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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란 시위 사태가 '테헤란판 천안문'이라고?

[서정민의 '인샬라 중동'] 이중잣대와 서방추종을 집어 치워라

이란의 4600여 만 유권자가 제10대 대통령을 뽑기 위해 투표소로 향한 지난 12일. 예멘에서 의료봉사활동을 하던 한국인 엄영선 씨는 휴일을 맞아 독일인 및 영국인 동료와 함께 북부 사다 지역의 와디(건천)를 산책하고 있었다.

이들은 무장 세력에 납치돼 끔찍하게 살해당했다. 아직 자세한 수사 결과가 나오지 않고 있지만 납치 직후 살해된 것으로 보인다. 예멘에서만 올해 들어 한국인에 대한 세 번째 공격이었다.

지난 3월에는 예멘 동남부 시밤 지역에서 한국 관광객을 노린 폭탄공격이 발생해 4명이 목숨을 잃었다. 사태 수습을 위해 급파된 정부대표단도 수도 사나에서 폭탄공격을 받았다.

엄 씨의 납치 살해 사건이 어떻게 발생했는지, 누가 자행했는지, 그리고 향후 대책은 무엇인지 등 모든 것이 아직 의문으로만 남아있다. 하지만 우리 언론은 사고 발생과 간단한 분석 그리고 시신 수습과 수송에 대한 언급만 하고 있다.

대신 대다수의 언론들은 부정선거 논란이 일고 있는 이란 대선에 대한 보도에만 집중하고 있다. 이란에서 마치 1979년 이슬람 혁명을 뒤집는 '제2의 시민혁명'이 일어날 것처럼 말이다.

▲ 이란 대선에서 패한 무사비 후보가 18일 테헤란 시위에서 연설하고 있다. ⓒ로이터=뉴시스

이란 핵 의혹의 진원이 어디인지 보라

물론 이란의 정세는 중동뿐만 아니라 국제사회에서도 중요한 사안이다. 핵개발을 놓고 국제사회와 대치하고 있기 때문이다. '핵무기' 개발을 위해 핵 실험을 감행한 북한과 접하고 있는 우리에게는 더욱 그렇다.

이 때문에 적지 않은 우리의 핵 전문가들과 언론들은 북한과 이란을 동일선상에 놓고 분석하기도 한다. 이란 핵문제의 해법이 북한에 적용될 수도 있는 것처럼 말이다.

그러나 이란과 북한의 핵문제는 상당한 차이점을 보이고 있다. 핵무기 개발 카드를 공공연히 위협적으로 사용하는 북한과는 달리 이란은 단 한 번도 핵무기를 개발하겠다고 언급한 적이 없다.

다만 국제사회는 이란이 '악의 축'이자 불량국가이기 때문에 믿을 수 없다는 것이다. 우라늄 농축이 곧바로 핵무기화할 것이라는 우려를 내놓고 있다.

이 같은 반(反)이란 정서를 가진 서방 국가들은 이번 이란 대선의 후폭풍에 신속하고도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다. 핵개발을 추진하는 이란의 비민주적 신정 체제를 공격할 수 있는 최고의 기회를 잡은 것이다.

이에 서방은 부정선거의 가능성과 이에 대한 이란 대중의 집단적 저항을 부추기고 있다. 13일 부정선거 의혹이 불거지자마자 조 바이든 미 부통령,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 니콜라 사르코지 프랑스 대통령, 고든 브라운 영국 총리 등 주요 서방의 지도자들은 이에 대해 일제히 한 마디씩을 내놨다.

버락 오바마 미 대통령도 이명박 대통령과의 정상회담 직후 기자회견에서 이란의 부정선거와 민간인 사망에 대한 '심각한 우려'를 표명했다.

이런 민감한 반응을 보인 국가들은 공교롭게도 현재 이란과 핵 협상에 나서고 있는 나라들이다. 이란 국내에서 우라늄 농축을 극구 반대하는 서방 국가들이다.

이 나라들은 핵 발전의 원료가 되는 우라늄 농축은 국제원자력기구(IAEA)도 허용하는 사안임에도 불구하고 이란에 대해서는 다른 기준을 적용한다. 이란은 '불량국가'라서 안 된다는 것이다. 또 이슬람 혁명이 발생한 강경 이슬람 국가라는 점도 농축 반대의 이유다.

문제는 이란 핵 위협에 대한 의혹은 주로 이스라엘과 미국의 보수적 연구소에서 나오는 분석에 기초한다는 점이다. 중동에서 군사대국으로 부상하는 이란을 저지하기 위한 분명한 목적을 가진 단체들이다.

