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 형편에서, 대부분의 언론들은 북한의 격한 대응만 조명할 뿐 왜 이런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그리고 이를 둘러싼 전후사정과 상황전개의 구체적인 면모, 책임 논란, 한반도 비핵화와 관련한 국제적 합의의 내용들을 점검하는 노력은 별반 보이지 않고 있다. 한국 언론들이 거의 언제나 내정의 움직임에만 시선이 고정되고 있다시피 하는 바람에, 동북아시아의 전체 판세가 어떤 흐름으로 가고 있는지에 대한 국제사적 안목을 갖기에는 상당한 한계를 보이고 있는 상황이다.
남북관계 전면적 검토 부재의 총선정국, 실종된 평화정책
더군다나 이명박 정부를 비롯한 보수정치세력은 북한의 움직임을 대북 대결주의를 확산시키는 기회로 삼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의문을 갖게 하고 있으며, 통합민주당은 김대중-노무현 정권의 일정한 성과를 자신 있게 내세우지 못하고 있는 수세적 태도를 보이고 있다. 진보신당의 경우에는 민노당과의 정치적 차별성 부각을 내세우는 일에 과도하게 집중한 탓인지 엉뚱하게도 이 사안과는 별도로 거론할 의미가 있는 북한 인권 문제 제기로 대응하고 있어, 한반도 문제에 대한 인식에 본질적 핵심을 짚지도 못하고 균형감 있는 유기적 사고구조도 부재함을 보여주고 있어 우려된다.
특히 진보신당은, 이번 사태가 한반도 비핵화의 실현단계를 둘러싸고 벌어지는 일이라는 점에서 지난해 2007년 10.3 합의 실현 과정을 엄밀히 평가, 검증해야 하는 문제임에도 이를 인권문제로 등치시켜 정작의 초점을 이동시키고 있어 사안에 대한 이해가 제대로 되어 있지 않음을 드러내고 있다. 상대가 북한이든 어디든 인권의 보편성 차원에서 진보진영이 북한의 인권문제를 제기는 것은 당연하다. 그에 더하여 이에 못지않게 적어도 지금의 이 시점에서는, 이 땅의 전쟁 가능성을 그 어떤 수준으로든 막고 이를 바탕으로 민생의 기본조건을 확보하는 일 역시 진보진영의 마땅한 책임이다. 전쟁은 모든 인권에 대한 가장 치명적 타격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물론 당장에 전쟁이 일어날 것처럼 사태를 과장해서 접근하는 것도 어리석은 일이지만 매우 민감한 사태가 올 수 있는 부정적 요소가 계속 쌓여가는 현실에 제동을 거는 노력을 포기하는 것도 심각한 일이다. 진보진영이 한반도의 유동적 상황에서 기인하는 위험관리에 무능력한 이명박 정부의 현실을 돌파하려면, 한반도 평화를 위한 그간의 국제적 노력과 성과를 명확히 파악하고 이를 근거로 누구에게 책임이 더 크게 물어져야 하는지 밝히고 사태교정의 진로를 정리하는 것이 옳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긴장이 조성되고 있는 남북관계를 거론하는 것은 특히 지금과 같이 대운하 논란과 민생문제가 중요 현안이 되고 있는 총선정국에서 중요한 비중을 차지하기 쉽지 않게 되었다. 각 정치세력과 정파에 따라 정치적으로 유리한가, 불리한가의 문제가 뒤따르고 이에 어떻게 접근하는가의 논란 이전에, 이 사안을 놓고 목소리를 내는 것 자체가 부담스러워진 상황이다.
그 까닭은 분명하다. 북한의 대응이 매우 거친 표현을 사용하고 있고, 이는 우리 자신의 체제 안보에 위협적 분위기를 가져올 수 있다는 점에서, 접근의 객관성을 유지하는 공정한 논의가 출발부터 불가능해질 수 있다. 게다가 진보진영 내부에서는 자칫 또다시 종북주의 논쟁으로 사안의 핵심과는 다른 방향으로 소모적 공방이 전개될 수 있다. 하지만 짚어야 할 바는 확실하게 짚는 것이 오늘의 한반도 정세를 풀어가는 일에 일조할 수 있을 것이다.
이명박 정부, 위험 관리를 하는가? 위험증폭을 하는가?
