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체계분석과 '역사적 자본주의'라는 관점
1970년대 초 이매뉴얼 월러스틴에 의해 처음 제기되어 발전한 '세계체계 분석'은 마르크스가 기틀을 닦은 '정치경제학 비판'으로서의 자본주의에 대한 역사적 비판을 한 단계 더 발전시켰다는 평가를 받아왔다. 그런 평가를 받을 수 있던 이유는 '끝없는 자본축적'이라는 내적 원리를 지니는 자본주의 체계의 설명을 '역사적 자본주의'라는 관점과 결합시킬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끝없는 자본주의'라는 원리가 실제 역사 속에서 특정한 시·공간 속에서 우세한 원리로 자리잡기 위해서는 특정한 역사적 조건들이 갖추어지고, 그런 조건들이 구체적 '역사 정세' 속에 한 데 모여야 한다. 세계체계분석은 그런 분석을 위해 '세계경제'라는 시공간, 그리고 국가간체계 속에서 다수의 근대적 국가들에 의한 그 공간의 동학의 형성, 그리고 그 속에서 생산, 노동력 재생산, 국제정치의 모든 측면에 영향을 미치는 중심과 주변으로의 세계공간의 분절이라는 특징을 발견하고 이런 특징들을 결합해 구체적 역사를 분석한다.
그렇기 때문에 이런 세계체계분석이라는 접근법은 근대 세계체계로서 '자본주의 세계경제'의 역사를 특정한 경향들이 반복되는 것으로 보는 동시에, 각 순환이나 각 국면마다 앞선 시기로 환원될 수 없는 특이성이 출현하는 것으로 설명해주는 강점을 지닌다. 월러스틴 자신의 말에 따르면, 이는 사회과학 논쟁사에서 이항적 대립으로 나뉜 '법칙정립적 접근'과 '개별기술적 접근'을 통합 할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준다. 우리가 현재 겪고 있는 세계경제 위기 또한 이런 '역사적 자본주의'의 시각에서 좀 더 명확히 설명될 수 있다.
세계체계분석에서 자본주의의 동학이 '역사적 자본주의'의 논지로 구체화하는 가장 중요한 고리는 '세계 헤게모니'라는 개념이다. 자본주의가 세계경제라면, 그것은 중심 없이 모두 균등하게 포진되어 있는 단순한 시장이 아니라, 고부가가치·고이윤 부문을 독점한 가장 주도적인 국가를 중심으로 하여 매우 불균등·불평등하게 배치되어 있고, 그 아래 다수의 국가들이 국제분업의 상이한 고리를 담당하게끔 하는 특수한 구조를 형성하고 있음을 뜻한다. 월러스틴에 이어 세계체계분석의 설명을 한 층 더 발전시켰다고 평가받는 조반니 아리기는 이 고리에서 어떻게 특정한 국가가 핵심적 지위를 차지하게 되었고, 그 특성이 어떻게 역사적으로 달라지는가를 설명하기 위해 그의 <장기 20세기>에서 이를 '체계적 축적순환'이라는 논리를 통해 설명하고자 한다. 새롭게 등장하는 잠재적 헤게모니 국가가 앞선 축적체제와는 다른 새로운 비용 절감이 가능한 축적 모델을 형성하여, 이를 중심으로 세계경제가 재편되는 과정을 통해 새로운 세계헤게모니 질서의 토대가 형성된다는 것이다. 근대 자본주의 세계체계의 첫 세계 헤게모니인 네덜란드는 '보호비용'을 내부적으로 통제함으로써 16세기에서 17세기 초에 세계의 상업을 통제하는 독보적 지위에 섰다. 이를 이어 영국이 자본주의의 중심을 '생산'으로 이전시키고 이로서 이른바 '산업혁명'에 기반하여 '생산비용'을 내부화한 자유무역 제국주의이자 영토 제국주의의 헤게모니를 건립함으로써 19세기를 자신의 헤게모니 시대로 이끌었다. 20세기 들어서면 미국이 '거래비용'을 내부화한 '법인자본주의'라는 근대 기업형태를 건립하고 '뉴딜'의 체제를 전지구적으로 확대함으로써 초국적기업에 기반한 '탈식민지적' '자유기업' 세계경제를 건립하여 세계 헤게모니를 계승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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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헤게모니의 위기
그러나 세계경제가 다수의 국가들로 구성된 국가간체계에 의해 작동한다는 것은 자본주의 체계의 내적인 모순이 되며, 이는 헤게모니의 시기가 상대적으로 길지 않고, 헤게모니 국가가 항상 정점에 이른 이후 급속한 도전과 위기의 시대로 나아가게 되는 이유가 된다. 헤게모니가 될 수 있던 그 체계적 축적순환에 내재된 모순으로 인한 수익률(이윤율)의 하락, 그에 수반한 후발 주자들의 추격 증가와 전지구적 경쟁의 격화, 헤게모니를 상대적으로 안정적으로 유지해 주던 국가간체계의 질서의 와해와 새로운 정치·군사적 도전의 증가, 그리고 '노동력'이자 '주권자'라는 모순적 양면성을 지닌 '인민'에 대한 관리에서 나타나는 내적 모순의 폭발 이런 것들이 결합되어 반복적으로 헤게모니 국가의 위기와 세계체계의 위기가 초래되었다. 그 위기의 세계적 확산은 월러스틴에 따르면 서로 다른 '세계전쟁'으로, 아리기에 따르면 '체계의 카오스'로 진전된다. 그 마지막 기억은 20세기초 제1차 세계대전에서 제2차 세계대전으로 이어진 '30년'이며, 세계를 뒤흔든 '대불황'(대공황)은 바로 그 시기 중간에 놓여 있었다.
