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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핵 해법, 보다 더 담대하라"

[안병진의 '오바마와 미국'] "그리고 힐러리 좀 말려라"

과거 빌 클린턴 전 대통령에 비해 버락 오바마 현 대통령의 측근들은 정말 행운아들이다.

널리 알려진 것처럼 평소에도 자주 싸늘해지고 화를 주체 못하는 클린턴의 심기가 가장 안 좋을 때는 새벽녘이다. 그래서 새벽에 그를 깨워야 하는 이는 백악관 모든 이들의 가장 큰 동정의 대상이기도 했다.

반면 자기 통제력의 달인인 오바마 대통령의 측근들은 오바마의 친절한 리더십 덕분에 긴장과 짜증을 덜 겪고 있다. 하지만 그러한 오바마도 아마 요즘은 부쩍 짜증이 늘어났을 것이 틀림없다.

자제력이 덜한 그의 대변인은 이미 얼마 전 기자 브리핑에서 그간의 스트레스를 못 견디고 성미를 그대로 드러내어 구설수에 오르기도 했다. 얼마 전 소말리아 해적 사건에 이어 다시 새벽에(그것도 미국판 현충일 휴가) 북한 소식으로 단잠을 깨야했던 오바마도 아마 그 인내심이 극에 달했을 것이다.

▲ 버락 오바마 미 대통령이 25일 백악관 로즈가든에서 북한 핵실험에 관한 성명을 발표하며 심각한 표정을 짓고 있다. ⓒ로이터=뉴시스

시간표가 어긋났을 뿐인가

최근 심각해진 한반도 위기는 마치 우리의 일상 인생에서의 남녀 관계처럼 국제관계도 서로간의 시간표가 어긋나는 것이 얼마나 큰 변수가 될 수 있는가를 생생히 보여주고 있다. 과거 클린턴 정부 시절의 중동 설계자인 마틴 인딕은 2009년 회고록에서 생생히 증언한 바 있다.

예를 들어 클린턴 전 대통령이 위험을 감수하고 이란에 우호적으로 접근했을 때는 이란이 주저하고, 반면에 이란이 위험을 감수하고 부시 행정부에 접근했을 때는 부시가 이라크에 정신이 팔려있었다. 결국 그 결과는 하루하루 핵무기 보유를 향해 치닫고 있는 이란의 오늘날 모습이다.

오늘날 미국과 북한도 서로 어긋난 시간표로 인해 동아시아 핵 도미노 현상을 향해 치닫고 있다. 이란과 달리 이미 어느 정도 해법이 존재하고, 전략적 우선순위에서 밀린 북한에 대한 미국의 느긋한 시간표와 2012년 강성대국의 허장성세를 향해 필사적으로 속도전을 전개하고 있는 북한의 모습이 바로 그러하다.

문제가 단지 시간표간의 충돌이라면 해법은 의외로 쉽다. 위기 고조 후의 고위급 대화를 통해 시간표를 조정하면 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문제는 이란이나 이스라엘 문제를 북한 문제보다 우선시하는 시간표의 문제보다 더 큰 뿌리가 있다. 현재 오바마 정부의 북한 및 이란 접근이 공통적으로 실패하고 위기가 고조되는 것만 보더라도 금방 드러난다. 시간표보다 더 중요한 질문은 왜 두 국가에서 오바마는 공통적으로 실패하고 있는가이다.

오바마의 좌절과 분노…이란은 미사일 발사, 北은 핵실험

비유적으로 표현한다면 이 실패는 마치 경제위기 대처에서 나타난 오바마의 인식의 미흡함, 그리고 경제팀의 관성적 태도의 문제와도 매우 유사하다.

오바마는 미국 경제위기의 심연이 얼마나 깊은지, 그에 비례해 얼마나 대담한 조치가 필요한지에 대해 아직 절실히 인식하고 있지는 못하다. 그리고 티머시 가이트너 재무장관을 중심으로 한 경제팀은 여전히 '루빈 사단'이라는 속성상 클린턴 시기의 패러다임에서 근본적으로 벗어나고 있지는 못하다.

어쩌면 오늘날 북한과 이란에서의 실패는 국제관계에서도 정확히 동일한 현상이 발생하고 있는 것으로 읽을 수 있다. 즉 오바마의 위기관과 안보팀의 문제 말이다.

물론 필자는 다른 대부분의 전문가들처럼 오바마의 외교안보관의 탁월함을 높게 평가한 바 있다. 사실 이란을 포함해 이슬람 국가들에 대한 오바마의 솔직하고 전향적인 톤이나, 북한과의 대화 자체를 큰 선심 쓰듯이 하지 않는 실용주의적 태도는 극단적 보수인 부시는 물론 자유주의인 클린턴 시대보다 분명한 일보 전진이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다른 한편으로 유약한 자유주의자, 젊은 초보 대통령으로 비추어지지 않기 위해 중동과 북한에 대해 단호함을 보이는 것은 균형 잡힌 행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그는 최근 자신이 과거 후보 시절 생각했던 것보다 국제관계 문제가 어려움을 측근들에게 토로한 것으로 알려진다.

