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인화면으로
북핵 5자 협의, 제재와 압박…'고장난 레코드'는 잘도 돈다
  • 페이스북 공유하기
  • 트위터 공유하기
  • 카카오스토리 공유하기
  • 밴드 공유하기
  • 인쇄하기
  • 본문 글씨 크게
  • 본문 글씨 작게
정기후원

북핵 5자 협의, 제재와 압박…'고장난 레코드'는 잘도 돈다

[한반도 브리핑] 기억되지 않는 역사는 되풀이될 수밖에

모두들 북한이 대화의 장에 나서야 한다고 말한다. 외교적인 방법, 협상 이외에는 해결책이 없다고도 한다.

미국은 6자회담이 유용한 대안이라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고, 중국과 러시아는 북한이 6자회담으로 돌아올 수 있도록 관련국들이 최대한의 노력을 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북한을 뺀 '5자 협의'를 주장하고 있는 우리 정부조차도 6자회담으로 북한을 복귀시키는 것이 목표라고 말하며, 북한과 '총성 없는 전쟁' 상태에 있는 일본도 6자회담을 통한 문제 해결에 동의하고 있다.

그런데 한편으로 한국과 미국, 일본은 북한을 6자회담으로 복귀시키기 위해서는 강력한 제재가 필요하다고 한다. 제재를 하면 결국 6자회담으로 돌아올 것이라고 주장한다. 과연 그럴까?

기억이 10년도 못가나

지금까지의 역사적 경험, 특히 북한 핵문제와 관련된 지난 10여 년의 경험을 종합하면 제재를 통해 문제가 해결되었던 적은 없었다. 제재는 더 큰 충돌과 갈등만 불러왔으며, 대화와 협상만이 문제 해결에 한 발짝 다가갈 수 있었다.

가까운 사례로 부시 미 행정부에서 추진했던 국제적 공조를 통한 북한 압박, 예컨대 유엔 제재나 방코델타아시아(BDA) 금융 제재 등은 오히려 한반도의 위기지수를 더 높이기만 했고, 실타래가 풀린 것은 결국 북미 직접협상을 통해서였다.

시간을 좀 더 거슬러 올라가면 클린턴 행정부와 김영삼 정부 시절에도 북한에 대한 압박은 강조되었고, 영변 핵시설에 대한 폭격과 전쟁을 예상할 정도의 심각한 갈등이 있었다.

그러나 결국 당시에도 이러한 압박이 북한을 굴복시키거나, 협상장으로 나오도록 강제하지는 못했다. 대화와 협상을 통한 접근만이 해결책이었고 보다 나은 결과를 가져왔다.

이러한 역사적 사례는 불과 10년 안팎에서 벌어진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때와 똑같은 논리와 주장이 다시금 제기되고 있는 것이다.

혹자는 1차, 2차 북핵 위기와 지금의 위기는 다르고, 당시의 학습효과에 의해 과거 '북한의 도발 후 보상' 공식은 부정되고 있으며, 이러한 인식이 국제사회에서 일정하게 공유되고 있다고 주장한다. 그 때문에 중국·러시아까지 동참하는 이번의 제재는 그때와는 달리 충분한 효과를 거둘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러한 정세 판단은 현상의 표면에 나타나는 것만을 보고 있을 뿐, 그때와 변함없이 지속되고 있는 구조는 간과하고 있다. 즉, 현상으로 나타나는 국제 공조와 일치된 대북 압박에도 불구하고, 북한을 둘러싼 동아시아의 역학구조는 동일한 모양새를 보여주고 있다는 것이다.

중국에 있어 북한의 전략적 가치가 변한 것도 아니며, 러시아의 극동정책이 전환된 것도 아니다. 중국이나 러시아 모두 지금 북한에 잔뜩 찌푸린 얼굴을 하고 있지만, 아예 고개를 돌리고 있는 것은 아니다. 또한, 여전히 납치자 문제를 국내 정치에 활용하고 있는 일본의 처지도 바뀐 게 없다.