처음에 강조했듯이 세계체계 분석은 현재 진행되고 있는 세계경제 위기가 전례 없고 이해할 수 없는 초유의 사태가 아니라, 이미 앞서도 유사한 형태로 겪었던 적이 있고, 근대세계체계가 지니는 내적 원리 때문에 피할 수 없는 성격의 것이라고 지적해 준다. 이미 19세기말 영국 헤게모니 위기가 시작되던 시기에 로스차일드와 J.P.모건을 상징으로 한 거대한 세계적 '금융화'가 진척되었고, 교통 통신의 발달은 세계의 금융시장을 이미 '실시간'으로 통합하였으며, 그 불안정성은 결국 당시 세계에서 가장 빠르게 성장하고 있으면서 경제성과가 가장 좋았던 미국 경제를 1929년 단숨에 붕괴시키고 그 여파를 세계 전체로 확산하는 방식으로 표출 된 바 있었다. 철도의 등장, 전신의 발명, 대대적인 세계적 이주의 등장, 이 모든 측면에서 이른바 '세계화'의 충격은 19세기말이 현재보다 훨씬 더 거대했으며, 그런 점에서 우리는 최근 수십년간의 변화만 '세계화'라고 보는 협소한 시야가 지니는 한계점을 깨달을 수 있다. 이처럼 우리는 지나간 역사의 경험 속에서 현재 진행되고 있는 위기의 특성과 방향을 가늠해 볼 수 있는 중요한 시사점을 얻게 되고, 그것이 세계체계 분석이 다른 어떤 이론보다 잘 보여줄 수 있는 강점이라 할 수 있다.
신자유주의 금융세계화
그렇지만 이 측면보다 훨씬 더 중요하고, 세계체계분석이 자신의 접근법을 '역사적 자본주의'라고 강조하는 더 핵심적 측면은, 그렇게 반복되는 헤게모니 교체 속에서 나타나는 현재 세계적 위기의 특성, 미국 헤게모니 쇠퇴의 '특이성', '종별성'이 무엇인가를 밝혀내는 것이다. 세계체계분석에 대한 외부적 비판보다 세계체계분석 내부의 논쟁의 논점이 훨씬 더 흥미롭고 유의미한 것도 바로 이 쟁점을 둘러싼 서로 다른 해석들이 제기되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헤게모니의 쇠퇴는 이미 1970년대 세계경제 위기 때부터 서로 다른 학분 분야에서, 서로 다른 이론적 배경을 지닌 학자들에 의해 제기된 바 있다. 그렇지만 그 쇠퇴가 앞선 헤게모니의 쇠퇴와 어떻게 같고 다른지는 특히 우리가 지금 겪고 있는 2008년 위기 이후 점점 더 중요한 쟁점이 되고 있고, 그에 대해 체계적으로 답변을 제시할 수 있는 이론적 접근들이 많은 것은 아니다. 미국 '이후'는 대체 어떤 형태인지, 세계는 다시 세계전쟁의 시대로 나아가는지, 중국의 부상의 의미는 무엇인지, 왜 금융화는 문제가 되는지, 왜 2008년 위기 이후에도 세계는 건재한 듯 보이는지, 왜 신자유주의는 등장했고 쉽게 극복되지 않는지, 자본주의는 영원히 지속되는지 등등, 이런 수많은 질문들이 전지구적 차원에서 제기되고 있고, 그 하나하나가 사실 매우 어렵고 난해한 질문들이다. 우리가 그 모든 질문에 적합하고 명쾌한 답변을 제시할 수는 없지만, 그 질문들에 대해 답변을 얻기 위한 사고의 고리들을 모아볼 수는 있을 것이다. 그 조각들을 모아본 이후 우리가 과연 어떤 그림을 그릴 수 있을지에 대해 앞으로 많은 논의들이 필요할 것이다.