우선 최근 이명박 정부의 대북 관계는 대단히 파행적이다. 아니, 도리어 위험할 지경이다. 한반도 전체의 장래에 대한 구상과 의식, 그리고 의지가 있는가에 대해 실로 심각하고 중대한 의문이 제기된다. 치밀하고 신중한 위기관리를 하기보다는 도리어 위기의 강도를 증폭시키는 모습을 보인다.
군사적 대립을 가져올 긴장과 갈등은 최소화하고, 평화적 공존과 협력의 여지는 극대화시키는 것이 분단체제 극복의 기본원리다. 그러나 이와는 반대로 이명박 정부는 한반도 평화에 대한 그 어떤 구상도 독자적으로 내놓은 바 없다. 한-미 동맹을 축으로 대북관계를 펴나가겠다는 대미 추종적 의사만 밝혔을 뿐, 기존에 그나마 축적되어온 남북관계 진전을 위한 자기 나름의 이름을 가진 복안은 존재하지 않았다. 그런 와중에 국제적으로도 상당한 관심을 모았던 황해도 해주를 중심으로 한 새로운 서해 경제 공동체 구상을 비롯한 2차 남북 정상회담의 성과는 완전히 묵살되었다.
뿐만 아니라 지난 3월 27일 이전까지는 이명박 정부 출범 이후 아무런 비판도 공식적으로 내놓지 않고 침묵 가운데 현 정부의 대북정책을 주시하고 있던 북한에 대해, 압박 내지는 대결주의적 대응으로 이해될 소지가 높은 발언과 정책의지를 드러냈을 뿐이다. 내치에서 있어서나, 대북관계에 있어서나 공통으로 드러나는 이명박 식 "배타주의적 대결 논법"은 상대방의 격렬한 반발을 불러일으키고 그로 인한 대결주의 국면의 심화로 사태가 난마와 같이 얽혀 들어가는 일을 반복적으로 자초하고 있다. 불안한 정부다.
북한의 대응도 우려된다
이에 대한 북한의 대응 역시 우려스럽기는 마찬가지다. 물론 그 책임의 비중과 사태의 원인은 별도로 규명해나가야 하겠지만, 북한의 지금과 같은 대응방식은 긴장강화로 가는 자세라는 점에서 위험하다. 설혹 만에 하나 아무리 정당한 이유가 있다 해도 당장에 무언가 실질적 역공을 해올 것 같은 과도한 반격태세는 원인을 차분하게 성찰하기 이전에 그 표현과 대응 방식에 무엇보다 먼저 주목하게 함으로써 악순환의 책임을 그 자신이 지도록 하게 한다. 일반적으로 정당방위의 경우에라도 그 도가 지나칠 경우, 그 동기와 상황논리가 인정되기 어려워지는 법이다.
과거의 불바다 발언에서부터 얼마 전 잿더미 발언, 그리고 역도(逆徒) 운운에 이르기까지 북한의 발언 수위는 미국의 군사적 대결주의와 직접 마주하고 있는 절박한 상황이며 자존에 모든 것을 걸고 있는 체제라고 할지라도, 사태를 가급적 평화적으로 해결해야 한다는 한반도 남쪽의 민심과는 거리가 멀어지는 태도임은 분명하다.
그런 점에서 김태영 합참의장의 이른바 "선제공격론"에 대한 북측의 대응은 일견 체제 수호를 위한 단호한 의지표현이라는 점에서 이해가 가지만, 가령 "남측의 최근 이러저러한 발언에 대해 우리는 깊이 우려하고 주시하고 있다. 더 이상의 사태 악화에 우리 책임은 없다."정도로 해도 알아들을 것은 다 알아듣는 위기관리가 되지 않았겠는가 싶다.
남북 간의 평화적 관계 개선을 위한 시민사회와 진보진영의 노력이 때로 어려움을 겪게 되는 것에는, 북한의 거친 대응방식이 적지 않게 악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점을 북한당국은 주지할 필요가 있다. 남쪽 군 당국이 이번 사건 이후 "남북 불가침 협정"에 충실한 자세를 가지고 있다고 밝힌 수준을 일정하게 받아들인다면 서로 체면 구기지 않고 더는 사태의 악화를 피할 수 있는 길이 보일 수도 있다.