한국과 미국 모두에 2차 북핵 위기 당시의 정권과 성격이 다른 정권이 들어섰다는 것 외에 3차 북핵 위기는 본질에 있어 그 성격이 하나도 변하지 않았다. 그 본질은 △북미간 신뢰 부재 △적대적 관계 △한반도의 불안정한 정치·군사적 구조다.

하지만 경제위기에 시달려왔던 북한의 위기가 진정된 상태라는 것, 그리고 핵무기와 대륙간탄도미사일의 무기화에 어쩌면 성공했을지도 모른다는 것, 아니면 최소한 성능이 향상된 북한의 억지력이 강화되었다는 것 등이 중요한 변화 지점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본질은 그대로다

과거 북핵 문제가 교착 상태에 빠졌을 때 북미간의 중재자이자 건설적인 교량자로서 한국, 그리고 남북관계는 때로는 돌파구를 열어놓는 중요한 역할을 했다. 9.19 공동성명 채택 과정에서 나타난 중국 및 한국 정부의 중재자적 역할은 이미 잘 알려져 있다.

6자회담에서 나타난 건설적인 중재자 역할은 다시 남북관계의 신뢰를 한층 높이는 결과를 가져오기도 했다. 2007년 10.4 정상선언 전 북한이 북핵 10.3 합의 과정에서 양보를 한 것도 6자회담과 남북관계의 상호 보완성을 보여주는 사례라 할 것이다.

이처럼 역사적 경험은 대화와 협상 그리고 남북관계의 진전을 통한 북핵 문제 해결이 가장 건설적이며 현실적임을 보여주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화·협상→제재→충돌→협상복귀'가 반복되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직접적으로는 한국과 미국에서 정권이 교체되면서 대북정책이 변화했기 때문이다. 물론, 북한의 대미·대남정책에서도 이유는 찾을 수 있다. 그러나 근본적으로는 언제든 제자리로 복귀할 수밖에 없는 불안정한 정치·군사적 구조가 온존하는 게 문제다.

그렇다면 이처럼 역사적으로 검증된 문제 해결의 길을 제쳐두고 자꾸만 다른 길을 가려는 이유는 또 무엇일까? 결국은 아직도 냉전적 승패논리에 사로잡힌 정책 결정자들에게서 1차적인 이유를 찾아야 하지 않을까 한다.

역사는 되풀이된다고 한다. 하지만 과거 그대로 되풀이되지는 않는다. 단지 기억되지 않는 역사만이 되풀이 될 뿐이다. 이는 망각이다. 망각된 역사는 어떠한 교훈도 남겨놓지 않으며, 오류와 실패를 또 다시 가져다 줄 뿐이다. 기나긴 터널을 통과해 얻은 해답이 대화와 협상이라는 것으로 귀착될 때, 과연 우리는 무엇을 기억하게 될까?

인간은 슬픈 기억을 오래 간직할까? 아니면 기쁜 기억을 오래 간직할까?

오랜 인간의 역사를 돌이켜 보면 슬픈 기억, 위기에 빠졌던 기억을 오랫동안 간직한다고 한다. 자연과의 생존을 건 투쟁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위험과 슬픔을 기억하는 것이 보다 유리했기 때문이다. 위험과 슬픔에 대한 상대적으로 오랜 기억은 현재와 미래의 삶을 개척하고, 과거의 오류를 되풀이하지 않기 위한 인간의 오랜 진화의 결과라고 할 수도 있겠다.

되풀이는 되는 한반도 위기를 보면서 인간의 원초적인 기억의 진화 문제가 떠오르는 것은, 현재 상황에 대한 거창한 담론을 통한 위기의 분석보다는 현실을 만들어가는 인간 집단의 '기억과 망각'이 보다 더 설득력 있는 설명이라고 여겨지기 때문이다.

이 기사의 구독료를 내고 싶습니다.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매번 결제가 번거롭다면 CMS 정기후원하기
10,000
결제하기
일부 인터넷 환경에서는 결제가 원활히 진행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kb국민은행343601-04-082252 [예금주 프레시안협동조합(후원금)]으로 계좌이체도 가능합니다.
프레시안에 제보하기제보하기
프레시안에 CMS 정기후원하기정기후원하기

전체댓글 0

등록
  • 최신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