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사회는 지금 무서운 속도로 망가져가고 있다. 공적 윤리의 중요성과 사회적 헌신의 가치는 홀대받고 있다. 생존권의 존엄성과 품격 있는 삶에 대한 보장은 불투명하기만 하다. 그런 가운데 적지 않은 사람들이 자신도 약육강식의 무자비한 현실에 희생되면서, 그 희생의 확대 재생산을 가져올 인물과 세력에게 일말의 정치적 기대를 거는 이상한 논법에 사로잡혀 있다. 적어도 지금과는 다른 새로운 미래를 바란다면, 이건 명백한 자기부정이다.
귀는 작고 입만 큰 노무현 정권
이러한 현실을 가져오는 데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한 것은 무엇보다도 노무현 정권이다. 모든 책임을 노무현 정권에게 묻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 결정적인 책임이 있다는 뜻이다. 사회적 정의란 사람들이 억울한 처지에 빠지지 않도록 해야 하는 것으로부터 시작되는 것인데, 노무현 정권은 무수한 사람들을 그런 불만과 분노의 지점으로 몰아놓고 말았다. 도처에서 아우성이 들리고 있어도 진심과 성의를 다해 귀를 기울이지 않았다. 자기주장만 일방적으로 늘어놓은, 귀는 작고 입만 큰 권력이었다.
응답자의 비율이 극히 저조한 여론조사의 결과란 기본적으로 현실을 왜곡하기 마련인데, 그런 중에도 이른바 선두를 달리고 있다는 어떤 후보와 대통령 노무현은 모습만 다른 쌍생아의 특징을 지니고 있는 게 아닌가 싶다.
노무현과 이명박은 쌍생아?
권력과 자본이 한 몸이 되는 길을 여는 데에 양자 누구도 둘째 가라면 서러워하지 않을까? 그들에게는, 이 두 개의 권세가 그렇게 한 몸이 되는 것이 하등 이상한 일이 아니다. 삼성 특검에 대한 불만을 토한 권력자에게서 우린 비리척결의 개혁적 의지가 상실된 존재를 본다. 탈세를 비롯해서 기타 무수한 편법으로 재물을 늘여온 인물에게서 우린 부자 되기 열풍의 부도덕성을 적나라하게 목격한다. 권력과 자본이 한 배를 타는 것에 거부감이 없는 인물과 세력은 본래 돈과 권력의 추악한 뒷거래 결탁에 대해 도덕적 저항감을 갖지 않는다. 그래야 현실에서 능력을 보일 수 있다고 믿는다. 하지만 그런 능력은 부패할 수 있는 능력에 지나지 않는다.
자수성가를 하면서 덕을 갖추지 못하면 격이 낮아지고, 남다른 성취를 이루었어도 사회적 헌신이 부족하면 그 성취는 탐욕의 결과일 뿐이다. 실용적 판단에 쏠린 나머지 인간에 대한 성찰이 없으면, 어떤 선택이 갖게 되는 장기적 영향보다는 자기를 자랑할 수 있는 단기적 성과주의에 빠진다. 그건 이기적 독선과 심각한 판단착오를 가져올 뿐이다. 그 결과는 대중들의 삶이 희생당하는 것으로 이어진다.
열린우리당의 후신, 신당에 대한 대중들의 반감을 어떻게 할 것인가?
한때의 여당이었던 열린우리당의 후신인 신당은 이러한 현실을 방치하는 데 중대한 책임을 지고 있다. 대중들이 열린우리당과 그 후신세력에 대해 이토록 깊은 반감을 가지고 있는 이유는 너무도 분명하다. 탄핵정국까지 거치면서 권력과 기회를 거듭 주었지만, 대중들의 기대를 배반하고 최고 권력자의 오만은 물론이요, 그의 오판과 무리, 그리고 탐욕을 제지하지 못한 채 약삭빠르게 놀았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대중들이 민노당의 진보성에 전폭적인 기대를 하고 있는 것도 아니다. 대중들과의 깊은 소통과 경청, 그리고 마음을 나누면서 정책을 마련해나가는 자세에 미숙함을 보기 때문이다. 단지 이념적 구분에 따른 정치적 지지의 유보가 아니라, "저 사람들이야말로 우리 편이네" 하는 확신을 주는 데 서투른 결과다. 그래서 민노당의 고민은 깊어지고 있다.
그렇다면 민주당은 어떤가? 말로 내세우는 것처럼 중도 개혁이 아니라, 중부지역 보수당이 되어버렸고, 지지 기반은 해체가 이미 오래 전부터 진행 중이다. 더군다나 낡은 보수 세력의 맹주와 손을 잡으려는 세력이 있을 지경이다. 가치의 중심도 잃어버리고 정치적 의지도 실종되었으며 지역 당으로서의 역량조차도 멸종의 지점으로까지 소진되고 있다. 민주당은 안 됐지만 고사 직전이다.
문국현 후보를 중심으로 한 창조 한국당은 신선한 기치를 내세우고 출범했지만 정치적 전문성 부족이 드러나고 있다는 비판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각종의 정치세력과 요구를 카리스마 있게 틀어쥐고 나가는 능력을 보이지 못하고 있다는 뼈아픈 지적이다. 그에 더해 대중의 마음을 불길처럼 일으킬 수 있는 에너지 충만한 감동의 언어와 행동이 연이어지고 있지 못하다는 충고도 받고 있다.