그렇다면 과연 그동안 어떤 일들이 있었던 것인가?
그런데, 사태가 이렇게 되어온 과정은 한번 깊게 짚어볼 필요가 있다. 그렇지 않으면 이는 본질은 외면하고 드러난 표현과 대응 방식에만 주목하고 논란을 벌이는 피상적 공방과 총선의 과정에서 불필요하게 증폭되는 이데올로기적 논박에 그치고 말기 때문이다. 게다가 북한의 입장에 대한 편향적 보도와 일방적 해석이 일정하게 있을 수밖에 없는 우리 사회 내부의 논리가 존재하고 있는 상황에서, 사태의 공정한 인식은 사실에 기초한 치밀한 검증이 요구된다.
우선, 당장에 문제가 되었던 김태영 합참의장의 발언에 대한 지난 3월 27일 자 중앙일보의 보도를 다시 한번 보자. 이 기사를 쓴 김민석 기자는 군사전문가로서 그간 상당수준의 객관적 전문성을 가진 언론인이라는 평가를 받아왔다. 그는 이 기사에서 김태영 합참의장이 <선제 공격론>을 주장했음을 군당국자의 말을 빌려 정리하고 있다.
"김태영 합참의장 내정자(육군대장)가 북한이 핵 공격을 할 기미가 있으면 핵 기지를 타격하겠다는 우리 군의 입장을 밝혔다. (.....) 김 내정자는 26일 처음으로 이뤄진 합참의장에 대한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 "제일 중요한 것은 적(북한군)이 핵(무기)을 가지고 있을 만한 장소를 확인해 타격하는 것"이라고 답변했다. (......) 군 관계자는 이와 관련, "북한 핵무기가 남한에서 터지지 않도록 북한의 핵무기가 있는 장소를 타격하려면 북한이 핵미사일을 발사하기 전에 우리 군이 정밀유도무기로 선제공격을 해야 가능하다"고 말했다. 일종의 예방적 차원의 선제공격 개념이라는 것이다. (.....) 북한 핵무기에 대한 선제 공격론은 조지 W 부시 미 대통령의 '부시 독트린'과 유사한 개념이지만 우리 당국이 밝히기는 처음이다."
김태영 합참의장, 실질적으로 선제공격론 전략 주장한 셈이다. 아니라면.......
이미 군 당국이 밝힌 바대로 "선제공격"이라는 발언은 하지 않았지만 그 개념은 후발공격이나 동시공격이 아닌, 선제공격임이 분명하다. 나중도 아니고 동시도 아니라면 먼저일 수밖에 없고 그건 선제공격 외에는 없다. 그리고 그 표현에서도 "적(북한군)이 핵(무기)을 가지고 있을 만한 장소를 확인해"라고 함으로써, "있을 만한"이라는 "추정에 근거한 장소 확인"이 그 타격대상이 되고 있어 불확실성에 기초한 선제공격이 군의 대북 전략에 포함되어 있음을 드러낸 격이다.
중앙일보의 김민석 군사전문 기자가 "북한 핵무기에 대한 선제공격론은 조지 W. 부시 미 대통령의 '부시 독트린'과 유사한 개념이지만", 이라고 단서를 달았던 이유는 부시의 경우 그것은 "핵전략 아래 전개되는 선제공격 전략(nuclear pre-emptive strike strategy)"이기 때문이다. 핵탄두 미사일 공격까지 포함되는 선제공격 전략은 가공할 재앙이고, 따라서 이에 대한 미국 내 비판과 반론이 만만치 않을 수밖에 없었던 것은 당연하다.
그런데 선제공격의 가장 큰 문제는 무엇인가? 그것은 공격의 시점이 언제일지 모른다는 점이다. 그것은 거꾸로 말하자면 언제든 전쟁이 발발할 수 있다는 이야기이고, 항상적 긴장조성의 국면으로 사태가 악화되어간다는 의미가 된다. 한반도 비핵화 문제는 지난 2005년 9월 19일 6자회담 공동성명에서 "평화적인 방법으로 달성하는 것임을 만장일치로 재확인하였다"고 되어 있다. 따라서 선제 공격론은 서 있을 자리가 없는 것이다.