예를 들어 테헤란에서 반정부 시위가 한창인 16일 이스라엘의 비밀정보기관 모사드는 "이란이 기술적 실패만 없다면 오는 2014년께 핵폭탄을 보유하게 될 것"이라는 예측을 내놓았다. 전 세계 통신사와 우리 언론들은 특별한 논평 없이 이스라엘의 이 같은 경고를 뉴스로 전했다.

중동의 왕정과 독재정에는 왜 침묵하나

이란도 개혁이 필요하다. 30년간 지속된 신정체제에서 인권탄압은 물론 민주주의 발전을 기대하기는 어려웠다. 이 때문에 이번 대선에서 제기된 부정선거 의혹에 대한 문제제기와 국민적 저항이 이란의 민주화로 이어지길 필자도 간절히 바란다.

그러나 문제는 이에 대한 서방과 우리의 반응이다. '꼴통 국가 이란이 드디어 무너지는구나'라는 시각이 깔려있기 때문이다. 우리 언론은 이번 이란의 상황을 중국에서 발생했던 톈안먼(天安門) 사태와 비교하기까지 하고 있다. 이란의 패권주의를 병적으로 저지하려는 서방, 특히 미국의 의도를 따라가고 있는 것이다.

문제는 이중잣대다. 이란은 중동에서 자유로운 대통령 선거를 실행하는 국가 중 하나다. 이스라엘, 터키, 레바논 등을 제외하고는 나름대로 자유선거를 통해 정권이 바뀌는 나라다.

물론 종교지도자들이 행정부 위에서 군림하고 있고, 대통령 후보 자격에 대해 심사하는 문제점도 있다. 그러나 미국이 무조건적 지지를 보내는 사우디아라비아, 아랍에미리트연합(UAE), 오만, 카타르, 쿠웨이트, 바레인, 모로코, 요르단 등은 정권이 절대 바뀌지 않는 세습왕정체제를 가지고 있다. 공화정인 이집트와 예멘 정권 등도 미국의 지지를 업고 수십 년째 국가를 통치하고 있고 일부 국가는 세습공화정 체제로 나아가고 있다. 왕정국가들에서는 선거조차 없는 나라들도 많다.

그러나 이런 국가들에 대해 미국은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다. 하지만 유독 이란에 대해서만은 독재, 정교일치, 보수 강경 정권, 이슬람주의 국가 등 온갖 비난을 쏟아 붓고 있다.

▲ 지난 3일 사우디아라비아를 방문한 버락 오바마 미 대통령이 압둘라 국왕과 만나는 장면 ⓒ로이터=뉴시스

중동 사태, 우리의 눈으로 보자

특히 이란은 우리에게는 가장 중요한 중동의 경제 파트너다. 중동 내 최대 무역파트너가 바로 이란이다. 우리 수출 상품의 최대 판매처도 이란이다. 두바이를 거쳐 많은 수출품이 이란으로 향한다. 최대 산유국인 사우디보다도 더 많은 한국 제품이 팔리는 곳이다.

더불어 이란은 석유 및 가스 자원에 있어 세계 2위의 매장량을 보이고 있다. 에너지 안보를 위해 우리와의 보다 긴밀한 협력이 절실히 필요한 국가다. 서방의 '이란 때리기'에 우리가 동참할 필요가 있을까.

이란은 미국 주도 대이란 핵개발 억제 조치에 한국이 찬성표를 던져온 것에 대해 강력한 불만을 표출해왔다. 얼마 전 이란에서 만난 한 지식인은 "한국은 경제적 이익만을 추구할 뿐 국제사회에서 이란의 입장을 전혀 이해해주거나 지지하지 않는다"고 필자에게 거칠게 말했다.

예멘에서 발생한 한국인 납치 살해 사건은 이번에도 이렇게 다른 이슈에 묻혀가고 있다. 정부가 정해놓은 여행제한지역을 어기며 무리하게 봉사활동을 감행한 피해자의 실수도 있다. 그러나 이번 테러 사건은 우리 국민의 생명과 관련된 문제였다. 중동에서의 첫 번째 테러사건은 아니었지만, 정확한 사태파악과 재발 방지를 위한 대책을 놓고 심각한 논의가 필요하다.

중동이 아무리 테러에 얼룩지고 이란 사태처럼 민주화를 향한 정정불안이 지속되더라도, 해외의존적인 우리 경제를 위해서는 앞으로도 더 많은 국민과 기업이 진출해야 하는 곳이기 때문이다.

미국과 서방이 큰 관심을 보이는 이란 상황보다는, 단 한명이라도 우리 국민의 목숨을 앗아간 예멘 테러사태가 더 중요한 사안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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