헨리 폴슨 재무부 장관은 일단 7000억 달러에 달하는 구제금융을 승인해달라고 의회를 압박하고 있다. 23일(현지시간) 폴슨 장관과 버냉키 FRB 의장은 상원금융위원회 청문회에 함께 출석해 "구제금융 법안이 신속히 처리되지 않으면 경기후퇴와 실업난, 주택차압 증가가 불가피하다"고 으름장을 놓았다.
하지만 의회의 반응은 매우 회의적이다. 상원 금융위원장인 크리스토퍼 도드 민주당 의원은 "속도가 중요하다는 것을 이해하지만 이러한 계획이 과연 올바른 것인지에 대해 더 관심을 갖고 있다"며 "만약 이번 구제안이 효과를 발휘하지 못한다면 두 번째 조치도, 대안도 없다"고 우려했다.
공화당의 리처드 셸비 의원조차 "재무부의 계획이 막대한 공적자금 투입에도 제대로 작동하지 않을 것으로 우려된다"면서 "서둘러 마련된 방안을 실험하느라 막대한 세금을 허비하는 것은 어불성성"이라고 말했다.
특히 이번 금융위기는 주택가격과 연계된 파생상품이라는 부실자산의 성격 때문에 정부가 '시장가격'보다 비싸게 사주지 않는 한 정부와 금융업체 간의 매매가 이뤄지기 힘들다는 지적은 점점 설득력을 얻어가고 있다.
파생상품은 시장의 신뢰를 잃으면 시장가격 산출 자체가 어렵다. 여러 가지 채권을 비빕밥처럼 섞어서 만들었기 때문이다. 특히 이번에 문제가 된 파생상품은 주택가격과 연계돼 있는데, 미국 역사상 처음으로 주택가격 거품이 전국적으로 빠지고 있으며, 이 현상은 계속 될 것이라는 예측이 지배적이다.
결국 현재의 부실자산은 더 가치가 떨어지고, 지금은 건전하다고 분류된 것도 앞으로 부실화될 가능성이 높다. 실제로 주택담보대출 상환 연체율은 상승세를 타고 있다.
이때문에 일본의 저명한 경제논객 오마에 겐이치는 "7000억 달러는 농담 수준"이라면서 "최소한 5조 달러가 필요할 것"이라고 경고했다.(☞관련기사:"폴슨, 누구냐 넌...")
재무부의 방식으로는 밑빠진 독에 물붓기가 되기 때문에 아예 처음부터 국제적인 구제금융 풀을 만들어 '신뢰의 위기'를 잠재워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미 프랑스 등 유럽 정부들은 이런 구상 자체를 즉각 거부하고 있다.
"구제금융책은 구멍 숭숭한 보트에서 물 퍼내기"
만일 재무부의 특단의 대책이 폴 크루그먼 프린스턴대 교수의 평가처럼 "쓰레기에 돈 퍼주기'로 드러날 경우, 월가(街)는 물론 '메인스트리트'로 불리는 실물경제가 무너지는 대공황아 닥칠 것이라는 경고도 잇따르고 있다.
클린턴 행정부에서 노동부 장관을 지낸 로버트 라이시도 이날 자신의 블로그에 올린 'Why Paulson and Bernanke are only Partly Correct, and Why Main Street Needs More Direct Help'라는 글(원문보기)에서 정부의 방안이 잘못된 전제 위에서 출발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상원 청문회에서 폴슨과 버냉키가 명확히 밝혔듯 그들의 논리는 이렇다. 방만한 모기지 대출로 불거진 월가에 일정한 규모의 부실자산이 있는데, 이를 제거하면 신용이 회복되고, 이에 따라 메인스트리트도 안도의 숨을 쉴 수 있게 된다는 것"이라면서 "하지만 그들은 최근까지 신용도가 양호한 곳에서도 부실자산이 늘고 있다는 사실을 말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이 글에 따르면, 8월말 현재 한달 이상 모기지 연체 비율은 6.6%으로 6월말(5.8%)에 비해 증가했다. 더욱 우려되는 것은 신용카드와 자동차 대출 등에서도 연체율이 높아지고 있다는 점이다.
이런 금융부채만이 문제가 아니다. 일자리와 임금 축소가 미국 전역에서 벌어지는 현상이라는 점은 사태를 더욱심각하게 만들고 있다. 대출금을 상환해왔으나 더 이상 불가능한 처지로 몰리고 있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라이시는 "실업률이 가장 높은 주에서 모기지 연체율도 가장 높다는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면서 "노동부 통계에 따르면, 캘리포니아의 실업률은 지난달 7.7%로 1년전(5.5%)에 비해 높아졌으며, 플로리다의 실업률도 4.1%에서 6.5%로 늘었다"고 전했다.
그는 "캘리포니아와 플로리다 등 미국에서 일자리가 가장 빨리 사라지는 곳에서 부실채권이 가장 빠르게 늘어나고 있는 것은 결코 놀라운 일이 아니다"고 덧붙였다.
또한 그는 "공식통계가 그 정도이지, 지난해에 비해 60만개의 일자리가 실업수당 청구 명단에 추가됐고, 구직을 아예 단념한 미국인들도 수백만명에 달한다"면서 "그나마 일자리가 있는 사람들도 고용주가 직원들의 임금을 줄이려하기 때문에, 적은 시간을 일하는 상황에 몰리고 있다"고 강조했다.
라이시는 "수백만 명의 미국인들이 빚을 갚지 못하는 처지인데, 이 상황에서 월가에게 구제금융을 퍼붓는 것은, 파도가 거센 바다에 구멍이 숭숭난 보트에서 물을 퍼내려는 것과 같다"고 비판했다.
재정적자의 늪으로 빠지는 미국 경제
그는 "월가의 부실자산을 떠맡으라고 요구받는 납세자 중 많은 사람들은 소득이 줄어서 부채 상환에 어려움을 겪고, 더 많은 부실채권을 만들어낼 가능성이 있는 사람들"이라면서 "메인스트리트에 있는 미국인들의 수중에 돈이 더 많아지지 않는다면, 월가의 부실자산은 계속 증가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이에 따라 라이시는 "의회가 월가에 대한 강력한 대책을 마련해 나가야 하겠지만, 메인스트리트를 위한 직접적인 지원책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면서 "실업보험을 확대하고, 모기지 금리를 동결하고, 일자리 창출을 위한 부양책을 채택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하지만 어떤 방식으로든 미국의 재정적자는 천문학적으로 늘어날 수밖에 없다는 점에서 미국의 앞날에 대한 우려도 점점 커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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