단일화, 단점의 퇴치와 장점의 결합으로
그러나 이렇게만 사태를 볼 것도 아니다. 우리가 대치하고 있는 현실은 부도덕하고 천박한 능력주의이자 사회적 양극화의 현실에 대해 아파하지 않는 세력이며, 이를 퇴치할 수 있는 가치를 내세운 세력이 그에 맞서려 하고 있다는 점은 확실하다. 노무현의 연장도 아니고 이명박도 아닌 사람들의 마음이 그래서 막바지 정-문 단일화에 일말의 기대를 걸고 있다. 그건, 단점의 결합이 아니라 장점의 결합과 그에 따른 정치적 결속이 그 핵심에 있다.
정동영 후보를 앞세운 신당 세력이 노무현 정권과의 철저한 단절과 집권 기간 중에 민심이 떠나게 된 사태에 대해 책임지는 모습으로 임하지 않는 한, 한 번 결별을 고한 민심은 되돌아올 이유를 발견하지 못할 것이다. 단일화의 출발에는 이러한 과거가 확실하게 정리되는 모습이 전제되어야하며, 그렇지 않고서 이루어지는 결속은 단지 세를 불리려는 정치공학에 머무를 수밖에 없고 단일화 이후의 효과도 기대하기 쉽지 않다. 장점의 결합이라는 전략은 이런 전제 위에 서게 되는 논리다. 이 논리를 현실화시키는 것, 그것이 신당세력의 의무이다. 이 과정을 분명하게 거치지 않으면, 단일화 작업은 노무현 정권과 열린우리당의 후신에 대한 반감을 그대로 안고 가게 될 것이며 결과는 필패다.
다른 한편, 창조한국당의 경우 고수하는 가치의 품격이 현실과 접합되기 위해 필요한 정치적 포용성이 요구된다. 그렇지 않을 경우, 그건 이상을 선포하기 위한 예언자 운동은 될 수 있겠지만 현실적 기반이 없는 안타까운 일회성 실험으로 그칠 위험을 안고 있다. 여기서 자신이 깃발을 들고 나온 가치의 순수성을 지켜내려는 문국현 후보의 고민이 있을 것이다. 그런데 현실 정치에서 정치적 카리스마는 자신의 가치와 현실의 정치세력을 하나로 묶어내는 힘을 기대하고 있다는 점에서, 대선이 얼마 남지 않은 상황에서 창조한국당은 비상한 정치적 역량을 보일 책임이 있다. "저 사람은 무언가 확실하게 일을 해내겠구나!" 하는 희망의 실체를 후보 단일화(이 단어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주장하고 있으나 결과적으로는 그런 현실을 포함하게 될) 작업의 과정에서도 확신시킬 수 있어야 하는 것이다.
새로운 미래를 향한 의지와 진실성, 그리고 역사에 대한 책임과 열정이 있다면
한반도 평화를 기초로 한 민족 경제의 미래를 감당하겠다는 인물과 세력, 사회적 양극화를 극복하고 일자리 복지를 마련해나가겠다는 인물과 세력의 창조적 결합은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이들 양 세력이 지난 시기의 정치적 부담과 과오, 그리고 현실적 역량의 한계가 있다 해도 그 지향하는 가치만큼은 이 사회가 지속적으로 밀고나가야 할 바이기 때문이다. 이것이 성공하게 된다면, 민노당과의 정책 또는 가치 연대를 통해서 대선 정국의 흐름은 획기적으로 바뀔 수 있다. 그런 점에서, 이와 같은 가치의 확인과 결속의 정치적 가능성은 이번 대선에서 중요한 희망의 고리가 될 수 있다.
시민사회의 존경받는 어른들이 단일화 과정에서 기준과 방식을 결정하기로 했다는 움직임은 이 희망의 고리가 우리에게 현실의 힘이 될 수 있다는 기대를 가져오게 한다. 앞으로 일주일 정도의 시간에 우리가 이 역사에서 만들어 낼 수 있는 것은 과연 무엇일까? 시간이 없다고 여길 이유가 없다. 선택의 순간 앞에서 대중들에게 어떤 동기를 촌철살인적으로 부여할 수 있겠는가에 이 나라의 정치적 운명이 달려 있다. 문제는 시간이 아니라 대중들에게 보여지는 내용이다.
지난 2002년 대선에서 이회창 대세론이 단 3일의 숨 쉴 사이 없이 빠르게 진행되었던 극적인 정치적 변화로 마침내 역전되었던 경험은 또다시 반복될 수 없을지라도, 그때의 동력이 되살아나 재결집하기에 지금 시간이 부족한 것은 결코 아니다. 새로운 미래를 향한 의지와 진실성 그리고 역사에 대한 책임과 열정이 분명하면, 정치적 술수를 넘는 결단과 고차원의 선택은 이루어질 수 있다.
낡은 것으로 새 옷을 깁지 말라
섣불리 연합정부나 공동정부의 구색을 대중들을 유혹하는 전술로 갖추려 하기보다는, 먼저 이 역사에 대한 막중한 책임을 통감하는 자세가 진실할 때 국민들의 시선은 달라질 것이다. 그렇지 않아도 내년 2008년은 정부 수립 또는 건국 60주년을 맞이하는 해이다. 역사가 갑(甲)을 한 바퀴 돌아 새로운 출발을 해야 하는 지점이다.
누가 그 역사의 책무를 감당하는 세력이어야 하는가? 그 답은 분명치 않을까?
낡은 천으로 새 옷을 깁지는 말아야 한다. 새것임을 입증하려면 새것답게 그 모든 것이 신선해야 한다. 그 신선함이 단일화의 과정과 결과에서 증명되어야 역사의 새 출발은 이루어진다. 이를 위한 두 후보와 그 지지 세력의 겸손하면서도 진정 어린 분투를 기대한다. 민심의 바닥에 가서 알고 보면 많은 국민들이 누구를 선택할 지 아직도 방황하고 있다. 이를 기억한다면, 다시 크게 힘이 솟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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