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부분의 후보들이 주어진 발언 시간에 자신의 주장을 요약해서 전달하는데 실패하는 등 준비부족을 여실히 드러냈다. 또한 후보가 9명이나 되는 탓에 밀도 있는 논쟁이나 긴장감도 조성되기 힘들었다. 그 대신 연대론이 거론되는 후보들 사이에 우호적인 질문과 답변이 오가거나 특정 쟁점에 대한 공동 전선을 구축하는 모습이 눈에 띄기도 했다.
'손학규 정체성' 십자포화
예상대로 공격은 손학규 후보에게 집중됐다. 그는 자신이 질문권을 가졌을 때에도 한명숙, 추미애 후보에 대해 "통합과 화합, 국민 대통합의 길을 어떻게 열어갈지 말해달라"는 등 '부드러운' 질문만 했다.
그러나 천정배 후보는 손 전 지사를 겨냥해 "올해 초만 해도 한나라당을 지켜온 기둥을 자처하던 분이 왜 여기 앉아있는지 의아스럽다"며 "손학규 후보와 토론하는 것 자체가 '무엇을 잘못했기에 한나라당 3등 후보를 꾸어다 경선을 하고 있나'하는 자괴감이 든다. 진짜 목적이 무엇이냐"고 직격탄을 날렸다.
이에 대해 손 후보는 "천 후보가 답답해하는 모습 이해한다. 열린우리당이 왜 문을 닫게 됐나"며 "국민들에게 어떻게 경제 걱정, 청년·일자리 걱정을 덜어주고 희망을 주느냐 하는 것이 우리가 할 일이다"라고 피해갔다. 천 후보는 그러나 이해찬 후보를 지목해 "손학규 후보의 답변을 들으니 납득이 되느냐"고 물으며 비꼬았다.
이해찬 후보도 손학규 공격에 포커스를 뒀다. 이 후보는 "90년대 중반 손 후보가 복지부 장관으로 재직하던 당시 저출산 대책을 세워 출산율을 2명으로 끌어올렸어야 했다. 그때 막지 못 해 출산율이 현재 0.7%까지 내려오게 된 것"이라고 비판했다.
이 후보는 또한 손 후보의 1가구1주택에 대한 양도소득세 인하 공약에 대해 "한나라당이 양도소득세로 인한 세금을 과장하는 경향이 있는데 손학규 후보도 그렇게 이해하는 것 아닌가 싶다"고 비판했다.
신기남 후보도 "손학규 후보가 한나라당을 탈당했다는 이유만으로 비판할 수는 없지만 정책을 보면 경제 대통령이나 경제 선진화만 강조하는 등 한나라당 이명박 후보와 다를 바 없다"고 비판했다.
이에 손 후보는 "등소평이 말한 '흑묘백묘론'이 생각난다"며 "국민은 경제 살리기와 일자리를 절실히 원하고 선진국이 되기를 원하고 있다. 세상이 바뀌는 만큼 우리도 바뀌어야 한다는 자세로 임해야 한다"고 반박했다.
반면 유시민 후보는 "역대 보건복지부 장관 중 가장 잘한 분이 손학규 후보라는 평이 있다"며 "유능하게 조직을 이끈 손학규 후보에 대해 나도 벤치마킹을 많이 했다"며 칭찬을 늘어놔 눈길을 끌었다.
이어 유시민 후보는 "대선 끝날 때까지 당에 정체성을 부여하고 영혼을 불어넣기 위해서는 대통령 후보 중심의 강력하고 질서있는 정당을 만들어야 한다"며 대선후보에게 6개월 동안 비상대권을 포함해 공천을 포함한 전권을 줄 것을 제안했으나, 이에 대해 손 후보는 "동의하지 않는다"며 "미국도 대통령이 공천권을 행사하지 않지만 야당을 설득해가며 국정을 운영하고 있다"고 반대했다.
느긋한 정동영?
후보들의 공격이 '손학규 때리기'에 집중된 탓에 그와 1위 다툼을 벌이고 있는 정동영 후보는 상대적으로 여유를 보였다.
정 후보 본인도 질문권을 얻었을 때 날카로운 질문 대신 남북정상회담 및 민주개혁세력 대통합에 대한 견해를 묻는 등 논쟁을 피해갔다.
그러한 정 후보에게 날을 세운 것은 신기남 후보. 신 후보는 "열린우리당에서 두 번이나 당 의장을 지내는 등 당 운영에 가장 큰 영향력을 가진 정동영 후보가 '당 탓, 남 탓' 하며 탈당했다"며 "게다가 정풍운동이나 대북송금특검에 사과한다고 해서 열린우리당 당원들을 부정했다"고 비판했다.
이에 대해 정 후보는 "나의 사과는 민주개혁세력의 분열을 틈타 한나라당이 극성을 부린 데 대한 것이었다"며 "신기남 후보에게 묻는다. 통합을 위해 무엇을 했나. 열린우리당을 지켜야 한다면 대통합민주신당 참여를 거부했어야 하는 것 아니냐"고 반격했다.