우선 우리가 지금 살고 있는 시대를 '신자유주의'라고 규정할 때 우리는 이 논의의 함의 속에 들어 있는 두 가지 측면을 완전히 분리할 수는 없지만 항상 조심스럽게 구분해 염두에 둘 필요가 있을 것이다. 이 '신자유주의'라는 쟁점은 한편에서는 미국헤게모니의 쇠퇴와 그에 따른 대응 전략들의 총체를 지칭하고 있는 동시에, 다른 한편 이 질문은 역사적 자본주의 전체가 구조적 한계에 처해있는가라는 좀 더 근본적인 질문까지를 담고 있다. 자본주의의 '전성기'는 보는 관점에 따라 그것을 19세기 영국의 시기로도 또는 20세기 미국의 시기로도 볼 수 있을 텐데, 그 '전성기'를 지탱해 온 주요한 역사적 제도에 어떤 '균열'이 발생하고 있는지, 그것이 구조의 핵심에 어떤 영향을 끼치고 있는지가 현재에 점점 더 문제가 되고 있기 때문에 이런 구분은 의미가 있다.
이런 관심 하에 현재 진행되고 있는 세계경제위기의 특성을 살펴보자. 우리는 그 위기가 특히 '2008년 세계 금융위기' 형태로 폭발했고, 그 진원지가 미국의 투자은행(우리나라 식으로는 증권사)이었음을 잘 알고 있다. 이 문제를 이해하려면 우리는 왜 신자유주의가 '금융화'와 '세계화'를 동반하는지, 그리고 그 때문에 위기가 왜 더 심화되는지를 이해할 필요가 있다. 이에 대해서는 세계체계분석의 일원은 아니지만 일정한 친화성을 지니는 프랑스의 마르크스주의 연구자 제라르 뒤메닐과 도미니크 레비의 책 <신자유주의의 위기>가 곧 번역 출간될 테니 이를 참고하면 좋을 것이다. 간단히 지적해두면 신자유주의는 1970년대 자본주의의 구조적 위기에 직면해 급속히 하락하는 수익성의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자본소유주 계급'이라고 할 수 있는 '금융'의 이해관계를 우위에 놓는 형태로 반전된 대대적인 세계적 기획이었다고 할 수 있다.
이런 신자유주의적 전환이 앞선 헤게모니의 교체나 새로운 체계적 축적순환의 개시와 어떻게 다른지가 중요하다. 앞서 우리는 헤게모니가 교체될 때 새로운 잠재적 헤게모니 국가가 새로운 고수익·고부가가치 부문을 독점하여 수익성을 대대적으로 향상시키는 시기가 있었음을 지적하였다. 조반니 아리기는 이 국면을 '실물적 팽창'이라고 부르고, 이를 헤게모니 쇠퇴의 시기에 진행되는 '금융적 팽창'과 대비시켰다. 후자는 분명 쇠퇴하는 헤게모니 국가에 한정해서 관찰하면 금융 부문의 대대적 팽창에 힘입어, 쇠퇴하던 수익성이 반전되어 수익성이 급상승하는 '신경제'와 같은 '경이적 순간'으로 나아갈 수 있지만, 세계경제 전체에서 보자면 타지역의 전반적 하락과 위기를 촉발하는 이례적인 순간일 뿐이다.
이를 마르크스가 강조한 '이윤율의 경향적 하락'이라는 논리와 연결시켜 조금 더 살펴보기로 하자. 이윤율의 구체적 계산 방식은 여러 가지로 달라지겠지만, 대체로 이윤율을 결정하는 핵심적 요인은 자본생산성, 노동생산성, 이윤몫 세 가지라고 할 수 있다. 자본생산성은 앞선 축적체제와 구분되는 새로운 기술적·조직적 체계의 형성 또는 새로운 선도부문의 형성에 의해 가능해지는데, 영국 상승기의 이른바 '산업혁명'이나 미국 상승기의 법인자본주의의 형성이 모두 이에 해당한다. 자본주의가 전반적으로 '황금기'의 시기로 나아가던 국면들을 살펴보면 대체로 이런 자본생산성의 향상이 수익성의 향상과, 세계경제의 전반에 걸친 '실물적 팽창'을 주도함을 볼 수 있다. 노동생산성 향상 또한 마르크스가 '상대적 잉여가치'의 논지에서 강조하듯이 이런 기술적 동학의 영향을 받는다. 그렇지만 노동생산성은 자본생산성 향상 없이도 노동일의 연장이나 노동강도의 강화, 관리체계의 변환 등을 통해서도 가능하다. 이윤몫은 자본과 노동 사이 배분이기 때문에 이들 사이의 정치에 의해 결정되며, 역사적으로 한 시대 내에서는 큰 변동 없이 일정한 비율이 나타남이 관찰된다.
