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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구다라', 곰나루인가 스마트빌딩인가?

[김운회의 '새로 쓰는 한일고대사'] <17> 안개속의 그 이름, 백제와 '구다라' ③

(4) '구다라(クタラ)', 곰나루인가 스마트빌딩인가?

쥬신은 예로부터 태양과 관련이 깊은 민족입니다. 태양을 의미하는 고유어는 '해'인데 전문가들은 중세의 자료로 보면 '새', '쇄', '세', '시(씨)' 등으로 쓰인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해(the sun), 쇠(iron), 동쪽, 밝음(bright), 새(bird) 등이 동류(同類)의 말로 추정할 수 있습니다. 쥬신에게 있어, 새(bird)는 태양이 있는 하늘과 사람이 사는 땅 사이를 자유롭게 날면서 하늘과 땅의 메신저 역할을 한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정호완 교수에 따르면, 우리 고유어로 태양을 가리키는 말은 '새(해)'와 '니(낮 - 날)' 등의 두 가지 유형이 있다고 합니다. 새(해)는 철기문화 곧 쇠그릇문화를 가리키고, '니(날 - 낮)'는 돌그릇 문화 곧 고인돌과 같은 거석문화를 드러낸 것으로 볼 수 있다고 합니다. 그리고 곰(熊 : 고마)의 머리소리(ㄱ)가 약해져 탈락하면서 '곰(굼) → 홈(훔) → 옴(움)'이 되어 '어머니(어머니, 엄니, 어무이, 엄마, 어머이, 어메, 오마니, 옴마, 오매)'라는 말로 정착했을 것으로 봅니다. 만주 지방의 에벤키 말에서 곰을 호모뜨리, 조상신을 호모꼬르(homokkor), 영혼을 호모겐(homogen)이라 해서 우리와 거의 비슷한 소리모습을 보여 준다는 것이죠.24) 즉 쥬신의 뿌리 깊은 곰 숭배 신앙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합니다. 만주 지역의 대부분 종족들은 그들의 조상을 곰 또는 곰과 교혼하여 낳은 아이라고 보고 있습니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이 '곰(고마)'이 땅이름 등에서 후대에 오면서 거북으로 바뀌어 쓰이는 경우가 나타난다는 것입니다.25) 이해가 안 되지요? 이에 대해 정호완 교수는 한반도에서 곰보다는 거북[龜]이 많이 살고 있고, 추운 북방에서 유목생활을 하다가 이주하여 따뜻한 남쪽에서 농경생활에 적응하면서 농업생산에 필요한 물과 땅신에 대한 믿음 곧 지모신(地母神) 믿음으로 바뀐 것으로 추정합니다. 박지홍 교수의 연구에 따르면, 거북도 곰과 같은 음절구조를 보이는 '검(감)'에서 나온 것이라고 합니다.26)

상고시대에는 쥬신을 오래 동안 허모 또는 쉬모[예맥(濊貊)] 또는 모[맥(貊)]라고 불렀습니다. 모허[말갈(靺鞨)]이라는 말은 이 말을 거꾸로 부른 말로 추정됩니다. 그런데 이 모(貊)라는 말은 일본어로는 '바카쿠'라고 합니다. 어떻게 들으면, 백제를 의미하는 '밝지에'[paktsiei]와도 비슷하게 들리기도 합니다. 일부 언어학자들은 이 두 말이 동류라고 지적하기도 합니다.

일본에서는 백제를 '구다라(クタラ)'로 부릅니다. 현재 일본에서는 제국주의 시대 당시 백제 관련 많은 유적들이 그 이름을 바꾸거나 감추었지만 아직도 '구다라'라는 말이 많이 남아있습니다. 오늘날까지도 일본에는 백제사(百濟寺)라는 이름의 사찰이 5곳이나 남아있습니다.27)

일본 학자들은 '구다라'를 백제의 고어로 '큰나라'를 의미한다고 합니다. 그러나 제 생각은 다릅니다. 그 보다는 오히려 '곰나루', '곰나라' 또는 '구들'과 관련이 있을 가능성이 큽니다(물론 곰나라는 큰 나라라는 의미로도 사용할 수도 있습니다). 지금도 한국의 부여에서는 낙화암과 백제의 왕성이었던 지역을 구드리(구드래)라고 부르고 있죠.
▲ [그림 ⑤] 낙화암에서 본 구드래 지역(충청남도 부여)

백제 즉 '구다라'라는 말은 『일본서기』진구황후(神功皇后) 49년조에 처음 나타납니다. 일본에서는 백제를 '구다라'라고 부르면서 이에 해당하는 한자말로는 백제(百濟)·구태랑(久太良)·구다랑(久多良) 등으로 표기하였습니다.28) 오사카(大阪) 일대를 고대 일본에서는 '구다라 고올리' 즉 백제군(百濟郡)으로 불렀습니다. 이 일대는 5세기 초 가와치(河內) 왕조를 시작한 닌도쿠 천황의 본거지였습니다.