아마 그는 클린턴이나 부시 정부에 비해 자신의 대담한 조치들이 중동과 북한에서 그에 상응하는 선의로 받아들여지지 않는 것에 좌절감을 느끼고 있을 것이다. 선의는커녕 이란은 얼마 전 중거리 미사일 실험을 성공리에 마쳤고, 북한은 한 발 더 나아가 핵실험을 했다. 그러니 그의 황당함과 좌절감은 너무도 당연하다.

새로운 접근, 그러나 금융제재는 계속…누가 믿겠나

하지만 그는 경제 문제 대처에서 드러난 오류와 마찬가지로 두 가지 질문을 자신에게 던지고 있지 않다.

오늘날 이란과 북한에 대한 대처는 그간 상호간 위기와 불신의 역사의 골이 가진 심연에 비례해 충분히 대담한가? 둘째, 그의 외교팀들은 이러한 대담한 접근의 메신저로서 역할을 잘 구현하고 있는가?

현재 이란과 북한에 대한 태도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문제들을 보면 이 질문들에 대한 대답은 회의적이다.

우선 이란 문제에서 그간 생겼던 불신의 골을 고려한다면 선의의 제스처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오바마의 접근은 획기적이지 못하다.

<인터내셔널헤럴드트리뷴>(IHT)의 2월 10일 보도에 따르면 이는 오바마 스스로가 여전히 이란을 의혹의 눈길로 바라보는 것에서 기인한다. 신문은 오바마가 이러한 의혹에 기초해 재무부의 스튜어트 레비 테러·금융정보 담당 차관으로 하여금 경제적 제재안을 지속하도록 지시한 것으로 알려진다.

진짜 실용주의자라면 의심스러운 이란의 행보에 의혹의 심증을 가지고 있는 것과 실제적 행동은 달리 할 수도 있다. 왜냐하면 지금은 상호 테스트의 단계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오바마는 의혹을 행동으로 보여주면서 오히려 자기 심증을 현실로 만들어 나가고 있다.

오바마의 화해 제스처에 대해 이란의 최고지도자인 아야툴라 하메네이는 "미국이 변하면 우리의 행동도 변할 것이다"라고 의미심장하게 응답한 바 있다. 그러나 이러한 싸늘한 응답에 오바마 행정부는 다소 좌절감을 느낀 것으로 알려진다. 더구나 지금은 풀려났지만 이란계 미국인 기자의 억류는 이 의혹의 기름에 불을 부었다.

하지만 '행동 대 행동'을 강조하는 이란의 싸늘한 언급은 사실은 오랜 불신의 역사와 미국을 테스트하기 위한 나름대로의 제스처의 역설적 표현이라 할 수 있다. 심하게 불화를 겪은 부부가 갑자기 열렬히 키스를 할 수는 없는 것 아닌가.

어떤 측면에서는 그들의 주저함은 그들의 맥락에서는 합리적 선택으로 읽을 수 있다. 중동정책 설계자 인딕이 자서전에서 스스로 고백하듯, 클린턴 정부 시기 한때 매들린 올브라이트 국무장관의 화해 제스처는 제재의 지속으로 공허한 메아리가 된 적이 있었다. 당시에도 이란의 외무장관은 하메네이와 흡사한 발언을 한 바 있다.(p223)

이러한 견지에서 최근 플린트 레버렛 등 오바마에 우호적인 중동문제 전문가는 <IHT> 5월 26일자에서 이미 이란을 잃어버린 게 아니냐며 오바마를 강하게 비판하고 있다. 경제문제에서 폴 크루그먼이 그러하듯 국제문제에서도 오바마는 우군을 잃어버리고 있는 걸까?

또 하나의 문제는 중동정책의 메신저들이다. 잘 알려진 것처럼 힐러리 클린턴 국무장관이나 이란 정책을 총괄하는 데니스 로스 걸프·서남아 특사는 대표적인 친이스라엘 노선의 주창자들이다.

힐러리는 후보 시절 친이스라엘 유권자층을 겨냥해 이란이 이스라엘을 공격하면 "완전히 지도에서 지워버리겠다"는 강경한 발언을 서슴지 않은 바 있다. 그리고 힐러리와 로스는 레버렛이 지적하듯이 진정한 화해 노선이라기보다는 여전히 이후 보다 강압적 외교를 위한 명분 쌓기처럼 보이는 행보를 보이고 있다.