우리가 신자유주의 시대라고 할 때 이 세 가지 측면에서 주목되는 것은, 전반적으로 자본생산성의 증대를 동반하지 않는 노동생산성 증가와 이윤몫의 변환을 중심으로 자본축적의 위기를 돌파하는 시도가 나타난다는 점이다. 물론 1990년대 'IT혁명'이 새로운 자본생산성 증대의 가능성을 보여주는 것이 아닌가 하는 논점이 제기된 바 있지만, 그 거품이 사라지면서 앞선 세기에 보여준 전환점과는 매우 다른 한정적 역할만 하였음이 드러났으며, IT혁명은 특히 그 영향이 주로 중간관리층을 대대적으로 삭감하는 '경영관리 혁명'에 제한적 영향을 주었음이 밝혀졌다. 그래서 신자유주의는 사실 새로운 선도부문이나 새로운 선도적 고이윤부문, 새로운 생산의 거점의 등장을 수반하지 못한 채, 마르크스가 '절대적 잉여가치 생산'이라고 부른 현상이 재강화됨으로써 노동생산성을 향상시키고, 더 나아가 고용의 조건을 불안정화함으로써 이윤몫을 증가시키는 동학으로 진행됨을 알 수 있다.
물론 이런 대처방식은 자본주의가 늘 상대적으로 안정적인 황금기를 지나, 자본간의 바닥을 행한 경쟁이 개시되는 위기의 시대에는 일정하게 반복되었던 틀이기는 하다. 그렇지만 현재의 위기는 오랜 역사의 '진화'를 거쳐서 다양한 요인들이 복합적으로 결합되고 누적되고 있는 시기라는 점에서 이를 앞선 시기와 단순히 비교하는 데 그칠 수는 없다.
금융의 증권화와 2008년 위기
우선 현재 위기의 특징을 '금융화'의 위기라는 측면에서 살펴보기로 하자. 2008년 위기는 '서브 프라임 모기지 위기'로 상징되듯 그것이 '증권화'의 방식 속에서 폭발했다는 데 핵심 특징이 있다. 이는 앞선 세기의 금융화와는 아주 대조적인 측면인데, 그것이 설사 부동산시장 붐이라는 1930년대 앞선 모습과 닮았더라도 그러하다. 2000년대 금융화의 중심은 '주식시장'이 아니었다. 1990년대 '신경제'의 주축이 미국주식시장으로 세계 자본이 집중(주로 초국경적 인수·합병에 집중)된 현상이었던 것과 대조적으로, 2000년대 초 금융화는 주식시장의 주가지수의 하락과 반비례하면서까지 진행될 수 있었다. 그것이 가능한 이유는 그것이 파생상품을 중심으로 해서 '부채의 증권화'를 추동하는 1차, 2차 가공을 거쳐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파생상품의 등장은 국가에 의해 관리되던 금융적 '위험'(risk)이 신자유주의적 전환 이후 시장에 위임되면서 급속히 발전하였는데, 2000년대 들어 이 위험 분산의 극대화가 상품화·증권화의 논리를 타고 발전하게 되었다. 그 첫 가공(구조화)은 주택담보대출을 '펀드'로 가공하는 MBS(주택저당담보부증권) 형태로 이루어졌고, 이와 별도로 회사채나 할부금융의 부채를 증권화하는 방식이 MBS를 포함한 더 넓은 범주인 ABS(자산유동화증권)를 구성한다. 이렇게 되면 주택담보 대출에서 발생하는 '위험'은 전문적 대출금융사로부터 이 부채의 '구조화' 업무를 맡은 투자은행으로(더 명확히 말해, 그 투자은행들에 의해 장부상 설립된 SIV나 콘두이트로) 이전되며, 이 위험은 다시 그 구조화한 펀드를 구매한 구매자들로 분산된다. 이런 1차 가공에 이어 발생한 2차 가공은 다시 이런 증권들을 결합한 상품인 CDO(부채담보부증권)를 탄생시켰고, 이런 CDO에 대한 위험을 다시 분산시키는 CDS(신용부도스왑)가 탄생하기에 이르렀다. 논리적으로 이런 극단적인 위험의 분산은 금융적 위험을 체제 내적으로 완벽하게 관리할 수 있게 만든 것처럼 보였지만, 역설적으로 이는 부동산시장 침체와 그에 따른 서브프라임 모기지 위기에서 시작된 금융적 여파를 전지구로 통제불가능하게 확산시키는 기제가 되었다.