그러면 '구다라'라는 말은 어떻게 추적할 수 있을까요? 아직도 이 말의 의미를 속 시원하게 분석한 연구는 없습니다. 저는 크게 봐서 '구다라'가 곰나루(熊津)에서 나왔거나 구들 즉 온돌에서 나왔을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첫째, '구다라'가 곰나루 즉 웅진(熊津 : 현재의 충청남도 공주)에서 나왔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구다라'를 형태소로 나누면, '구 + 다라'가 되는데 여기서 '구'는 곰[熊]을 의미하고 '다라'는 나루[津]의 다른 표현이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국어학자인 정호완 교수의 주장입니다. 정호완 교수에 따르면, 곰 즉 웅(熊)은 중국말로는 '큐 - 쿠 - 다이 - 나이'라고도 하는데 다르게는 '우(優)'또는 '구(久)'로도 기록되고 있다고 합니다. 그리고 '구다라'의 '다라'는 터어키(돌궐) 말에서 강 혹은 나루의 뜻으로도 사용되었기 때문에 구다라 - 웅진(熊津)이라는 말이 나올 수 있다는 것입니다. 곰은 한자로 웅(熊) 또는 맥(貊)으로 기록되는데, 이 맥(貊)이라는 글자에서 돼지 시(豕)를 빼어 버리면 백(百)이 남습니다. 그러면 결국 백제는 맥족의 땅이라는 말이 성립된다고 합니다. 고구려 즉 고려(高麗)도 지금도 일본에서는 '고마'로 읽고 있습니다. 이와 같이 정호완 교수는 '구다라'가 곰 신앙을 드러낸 소리 상징으로 보고 있습니다.29)

둘째, '구다라'의 기원이 고대 쥬신의 대표적인 건축 기반 시설인 '구들' 즉 '온돌'에서 나왔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저는 그 동안 이 '구다라'라는 말이 또 구들 즉 온돌과 관련이 있다고 추정해왔습니다. 이제 이 점을 살펴봅시다.

쥬신의 대표적 주거문화는 구들 즉 온돌(溫乭)입니다. 학자들은 구들이 고조선·부여나 고구려(손진태 선생, 최남선 선생의 견해)에서 나왔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온돌의 기원에 관한 대부분의 견해들은 ① 중국 서북부 산서성(山西省) 또는 ② 동호(東胡), ③ 만주 등에서 나왔다고 보고 있습니다.

구들(온돌)은 한반도 전역에 분포하고 있으며 과거 고조선(古朝鮮)이나 고구려(高句麗)의 중심 영역이었던 심양 (瀋陽) 일대에도 분포되어있습니다. 가장 오래된 것은 랴오닝성(遼寧省) 무순시(撫順市) 연화보 유적으로 이것이 고조선 시대의 유적으로 알려지고 있습니다.

『구당서』에는 일반적으로 가난한 고구려 사람들이 "겨울에는 긴 구덩이[長坑]을 만들어 그 구덩이 아래에 불을 때어 방을 덥힌다."30) 라고 하고 있습니다. 송나라 때 서몽화의 『삼조북맹회편(三朝北盟會編)』을 보면, 여진 사람(만주 쥬신)들의 주거를 기술한 것으로 "기와가 없고 집둘레에는 목상이 둘려 있으며 그 아래서 불을 때는데 구덩이[坑]을 통해 방을 덥힌다. 그리고 그 덥힌 방에서 잠도 자고 식사도 하고 생활도 한다."라고 합니다. 같은 내용이 만주쥬신의 금나라의 기록인 『대금국지(大金國志)』, 청나라 초기 저작물인 고염무의 『일지록』 등에도 광범위하게 나옵니다.31) 이를 보면 구들은 쥬신의 대표적인 주거 기반시설이라는 점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지금도 부여의 왕성이 있었던 낙화암 가까운 곳에 구드래(구드리)라는 곳이 있습니다. 이 지명은 예로부터 이 지역에 있던 선착장을 '구드래 나루'라고 하면서 한자로는 구암진(龜岩津)이라고 불러왔습니다.32) 따라서 '구드래'라는 것을 돌[石]을 지칭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삼국유사』에는 "사비하(泗沘河 : 부여를 흐르는 강)의 절벽에는 바위가 하나 있었는데, 열 명은 앉을 정도는 되었다. 백제왕이 왕흥사에 예불하려면 먼저 이 바위에서 부처를 바라보며 절을 하였는데 이 때 그 바위가 저절로 따뜻해져서 이름을 구들(火 + 突 또는 온돌석)이라고 하였다."라고 합니다. 여기에 나타난 돌이 구들(온돌)이라는 것은 그 동안 일반적인 견해입니다.33)

