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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G는 '그림자 정부'의 빨대?

WSJ "공적자금, 골드만삭스 등 대형금융업체들에게 전용돼"

2008년 노벨경제학상 수상자 폴 크루그먼 프린스턴대 교수조차 이해할 수 없다고 불만을 터뜨린 미국 재무부와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의 공적자금 지원 행태에 대한 의문이 풀리는 것일까.

크루그먼 교수는 사실상 국유화한 미국의 양대 국책모기지업체 패니매와 프레디맥에 또다시 6000억 달러의 공적자금을 투입해 부실자산을 사주겠다는 지난해 11월 미 정부의 발표에 즉각 의문을 표시한 바 있다.

그는 "이미 이들 업체의 부채는 정부의 채무가 되었는데, 굳이 국채를 발행해서 이들 업체의 부실자산을 매입하겠다는 것을 어떻게 이해할 수 있나"라고 반문했다.

AIG 투입 공적자금, 어디로 순식간에 사라졌나 했더니...

당시 더 이해할 수 없는 사건이 있었다. 세계 최대 보험사 AIG에 1000억 달러가 넘게 공적자금이 지원되자마자 곧바로 상당액이 어디론가 사라진 것으로 드러난 것이다. 미국 언론 일부가 보도했지만, 정확한 용처를 파악하지 못한 채 이 의문은 무시됐다.
▲ AIG에 대한 공적자금 투입이 왜 '밑빠진 독에 물붓기'인지 그 실체가 드러났다. ⓒ로이터=뉴시스
하지만 마침내 지난 주말 <월스트리트저널(WSJ)> 등 일부 미국 언론들이 비밀문서를 입수해 그 구체적 용도를 폭로했다. 지금까지 미국 정부가 AIG에 투입한 공적자금 1730억달러 가운데 500억달러가량(약 77조원)이 미국과 유럽의 20여개 대형 금융회사들에 은밀히 재분배됐다는 것이다.

특히 충격적인 것은 평소에는 장부 외 거래로 취급되는 파생상품 손실을 보전해주기 위한 용도로 이 자금이 분배됐다는 점이다. AIG는 채권이나 증권이 부도날 것을 대비한 일종의 파생상품 보험 신용부도스와프(CDS)를 이들 금융회사들에 대규모로 판매했다.

이때문에 AIG는 그야말로 '밑빠진 독'이며, 주택저당증권(MBS) 등 각종 파생상품을 대규모로 판매한 대형금융회사들도 이에 못지 않은 '밑빠진 독'이라는 것이 이번 사건으로 드러난 것이다.

그중에서도 AIG는 단순한 금융업체가 아니라는 것이 드러났다. AIG는 다른 금융업체들에게 공적자금을 수혈하는 비공식적인 통로로 기능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FRB "AIG 공적자금 용도 밝힐 수 없다"

FRB는 이번 폭로에 대한 구체적인 경위를 이미 알고 있었으며, 미 상원이 AIG의 공적자금 전용 전모를 밝히라는 요구를 철저하게 거부해 더욱 파문이 커지고 있다.

지난 5일 상원 금융위 청문회에서 AIG 구제자금의 용도를 공개하라는 요구에 도널드 콘 FRB 부의장은 "그럴 경우 AIG가 비즈니스를 계속하는 데 타격이 가해질 수 있다"며 일축했다.

아직 AIG로부터 공적자금을 분배받은 금융회사들의 명단이 전부 밝혀지지 않았지만, WSJ 등의 보도에 따르면 골드만삭스와 독일의 도이체방크가 각각 60억달러를 지난해 9~12월 사이에 받아 가장 많은 수혜를 받았다.

또한 미국의 모건스탠리와 메릴린치·와코비아 · 뱅크오브아메리카(BOA), 프랑스의 소시에테제네랄, 스위스의 UBS, 영국의 바클레이즈와 로열뱅크오브스코틀랜드(RBS) 및 HSBC, 프랑스 투자은행 크레디아그리콜의 자회사인 칼리옹, 독일 DZ방크 계열 코랄퍼처싱, 스페인의 방코 산탄데르, 네덜란드의 라보뱅크 등도 포함됐다.

특히 AIG로부터 공적자금을 분배받은 미국의 업체들은 미국 정부로부터 이미 공식적으로 구제금융을 받은 업체들이라는 점에서 비공식적인 공적자금을 받아야할 정도로 실제 규모를 알 수 없는 부실을 감추고 있다는 의혹을 자아내고 있다.

무엇보다 골드만삭스는 부시 행정부의 재무장관 헨리 폴슨이 이 업체의 최고경영자 출신으로 AIG에 대한 구제금융을 적극적으로 추진했다는 점에서 AIG-골드만삭스-폴슨으로 이어지는 정경유착 의혹이 더욱 불거지게 됐다.