그런데 여기서 우리는 이 '증권화'와 연관된 몇 가지 중요한 문제를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이런 '증권화'의 혁신이 2000년대에 진행된 이유는 무엇인가? 그것을 이해하려면 우리는 미국 헤게모니 쇠퇴에 수반된 '금융적 팽창'이 앞선 시기와 달리 과잉축적된 자본, 즉 금융화한 자본을 대대적으로 미국 국내로 유입시켰다는 점을 이해해야 한다. 19세기말 영국의 금융화 또한 영국 국내에서 금융화의 동학을 진행시켰지만, 그것은 무엇보다 그 투자처에서 전지구적이었고, 그 말은 영국의 금융화의 핵심은 영국의 금융화한 자본이 새롭게 생산의 중심지로 성장하고 있던 지역에 투자되고 또 급속한 군사화로 자금이 필요한 지역에 집중적으로 투자되었음을 의미한다. 이에 비해 현 시기 미국 중심의 금융화의 특징은 미국 이외의 투자처로 미국 내의 금융화한 자본이 대대적으로 이동하는 것이 아니라 세계의 금융화한 자본이 미국으로 집중적으로 유입된다는 점이다(물론 그것은 세계 도처에 대한 금융적 투자와 다시 연결된다). 그것은 앞서 현재의 '기술적 동학'과도 연관되는 문제인데, 앞선 세기와 달리 이런 자본이 집중 이동할 새로운 축적의 중심지가 분명하게 형성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이 주목된다. 그것은 1980년대 말 이래 중국의 성장 방식의 특징을 살펴보면 부분적으로 이해될 수 있다.
이런 조건 하에서 1990년대 말 미국 금융화의 핵심이던 주식시장 거품의 붕괴가 지니는 함의가 이해된다. 1990년대 미국 주식시장 붐은 주식시장에 새롭게 상장한 기업이 늘어나면서 추동된 것이 아니라, 주식시장이 인수합병의 핵심장소가 되고, 이것이 금융적 투자를 위한 중요한 고리가 되었기 때문이었다. 2001년 미국의 경제 정책의 전환점이 보여준 바는 이처럼 활기를 상실한 주식시장을 대신하는 새로운 금융적 투자의 영역의 필요성에 대한 요구였다. 대출 이자율의 대대적 인하가 새로운 투자보다는 부동산붐을 일으키고, 그것이 2000년대의 '증권화'의 주축이 된 것은 예상 못했던 결과는 아니고, 오히려 유도된 결과였던 측면이 강하다. 그런데 이런 '비주식시장'을 중심으로 한 '증권화'와 파생상품의 번성은 이에 수반해 '관리되는 금융체계'라는 '포스트 브레튼우즈'적 특성에 대한 이해 없이는 논의될 수 없다.
미국의 현 경제체제를 단순히 '통화주의'적이라 할 수 없고, 오히려 '새케인즈주의'에 기반해 있다고 보아야 한다는 주장은 이런 맥락에서 제기된다. 금융에 대한 체계적 관리와 이를 통한 경기부양 정책은 현재 미국 거시경제 관리 방식의 주축이다. 이는 1930년대 대불황과 대조되는 핵심적 측면이다. 2008년 경제위기 이후 즉각 미국 정부와 연준이 개입해 구제금융을 시행하고, 몇몇 금융기관에 대해 (준)국유화 조치를 내리고, '수량완화정책'을 통해 부실 채권들을 연준의 '자산'으로 흡수하는 조치들을 연이어 발동하는 것은 이런 매우 독특한 신자유주의적 국가 개입의 특징들을 잘 보여준다. 대중들의 고소비에 지탱하면서 유지되는 미국 경제는 금융화에 의존한, 그리고 금융화의 위험과 부담을 세계적으로 이전하고 분산하는 정책에 의해서만 지탱될 수 있다. 2008년 이후 미국경제가 위기 속에서도 붕괴없이 '현상유지'를 해가는 것은 이런 관리체계가 작동하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이는 이 금융화가 초래한 모순의 핵심을 해결하는 것은 아니며, 위기를 지속적으로 유예시킬 따름이다. 90년대 주식시장에 집중된 위험은, 2000년대 펀드라는 형태를 통해 개인과 기관투자가들에게 이전되었다가, 2010년대는 다시 미국 정부로 집중되고 있다.
네 층위로 세계의 분화
이런 조건 하에서 신자유주의 하의 세계는 금융화의 발원지인 미국의 영향력 하에 크게 네 가지 층위로 분화되었고, 각 층위 내에서는 서로 연관되면서도 그 특징상 상이한 위기의 요인이 커져가고 있다. 이 피라밋의 최상층에는 그 자체 금융화의 출발지이자, 위험을 세계적으로 분산시키는 대가로, 자국 내에서는 대대적인 국가개입을 통해 위기를 관리하는 미국이 놓여있다.
