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인화면으로
짧지만 올곧은 삶을 사셨습니다
  • 페이스북 공유하기
  • 트위터 공유하기
  • 카카오스토리 공유하기
  • 밴드 공유하기
  • 인쇄하기
  • 본문 글씨 크게
  • 본문 글씨 작게
정기후원

짧지만 올곧은 삶을 사셨습니다

[추모사] 고 서동만 교수 영전에 바칩니다

선배님! 기어이 가셨습니다.
순수한 열정으로 반드시 고쳐놓으려 했던 세상과
결국 이별하고 말았습니다.

*

일본 유학을 마치고 돌아온 선배님을
1995년 처음 뵈었습니다.
대학원에서 북한 정치를 공부하고 있던 제게 선배님은
훌륭한 학자이자 친근한 형님이셨습니다.

이제 막 북한바로알기에 심취했던 제게
선배님은 북한도 엄밀한 과학적 연구의 대상임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동시에 우리가 보듬고 살아야 할 현실임도 알려 주셨습니다.
지금도 저는 냉정해야 할 분석의 대상이자 항상 포용해야 할 동포로서
북한을 견지하고 있습니다.

대학 시절 독재에 저항하다 고초를 겪었다는 선배님의 과거도 전해 들었습니다.
그러나 제겐 오랜 연구와 방대한 자료를 토대로 북한학계에 큰 획을 그은 박사논문을 쓰신 학자로서 더 존경스러웠습니다.

외교안보연구원 교수로서 상지대 교수로서 학계에서 정력적인 활동을 하던 내내
선배님은 가장 성실하고 창조적인 학자셨습니다.
북한 연구에 큰 족적을 남긴 유수한 논문과
대북 정책에 큰 방향을 제세한 의미있는 고민거리를 항상 제기하시곤 했습니다.

*

존경해야 할 학자로서의 모습과 함께
선배님은 항상 인자하게 웃던 편한 형님이셨습니다.

8년 차이의 연배를 아랑곳하지 않고
뒷골목 허름한 술집에서 잔을 기울이던
선배님은 말없이 웃음만 지어 보이셨습니다.

그렇게 좋아하던 술이지만
술자리에서도 선배님은 진지하고 차분한 성품이었고
그래서 재잘재잘 떠들고 까부는 저를,
가볍고 촐싹대는 저를 나무라지 않았는지 모릅니다.

민주주의의 발전과
사회정의의 확산,
그리고 한반도 평화의 진전을 위해 선배님은
노심초사 세상에 기여하고자 했습니다.

학자로서 연구와 집필에서도
인간으로서 생활과 고민에서도
항상 선배님은 세상을 진보시키기 위해 노력하셨습니다.

*

때문에 2002년 대선에서 노무현 후보 캠프의 외교안보팀장을 선뜻 맡은 것은
오히려 자연스러운 일이었던 것 같습니다.
누구도 내놓고 자문을 꺼려했던 조건에서
선배님은 가장 먼저, 그리고 가장 적극적으로 나섰습니다.
옳은 길이라면 좌고우면하지 않는 평소 선배님의 성품과 열정이
그대로 반영된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선거에서 승리했고
선배님은 인수위 외교안보 분과 위원을 거쳐 국정원 기조실장을 맡으셨습니다.

*

그러나 그 때 선배님은 몸에 맞지 않은 옷을 입은 듯했습니다.

순수하고 깨끗한 마음으로 세상의 진보에 기여하고자 했던 선배님이
현실 정치의 영역에 들어간 순간,
그것은 쉽지 않은 선택이었습니다.

세상과 타협하기보다 세상을 바꾸려 했던 선배님이었기에
본질적으로 현실 정치는
어울리지 않는 곳이었습니다.

좋은 사람과 만나
편하게 나누는 술자리마저
정치적 경계의 대상이어야 하는 현실 정치는
선배님에게 버거운 곳이었습니다.

*

정치판을 나온 뒤에도
선배님은 세상과 타협하지 않고
오히려 세상과 거리를 유지하셨습니다.

옳지 못한 것에 대한 분기와
이를 고치려는 결기를
끝까지 간직하고 견지하셨습니다.

조금씩 타협하고 순응해가는 제가 오히려 부끄러웠습니다.

세상이 변하고 사람이 변해도 선배님은 항상 그대로였습니다.
그리고 그것이 오히려 선배님을 힘들게 했는지 모릅니다.

담배 한대 안태운 분이
폐암으로 가셔야 하는 이 기막힌 사실이
모순투성이의 우리 현실을 반증하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진지함과 성실함 그리고 순수함과 당당함으로
세상에 정면으로 맞서
타협하지 않고 고치려 했던 선배님의 짧지만 올곧은 삶은
그래서 저희들에게 큰 교훈과 아쉬움을 주고 있습니다.

이제 당신이 고치려 했던 세상을 뒤로 했으니 편안히 쉬세요.
이제는 조금 편하게 쉬셨으면 좋겠습니다.





* 4일 별세한 고(故) 서동만 상지대 교수(전 국가정보원 기획조정실장)를 추모하는 글을 쓴 김근식 교수는 서 교수의 서울대 정치학과 후배이다. 두 사람은 북한 연구를 같이 하며 정신적·학문적 유대를 쌓았고, 프레시안에서는 2006년부터 '한반도브리핑'을 같이 집필하며 활동했었다.

이 기사의 구독료를 내고 싶습니다.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매번 결제가 번거롭다면 CMS 정기후원하기
10,000
결제하기
일부 인터넷 환경에서는 결제가 원활히 진행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kb국민은행343601-04-082252 [예금주 프레시안협동조합(후원금)]으로 계좌이체도 가능합니다.
프레시안에 제보하기제보하기
프레시안에 CMS 정기후원하기정기후원하기

전체댓글 0

등록
  • 최신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