만일 우리 군 당국에게 선제 공격론이 없다면 없다고 말해야 하고, 있다면 있다고 해야 한다. 그것은 시인도 부인도 하지 않아도 되는 식의 군사전략상 기밀이 아니라 한반도 전체의 명운이 달려 있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김태영 합참의장이 그런 표현을 하지 않았다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그런 전략의 유무가 보다 중요한 것이다. 중앙일보의 기사에서 군 관계자가 밝힌 선제공격 전략은 "우리 당국이 밝히기는 처음이다"고 했던 것이 정말 사실이라면, 이는 북한의 문제 제기 이전에 우리의 정치사회 전반에 걸쳐 매우 심각하게 논의되고 비판받아야 할 바다.
적을 명확히 규정한 상태에서 선제공격 전략은 전쟁 선포에 버금갈 수 있어
그럴 까닭은 명백하다. 우리는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선제공격이 실천에 옮겨져서 한반도가 정말로 북쪽에서 경고했던 식으로 잿더미로 화하는 것을 누구도 원하지 않기 때문이다. 물론 이런 전략을 혹여 가지고 있다고 해도 실제로 행동에 들어가는 일은 결코 쉽지 않다. 따라서 선제공격전략 자체를 가지고 당장에 전쟁이라도 일어날 것처럼 여기는 것은 과도하다. 그렇다 해도 만에 하나라는 것이 있다. 선제공격은 필연적으로 전쟁의 시작이며 그것은 남과 북의 체제 유지를 넘어서는 민족적 대재앙이자 지난 역사의 경험으로 봐도 동북아시아 전체의 대전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존재한다. 그렇게 본다면 우리 군의 선제공격전략 유무를 따지는 것은 우리 자신에게도 중대한 책무가 아닌가?
선제공격 전략의 대상이 되는 입장에서는 이 사태를 어떻게 받아들이게 될 것인가? 그것도 비핵화 과정의 요구를 진행시키고 있는 단계에, 자신을 적으로 규정한 상황이 벌어지고 핵무기 도발을 할 것을 전제로 하고 선제공격전략을 세운 상대를 대하는 방식은 어떠해야 할까? "핵무기를 가지고 있을 만한"이라는 추정이 근거가 되는 타격장소 물색과 확정은 "대량살상무기를 가지고 있을 만한"이라는 추정에 근거해서 선제공격으로 타격한 미국의 이라크 침략과정의 전술논법과 다르지 않다. 그렇다면 대응의 방식이 거칠고 표현이 지나치다고 해서 이런 선제공격 가능성 앞에 노출된 상대의 체제 불안을 과잉반응이라고만 비판하고 넘어갈 수 있을까?
지난 6.15 남북 공동성명은 남과 북이 서로 적으로 규정하지 말고 함께 민족문제를 풀어나가자는 민족 내부의 협력과 단결에 관한 원칙의 합의다. 그렇다면, 그런 공동성명의 정신은 외면한 채 적으로 대하고 도발을 예측하면서 선제공격하겠다는 식으로 나오는 상대에게 "예, 그렇게 하시지요." 할 수 있는 존재나 정치체제가 이 지구상 어디에 있을 수 있을까?
10.3 합의 이후 북한의 비핵화 실천 과정과 미국의 약속 이행 여부
한편, 이 모든 사태의 중심에는 북한의 핵 무장 해체 여부가 있다. 2005년 9.19 공동성명과 9.19 공동성명 이행을 위한 초기조치를 규정한 2007년 2.13 합의, 그리고 다시 이를 재확인하면서 관련당사자들의 의무와 권리를 밝힌 같은 해 2007년의 10.3 합의는 이 문제를 정리하는 국제적 기준이다.
이 일련의 공동성명과 합의의 핵심은 무엇인가? 그것은 북한의 비핵화 책임 이행과 북한과 미국 간의 관계 정상화가 "행동 대 행동"으로 병렬적 실천으로 들어간다는 점이다. 즉 비핵화가 진행되는 단계에 맞추어 미국은 관계 정상화를 위한 조처를 병렬 즉 동시적으로 추진해야 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과연 그렇게 되었는가?