그 아래는 미국에 대응하기 위해 지역적 통합을 실현한 EU가 있는데, EU는 '재정통합 없는 화폐통합'이라는 그 통합의 성격 때문에 매우 '통화주의적' 한계 속에 머물러 있고, 그것이 유럽의 위기를 확대시키고 있다. 신자유주의의 또 하나의 버전인 이런 EU의 통합은 미국으로부터 상대적으로 독립적인 단일 시장을 만들어 경기를 활성화하고 통화의 안정성을 꾀하려는 목표 하에서 출발하였지만, 사실 이 통합의 중심인 독일은 혜택을 입는 반면, 그 주변은 위기시 독자적인 위기 해결의 자율성을 포기해야 하는 문제를 안고 있었다. EU의 위기는 2008년 금융화에 따른 금융기관들의 부실화로 표출되었지만, 이 충격의 여파가 특히 EU의 '주변'지역, 약한 지역에서 무역적자와 재정적자 문제의 해결불가능성이라는 문제를 증폭시킴으로써 미국과 달리 금융화의 충격파가 주변·반주변에서 중심으로 확산되는 구조를 형성하고 있다. 그렇지만 미국과 달리 집중적 재정정책을 추구할 정부가 부재하고 그것이 화폐통합의 핵심근거이기 때문에 위기는 쉽게 해소되지 않는다.
세 번째 층위로 동아시아는 미국처럼 금융화의 발원지도, 통화주의적 지역통합의 위기의 지역도 아니고, 여전히 상대적으로 저가의 내구 소비재의 생산기지로 미국 소비시장에 의존해서 성장을 하고 있다. 그렇지만 1)미국 소비시장에 절대적으로 의존하기 때문에 그 시장의 불안정성에 연동되고 있다는 점, 2)대미 흑자로 형성된 거대한 외환보유고의 거의 대부분이 미국 국채를 매입하는 '자본환류'의 기제에 종속되어 있어 금융적 불안정성의 다른 측면에 노출되어 있다는 점, 3)금융자본의 자유로운 이동에 대해 이전에 비해 대폭적으로 노출되어 있으며, 이에 대한 국민국가 정부의 자율성이 대폭 줄어들었다는 점에서 또 다른 형태로 세계경제의 위기의 큰 영향력 하에 놓여 있다고 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맨 아래 층에는 이런 전지구적인 금융화의 동학에서 상대적으로 '배제된' 지역들이 존재한다. '냉전의 붕괴'는 역설적으로 이 지역들에 대한 보호와 원조의 모든 조치를 제거하였고, 이들 지역은 노골적인 신자유주의의 무한 경쟁에 노출되었다. 상당히 많은 지역이 역설적으로 세계시장의 관심에서조차 배제되었고, 국민경제의 틀이나 이에 대한 경제정책의 수립 자체가 불가능해지는 상황으로까지 치닫게 된다. 이는 생존의 위기, 정치(적 매개의 부재)의 위기라는 훨씬 더 심각한 위기로까지 나아가는 경향을 보인다.
민족국가 정치의 위기
미국 헤게모니 이후의 시대는 미국 헤게모니의 시대가 딛고 서있던 핵심적 틀이 붕괴하는 시기인데, 그 중에는 민족국가 공동체라는 중요한 국가간체계의 질서도 포함된다. 지금 모든 민족국가가 붕괴한 것은 아니지만, 냉전의 정점 시기와 비교해 보면 민족국가가 발전의 출발점이면서 주체이자 사회적 갈등의 감축과 제도적 해결의 통로라는 공감대는지역별로 그 정도는 불균등하게 나타나지만 크게 도전받고 있다. 그것은 민족국가 그 이상인 초민족적 금융자본이나 이와 연관된 제도들의 등장 때문만이 아니라, 민족국가 내에서 효과적으로 갈등을 조절하고 정책을 집행할 수 있는 자원과 제도들이 붕괴하면서 나타난 일이기도 하다. 정치의 중심지로서 민족국가의 위기는 동시에 그와 맞물려 19세기말에서 20세기 중반까지 힘을 발휘했던 '제도적' 사회운동의 위기이기도 하다. 대표적으로 노동조합과 정당이 그것을 잘 보여주는데, 이들 조직은 지속적으로 힘이 약했던 것이 아니라, 그 자본주의의 '황금기'에 그 진화의 방향에 영향을 줄 만큼 강력한 영향을 발휘한 바 있다. 신자유주의 이후 여러 변화 속에서 한편에서는 조직의 지속 자체가 어려움을 겪을 만큼의 변화를 겪지만, 다른 한편 '정치'가 '행정'으로 대체되는 시대적 변화 하에서 스스로 효과적인 변신이나 적응에 성공하지 못하였다.
