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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혁명' 이끈 <추노>…세 가지 이유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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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혁명' 이끈 <추노>…세 가지 이유는?

[모 피디의 그게 모!] '모래시계' 이후 최대 사건

열두 모 - '게임 체인저' 추노 1.

1995년 1월, <모래시계>가 방송되었다. 월화수목 밤 열시 대의 거리를 깨끗이 비웠던 이 드라마의 방송은 한국 문화계의 일대 사건이었다. 현대사의 비극을 서정적이면서도 힘 있게 그려내던 이 드라마를 통해 드라마 장르에 대한 존중은 더욱 깊어 졌고, 수많은 드라마키드들이 생겨났다. 그리고 게임의 규칙이 바뀌었다. 드라마가 어디까지 말할 수 있으며, 어디까지 표현할 수 있는가.

그리고 15년 후 2010년 1월, <추노>가 방송된다.

드라마에 있어 칭찬이자 굴욕인 표현이 '영화 같다'는 표현이다. 하루에 적게는 열 몇 개 씬에서 서른 씬 가까이 찍을 수밖에 없는 운명인 드라마를 하루에 두 세 씬 찍는 영화만큼 공들여 찍은 것으로 보인다는 점에서는 칭찬이지만, TV 드라마는 결국 영화의 하위 장르일 뿐이라는 것을 이미 내면화하고 있는 표현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추노>에 쏟아지는 칭찬 중의 하나도 '영화 같다'는 것인데, 이는 결국 카메라의 변화와 사전 제작에 초점이 맞춰진다.

▲ KBS 인기 드라마 <추노>의 한 장면. <추노>는 분명히 TV물에서 어쩔 수 없이 드러났던 '비디오 때깔'을 벗어던진 드라마다. ⓒKBS

<추노>는 분명히 TV물에서 어쩔 수 없이 드러났던 '비디오 때깔'을 벗어던진 드라마다. 한국 드라마에 처음으로 도입된 레드원 카메라가 추노에서 보여주는 장점은 크게 세 가지다. 심도, 고속 촬영, 색.

먼저 심도의 문제. 연속극의 클로즈업에서 배우의 배경에 있는 집안 가구까지 초점이 선명하게 보일 때와, <추노>에서 장혁의 얼굴을 잡을 때 눈빛에 형형하게 초점이 맞고 머리카락부터 초점이 나가 흐릿해질 때의 화면의 집중도는 완전히 다르다. 화면의 어디까지 초점을 맞출 수 있느냐를 선택할 수 있다는 것은 그만큼 보는 사람의 정서를 세밀하게 움직일 수 있다는 말이다. <아바타>를 통해 뜨거운 이슈가 된 3D도 요약하자면 심도의 문제다. 화면에 얼마나 깊이를 주어 보는 사람들에게 임장감을 느끼게 할 것인가. 이 심도의 연출을 과거보다 훨씬 자유롭게 만드는 것이 레드원 카메라다.

그리고 고속 촬영. 장혁의 우아한 발차기와 날렵한 절권도 동작을 보여줄 수 있는 이유는 촬영본을 네 배 이상으로 속도를 늦춰도 실시간으로 찍은 듯한 화질을 보여주는 고속 촬영이 있기 때문이다. 이 역시 레드원 카메라에서 바로 구현이 가능하다. 마지막으로 색정보 또한 풍부하게 들어오기 때문에, 후반 색보정 작업까지 염두에 둔다면 마치 초상화를 그리는 마음으로 인물의 색감을 조절할 수 있다. 물론 이 같은 기능은 이전에도 존재했다. 하지만 레드원 카메라를 들여오면서, 이 기능들을 장악하여 연출하기가 훨씬 용이해진 것이다. 처음이라는 점을 감안해 절반 가까운 분량을 사전 제작을 했기에 더욱 화면의 질에 신경을 쓸 수 있었다. 그래서 <추노>는 시청자가 현재 HD TV로 느낄 수 있는 시각적 쾌감의 절대치를 쫓아가고 있고, 공들인 영화 부럽지 않은 퀄리티를 자랑한다.

이 퀄리티가 중요한 것은, '드라마라 치고' 봐주며 볼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미국 드라마에서 이러한 '영화적' 화면이 일상화 된 것은 드라마 촬영 시스템과 영화 시스템이 호환되기 때문이다. <추노>는 이제 촬영 시스템이 보장하는 화면의 질에 있어서는 영화와 비교하여 부끄러울 것이 없을 만큼, 또 세계 어디의 드라마와 견주어도 손색이 없을 만큼, 한국 드라마의 입지를 다졌다고 볼 수 있다.

