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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 진보의 집권, 오바마 때문이 아니었다"

[안병진의 '오바마와 미국'] '카트리나 순간'의 도래, 주체적으로 대응해야

미국과 한국에서는 지금 추모 정국이 계속되고 있다. 미국은 마이클 잭슨에 대해서, 한국은 노무현 전 대통령에 대해서다. 음악가와 정치인이라는 전혀 다른 영역과 전혀 다른 사회의 맥락이지만 이 두 인물은 한 가지 공통점이 있다. 힘 없는 자들의 절절한 꿈, 즉 아메리칸과 코리안 드림의 구현이라는 점이다.

최근 존경하는 대학 은사님을 뵌 자리에서 "봉하에 가 봐야 노무현이 보인다"는 너무도 의미심장한 말을 들었다. 낙후된 농촌 중에서도 단연코 가장 끝자락에 있는 봉하는 서울 왕국에서 살아온 필자가 노무현의 고뇌와 희망과 좌절을 온전히 이해할 수 없었던 이유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마찬가지로 뉴욕 여피 타운에서 살았던 필자에게 마이클 잭슨이 태어난 노동자 타운 인디애나주(州) 게리는 잭슨의 드라마틱했던 삶과 음악을 온전히 이해할 수 없었던 이유를 상징적으로 보여주었다. 이 두 거장의 삶과 이들을 통한 시민의 꿈을 머리가 아니라 마음 속 깊이 이해했을 때 추모 정국의 본질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두 거장의 영결식 분위기는 다소 달랐던 것 같다. 노 전 대통령의 영결식은 비통함과 비장함으로 가득 차 있었다. 반면 마이클 잭슨의 영결식은 비통하면서도 '스마일'이란 화두의 한 추도사와 노래처럼 동시에 가슴 벅찬 환희로 가득 차 있었다.

그 차이를 만들어 낸 이유 중 하나는 아마 전자의 코리안 드림은 결국 기득권의 높은 벽 앞에서 비극적으로 실패했지만 후자는 오바마를 통해 현재까지는 성공하고 있는 진행형이기 때문일 것이다.
▲ 지난달 30일 뉴욕 맨해튼의 아폴로 극장에서 '팝의 황제' 마이클 잭슨을 추도하는 이들이 장사진을 치고 있다. 노무현 전 대통령에 대한 한국인들의 추모 분위기는 비장함이었다면 마이클 잭슨에 대한 미국인들의 추모 속에는 '환희'가 있었다. 마이클 잭슨으로 상징되는 아메리컨 드림이 오바마 대통령에게로 이어지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뉴시스

며칠 전 참석했던 노무현 전 대통령 추모 심포지움의 기억이 아직도 뇌리에서 떠나질 않는다. 발표석에 앉는 순간 갑자기 후회가 밀려오는 느낌이었다. 왜냐하면 필자가 준비해온 것은 의례적 학술 발표문이었지만 하루 종일 꼿꼿이 앉아 앞을 응시하는 다수 시민 방청객들의 절절한 눈빛은 학술대회를 넘어 마치 1987년 민주화 시대의 시민 대토론회를 연상시켰기 때문이다.

이들의 절절한 눈빛을 보면서 필자의 뇌리를 스쳐간 생각은 이제 한국에서도 '카트리나 순간'(Katrina Moment)이 도래한 것인가 하는 느낌이었다. 카트리나 순간이란 2005년 뉴올리언스를 강타한 재난에 부시 정부가 철저히 무감각하게 대처하는 것을 보고 많은 시민들이 마음속으로 부시 정부에 대한 기대를 완전히 접은 결정적 기점을 말한다.

그 때까지는 미국 민주당이 부시 행정부의 실정에 대해 소리 높여 성토했지만 시민들은 요지부동이었다. 하지만 반대로 카트리나 사건 직후부터는 부시 행정부가 뭘 해도 얼음장처럼 굳은 시민들의 마음은 돌아서질 않았다.

결국 시민들은 이듬해 중간선거에서의 부시를 응징했고, 2008년 대선에서 오바마에게 승리를 주었다. 시민들의 표정은 그리고 나서야 겨우 '스마일'로 바뀌기 시작했다. 부시 행정부와 다소 거리를 두었고 미국을 위한 진정성이 돋보이는 존 매케인 공화당 후보도 이 거대한 응징의 태풍 앞에서 속수무책이었다.

여론조사 결과를 보다 자세히 들여다보아야 하겠지만, 최소한 필자의 느낌으로는 노 대통령을 추모하는 그 조그만 심포지엄은 한국 사회 2012년 빅뱅의 의미심장한 징후처럼 보였다.

'카트리나 순간'이 새로운 시대정신의 도래를 알리는 결정적 징후였다면 정치 초년병 버락 오바마의 우연한 등장은 오래전부터 시대정신을 포착해온 미국 자유주의 진영들의 주체적 결과였다.