그것이 왜 문제인지를 근대적 정치질서와 관련해 생각해보기로 하자. 근대 정치 질서 하에서 민족국가가 의미를 지녔던 것은 사실 '두 개의 변증법'의 작동 공간으로서 민족국가가 적대들의 '감축자' 역할을 해왔기 때문이었다. 첫 번째 변증법은 마르크스가 말한 '자본의 변증법'이다. 자본은 죽은 노동이 산노동을 포섭함으로써만 작동하는데, 바로 그 모순 때문에 자본은 노동의 사회적 성격을 강화하고, 노동의 사회적 권력을 키우게 된다. 이것이 노동운동에 내재한 어떤 '신화'의 근거였던 셈인데, 어쨌건 이로부터 '노동의 힘'을 부정할 수 없는 근대정치의 독특한 특성이 등장하고, 그것이 국민국가의 틀 속에서 노동의 '권리'와 사회보장 정책이라는 형태 출현의 바탕이 되었다. 두 번째 변증법은 '지배의 변증법'이라 할 수 있고, 그것은 근대 정치가 '인민주권'이라는 특징을 지닌다는 사실로부터 나오는데, 어떤 종류의 지배라고 하더라도 억압할 수 없는 최저선에서 피지배자들의 요구를 일정하게 담아내지 않고서는(왜곡/전도라 하더라도) 통치가 불가능하며, 이로부터 민족국가의 틀 내에서 피지배자 민중들의 새로운 전복과 새로운 권리의 요구의 정치가 가능해진다.
그런데, 신자유주의 시대는 이 두 가지 변증법 모두에서 문제가 발생한다. 세계적인 생산 공정의 분할과 고용의 불안정성 증대는 이런 '자본의 변증법'에 기반한 노동의 정치가 실현되는 데 큰 난점을 가져온다. 작업장에 기반한 노동자의 사회적 권력이 민족국가를 통해 실현되는 통로에 변화가 발생한 것이다. 그리고 이는 이런 집단으로서의 노동자를 모델로 삼은 유사한 정치들에도 똑같은 문제가 생김을 의미한다. 노동만이 문제가 아니라 모든 대중정치에 유사한 난점이 발생한 것이다.
두 번째 지배의 변증법에도 마찬가지의 문제가 생긴다. 유럽의 통합이나 유럽의 경제위기에서 발생하는 모든 문제들, 그리고 아프리카 국가들에서 발생하는 여러 문제들은 서로 다른 층위에서 이런 문제들이 확산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점점 더 많은 문제들은 민족국가의 '국적'을 지닌 '주권자들'에 의해 '정치적'으로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특정한 전문적 지식을 지녔다고 주장하는 어떤 엘리트들에 의해서 행정적으로 결정되고 있다. 그것도 그 일들이 벌어지는 장소와 무관한 곳에서 결정이 일어나고 집행된다. 물론 이 두 가지 정치의 가능성이 소진된 것은 아니고, 그 정치는 여전히 민중들의 삶의 권리를 확보하고 지키기 위한 중요한 거점이지만, 거기에서 생겨나는 빈공간이나 배제의 공간들을 엮어내는 또 다른 정치에 대한 사고 없이는 이 정치의 문제 또한 풀기 어려운 상황으로 변해가고 있다. 한 세기 전 문제가 되었던 '국제주의'라는 쟁점이 또 다시 문제가 되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
신자유주의라는 위기가 앞선 위기의 형태와 다르고, 어느 때보다도 더욱 '구조적'인 이유는 이런 특징들과 무관하지 않다. 심각한 구조적 위기는 그 이후의 낙관적이고 아름다운 미래의 가능성을 보여주는 것일까? 억압과 착취가 위기에 처한 이후의 미래는 그것이 없는 자유로운 공간을 의미하는 것일까? 과거에도 이에 대한 대답은 긍정적이진 못했지만 지금은 더더욱 그러한데, 여기서도 우리는 현재의 조건과 한 세기 전의 조건을 비교해 볼 필요가 있다. 여기서 우리는 우리에게 '미래'라는 단어가 주는 함의가 달라졌음을 느낀다. 20세기 초 세계적 위기 속에서 위기가 돌파구일 수 있던 이유는 그 시기에 특정한 '신화'와 '모델'이 작동했기 때문이며, 이 때문에 '모방'하고 '따라잡는' 논리가 형성될 수 있었다. '모방하고' '따라잡을' 것에 대한 신뢰가 무너진다는 것은 매우 심각한 위기의 지표인데, 현재의 위기가 그러하며, 이런 위기는 지배하는 세력과 피지배자 사이에 매우 비대칭적인 영향을 미친다. 점점 더 지배층의 지배의 전략이 '노골화'되는 경향은 이와 무관하지 않다.
