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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치로, 사무라이의 칼을 휘두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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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치로, 사무라이의 칼을 휘두르다

[김성민의 'J미디어']<1> 고시엔 대회와 무사도 야구

텔레비전을 중심으로 한 일본의 미디어 문화를 다방면에서 살펴보는 김성민의 'J미디어' 연재를 시작합니다.

'J미디어'는 일본 미디어 시스템의 구조와 역사적 배경, 문화적 의미, 한국 미디어 문화와의 관계를 짚어 보는 코너입니다. 일본 문화에 대한 일방적인 예찬론이나 비판을 넘어 최근 일어나는 구체적인 사례를 중심으로 일본의 미디어 문화를 조명할 예정입니다.

필자인 김성민 씨는 서울대 언론정보학과에서 석사학위를 받은 뒤 현재 일본 도쿄대 학제정보학부 박사과정에서 한일 미디어 문화의 역사를 연구하고 있습니다. 2008년 3월부터는 일본 학술진흥회 특별연구원으로도 활동하고 있고, 크레도프로젝트(www.credoproject.net)라는 이름으로 대중음악 활동을 하는 뮤지션이기도 합니다. <편집자>

▲ WBC 대회 일본 대표팀의 대표주자인 이치로가 안타를 치고 나가는 장면 ⓒ로이터=뉴시스

얼마 전 막을 내린 제2회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은 한국에서도 일본에서도 내셔널리즘과 상업주의가 절묘하게 교배된 하나의 거대한 미디어 이벤트였습니다.

그런데 그 과정을 들여다보면 한국에 비해서 일본이 훨씬 더 체계적이고 적극적이라는 인상을 지울 수 없었습니다.

특히 텔레비전 방송과 신문 보도 등을 보면서 일본에서 WBC는 단지 경기를 하나하나 이기는 것만으로는 부족한, 그것을 넘어서는 '그 무엇인가'를 쫓는 여정이었습니다.

고교야구에서 구현되는 '무사도 야구'

'그 무엇인가'를 특히 예민하게 느끼게 해 주었던 것은 바로 '사무라이'라는 표현이었습니다.

많은 미디어들은 일본 팀의 우승을 '사무라이 혼의 승리'라고 표현했습니다. 이미 대회가 시작되기도 전부터 '사무라이 제팬', '28인의 사무라이', '사무라이다운 야구' 등의 표현이 도배되다시피 했기 때문에 그것이 새삼스러울 것도 없었지만, 막상 일본 팀이 우승하고 난 후 일본 사회의 반응을 보고 있으니 자못 궁금해졌습니다.

사무라이 혼이라는 것은 도대체 어떤 의미일까. 사무라이와 야구는 어떤 연관이 있는 것일까. 왜 일본인들은 야구에 사무라이 혼이라는 표현을 붙이는데 익숙한 것일까.

WBC가 끝나자마자 '제81회 선발 고교야구 대회' 즉 '봄의 고시엔(甲子園. 갑자원)' 대회가 열렸습니다. 한국에서도 '고시엔'은 한신 타이거즈의 홈구장으로, 그리고 무엇보다 일본 고교야구의 상징으로 잘 알려져 있습니다.

저는 텔레비전을 통해 땀과 눈물로 범벅이 된 고교야구 선수들의 모습과, 몇 십 년 째 변하지 않았을 법한 각종 의식으로 가득한 '성지화'된 고시엔 구장을 보면서, 사무라이와 야구의 연관성을 일본의 고교야구를 통해 생각해보기로 했습니다.

무엇보다도 WBC 기간 동안 미디어가 생산해 낸 각종 '사무라이 정신 야구론'은 프로야구라기보다는 오히려 고교야구적인 것들과 가까운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 고시엔 대회 출전 선수들의 '성스러운' 세리모니 장면

사무라이 야구의 생산자 미디어

일본방송출판협회(<NHK>출판)가 발행하는 잡지인 <방송문화> 1979년 8월호에서 작가 무시아케 아로무(虫明亜呂無)는 이런 이야기를 합니다.

"고교야구는 일상생활에서 잃어버린 꿈과 동경을 엿볼 수 있게 한다. 그런데 텔레비전이나 라디오 방송 때문에 시합에 대한 흥미를 잃어버리기 일쑤다. 툭하면 정신론을 강조하면서 '고교야구의 좋은 점은 그것이 언제나 정신야구이기 때문'이라는 해설이 흘러나오면 나는 텔레비전의 볼륨을 줄여 버린다. 어떻게 저런 사람이 해설자가 되었는지…야구는 어디까지나 스포츠고 스포츠란 본래 놀이가 아니던가."

하지만 그의 바람과는 달리 일본에서 고교야구가 '놀이'였던 적은 단 한 번도 없었습니다. 게다가 그가 그토록 싫어한 '정신론'은 고교야구라는 미디어 이벤트의 심장과도 같은 것이었습니다.

사회학자인 아리야마 테르오(有山輝雄)는 고시엔 대회의 형성을 이렇게 설명합니다.