결국 '구드래'라는 말은 '구들(온돌)'을 의미하는 말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대체로 큰 왕성이나 집을 지을 때는 넓은 바위를 이용하는데 이 넓은 바위가 거북이 모양으로 보일 수가 있습니다. 그렇지 않더라도 앞서 지적했듯이 '곰(고마)'이 땅이름 등에서 뒤로 오면 거북으로 바뀌어 쓰이는 경우를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사료의 내용으로 봐서 이 넓은 바위를 백마강(사비하)을 건너는 선착장으로 이용한 듯합니다.
▲ [그림 ⑥] 구드리의 풍경(현재 낙화암의 안쪽 조각공원)

지금까지의 분석을 통하여 세 가지 가능성이 나타납니다. 첫째는 곰나루 즉 웅진을 '구다라'로 불렀을 가능성, 둘째는 거북바위 또는 곰바위가 있는 나루를 의미 있게 받아들여서 '구다라'로 지칭을 했을 가능성, 셋째는 구들이라는 당시로 보면 최첨단 시설인 구들을 보면서 '구다라'로 지칭했을 가능성 등이 있습니다. 물론 이 세 가지가 모두 복합적으로 작용했을 가능성도 있습니다.

다른 경우들은 이미 많이 설명했기 때문에 구들 즉 온돌의 경우만 다시 봅시다. 당시 온돌이라는 난방구조는 최고 수준의 시설이었습니다. 오늘날로 친다면 아마도 스마트빌딩(Smart Building)과 같은 첨단시설일 것입니다. 스마트 빌딩이란 1984년 미국에서 처음 사용된 말로 건물을 지을 때부터 건축·통신·사무 자동화·빌딩 자동화 등의 4가지 시스템을 유기적으로 통합하여 건물관리 인력을 줄이고 첨단 서비스 기능을 제공함으로써 경제성과 효율성, 안전성을 추구하는 건물을 말합니다. 스마트 빌딩은 일본에서는 '인텔리전트 빌딩'(intelligent building : 1986년), 한국에서는 '첨단 정보 빌딩'(1991년)이라는 말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스마트 빌딩에서는 냉·난방은 물론, 전기 스스템의 자동화, 와 자동 화재 감지 및 보안 장치 등에 사무 자동화와 홈 네트워크 기능 등도 통합된 고기능 첨단 건물입니다. 그러니까 만약 '구다라'라는 말이 구들에서 나온 말이라고 하면, 비유하건데, 현대 한국을 '스마트빌딩, 코리아(Korea)'라고 하는 것과도 다르지 않을 것입니다.

지금까지 우리는 백제라는 나라이름의 기원에 대해서 다각적으로 분석해 보았습니다. 물론 아직까지도 많은 연구가 더 필요한 시점이지만, 대체로 어떤 경로를 통해서 이 말이 사용되었고, 그 의미는 무엇이었는지, 또 이 말이 어떤 식으로 변용 정착되어 갔는 지와 관련하여 백제에 대한 새로운 이해를 하실 수도 있었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이제부터는 좀 더 본격적으로 부여계의 역사적 갈등과 전개를 보도록 합시다.

필자 주

(24) 정호완 『우리말의 상상력 2』(정신세계사 : 1996) 아사달과 쇠그릇 문화.
(25) "熊神 龜山"(『世宗實錄』) "人君以玄武爲神"(『漢書』) "前朱鳥後玄武"(『禮記』).
(26) 정호완. 앞의 책.
(27) 홍윤기 『역사기행』18 백제인 숨결이 깃든 구다라 관음(『세계일보』2006)
(28) 최재석 『백제의 대화왜와 일본화 과정』(일지사 : 1990) 125~131쪽.
(29) 정호완. 앞의 책.
(30) "冬月皆作長坑下然溫火亂取暖"(『舊唐書』「高麗」)
(31) 온돌에 관한 상세한 내용은 김운회 『대쥬신을 찾아서』(해냄 : 2006) 116~119쪽 참고.
(32) 도수희. 앞의 책, 88쪽.
(33) 김원중『삼국유사』(을유문화사 : 2002) 211쪽, 노도양 「百濟 王興寺址考」『明代論文集 4』67쪽, 홍사준 『백제의 전설』(1959) 20쪽 등 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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