'문명'이라는 질문
체계의 구조적 위기를 예측하면서 세계체계분석은 앞선 헤게모니 위기에 대한 분석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현 시기 구조적 위기와 관련된 중요한 쟁점을 제기하는데 그것이 '문명'이라는 질문이다. 이 질문은 두 가지 서로 다른 방식으로 제기될 수 있다.
조반니 아리기는 '문명'을 서구 세계체계 이후의 세계에 대한 질문으로 제기한다. 더 이상 세계체계가 자본주의적일 수 있는지라는 질문과 헤게모니의 중심이 더 이상 서구일 수 있는지의 질문이 결합되어, 우리에게 지금까지 덜 규명된 과거의 유산이 우리의 미래에 어떤 족적을 남길지가 문제가 되며, 여기서 우리는 우리에게 낯선 시간대의 문제에 직면한다. 그가 <베이징의 애덤 스미스>라는 책에서 남긴 대답은 너무 낙관적이고 적절한 답이었다고 보이지는 않지만 그가 남긴 질문 자체는 여전히 유의미하다고 할 수 있다.
월러스틴은 '우리가 아는 세계의 종언'이라는 측면에서 이와는 좀 다르게 '근대 자본주의 문명'이라는 질문을 던진다. 어떤 때는 다소 미래학적인 비약처럼 보이기도 하는 그의 체계의 한계와 '점근선'에 대한 논지는 다른 방식으로 해석할 때 여전히 심각한 위기의 여파에 대한 문제제기로 이해될 수 있다. 그리고 그것은 우리에게 너무 익숙한 지난 '20세기의 삶'이 과연 그렇게 당연한 것인지, 지속될 수 있는지, 얼마나 이례적인지를 질문하는 것이기도 하다. 앞선 세기와 달리 현시기 세계의 '분업'은 많은 사람들이 자신이 직접 생계를 위해 소비하는 것을 생산하지 않으면서 이루어지고 있다. 만일 세계적인 위기가 확대될 때, 이런 분업 구조 위에서 다수의 생존 자체가 영위될 수 있을까? 다수의 사람이 직접 생산하지 않는데, 그 틀은 지속될 수 있는가? 고등교육의 팽창은 사회의 민주화의 하나의 부수효과로 20세기 중반부터 대대적으로 급속히 팽창하였다. 그런데 인구의 다수를 비생산적이고, 때로는 '기생적'일 수 있는 사회세력으로 팽창적으로 재생산 하는 이 체제는 지속될 수 있는가? 비용의 외부화의 논리를 통해 확대되어 온 생태의 문제는 이 체제에서 자체적으로 해결될 수 있는가? 그리고 그 충격의 지역적 불균등의 문제를 세계는 해결할 수 있는가? 대대적으로 늘어나는 '비인간'에 대해, 그리고 '인간'과 '비인간'의 경계의 모호해짐에 대해 대처할 수 있는 정치를 만들어 내고 있는가?
그 중 어떤 것은 월러스틴 자신이 던진 질문이고, 다른 어떤 것들은 월러스틴을 따라가서 우리가 던져볼 수 있는 질문일 것이다. 월러스틴은 '우리가 아는 세계'인 이 근대세계체계가 더 이상 감내하기 힘든 질문들을 던지고 체계를 그 한계점으로 몰고 가고 있다고 지적한다.
월러스틴은 늘 자신의 글의 마지막을 이렇게 끝맺는다. 세계는 거대한 이행 속에 들어서 있고, 여기서는 작은 변화가 체계 전체에 큰 변화를 이끌어 낼 수 있고, 더 나쁜 방향으로도 더 나은 방향으로도 변화 가능한 이 세계 속에서 집단적인 진보적 노력은 필연은 아니지만 필요하다고. 포괄적이면서도 세밀한 분석과, 지나온 과거 행적에 대한 예리한 비판에 버티고 설 때, 미래를 향한 진보의 가능성은 아직 거부될 수 없을 것이다.
필자 백승욱은 현재 중앙대학교 사회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서울대 사회학과에서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한신대학교 중국지역학과 교수, 빙엄튼 대학교 페르낭브로델센터 객원연구원, 서섹스 대학 글로벌 정치경제 센터 객원연구원을 역임했다. 저서로 [자본주의 역사강의], [세계화의 경계에 선 중국], [중국문화대혁명과 정치의 아포리아] 등이 있고, 역서로 [장기 20세기], [우리가 아는 세계의 종언]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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