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도 문제가 부시 미국 대통령의 '배려' 하나로 간단하게 진정 국면으로 접어들었다. 시뻘건 노기로 온 나라가 온통 달아오르던 순간에 이뤄진 미국 대통령의 미소 띤 한 마디에 의해 언제 무슨 일이 있었냐는 듯, 또 다시 불완전한 평온으로 급선회하게 된 것이다….
독도문제는 활화산과 같다. 일단 터져 나오면 국가적 피해가 너무 심하다. 하지만 독도문제는 활화산과 다른 면도 있다. 화산폭발에 대해서는 온갖 연구와 대비로 그 피해를 최소화시킬 수 있지만 폭발 그 자체를 막을 수는 없다. 그러나 독도문제는 우리가 면밀히 연구하고 잘 대처하기만 하면 그로부터의 피해를 차단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서는 "일본의 국제분쟁화 의도에 말려들 뿐이다!" 며 '방어가 최선'이라는 이제까지의 소극적 대처방법은 그 기조를 달리할 필요가 있다. 현행과 같은 '방어가 최선'이라는 식의 대처방법만을 지속한다면 일본은, 지금까지 그래왔듯이, 앞으로도 그들의 도발을 멈추지 않을 것이 자명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리는 예정된 도발이 현재화 될 때마다 분노로만 대응할 것이 아니라 이제부터는 도발을 무력화시킬 다양한 정공법(논리) 개발에도 적극 나서야 한다. 이를 토대로 유엔헌장을 최우선시하는 '모범적 국제국가'를 지향한다는 일본의 이중성을 국제사회에 낱낱이 고발하며 일대쇄신을 기할 필요가 있다.
적극적인 정공법(논리) 개발과 관련, 필자는 하나의 제안을 하고자 한다. 독도문제가 국제법적으로 오늘날과 같은 불씨가 되게 된 1951년의 샌프란시스코 조약(이에 대해서는 <프레시안> "독도문제, 새로운 접근이 필요하다", 2008.7.14, 참조) 과 국제법과의 관계 등에 대해 더욱 깊이 있게 연구하고 활용할 수 있도록 하자는 것이다. 한 예를 들면, 동 조약에 대해 '조약의 해석'과 관련된 <1969년 조약법에 관한 비엔나 협약> 규정 등을 토대로 접근하면, 일본의 억지 주장을 분쇄할 수 있는 우리의 강력한 정공논리가 마련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일본 학자의 저서, <국제법 해설>(長瀬二三男저、国際法の解説、一橋出版)
2차 대전 이후 일본의 영토문제에 관한 이 국제법 개설서에는, "…1945년 7월의 포츠담 선언은 일본의 주권이 홋카이도, 혼슈, 시코쿠, 큐슈 등에 국한(局限)되는 것으로 나타내었다. 동년 8월의 포츠담선언의 수락으로 인해 일본의 영토는 이들 지역으로 한정(限定)되게 되었다…" 고 기술되어 있다. 그런데 이 책이 2차 대전 이후 일본 영토의 새로운 준거로 하고 있는 포츠담선언은 제 8항에서 "…일본국의 주권은 혼슈, 홋카이도, 큐슈, 시코쿠와 우리들이 결정하는 제 소도(小島)에 국한될 것이다…." 고 규정하고 있다. 이는 곧 일본의 저명한 국제법학자도, 국제법에 따르면, 독도는 일본의 영토가 될 수 없음을 시인하고 있는 것이라 아니할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본정부는, 1951년의 샌프란시스코 평화조약(이하, SF조약)을 가지고 "독도는 한국영토가 아닌 일본영토"라고 주장하고 있다. '일본국은 한국의 독립을 승인하고 제주도, 거문도, 울릉도를 포함한 한반도의 모든 권리, 권한 및 청구권을 포기한다'(제2조)는, 즉 포츠담선언을 포함한 기존의 연합국 측 문서들과는 달리 일본이 포기해야 할 영토에서 "독도"라는 명칭이 사라진 것을 SF조약의 이 제 2조 규정을 근거로 억지를 부리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1951년의 SF조약에서는 왜 돌연히 "독도"가 사라졌을까? 그 돌연 삭제가 빌미가 되어 독도는 한-일 양국의 불씨가 되고 있으므로 이에 대한 명확한 이유는 독도문제 해결의 중요 실마리가 되지 않을 수 없다.