▲ <추노>는 땅덩어리가 넓은 나라들의 압도적이면서도 왠지 황량한 경관이 아닌, 아기자기하고 사람이 어울려 사는 한국 특유의 로케이션 안으로 노비 추격전의 스펙터클을 들여온다. ⓒKBS

그렇다면 그 화질이 잡아내는 내용은 또 어떠한가. 먼저 로케이션이 빼어나다. 그 동안 드라마와 영화에서 돌고 돌던 로케이션에서 반발 벗어나 오밀조밀한 자연 경관을 수려하게 담는다. 땅덩어리가 넓은 나라들의 압도적이면서도 왠지 황량한 경관이 아닌, 아기자기하고 사람이 어울려 사는 한국 특유의 로케이션 안으로 노비 추격전의 스펙터클을 들여온다. 이는 벌써 CG합성이 대세가 되어버린 미국 시스템과는 다르게, 여전히 로케이션 촬영을 계속 해야 하는 한국 시스템 때문이기도 하지만, 오히려 시스템 발전의 중간 단계이기 때문에 가지는 아름다움이 있다. 촬영이 고되고 스케줄 맞추기가 힘들어도, 합성이 아닌 현장에서의 촬영이 가지는 다큐적 아름다움은 독보적인 데가 있다. 이 드라마가 이 땅에서 벌어졌던 인간의 이야기라는 인장을 강하게 남기는 것이 바로 고화질 안에 담긴 로케이션이다.

'세상은 나쁘고, 나는, 그리고 우리는 끊임없이 무엇인가를 쫓는다'는 <추노>의 이야기 구조는 또 어떠한가. 인구의 절반이 노비로 굴러 떨어진 인조 시대는, 더 멀리 갈 것도 없이 바로 현재 우리의 이야기다. 세상은 나쁜데, 우리는 무엇을 쫓아야 하는가. 배신했던 연인을, 나를 살게 해줄 현상금을, 따랐던 스승을, 지키고자 했던 명분을, 죽이고자 하는 원수를, 노비를 위한 해방 세상을…. 추격의 날줄과 씨줄이 엮이며 모이는 이야기 구성과 표현하는 주제는 바로 오늘 우리의 이야기일 뿐만 아니라 인간으로써 가지는 보편적인 감정에 강하게 소구한다.

▲천성일 작가가 써낸 <추노>의 대사는 고등학교 문학 시간에 문득 가슴 속을 파고들던 시조의 아름다움을, 고문의 멋을 떠올리게 한다. ⓒKBS

여기에 가장 강한 인상을 남기는 것은 우아하게 정제된 대사다. 한국어 문체의 아름다움. 판소리의 질펀함. 민요의 해학과 구슬픔이 한 데 모인 듯한 대사들과, 레제드라마로도 손색이 없는 대본의 아름다운 지문은 문학의 위치를 넘본다. 영문학에서 셰익스피어의 가장 큰 공로는, 배우이자 연출이자 희곡작가로써 당대 최고 인기의 이야기들을 바탕으로 자국 언어의 영역을 크게 넓혔다는 데에 있다. 그래서 영미 문화권에서는 셰익스피어를 끊임없이 소환하고 영어 고어체의 아름다움을 대중문화 안에까지 녹여낸다. 그러나 우리나라 사극의 관습은 문학과는 별개로 굳어져버린 측면이 있었다. 그러나 천성일 작가가 써낸 <추노>의 대사는 고등학교 문학 시간에 문득 가슴 속을 파고들던 시조의 아름다움을, 고문의 멋을 떠올리게 한다.

헐리우드에서 제임스 카메론의 <아바타>가 기술적으로 영화 제작의 게임의 규칙을 바꾸었다고는 하지만, 그 이전에 또 한 명의 게임 체인저가 있었으니 <다크 나이트>의 크리스토퍼 놀란이었다. 아이맥스의 어마어마한 임장감 무기로 인간성에 대한 질문을 끊임없이 던져댔던 <다크 나이트>의 위치는 현재 한국 드라마에서 <추노>가 가지는 위치와 흡사하다. 촬영 시스템과 이야기의 신선함과 보편성, 그리고 한국적 정체성까지 갖춘 <추노>의 방송은 분명 한국 드라마 사의 일대 사건이며, 이는 1995년 <모래시계>의 방송과 견줄 만하다. 개만도 못한 것이 노비 인생이고, 대중 문화의 진창에서 구르다가 쉽사리 욕 먹고 잊혀지는 것이 드라마지만, <추노>가 내딛은 힘찬 한 발은 그 진창에서 피워낸 꽃이다.

<추노>에 대해서는 그 장단에 대해서 이야기할 부분이 많군요. 방송이 진행됨에 따라 다른 관점에서 분석을 더 해보도록 하겠습니다. <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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