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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랍세계의 분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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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아랍세계의 분노'

"군사력에 의한 중동질서 재편은 실현불가능한 백일몽"

다음은 미 콜롬비아대학 아랍학과의 '에드워드 사이드 석좌교수'인 라시드 할리디(Rashid I. Khalidi)의 글 '아랍세계의 분노(Anger in the Arab World)' 전문이다. 미국의 저명한 중동지역 전문가로 '군사력에 의한 중동질서 재편'이라는 부시행정부의 야망이 가망 없는 꿈임을 설파해 왔던 할리디 교수는 이 글을 통해 미국과 이스라엘이 하마스와 헤즈볼라를 단순한 테러단체로 보고 이의 분쇄를 시도하는 것은 결코 이루어질 수 없는 백일몽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이번 레바논사태에서 드러났듯, 중동의 일반 민중들 사이에서 이들의 위상은 한껏 높아졌으며, 당초 미국과 이스라엘 편에 섰던 사우디, 이집트, 요르단 등 아랍의 친미정권들은 이제 민심의 향배에 전전긍긍하는 처지가 됐다는 것이다.
  
  할리디는 교수는 지난 20년간 군사력 사용을 통해 중동정세를 자신에게 유리하게 재편하겠다는 이스라엘의 시도는 번번이 그 반대의 결과만을 낳았다며 이제라도 평화적 방법에 의한 사태해결을 추구하라고 권고하고 있다. 이 글의 원문은 미국의 진보적 시사주간지 <네이션> 최신호(8월 14일자)에 실려 있다.
http://www.thenation.com/doc/20060814/khalidi <편집자>
  
  아랍세계의 분노(Anger in the Arab World)
  
  이스라엘과 레바논, 그리고 팔레스타인 간에 현재 벌어지고 있는 전쟁에 대해 미국과 이스라엘 정부, 두 정부를 위해 일하는 홍보기구들, 그리고 대다수 미국언론들은 한결같이 테러리즘을 분쇄하기 위한 한 국가의 노력이 중대한 시련에 봉착해 있다고 '분석'하고 있다. 이들은 이스라엘이 '테러분자들의 폭력'에 대응하고 있으며, 문제는 미국의 지원을 받는 이스라엘이 얼마나 빨리 상황을 장악하느냐 하는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이같은 시나리오는 중동지역의 실제 상황과는 한참 거리가 먼 것이다.
  
  이스라엘의 가자지구 포위 및 레바논에 대한 무차별 폭격이 어떤 결과를 낳을지 알 수 없지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헤즈볼라 '파괴'나 하마스 '근절'과 같은 사태는 결코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는 점이다. '테러리즘'이라는 용어는, 이 말을 앵무새처럼 되뇌는 사람들에게 일종의 최면효과를 일으켜 중동지역의 실상을 망각하게 한다. 즉 이들은 헤즈볼라와 하마스가 (테러단체가 아니라)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점령(1967년 이후 지금까지) 및 남부 레바논 점령(1978~2000년)에 대한 저항에서 비롯돼 발전한, 아랍 민중 속에 깊이 뿌리박은 대중운동이라는 점을 망각하고 있다. 민간인들에게도 공격을 서슴지 않는 이 두 단체의 냉혹함을 탓할 수는 있겠지만 (이 점에서는 이스라엘을 옹호하는 세력들도 사실 할 말이 없다), 두 단체는 그동안의 선거에서 인상적인 승리를 거두었으며 국민들을 보호하기 위한 사회적 서비스를 제공해 왔다.
  
  레바논 정부가 이스라엘의 소망대로 남부 레바논에서 헤즈볼라를 대체할 가능성은 전혀 없다. 헤즈볼라 군사력의 남부 레바논 장악에 대해서는 레바논 내부에서도 심각한 의견차이가 있었지만 이번 이스라엘의 전격적인 레바논 침공으로 그 이견은 급속히 해소되고 있다. 푸아드 시니오라 레바논 총리를 비롯해 나비 베리 국회의장, 사드 하리리(지난 해 2월 암살 당한 라피크 하리 전 총리의 아들), 미셸 아운 장군, 에밀 라후드 대통령 등 레바논 내 모든 정파의 주요 지도자들과 국민들은 이스라엘의 레바논 기간시설 및 민간인들에 대한 무차별 폭격에 몸서리를 치고 있다. 물론 레바논에 대한 무차별 파괴와 살육이 계속되는 동안에도 이스라엘과 미국의 입장을 지지하는 레바논 내의 목소리가 아주 없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미국의 방송에서 대다수 레바논 사람들의 고통에 찬 절규를 들을 수 없다고 해서 그들의 목소리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며 세계 다른 지역의 사람들은 그 실상을 뻔히 알고 있다.
  