정동영 후보와 연대설이 나오는 추미애 후보도 신 후보에 대한 반격에 가세했다. 추 후보는 "신기남 후보는 통합을 부정한 채로 이 자리에 와있다. 여기가 도로우리당 경선장이냐"며 "남아 있는 문제는 통렬한 사과로 민주당 분들이 어떻게 건너오도록 할 것이냐다"고 비판했다.
이에 대해 신 후보는 "내 주장은 정동영 후보가 정풍운동이나 열린우리당 창당에 사과해서는 안 되고 열린우리당 당원들에게 사과해야 한다는 것"이라며 "우리당 당원의 일이고 추미애 후보가 관여할 문제가 아니다"고 재반격하기도 했다.
친노-비노, 참여정부 실패 논란
이해찬, 한명숙 등 친노 성향으로 분류되는 후보들은 타 후보들의 거듭된 '참여정부와 열린우리당의 국정운영 실패'에 대한 비판으로 몸살을 앓았다.
천정배 후보는 "이 후보는 총리 지명자 당시 아파트 분양원가 공개를 반대했고 그간 부동산 대책을 수십차례 발표했지만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의지를 발견하지 못했다"며 "이 정부를 탄생시킨 사람으로 부끄럽다. 이 후보는 민생을 멍들게 하고 민생의 위기를 불러온데 대해 용서를 구해야 한다"고 비판했다.
이에 대해 이 후보는 "참여정부는 경제신용 등급이나 주가나 수출 등에서는 높은 평가를 받을 만큼 성과를 거두었으나 IMF직후 양극화나 내수경제 활성화에서는 미흡했다"며 "부동산은 일부 가격의 폭등이 있으나 전체적으로 8.31 대책 이후 안정되고 있다고 본다"고 방어했다.
이 후보는 '열린우리당이 각종 선거에서 전패하는 등 민심 이반의 원인과 해결책이 무엇이냐'는 손학규 후보의 질문에 대해서도 "지방선거나 보궐선거는 연세 든 분들이 찍고 젊은이들은 안 찍어 개혁정당이 이기기 어려운 구조"라며 "낮은 투표율에 대한 대응책이 부족했고 선거 동안 언론이 우리당에 유리하지 않은 보도를 많이 한 것이 원인"이라고 답했다.
한명숙 후보도 "참여정부 실패론에 동의하지 않는다"며 "국민의 지지를 받고 노무현 정부가 탄생하도록 한 시대정신은 낡은 정치 청산, 새로운 정치 창출이었다"고 가세했다.
"유시민, 멧돼지뿐만 아니라 깔따구 잡는 데도 특전사 동원해야"
한편 이날 경선에 참석한 두 여성후보인 한명숙, 추미애 후보는 9명 전체 후보를 대상으로 각각 헌법 개정과 예비경선 선거인단 전수조사에 관한 의견을 물어 눈길을 끌었다.
한 전 총리는 "2010년 5월 헌법 개정을 통해 제7공화국을 열어야 한다고 본다"며 "헌법 개정을 위해서는 차기 대통령 임기단축이 불가피한데 각각 찬반을 밝혀 달라"고 했다.
이에 손학규 후보를 제외한 각 후보들은 대체로 국민적 합의나 민생 권리 확대, 양극화 해소 등을 전제로 삼아 "동의한다"고 밝혔다. 손 후보는 "대통령의 임기와 국회의원의 선거가 꼭 일치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반대의 뜻을 밝혔다.
또 추미애 후보는 "대리접수가 있는 예비경선으로는 투표 참여율이 낮아질 것이고 흥행에 실패하고 국민 경선의 후보가 될 수 없다"며 "이미 접수된 것은 모두 전수 조사를 통해 본인 의사를 확인해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이의 있는 분만 발언해 달라"고 요구했다.
이에 이해찬, 한명숙, 유시민 후보 등이 "이의 없다"고 밝혔을 뿐, 다른 후보들은 아무런 대답을 하지 않았다.
김두관 후보는 다소 엉뚱한 질문으로 청중의 웃음을 끌어냈다. 그는 유시민 후보에 대해 "공수부대 동원해 멧돼지를 잡는다고 공약했으니 진해 주민을 괴롭히는 해충 '깔따구'를 잡기위해 해군, 해병대를 동원하는 것은 어떻겠느냐"고 물었다. 이에 대해 유시민 의원은 "김두관 후보가 평소와 달리 재치있는 질문을 했다"고 응수하면서 "공수부대를 지칭한 게 적절치 않은지는 모르나 멧돼지 개체수 조절은 진지한 공약으로 이해해 달라"고 받았다.
또 김 후보는 정동영 후보에게는 "서울에 올라와 정치를 시작하면서 보이지 않는 장벽을 실감했다. 여의도에도 '왕따'가 있더라"며 "영남에서 지역주의에 맞서 싸운 사람으로서 서운했다. 정 후보가 김두관만의 강점에 대해 칭찬 한마디 해주시길 부탁한다"고 말해 정동영 후보의 '격찬'을 건네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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