북한의 핵시설 불능화 조처는 아직 완료된 것은 아니지만 미국이 이미 진전된 실체를 평가하고 있는 바이다. 단지 미국 측이 책임져야 할 병렬적 조처의 미비로 인해 북한이 이에 대해 일정부분 속도조절로 유보하고 있다고 밝히고 있으며, 이에 대해 미국은 과거처럼 문제제기를 하지 않고 있다. 북한이 불능화 조처를 중단하고 핵시설 복원에 들어간다 해도 8개월 이상의 시간이 걸린다는 점을 들어 불능화는 미국이 원했던 것처럼 "돌이킬 수 없는 상태(irreversible)"임을 주목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이런 조처가 진행되고 있을 때 미국은 그에 따른 병렬적 조처로 무엇을 했는가? 결론은 "없다." 이다.
미국이 해야 할 병렬적 조처는 무엇인가? 그것은 "전면적 외교관계로 들어가기 위한 양자대화의 개시"이며, 이와 관련해서 "북한을 테러지원국 명단에서 삭제하기 위한 과정을 개시"하고 "북한에 대한 대적성국 교역법 적용을 종료하기 위한 과정을 진전시켜나가는 것"이다. 또한 "100만 톤 상당의 경제, 에너지 지원"에 참여하는 일이다. 이 가운데 제대로 이루어진 것은 하나도 없다. 미국은 병렬적 조처의 실행을 이행하고 있지 않은 상태다.
미국이 문제 삼는 것, 타당한가?
그렇다면 미국은 무엇을 논란거리로 삼고 있는 것인가? 두 가지다. 하나는 핵 신고가 완전하지 않고, 핵기술 이전과 관련한 사안도 명백하게 정리되지 못했다는 것이다.
첫 번째 것은 우라늄 농축 문제이고, 두 번째 것은 시리아로 핵기술 이전했는가의 여부와 관련된 사안이다. 북한은 우라늄 농축 문제와 기술 이전 문제를 일관해서 부인하고 있고, 우라늄 농축과 관련해서 문제가 된 수입 알루미늄관 문제는 이를 이용한 군사시설을 미국에게 참관시킨 바 있으며 시리아 핵기술 이전 문제는 10.3 합의문건에 "핵무기와 기술, 지식을 이전하지 않는다."는 공약을 재확인한 것으로 대답을 대신했다고 주장하면서 이 역시 미국과 사전 협의로 정리한 내용이라고 말하고 있다.
그런 상황에서 미국과 한국정부는 핵 신고가 늦어지고 있다면서 북한의 비핵화조처의 불이행을 문제로 제기하고 있는 중이다. 하지만 북한은 핵 신고도 2007년 11월에 통보한 바 있으며, 미국이 이를 받아들이고 있지 않을 뿐이라는 것이다.
상황을 다시 정리해보자면, 북한은 핵시설 불능화 조처를 진행시키고 있고 미국은 그에 따른 병렬적 조처를 이행하지 않았다. 북한은 이미 핵 신고를 했으나 미국이 보기에 그건 불충분하고 플라토늄 외에 우라늄 농축 건까지 자백하고 시리아와 네가 지난 여름에 저질렀던 일을 내가 알고 있으니 그 역시 이실직고해야 신고서가 완전하다는 것을 인정하겠다는 것이다.
이걸 어떻게 해결할 수 있겠는가? 답은 간단하다. 미국이 북한의 우라늄 농춘 건 관련 증거가 있다면 그걸 공개하고, 시리아 관련도 입증자료를 내놓으면 되는 것이다. 증거도 없는 혐의를 자백하라는 것은 더군다나 국가 간의 일에서 의도적으로 장애를 설치하겠다는 것에 다름이 아니다. 혐의를 제기한 측에서 먼저 부인이 불가능한 증거를 내놓고 상대에게 자초지명을 해명하도록 하는 것이 정당하지, 혐의만 제기하고 입증의 책임을 상대에게 묻는 것은 어떤 하늘 아래에서도 말이 되지 않는다.
북한은 변호의 여지가 없는 것인가?
상황이 이럼에도 미국은 핵 신고 미비를 문제 삼아 "인내가 고갈되어가고 있다", 한국 정부도 이에 발 맞춰 "시간이 다 지나가고 있다"는 식으로 그간의 정황을 구체적으로 정리하지 않은 채 북한 측에 일방적인 책임을 부과하고 있다. 이것이 정당한가? 한국의 외무부가 그렇게 발언하고 난 이후 통일부는 핵문제 미해결 상태에서 경제협력은 없다고 압박했고, 합참의장은 선제공격론을 펼쳤다.