이와 관련, 최선의 방법으로는 당시 SF조약 작성과 체결을 주도했던 미국이 그 이유를 명확히 하는 것이다. 하지만 미국이 선뜻 그렇게 하려 들지는 않을 것이다. 그렇게 함으로써 잃게 될 미국의 국익이 얻게 될 것보다 훨씬 더 많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는 '미국 의도설' (기고문 "독도문제, 새로운 접근이 필요하다", 2008.7.14. 참고)과 2008년 7월 독도사태를 둘러싼 미국의 행보에서도 어렵지 않게 유추될 수 있다. 미국이 여하한 미사여구를 사용하며 어떠한 행동을 하든간에 미국의 입장에서 볼 때, 독도를 둘러싼 한-일 간의 대결국면은 자신들의 영향력 보전과 이를 통한 그들 국익의 지속을 보장해주기 때문이다. 이렇게 볼 때, 한-일 통제를 위한 '효자손'과도 같은 독도문제를 미국이 순순히 양보할 리 만무하다.
바로 이러한 점으로부터도 우리는 현행과 같은 우리 대처방법의 부적절성을 새삼 다시 한번 깨달아야 한다. 다시 말해, 팔짱을 끼고 한-일 간의 대립과 마찰을 즐길 미국과, 독도 야욕을 저버리지 않을 일본에 맞서야 할 냉엄한 현 상황에서, 소극적 방어만으로로는 계속 당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천학(淺學)을 면치 못하고 있는 필자의 독도 관련 연구만으로도 독도는 우리의 영토임이 명백하다. 그런데도 우리는 국제사회에 대해 마치 '승산 없는' 게임인 듯한, 혹은 '부정을 감추려는' 듯한 인상을 풍기며 언제까지나 꼬리 내리듯 하는 저자세로만 일관해 왔다. 문제가 불거졌을 때만 "와!"하고 벌떼처럼 일어났다가 곧 사그라들고 마는 안타까운 모습만 반복해 왔을 뿐이다. 이는 우리 땅 독도에 대한 모독이요, 선조에 대한 불충일 수도 있다. 이 모든 것을 종합하여 이제 우리는, 철저한 논리개발을 토대로 한 더욱 적극적이고 진취적인 정공법의 구사로 오히려 난국을 주도해나가는 전략도 적극 강구해야 하는 것이다.
<조약법에 관한 비엔나 협약>
아무리 잘 만들어진 국제조약이라도 그 해석을 둘러싸고는 마찰과 대립 등이 초래되기 마련이다. 이를 고려하여 유엔에서는 1969년에 비엔나에서 <조약법에 관한 비엔나 협약>을 체결, 조약의 해석을 둘러싼 국가간 대립에서 이를 토대로 삼도록 하고 있다. 그런데 현 상황의 우리에게 있어 동 협약은, 이를 잘 활용하기만 하면, 천군만마와 같은 원군이 아닐 수 없다. 이 협약을 근거로 SF조약을 빌미로 하고 있는 일본을 단호하게 응징하고, 국제사회에 대해 독도에 대한 우리의 정당함을 강력하게 주장할 수 있기 때문이다.
동 협약은 "조약해석은 용어의 통상적 의미에 의거함을 기본으로 한다"고 규정하면서도 보충적 수단으로서 조약의 준비작업 및 조약체결 시의 사정 등에 대한 고려의 필요성도 인정하고 있다. 그것이 바로 다음과 같은 동 조약 제31조(해석에 관한 일반규칙)와 제32조(해석의 보충적 수단)이다.
* 제31조 해석에 관한 일반규칙
2. 조약의 해석상 문맥은 조약문(전문과 부속문 포함) 외에 다음과 같은 것을 포함한다.
(a) 조약체결에 관련된 모든 당사국 사이에서 이뤄진 그 조약에 대한 협의
(b) 조약의 체결에 관련된 당사국 일국 또는 둘 이상이 작성한 문서로서 이들 당사국 이외의 당사국이 조약의 관계문서라고 인정한 것
* 제32조 해석의 보충적 수단
제31조의 적용으로부터 나오는 의미를 확인하기 위하여 또는 제31조에 따라 해석하면 다음과 같이 되는 경우에 그 의미를 결정하기 위하여 조약의 교섭기록 및 그 체결 시의 사정을 포함한 해석의 보충적 수단으로 의존할 수 있다.