"미국으로부터 수입된 '베이스볼'은 고등학생들에 의해 '무사도(武士道)'를 규범으로 하는 일본의 독자적인 '야구'로 조형되었다. 그리고 일부 엘리트 고등학생의 문화였던 '무사도 야구'를 사회 전체에 퍼뜨린 것은 바로 아사히신문사가 만든 전국우승야구대회(1915년)와 마이니치신문사가 주최한 전국선발야구대회(1924년)라는 미디어 이벤트였다."

실제로 많은 문헌에 명기되어 있는 '무사도 야구'라는 것은 단순히 놀이로 즐기는 야구가 아니라 단 하나뿐인 '올바르고 규범적인'야구를 말합니다.

그리고 체계화된 피라미드의 정점에 놓여 있는 고시엔에 오르기 위한 뼈를 깎는 훈련과 자기 연마, 팀을 위한 희생과 헌신의 드라마는 극단적으로 미화되며 하나의 '도덕극'으로 연출되었습니다.

그렇게 본다면 무시아케를 괴롭혔던 것은 자질이 의심되는 몇몇 해설자와 아나운서가 아니라 그가 그토록 좋아하던 고교야구 그 자체였던 것입니다.
▲ 일본 고교야구 우승팀의 환호

'올바르고 규범적인 야구'라는 신화

물론 이러한 '무사도 야구'라는 용어는 일본이 전쟁에서 패한 이후 표면적으로는 그 모습을 감추게 됩니다. 대신 페어플레이나 팀플레이와 같은 스포츠용어가 그 자리를 대신하게 되지요.

전쟁 이후 일본을 통치했던 미군정(1945~52년)이 비(非)군국주의화 및 민주주의화 정책을 추진하며 군국주의 교육 금지의 일환으로 '무사도'나 '무도' 등을 교육에서 배제했던 것도 그 이유 중 하나였습니다. 그리고 앞 다퉈 밀려드는 미국 문화의 홍수 속에서 '무사도 야구'의 의미와 존재는 크게 흔들리게 됩니다.

그러나 일본의 고교야구는 다시 화려하게 부활합니다. 특히 고시엔 대회는 무질서와 자유, 물욕과 해방 등이 횡행하는 전후 사회에서 규율, 순수 등을 연출하는 장으로 커다란 성공을 거두게 됩니다.

'무사도 정신' 또한 계승되었습니다. 무사도 정신을 '스포츠맨 정신'이, '애국행진곡'을 '평화의 찬가'가 대신하는 변화의 과정에서도 단 하나뿐인 '올바르고 규범적인' 야구는 변함없이 이어졌던 것입니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텔레비전 방송이 있었습니다.

1953년에 개국한 <NHK> 텔레비전이 고시엔 대회를 중계하기 시작한 것은 바로 그 이듬해인 1954년부터였습니다.

스포츠 사회학자인 시미즈 사토시(清水諭)에 따르면, 고시엔 대회의 텔레비전 중계방송은 매우 정형화되어 있어서 눈부신 방송 기술의 발전 속에서도 그 '이야기' 자체에서는 큰 변화를 찾아보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가 분석한 1980년대의 텔레비전 중계방송이 가지고 있던 요소들은 바로 지금도 거의 그대로 브라운관을 통해 전해지고 있으니까요.

그 요소들이란 말하자면 이야기로서의 고시엔 야구가 만들어내는 공통의 이미지를 구성하는 것들입니다. '기백', '일체감', '정신력', '우정' 등의 요소들이 매우 치밀하게 구성되어 이야기 곳곳에 배치됩니다.

벤치 앞에서 원을 만들어 모인 선수들, 관중석에서 눈물을 흘리며 응원하는 여학생들의 모습 역시 그냥 우연히 카메라에 잡히는 것은 아닌 것입니다. 어떤 상황에서도 절대 포기 하지 않는, 부상까지도 정신력으로 극복하는, 언제나 모두를 위해 희생하고 헌신하는 '올바르고 규범적인' 야구는 지금도 매년 고시엔을 뜨겁게 달구고 있습니다.

그리고 저는 이 고시엔이 매년 완성해 내는 그 '이야기'가 WBC 사무라이 제팬의 이야기 속 '그 무엇인가'와 매우 가깝게 닿아 있는 것이 아닐까, '사무라이 혼'이라는 표현이 일본인들에게 낯설지 않은 것은 수십 년간 고시엔 야구를 통해 접한 '일본 야구의 정신'에 익숙하기 때문인 것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일본에서 스포츠 이상의 그 무엇인 야구와 야구 이상의 그 무엇인 고시엔 야구가 만들어내 온 신화가 사무라이 제팬을 통해서 확대 재생산된 것이라고 말입니다.

그러나 이 글이 '일본 야구가 말하는 사무라이 혼은 과거 군국주의의 산물이다'라는 식으로 단순하게 읽히지 않기를 바랍니다. 문화를 이해한다는 것은 그 사회의 삶의 방식을 총체적으로 이해하는 것이니까요.

WBC를 통해 다섯 번의 진땀나는 승부를 주고받으면서 많이 친숙해진 일본 야구를, 이기고 지는 것이 아닌 다른 관점에서 살펴보는 것이 일본의 문화를 이해하는 하나의 방법이 될 것입니다. '그 무엇인가'는 그래서 여전히 '그 무엇인가'로 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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