이렇게 되면 상대(북한)는 미국과 한국이 함께 손을 잡고 조직적으로 전 방위적 포위와 압박전술을 쓰고 있다고 판단하게 되어 있고 그간의 조처도 제대로 평가하지 않은 채 정작 자신들의 병렬적 책임의 이행은 피하기 위한 방책이 아닌가 하고 의구심을 갖게 되고 당연히 신경은 날카로워질 대로 날카로워지게 되어 있다. 북한은 일방적으로 핵무장을 해체했지만 기대했던 관계 정상화의 과정도 이뤄지고 있지 않고, 약속했던 에너지와 경제지원은 막히고 난데없이 선제 공격론의 위협 앞에 노출되게 되었다면 도대체 어떤 반응을 보여야 하는가?
이런 지점에서, 북한의 인권상황에 대해서 할 말은 하겠다는 것이 진보신당의 입장이라면, 혹시 북한의 입장과 대응에 원칙적 정당성이 있다면 그것을 명확히 객관화하는 노력도 그에 못지않게 있어야 하는 것은 아닐까? 그게 어떤 경우에도 정치적 계산을 넘어서 할 말은 하는 진보정당의 모습일 것이다.
남북 관계에 대한 진보신당의 인식 착오
그런데 진보신당은 선제공격론 사태가 벌어진 이후인 지난 3월 30일 남북경색 심화를 우려하고 이명박 정권의 대북 정책을 비판하면서 이런 대목이 담긴 논평을 냈다.
"남측 당국자 추방, 미사일 발사에서 마침내 대화와 접촉 중지 발언으로 이어지는 북한의 신경질적인 대응도 우려되기는 마찬가지다. 한반도 긴장을 고조시키기만 할 뿐 실제 효과가 의심스럽고, 전쟁을 두려워하고 생활의 안정을 바라는 남북한 민중에게 아무런 이익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지금 남북한의 상호 공방은 어린아이 둘이 위험한 벼랑으로 힘껏 달려가는 치킨게임을 생각나게 한다. (......) 남한은 물론이고 북한 측도 치킨게임을 그만두고 민생과 국내 인권에 주력하기 바란다. 그것이야 말로 진정한 국력이고 정권을 안정시키는 힘이라는 것은 남북한을 막론하고 마찬가지다. 지금까지의 남북관계는 남한이 북한을 핑계 삼고, 북한이 남한을 핑계 삼아 정권이나 정책에 반대하는 세력을 억압하고 침묵시키는 상호 파괴적 관계였다. (.....) 진보신당은 북한 인권 접근 공약을 통해 지금까지의 남북관계의 틀을 깨고자 한다.(......)
진보신당은 남북 인권대화와 남북노동협약으로 그 첫 손을 내민다. 한반도와 남북한 주민의 평화와 안정을 위해, 북한이 그 손을 마주잡기를 바란다.
2008년 3월 30일 진보신당 대변인 송경아"
남북이 서로 위험한 긴장을 자초하고 악화시키는 것을 경계한다는 의미에서는 최소한 이 성명의 가치가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이는 사태의 역사적 전개와 그 국제사적 역학관계에서 벌어진 일을 공정하게 검토하고 평가하지 못했다.
진보신당은 미국의 패권주의가 북한의 인권상황을 정당화시키지 못한다는 반박을 하고 있지만, 역으로 북한의 인권문제를 제기하는 것이 미국의 패권주의를 극복하는 동력이 되지는 못한다. 그와 동시에, 북한의 위기의식이 남한을 핑계 삼아 내부를 억압시키기 위한 것이라는 식으로만 파악하는 것은 엄청난 오판이다. 상황에 따라 내부 단속용의 위기조성이라는 국면이 있을 수 있겠지만 지금의 현실이 그런 분석을 적용할 바인가?