(a) 의미가 모호해지거나 또는 애매하게 되는 경우 혹은
(b) 명백히 불투명하거나 또는 불합리한 결과를 초래하는 경우
그러면 이 협약의 제31조와 제32조가 구체적으로 우리에게 어떻게 유용하다는 것인가?
사실, 독도문제에 대해서는 역사적 접근과 국제법적 접근의 병행이 필수적이다. 여기서 다행히 독도와 연관된 국제법의 원용(apply)이 가능한 현대사적 '사실들(facts)'은 우리에게 압도적으로 유리하다. 그럼에도 우리는 그 동안 이에 대해 잘 인식하지 못한 채 이러한 '사실들'을 '국제법' 과의 정교한 '매칭(matching)' 작업에 등한시 해왔다. 즉 이들 '사실'들에 대해 국제법적 권원을 더욱 적극적으로 부여해 왔다면 지금보다 더욱 강력한 방어수단이요, 정공논리가 마련될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이와 같은 노력을 게을리 해 왔던 것이다. 이에 필자는 채 다듬어지지 않은 문제제기라 할지라도 더욱 정교하고 진일보된 우리의 논리개발을 촉진하는 토대가 되길 바라는 마음에서 이와 관련한 필자 나름의 접근을 시도해 보고자 한다.
독도문제, '사실들'과 '국제법'을 더욱 정교히 매칭해 나가야 한다
1. <조약법에 관한 비엔나 협약> 제31조 해석에 관한 일반규칙
이 조항 가운데 "조약체결에 관련된 모든 당사국 사이에서 이뤄진 그 조약에 대한 협의(2의 a)"라는 규정에 따르면, 연합국 측이 SF조약 문안 작성과정에서 '협의'하고 '합의'한 제반 문서들은 조약의 해석상 '문맥' 에 해당됨을 알 수 있다. 이에 대한 하나의 예로서는, 연합국 대표들이 SF조약(1951년) 체결을 앞두고 사전준비 차원에서 작성한 <연합국의 구일본영토 처리에 관한 합의서>(1949년)를 들 수 있다. 모두 5개항으로 이뤄진 이 합의서는 패전국인 일본이 한국과 중국, 소련에 반환하거나 미국의 신탁통치에 위임할 영토들에 대한 연합국의 사전 합의내용을 담고 있다. 그런데 동 합의서 제3조는 "연합국은 한국에 한반도와 그 주변 한국의 섬에 대한 완전한 주권을 이양키로 합의했으며 그 섬은 제주도와 거문도, 울릉도, 독도를 포함한다"고 명기하고 있다.(또한 동 합의서에는 독도가 포함된 한반도 영토지도가 첨부되어 있기도 하다).
그런데 이후에 체결된 SF조약은'독도'명칭의 돌연 누락으로 조약문 자체가 '애매모호(제32조 a)'하고 또 명백히 '불투명(제32조 b)'하게 되어 버렸다. 이럴 때는 이를 대비하여 만들어진 "조약의 교섭기록" 의 원용을 가능하게 한 제32조 해석의 보충적 수단에 의거하여 그 해석의 의미를 명확히 하면 된다. 그렇게 되면, SF조약 체결준비과정에서 작성된 이 <연합국의 구일본영토 처리에 관한 합의서>에 준거하여 독도는 국제법적으로 손색없는 우리의 영토임이 입증되는 것이다.
한편, 그 보다 앞선 1946년 1월 29일에 작성된 <연합국 최고사령부 지령(SCAPIN) 제677호> 지령 또한 조약의 해석상 '문맥'( 제31조 2의 a에 의거) 에 해당된다. 동 지령에는 일본의 영토와 관련, "울릉도와 리앙쿠르암(독도), 제주도를 제외한다(제3조)"고 명기하고 있다. 이러한 규정은 이후 체결된 SF조약의'애매모호'하고 명백히'불투명'한 해석상의 난점을 보완시켜 주는 매우 훌륭한 문맥이 될 수 있음을 나타내는 것이 아닐 수 없다.
