 PD를 전면에 내세워 한국 예능 사상 최초로 40퍼센트를 넘긴 마이더스의 손으로 칭송하는 방송을 내는 것이 상상이 되는가. KBS 뉴스가 신뢰도 영향력 1위를 지속하고 MBC가 시청률에 고전하고 있을 때에도 사람들이 기억하고 화제가 되었던 앵커는 MBC의 신경민이었다.

MBC와 KBS가 내세우는 간판 다큐멘터리를 봐도 회사의 색이 드러난다. KBS의 <차마고도>나 <누들로드>를 보자. 스케일과 만듦새의 완성도를 떠나, 이 다큐들의 시점은 관찰자의 눈으로 객관화되어 있고 가끔은 교육용 교재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한편, MBC의 <북극의 눈물>이나 <아마존의 눈물>을 보자. 제목부터 사람의 사적인 감정을 파고들고자 한다. KBS의 색이 감정 표현에 서툰 과묵한 아버지의 느낌이라면 MBC의 색은 감정이 풍부한 화려한 어머니다. <PD수첩>이 '광우병 편'이나 '황우석 사건'으로 사회적인 의제로 떠오른 것도 단순히 고발에서 그치지 않고 고발한 현실에 대한 분노까지 같이 끌어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시청자의 감성을 자극하는 프로그램을 제작하고 사회적 의제를 설정하는 기능을 해온 방송사. MBC의 브랜드 파워다.

▲ 엄기영 MBC 전 사장이 지난 8일 '마지막 퇴근'에 앞서 이근행 노조위원장이 악수를 나누고 있다. ⓒPD저널

'MBC를 지켜달라' 말하고 떠난 엄기영 사장의 사퇴, 그리고 그로 인한 MBC의 투쟁의 향방은 좀 더 지켜봐야 알겠지만 분명한 것은 KBS와는 그 양상이 다를 것이라는 사실이다. 이것은 가치 평가가 아니라 사실 확인이다. MBC를 흔히들 '노영 방송(노조가 경영하는 방송)'이니, '우주에서 제일 좋은 회사'니 하고 칭하곤 한다. KBS, MBC 둘 다 공영 방송 체제에 속해있긴 하지만 KBS가 '주인 없는 회사'라면 MBC는 '모두가 주인인 회사'에 가깝다. MBC는 어떤 '색'이나 '지향'을, 혹은 '철학'을 가진 조직으로 자리매김하고 있고 그 철학은 귀족 노조건 어쨌건 간에 언론인으로서의 자각이 있는 노동조합의 관점과 같이 간다. 전임 사장이었던 최문순 의원은 노조위원장 출신이었다.

반면, KBS 같은 경우는 지향이 있는 조직이라기 보다 '존재하는 터전'에 가깝다. 이 공룡 방송은 한국의 여론을 양으로 압도하며 영향력을 행사한다. 그런데 이 흐름은 철저하게 대세를 따른다. 아래로부터 올라가지 못하고 늘 권력으로부터 리더가 꽂혀 내려온 전력이 있던 탓이다. 제작과 보도 이외의 일을 담당하는 부서가 워낙 많고 크다 보니, 언론인으로서의 책무에 대해 자각이 있는 직원의 비율이 지나치게 적은 까닭이다. 쉽게 말해 KBS는 대한민국의 축소판이다. 그래서 KBS에는 'KBS맨'이라는 단어를 붙이기가 어색하다. 'KBS'라는 것이 지향하는 가치가 그 때 그 때 뚜렷하지 않기 때문이다. 정연주 사장을 몰아내는데 크게 협력했던 KBS노동조합이나 경찰 난입에 맞서 싸웠던 KBS직원이나 모두 'KBS맨'이니, KBS에서 싸움의 양상은 MBC와 다를 수밖에 없다. MBC라는 '조직'이 노동조합을 중심으로 자부심에 찬 싸움을 진행해나가야 한다면, KBS라는 '자연 환경'에서는 그 '환경'이 더 오염되지 않도록 자경단원들이 활동해야 하는 형국이다.

공영 방송 체제의 장점은 분명히 '권력과 자본으로부터의 독립'이다. 지상파 방송이 매일 24시간 전파에 풀어 놓는 이야기들은 어느 틈에 그 사회의 '상식'이 된다. 그 '상식'이 권력과 자본의 자기변명이라고 생각하면 얼마나 끔찍한가. 방송을 사냥매로 길들이려는 야욕은 또 얼마나 음험한가. 공영 방송 체제는 낮게 나는 새다. 가장 보편적 매체로써 소외된 사람들을, 잊혀진 상식들을 이야기해야 한다. 대단한 투사가 되어야 한다는 말이 아니다. 그저 '호밀밭의 파수꾼'이 되라는 얘기다. 그럴 리 없겠지만, 호밀밭을 노니는 상식이라는 아이가 혹시 지평선 끝의 절벽으로 떨어지진 않을지 지켜보는 수준의 일. 그리고 지금 그 아이는 절벽의 경계에 다가가고 있다. 그러니 자부심으로건 자경단원으로서건, 파수꾼의 역할을 할 때가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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