진보진영, 서로 상대의 문제의식 자기화하는 노력해야
나는 이러한 진보신당의 한반도 문제인식에 적지 아니 실망했고, 민감한 선거 국면에서 진보신당에 대한 비판적 견해를 삼가고 있던 상황에서 이런 논의를 제기한다는 것이 실로 마음 무겁다. 그러나 이 글은 비판에 초점이 있지 않다. 함께 해나갈 수 있는 방식과 목표에 대한 고민을 밝히고자 함이다. 이명박 정권의 위험한 대북 정책이 한반도 상황에 어떤 위기를 몰고 올지 알지 못하는 때에 진보진영 전체의 입장정리가 반드시 필요하다는 인식 아래 민노당과 진보신당 내부 그리고 상호 간의 진지한 논의의 필요성을 강조하고 싶은 것이다.
이와 함께, 진보신당이 구 민노당의 한계를 돌파하고자 새롭게 진열을 정비한 것에 경의를 표하는 동시에, 자신들이 떠난 민노당 안에서 지금 현재진행형으로 전개되는 혁신과 재창당의 노력을 함부로 폄하하지는 말았으면 좋겠다. 실패, 난파, 자동붕괴, 몰락 등의 단어는 이 시간 변화를 치열하게 추진하고 있는 민노당의 현실에 접근한 규정이 아니다. "이수호"라는, 이 핍박한 시대에 존경할 만한 한 아름다운 인간이 자신의 모든 것을 걸고 애를 쓰고 있는 진실을 너무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진보는 현재 진행형의 변화에 무지하지 않을 때 진보가 될 수 있다. 과거의 민노당은 그렇지 못했고, 그래서 진보신당을 나가서 차린 것 아닌가? 민노당의 현재 진행형 변화를 없는 것으로 치부한다면 그건 착오와 오만이다. 그런데, 한반도 문제를 둘러싸고 진보신당이 내놓은 논평의 문제 역시, 현재 진행형으로 전개되고 있는 사실에 대해 명확히 인식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에 발생하는 것이다. 변화에 대한 철학적 성찰의 지점이 그곳에 있다.
어찌 해야 할 것인가?
민노당과 진보신당 모두를 포함한 진보진영의 현실은 지금, 서로 상대의 문제의식을 변증법적으로 통합해내는 노력을 요구하고 있다.
미국이 중심이 된 세계자본주의 체제가 자신을 유지 확대하는 방식은 기본적으로 군사적 팽창과 자본의 독점체계 구축이다. 이에 더하여 자신이 지배하려는 지역에 존재하는 민족 공동체의 의식 해체다. 그런 점에서 보편적 인간의 차원으로 나가지 못하는 배타적 민족주의는 당연히 문제가 되어야 하지만, 제국주의 지배전략에 저항력을 상실해버린 민족의식 해체는 경계할 일이다. 한반도 전반에 걸쳐 이러한 방식이 관철되는 것에는 (1) 군사력 주둔과 전략적 유연성, (2) 이미 관철된 신자유주의를 토대로 한 FTA를 통한 한국경제의 구조재편과 지배, 그리고 (3) 민족 내부의 적대의식 조성이다. 세계 자본주의 체제의 지배 아래 희생되고 고통 받는 이 나라 민중들의 삶에는 이 세 가지 구조적 장치가 담겨져 있다. 우리는 이 세 가지를 해체하고 우리의 삶을 진보적으로 바꾸어 나갈 정치적 환경을 만들어낼 책임이 있다.
평등과 생태, 여성과 사회적 연대 모두 소중한 가치다. 그에 못지않게 이 나라의 자주적 입지의 확보와 패권적 군사주의의 극복, 그리고 분단체제의 진보적 해체 또한 소중하다. 이 두 개는 서로 유기적으로 결합되어야 전체상이 나타나고 총체적 동력을 발휘할 수 있다. 따라서 진보진영은 상대방이 강조하고 있는 문제인식을 자기화하는 과정에서 진정 혁신될 수 있는 것이다. 그것이 대중으로부터 진정한 지지를 얻어내는 기초다. 그리고 그 혁신은 자신에게서 그치지 않고 이 나라 정치의 혁신을 담아낼 수 있다.
세계 자본주의 체제 내부에 편입된 한국의 현실을 낮은 수준에서 높은 수준에 이르기까지, 그리고 구체적인 일상에서 국제사적 영역까지 포괄하면서 진보의 정치를 이루어내는 길은 이렇게 하나씩 돌파되어나갈 것이다. 진보는 이 시대의 유일한 희망 아닌가? 그건 홀로 갈 수 있는 길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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