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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을 여는 나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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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을 여는 나무들

[도종환이 보내는 '시인의 엽서'] <9>


나뭇가지에 어린잎이 막 새 순을 내미는 모습은 참 예쁩니다. 예쁘다는 표현보다는 앙증맞다고 해야 어울릴 것 같습니다. 어린 새의 부리처럼 보이기도 하고 펜촉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이제 막 연초록의 부리를 내미는 어린잎들이 무어라고 재잘댈 것 같기도 하고, 저마다 사월 하늘에 푸른 글씨를 쓸 것도 같습니다. 신달자 시인은 그것을 나무들이 몸의 입을 열기 시작했다고 표현합니다.

"어린 말씀들이 돋기 시작했다 / 나무들이 긴 침묵의 겨울 끝에 / 몸의 입을 열기 시작했었다 / 바람이 몇 차례 찬양의 송가를 높이고 / 봄비가 낮게 오늘의 독서를 읽고 지나가면 / 누가 막을 수 없게 / 말씀들은 성큼 자라나 잎 마다 성지를 이루었다 / 결빙의 겨울을 건너 부활한 성가족 / 의 푸른 몸들이 넓게 하늘을 받는다 / 잎마다 하늘 하나씩을 배었는지 너무 진하다 / 말씀 뚝뚝 떨어진다"
---「녹음미사」중에서


봄 숲에 봄비가 내리는 소리를 들으며 성당에서 성서를 읽는 독서의 소리라고 생각하고, 나무마다 어린 나뭇잎이 돋아나는 모습을 "결빙의 겨울을 건너 부활한 성가족"이라고 말합니다. 새로 돋는 나뭇잎에서 부활을 보는 것이지요. 그래서 봄숲에서 나뭇잎이 자라나는 모습을 "장엄한 녹음미사"라고 상상합니다.

사월 나뭇잎에서 가톨릭의 미사를 떠올리는 종교적 상상도 아름답지만 부활이 그냥 오는 게 아니라 봄비처럼 쏟아지는 통회의 눈물, 통성기도의 후끈한 고백성사를 거친 뒤에 오는 것이라는 그 말씀 또한 아름답습니다. 나뭇잎들이 그렇게 부활하며 다시 태어나듯 우리도 이 사월 새롭게 태어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매주 월, 수, 금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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