이 뿐만이 아니다. SF조약 문안을 위해 1945년부터 1951년까지 6년여 동안 작성된 "관련 당사국들 사이에서의 협의(제31조 2의 (a)"에서는"독도=일본이 반환해야 할 영토"로 일관되게 규정되어 왔다. 바로 이러한 사실들이야말로, 모호하고 불명확한 SF조약을 빌미로 관련 당사국들의'협의'와 '문맥'에 대한 국제법적 효력을 부인하고 있는 일본, 국제연합의 가치를 최우선적으로 중시한다는 일본에 대한 더할 나위 없는 공격수단이 될 수 있다.
2. <조약법에 관한 비엔나 협약> 제32조 해석의 보충적 수단
한편,"해석의 보충적 수단"을 규정하고 있는 제32조도 유리한 조항이 아닐 수 없다. 전술한 바와 같이, 일본은 SF 조약 본문상 독도 명칭의 돌연 누락이라는 애매모호한 사실과 그 배경을 둘러싼 불명확한 이유를 토대로 그들의 억지를 전개하고 있다. 이에 대해 이제 우리는 더 이상 분노할 필요 없이 "(a) 의미가 모호해지거나 또는 애매하게 되는 경우 혹은, (b) 명백히 불투명하거나 또는 불합리한 결과를 초래하는 경우" 에는 "그 의미를 결정하기 위하여 조약의 교섭기록…을…해석의 보충적 수단으로 의존할 수 있다."고 규정한 제32조 규정에 입각하여 의연하게 대처하면 된다. 이를 근거로, 우리는 SF 조약 체결과정에서 작성된 전술한 바와 같은 <연합국 최고사령부 지령(SCAPIN) 제677호>(1946년)이나 <연합국의 구일본영토 처리에 관한 합의서>(1949년) 등과 같은 제반 문서를 원용하여 우리의 주장을 당당하게 입증해 나가면 되는 것이다.
이에 더해 동 제32조의 "…그 의미를 결정하기 위하여…그 체결 시의 사정을… 포함한 해석의 보충적 수단으로 의존할 수 있다."는 규정 또한 다음과 같은 당시 한국과 일본의 시대적 '사정'을 활용할 수 있도록 하게 한다;
'당시의 국제정세 및 관련 자료 등을 종합하면, 일본이 패전 후 SF조약이 작성될 무렵인 1950년, 한반도에서는 불행히도 6.25전쟁이 발발했다. 당시 소련이라는 '공산주의' 세력이 미국을 위시한 '자본주의' 세력에 도전한 것이다. 그런데 이 6.25전쟁이 일본에게 독도에 대한 영유권을 주장하게끔 하는 절호의 빌미를 마련해 주고 말았다.
일본은 6.25전쟁을 계기로 동북아 지역의 공산화 저지에 대처할 자본주의의 아군이 필요했던 미국에 다가서며 승전국과 패전국의 관계에서 벗어나 굳건한 미ㆍ일 동맹 관계를 체결한다. 그리고는 한반도가 민족상잔의 비극 속에 겨를이 없는 틈을 타서 독도에 대해 미국을 꾀어 자기들의 주장이 관철되게끔 이끌어갔다. 이를 위해 일본은 부단히 노력했다.
그리하여 미국 설득에는 성공했다. 하지만 같은 연합국인 영국과 오스트레일리아 등의 설득에는 실패하고 말았다. 그 결과 SF조약 본문에는 독도를 일본 영토로 명기할 수 없었지만, 그 대신에 조약문에서 독도를 삭제시키는 데 성공하게 되었다. 이렇게 되어 한국이 전쟁 중이므로 아무런 이의를 제기하지 못할 것임을 악용한 일본에 의해 독도는 영토 분쟁이라는 끝없는 소모전 속으로 내몰리게 된 것이다….'
영토문제의 해결은 쉽지 않다. 하지만 독도의 경우는 본질적으로 이와 다르다. 독도에 관해서는 처음부터 영토문제가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리는 독도사수에 대해 종전과는 다른 자세로 더욱 단호하고 당당하게 대처해 나갈 필요가 있다. 언제까지나 야금야금 잠식해 오는 일본의 도발에 대해 쉬쉬하며 피할 수는 없다. 이렇게 볼 때 결국 이제 우리는 지금부터라도 더욱 다양한 정공논리를 개발하는 가운데 오히려 더욱 진취적으로 임해 나가는 정공법도 적극 고려해 나가야 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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