  이번 분쟁의 결과로 헤즈볼라의 주요 후원세력인 이란과 시리아의 세력이 약화되는 일은 없을 것이다. 이 두 나라가 (이번 전쟁의 확산에 의해) 지역 차원의 전쟁에 말려든다고 해도 결과는 마찬가지다. 9.11사태로 조지 부시가 카우보이식 외교를 전개한 이래 수 년간 미국은 이 두 나라를 위협해 왔다. 그러나 하마스 및 헤즈볼라에 대한 미국의 막무가내식 강압정책 덕택으로 이란과 시리아의 위상은 오히려 강화됐다. 이스라엘 병사 2명 납치라는 헤즈볼라의 덫에 빠진 이스라엘의 과잉대응은 이들의 위상을 다시 한번 한껏 높여주었다. 이란 및 시리아와의 전쟁, 또는 미국에 고분고분 하지 않은 두 나라 정부를 전복시키려는 노력은 결국 이스라엘과 미국의 위상을 약화시키고 말 것이다.
  
  이번 레바논 위기와 관련해 (사우디, 이집트, 요르단 등) 아랍의 친미정권들은 처음에는 멍청하게도 미국과 이스라엘 편을 들었다가 민심의 동향이 심상치 않음을 깨달은 뒤에는 당초 입장을 번복하느라 수선을 떨고 있다. 이들 국가의 민심은 정권의 입장과는 정면으로 배치되는 것이었다(독립적 방송인 <알자지라>의 시청률이 수직 상승한 반면, 사우디 정부가 운영하는 <알아라비야>의 시청률은 급전직하했다). 그나마 이들 국가가 민주국가가 아니라는 점이 부시행정부와 이스라엘에게는 천만 다행이라 하겠다. 이번 사태가 어떤 식으로 마무리되든 이들 친미정권의 약화를 가져올 것은 분명하다. 단기적으로 이들 친미정권의 미국에 대한 의존이 더욱 심화될 것이다. 그러나 카이로든, 암만이든, 리야드든, 이들 정권의 위상은 사태 이전보다 약화될 것이며 반대파의 세력은 강화될 것이 분명하다.
  
  지난 20여 년간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 및 레바논에 대한 폭력행사를 강화하면 할수록 이스라엘의 지역적 위상은 약화돼 왔다. 1982년의 레바논 침공을 시작으로 1987~90년 팔레스타인의 제1차 인티파다, 그리고 2000년 헤즈볼라에 의한 이스라엘의 남부 레바논 철수에 이르기까지 이러한 양상은 반복됐으며 앞으로도 그러할 것이다. 미국도 마찬가지다. 이라크에서의 무자비한 폭력 행사로 중동지역에서의 미국의 위상은 형편없이 추락했다(적어도 현실을 직시하는 대다수 미국인들의 눈에는 그러하다. 자신들만의 망상 속에서 중동정책을 펴고 있는 미치광이들의 눈에는 보이지 않겠지만). 2차대전 이후 중동지역에서 미국의 위세와 영향력이 지금처럼 추락한 적은 없었다.
  
  앞으로 중요한 것은 이스라엘과 미국이 시리아, 보다 중요하게는 이란과의 전쟁을 피할 수 있느냐에 달려 있다. 현재 진행 중인 가자 및 레바논전쟁의 확산을 막을 수 있다면 그나마 중동지역에 미칠 악영향을 최소화할 수 있을 것이다.
  
  유럽의 여론이 주요 변수다. 유럽의 여론이 현재 레바논에서 벌어지고 있는 상황에 대해 얼마나 빨리 비판적이 되느냐에 따라 사태의 확산 여부가 결정될 것이다. 이스라엘의 무차별 폭격을 피해 레바논을 빠져나온 수 만 명의 프랑스인, 영국인, 이탈리아인, 독일인 등(이들 대부분이 이중국적 소유자다)이 현재 프랑스나 영국 TV 등에 나와 자신들이 목격한 참상을 전하고 있다.
  
  또한 이란과 시리아가 어떤 반응을 보일 것인지, 헤즈볼라가 이스라엘의 공격을 어느 정도까지 감당하고 견뎌낼 수 있을 것인지, 팔레스타인인들이 현재 자신들의 내부적 곤경을 극복하기 위해 얼마나 현명한 대응을 할 것인지 등도 사태의 추이에 중대한 영향을 미칠 것이다.
  
  나아가 백악관 주인이 제 성질을 얼마나 죽일 수 있을지도 중요하다. 만일 부시가 자신의 폭력적 충동은 물론, 미국을 믿고 날뛰고 있는 이스라엘 군 지휘자들을 자제시킬 수만 있다면 현재의 위기가 혼란의 심연으로 빠져드는 것만은 막을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 하지 못한다면 미국과 중동에 닥칠 것은 파국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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