오바마의 성공적 집권 후 많은 이들은 오바마 리더십의 비밀을 물어보곤 한다. 하지만 그때마다 필자는 오바마의 개인 리더십도 중요하지만 그를 탄생시킨 진영 전반의 리더십에 더 주목해야 한다고 지적하곤 했다. 동시에 너무 미국에 경도되기보다는 실사구시적으로 한국에서 오늘날 벌어지고 있는 혁신에 더 주목해야 한다고 지적하였다.

2013년 대한민국이 단지 과거의 비통함에 머물러 있지 않고 밝은 미래를 위한 '스마일'이란 노래가 울려 퍼지게 하기 위해서 무엇이 필요할까? 한국의 합리적 진보를 꿈꾸는 이들은 다음의 질문들에 대해 넓은 합의에 기초한 구체적 답을 가져야 한다.

한국판 무브온(moveon)의 실제적 경로는 무엇인가?

2007년 대선 직후 필자는 한 대담에서 한국판 무브온(온/오프 혼성 정치공동체) 창설을 제안한 바 있다. 이후 무브온은 2008년 미 대선에서 오바마 당선의 일등공신으로 부각되면서 한국에서도 큰 관심을 끌고 있다.

이미 한국에는 언소주(언론소비자주권연대)처럼 다양한 경로로 무브온의 한 퍼즐 조각들이 만들어지고 있다. 일부 협소한 정치인들이 아니라 무브온 속에서 대중적으로 아젠다가 만들어 질 때만 이후 지도자 중심이 아닌 대중적 정당 건설의 토대도 가능하다.

이제는 이에 대한 넓은 합의를 만들어 이 움직임들이 대중적 바다로 모아지도록 지혜를 모아야 한다.

브레진스키나 키신저와 깊이 있게 대화하고 있는가?

미국의 무브온에는 공화당원도 참여했다는 것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오바마는 브레진스키처럼 이념광이 아니라 현실주의 보수와 부단히 대화하며 공통의 지반을 넓혀갔다.

당시 미국의 과제는 단지 공화당 보수 정권에 맞서 민주당을 복원하는 게 아니었다. 왜냐하면 당시 부시 정부는 보수 정부가 아니라 미국의 헌법과 국익을 위협하는 천민보수 정부였기 때문이다. 그러기에 보수와 진보를 떠나 건국 헌법의 가치를 구현하는 민주공화국의 복원이 더 큰 시야의 과제였다.

마찬가지로 한국의 2012년 과제는 단지 민주당이나 진보적 정당의 복원이 아니다. 왜냐하면 현 정부가 단지 우파 정부라서 문제가 아니라, 민주공화국의 가치를 부정하는 천민보수이기 때문이다.

그러기에 2012년의 과제는 대한민국의 자랑스러운 전통과 가치를 사랑하는 합리적 보수도 참여하는 민주공화국의 구축이다.

누가 한국의 하워드 딘인가?

이제는 널리 알려졌듯이 오바마의 승리는 오래전 무브온의 실험에 영감을 받아 진보주의 혼을 복원하고 정당을 아래로부터의 운동적 형태로 만들어낸 하워드 딘 민주당 전국위원회(DNC) 위원장(전 버몬트 주지사)이 일등공신이다.

중도주의자인 그가 이라크 전쟁을 반대한 것은 좌파 이념을 수용해서가 아니라 민주당이 망각하고 있던 자신들의 혼을 이해했기 때문이다.

한국에서는 아직 있지도 않은 오바마를 찾기 전에 진심으로 하워드 딘이 되고자 하는 이들에게 힘을 모아주어야 한다. 하워드 딘이 만들어지면 결국 오바마도 만들어지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역은 불가능하다.

2011~2012년 한국에서도 오바마와 에드워즈의 대결을 볼 수 있을까?

오바마는 무브온의 예비경선을 통해 비로소 대선 도전의 발판을 구축한 바 있다. 하지만 무브온이 애초 만들어낸 스타는 오바마가 아니라 상대적으로 보다 진보적인 노동자 후보 에드워즈 상원의원이었다.

한국의 민주당과 진보 정당들은 자신들의 협소한 정당 틀 이전에 이러한 대중의 바다에서 먼저 검증의 문을 통과해야 한다. 거기서 미국처럼 오바마가 승리할 수도 있고 오히려 한국은 에드워즈가 승리할 수도 있다.

어쨌든 그 과정을 거친 후에는 보다 생산적인 연합정치나 혹은 다양한 블록들이 당내에서 경쟁하는 단일 '자유주의' 정당의 길로 나아갈 수 있을 것이다. 자유주의적인 민주당이 명심해야 할 것은 자신들이 노동자·서민 속에 강하게 뿌리내리지 않고는 미래가 없다는 사실이다.

반대로 한국의 진보 정당들이 스탈린주의가 아니라 사회민주주의로 집권하고자 한다면 자신들이 추구해야 하는 것은 그냥 좌파가 아니라 자유주의적 좌파라는 사실이다. 만약 2011년이나 2012년 시장이나 대통령 선거 등에서 이러한 넓은 밭을 우선적으로 만들고자 하지 않는 정치세력은 시민들의 힘으로 압박해야 한다.