이번 AIG 사태로 금융계 안팎에서는 최근 글로벌 금융위기가 '그림자 정부'의 의도에 따른 것이라는 음모론이 더욱 설득력을 갖게 됐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이 음모론에 따르면, 미국은 태생적으로 세계 최대의 부국이 아니라 구대륙(유럽) 소수 민간 금융자본에 의해 '금융식민지'로 운명지어졌다. 물론 이 음모론은 사실상 자본주의가 금융자본주의로 고도화되면서 빚어지는 필연적인 과정을 비유한 것이라는 해석도 있다.

미국은 최대 부국이 아니라 '금융식민지'라고?

어쨋듯 이 음모론에 따르면, FRB 탄생 이전에 미국의 중앙은행 역할을 한 JP모건 등은 구유럽 소수 민간 금융자본의 하수인이다. 실제로 FRB는 이들 자본의 영향력이 개입한 탓에 실제 이름처럼 연방기구가 아니라 JP모건 등이 대주주인 민간 컨소시엄의 지배를 받는 민간업체인 것으로 알려졌다.

세계 경제를 지배한다는 FRB가 미국 연방기관이 아니라는 충격적인 사실은 최근 화제가 되고 있는 <달러>(엘렌 브라운 지음. 이재황 옮김)라는 책에 자세히 소개돼 있기도 하다.

실제로 현재 세계 기축통화인 달러의 발행권한은 민간업체인 FRB가 갖고 있으며, 미국 정부는 국채 발행권만 갖고 있다. 국채를 발행해 FRB에 맡기면 FRB가 달러를 찍어 주는 것이다.

문제는 FRB가 이 국채를 담보로, 또는 그냥 발권력을 동원해 마구 달러를 추가 발행하고 있다는 것이다. 심지어 지난 2006년 미국 정부는 M3(총유동성) 통계 발표를 전격 중단했다. 도대체 FRB가 얼마나 많은 달러를 찍어대고 있는지 공개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이미 통계에 잡힌 미국 국민들의 빚만 천문학적이다. 1인당 10억 달러가 훌쩍 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림자 정부'라는 음모론에 따르면, 미국인들이 그동안 주택가격이나 주가 상승을 믿고 빚을 내서 흥청망청 호사를 누리게 만든 것은 구유럽 금융자본이 미국을 최후의 '숙주'로 키우는 전략에 따른 것일 뿐이다.

달러 빚에는 반드시 이자가 붙는다. 빚이 천문학적으로 늘어나면 이제 미국인들도 더 이상 빚에 이자까지 합쳐서 갚지 못할 날이 오게 된다. 그것이 바로 현재 진행되고 있는 미국발 글로벌 금융위기의 본질이라는 것이다.

미국 뿐 아니라 달러를 '스와프'로 끌어들인 한국을 비롯해 이른바 '달러우산 동맹국'들은 모두 미국과 같은 운명이다. 달러 빚을 갚지 못하게 되는 순간 IMF 사태 때처럼 한 나라의 자산은 헐값이 된다.

그러면 구유럽의 소수 금융가들은 이들 자산을 헐값에 사들인다. 그렇다면 AIG처럼 미국 정부의 특별한 비호를 받고 있는 금융업체들은 무엇인가. 그들은 미국민들의 혈세를 빨아들여 전세계에 뿌리는 빨대 역할을 하는 것이다.

이제는 의혹의 기관으로 전락한 FRB의 벤 버냉키 의장조차 지난 3일 "이번 금융위기 과정에서 제일 화나는 것은 헤지펀드처럼 운영돼온 AIG를 구제할 수 밖에 없었던 것"이라며 AIG를 강도 높게 비판했다.

현재 미국 의회는 AIG를 파산시키거나 미국 정부가 이번 의혹의 전모를 소상히 밝혀야만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로이터> 통신에 따르면, 크리스토퍼 도드 상원 금융위원장(민주당)은 "투명성과 회계의 모호함이 문제"라고 비판했고, 상원 금융위의 공화당 중진인 리처드 셸비 의원도 "FRB와 재무부가 공개를 거부하고 있지만 과연 끝까지 버틸 수 있는지 두고 보자"고 경고했다.

특히 셸비 의원은 8일(현지시간) <ABC> 방송을 통해 "미국은 지난 1990년대 일본이 사실상 실패한 은행들을 지원함으로써, 경제 위기를 더욱 연장시킨 것과 같은 전철을 밟아서는 안 된다"면서 이미 실패한 은행은 파산해야 한다고 말했다.

매케인 "GM, AIG는 파산시켜야"

지난 대선에서 버락 오바마 대통령에게 패했던 존 매케인 공화당 상원의원 이날 <폭스뉴스>에 출연해 "대형 은행들이 파산하도록 내버려두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매케인 의원은 파산이 불가피하다고 생각하는 구체적인 업체들의 이름도 숨기지 않았다.
그는 "현재 GM이 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은 '챕터 11'에 따라 파산보호신청을 하는 것"이이며 또한 "지난해 7000억 달러 규모의 경기부양책이 채택될 당시부터 AIG가 파산하는 것을 지지했었다"고 말했다.

미국인들이 선출한 미국의 의원들이 과연 이번 금융위기에서 이해할 수 없는 금융계와 정부의 유착 의혹에 어느 정도 맞설 수 있을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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