메신저의 문제 : 네오콘 방불케 하는 힐러리의 발언들

북한 문제에서도 정확히 같은 오류들이 반복되고 있다. 북미간의 불신의 골은 결코 미국과 이란간의 관계에 못지않다. 하지만 오바마는 아직까지 그 골의 깊이에 상응하는, 북한조차 놀라고 흔들릴 정도의 대담한 접근을 보여주고 있지 않다. 여전히 압력과 대화를 적절히 혼합하는 미적지근한 접근과 완전히 결별하고 있지 못한 것이다.

더구나 3월 중순 한미합동군사훈련이나 PSI(대량살상무기 확산방지구상)는 언제나처럼 북한을 자극하고 그들이 도발할 수 있는 핑계를 제공하고 있다.

마치 이란의 싸늘한 언급처럼 북한도 "다시는 절대로" 6자회담에 나가지 않겠다고 언급한 바 있다. 하지만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이 지난 25일 <프레시안>에서 탁월하게 지적한 바 있듯(☞관련기사 보기), 그들은 너무 오버했다고 생각했는지 이 강경 성명에 뒤이어 묘한 <노동신문> 논평을 내놓았다. "미북간 회담도 많이 했고 합의 문건도 많이 만들었지만 이행된 것은 하나도 없다."

이는 앞서 소개했던 이란의 묘한 언급처럼 대미 접근을 원하는 북한의 절실함을 역설적으로 드러낸 것으로 해석될 수 있다. 정말 정세현 전 장관의 표현처럼 미국은 북한과 이란을 다루는 '매뉴얼'이라도 있어야 하지 않는가 하는 생각이 든다. 제목은 '그들의 말을 과학적으로 번역하는 법'

북한 담당 팀의 문제에 있어서도 이란 팀에서 나타난 문제점과 그대로 같다. 남편보다 더 강경한 현실주의자로 오래전 변신한 힐러리 국무장관은 2월 "북한이 후계문제를 둘러싸고 위기에 직면할 가능성이 있다"고 언급해 논란이 된 적이 있다.

이러한 발언은 서구나 한국의 입장에서는 상식적인 것이었지만, 극단적인 '포위 심리'를 가진 이들에게는 정권교체 전략에 준하는 것으로 받아들여질 수밖에 없다. 이어 힐러리는 "북한이 6자회담에 자진해서 돌아오지 않으면 경제적 지원은 아무 것도 없다"고 말해 다시 북한을 강하게 자극하였다. 이처럼 힐러리는 물밑에서 할 이야기와 공적으로 언급할 이야기를 구분할 줄도 모른다.

키신저, 카터, 클린턴이 있어 다행

현재 일각에서는 북한이 상투적으로 반복하는 위기 고조 게임을 지켜보면서 결국 대화국면으로 갈 것이라고 낙관적으로 이야기하고 있다. 물론 북미간 상호 이익을 고려하면 그럴 것이다.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이러한 일련의 행동들을 보면, 설령 위기가 진화된 이후에도 미국과 이란, 미국과 북한 사이에는 지속적인 소통의 불일치가 발생하고, 이것은 지속적인 소(小)위기를 양산할 것이라는 점이다. 어떤 방식으로든 이 점을 극복할 수 있는 다양한 방안이 미리 준비되어야 한다.

오바마의 미국은 모래시계와 같은 역사의 단순 반복이 결코 아니다. 미국은 진화하고 있다. 하지만 이란과 북한에 대한 태도를 보면 여전히 역사와 인생의 복잡함으로부터 정확하고 풍부한 교훈을 이끌어내는 길은 아직 멀고 험한 것 같다. 미국의 힘이 약화되고, 반면 이란과 북한의 핵무장이 가속화될수록 이 교훈의 중요성은 더 사활적이다.

클린턴은 임기 중 전직 보수 대통령이자 위대한 외교관인 리처드 닉슨으로부터 사교육을 받으며 무척 많이 배운 것에 흡족해한 바 있다. 요즘 이란과 북한에 대한 오바마의 태도를 보면 닉슨이 정말 그리워진다.

비록 닉슨은 가고 없지만 다행히 그의 파트너였던 헨리 키신저는 여전히 생존해 있다. 더 다행인 것인 과거 북한에 대한 클린턴의 어리석은 조치들에 지혜롭게 경고를 보냈던 지미 카터 전 대통령, 그리고 뒤늦게 북한 문제를 이해해 간 클린턴 전 대통령이 있다는 사실이다.

키신저를 특사로 보내는 것도 너무 중요하지만 오바마가 현재 가장 먼저 할 일은 이들과 함께 폭넓은 복기 작업을 벌이는 것이다. '도대체 어디서 단추가 잘못 끼어진 것일까'하는 화두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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