누가 '중도 오바마'나 '진보 오바마'로 성장하고 있는가?

민주당이나 진보 정당의 후보를 꿈꾸는 이들은 자신들이 만들어 낼 비전을 '진보 대 보수'의 이념 차원으로만 인식한다면 반드시 실패할 것이다. 오바마가 비전에서 성공한 가장 중요한 핵심은 '중도'였기 때문이나 진보적이었기 때문이 아니다.

오바마가 더 진보적이어서 힐러리에게 승리했거나 더 중도적이어서 에드워즈에게 승리했다고 이해하는 이들은 한국에서도 실패할 것이다.

더 중요한 것은 다음의 4가지 결합이다. 즉 누가 더 내면적으로 공화주의를 체현하고 있는가?(민주공화국의 가치와 자신의 이념을 잘 융합하고 있는가) 누가 더 초당적인가?(당파성과 초당성간의 적절한 균형) 누가 더 포퓰리스트적인가?(인기영합주의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특권층과의 대결의 자세) 누가 더 쿨(cool)한가?(문화적으로 새롭고 매력적인 감수성)

한국의 전략 사이트는 언제나 만들어질까?

한국에도 미국의 www. thedemocraticstrategist.org 같은 전략사이트가 만들어져야 한다. 오바마의 당선은 흔히 알려진 것처럼 미국진보센터(CAP) 등만이 기여한 것이 아니다. 정치에서는 정책도 중요하지만 인구학적 특성을 정교히 고려한 장단기 전략이 결국 정책과 메시지의 근간이 된다.

하지만 한국의 민주당이나 진보 정당들은 지금 장님 코끼리 만지기식 관찰에 입각해 좌선회, 우선회 같은 단순한 이야기나 하면서 움직이고 있다.

이런 사이트를 통해 다시 '사회구성체론 2.0'이 부활되어야 한다. 그리고 일상적 메시지는 물론이고 다양한 이념적 성향간 소통법도 고민해야 할 것이다.

어디가 한국의 진보센터인가?

미국진보센터(CAP)는 이제 전 지구적으로 알려져서 굳이 자세한 언급이 불필요할 것이다. 다만 지금은 사람들이 잊고 있는 것은, CAP은 원래 오바마를 위한 씽크탱크가 전혀 아니었다는 점이다. 창설 당시만 해도 대선 승리가 유력했던 힐러리를 위한 기관이라고 말할 수도 있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이 센터가 미국 자유주의 진영내의 다양한 성향들이 힘을 모으면서 장기적으로나 단기적으로 힘을 가지고 활동해 누가 집권하든 강력한 밑받침이 될 수 있었다는 것이다.

현재 한국의 산개한 정책 집단들은 이런 견지에서 보다 네트워크를 강화하거나 혹은 하나의 강력한 흐름으로 모아져야 한다.

클린턴 인수위를 복기하고 있는가?

잘 알려진 것처럼 오바마 팀은 매일 시간 단위별로 클린턴 인수위 팀의 활동을 분석한 바 있다. 오늘날 오바마 정부가 과거 클린턴 정부의 아마추어적 실수를 10개 중 하나 정도로 줄이고 있는 것은 이러한 실사구시적 연구가 축적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국에서는 너무 거창한 연구들에만 관심과 에너지를 집중하는 경향이 있다. 인수위 같이 집권 전에라도 성공과 실패가 좌우될 수도 있는 영역들에 대해 이제는 구체적인 시작해야 한다고 수차례 제안했지만 공허한 메아리였다. 이제는 정부 참여 인사나 학자들이 실제 경험과 사료, 외국의 사례를 대조해가면서 모든 구체적 영역에서 철저한 복기와 이론화를 시도해야 한다.

마이클 잭슨에 대한 초당적 추모의 시기도 끝난 미국은 이제 의료보험 대전쟁을 앞두고 전운이 감돌고 있다. 일각에서는 부동층 사이에서 오바마 지지가 빠지고 있는지 여부로 예민한 논쟁을 시작할 정도로 이후 오바마 정부의 미래에 대해 모두들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미국이 겪고 있는 전대미문의 퇴조의 시대를 맞이한 상황에서 오바마의 관리 리더십은 매우 어려운 과제가 아닐 수 없다. 오바마 팀이 탁월한 것은 사실이지만 과연 이 전례 없는 과제조차 견디어 낼 정도의 내공을 가지고 있을까? 워밍업을 지나 본격적으로 오바마와 미국 자유주의 진영이 그간 얼마나 준비해왔는지의 내공의 정도를 서서히 드러날 시점이 다가오고 있다.

한국의 자유주의나 진보 진영에 닥치고 있는 하루하루의 힘겨운 도전들은 2012년 집권하든 집권에 실패하든 그 이후 상상을 초월하며 다가올 고통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다. 과연 그들은 2012년 이후의 현실적 그림을 구체적으로 상상하고나 있을지 궁금하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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