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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태일 열사의 '아름다운 명예졸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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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태일 열사의 '아름다운 명예졸업'

초등학교 중퇴 46년 만에…이소선 여사가 대신 받아

15일 오전 10시 서울 남산초등학교의 제61회 졸업식. 전태일 열사의 어머니 이소선 여사는 36년 전에 죽은 아들을 대신해 명예졸업장을 받기 위해 강당 한편에 앉았다. 졸업식에 참석한 아이들과 남대문초등학교 총동문회, 전태일기념사업회 사람들의 표정과 달리 이소선 여사의 얼굴은 그다지 밝지만은 않아 보였다.

남산초등학교 졸업생 61명에게 졸업장과 상장이 주어진 뒤 사회자는 "오늘 아주 특별한 졸업장을 수여하겠습니다"라고 말했다. 이소선 여사는 천천히 일어나 단상 앞에 나가 섰고 사회자는 졸업장을 읽어내려갔다.

"제1호 명예졸업장, 1948년 8월 26일생 전태일. 위 학생은 1960년 서울남대문초등학교에서 수학하던 중 가족의 생계를 위하여 중퇴하였으나 스물두 해의 짧은 생을 사는 동안 어려운 이웃들에게 큰 사랑을 실천하여 많은 이들에게 감동과 교훈을 주었으며 우리나라 민주화에 크게 기여하고 늘 배움에 대한 열망을 지니고 있었기에 폐교된 서울남대문초등학교를 대신하여 이 명예졸업장을 수여합니다."

'함께 졸업하는 학생들에게 한 말씀 하시라'는 교장의 부탁에도 이소선 여사는 그냥 몸을 돌려 단상에서 내려갔다. 이 여사가 받은 졸업장은 아들이 초등학교를 중퇴한지 46년 만에 수여된 것이다.

(사진1)

***"나는 이 졸업식이 아름답다고 생각한다"**

이소선 여사는 소감을 묻는 기자에게 "총동문회와 기념사업회, 서울시 교육청 모두에게 감사드린다"면서도 "그렇게 공부를 하고 싶어 하던 태일이에게 공부 하나 제대로 못 시키고 부모 노릇 제대로 못 한 것이 가슴 아프다"고 말했다.

전태일 열사의 동생인 전순옥 씨는 "어머니는 처음 이 제안을 들으셨을 때부터 착잡하다고 하셨다"며 "그러나 어머니께도 말씀드렸지만 나는 이 졸업식이 슬프다고 생각지 않고 아름답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는 "명예졸업이 많지만 초등학교 명예졸업은 매우 특별하다"면서 "학교 정규과정을 마친 후 받은 졸업장은 아니지만 오빠의 뜻을 기억하고 나누는 자리가 마련됐다는 것은 아름다운 일"이라고 말했다.

전순옥 씨는 전태일 열사가 남대문초등학교를 다니던 당시를 회상했다. 당시 전태일 열사의 가족은 서울역 바로 앞에서 살았고 아버지, 어머니는 수영복과 교복을 만드는 공장을 운영했다. 그러나 4.19 혁명이 나면서 돈을 받지 못해 사업이 망했다. 전태일은 어린 막내동생과 사업실패의 충격으로 병을 앓게 된 어머니를 돌보며 학교를 다니려 했지만, 결국 중퇴하고 말았다.

이날 졸업식에 함께 참석한 전태일기념사업회의 박애숙 씨는 전순옥 씨의 이야기를 듣다가 "그럼에도 전태일 열사가 공부를 얼마나 열심히 했는지는 유명하지 않느냐"면서 "오늘 행사는 배움의 의미를 다시 한번 생각케 한다"고 말했다.

기념사업회의 사무국장 황만호 씨도 같은 생각이다. "요즘 세상에 초등학교 졸업장을 이렇게 받으려 하는 이가 어디 있느냐"면서 "학교를 다닐 수 없는 어려운 여건에서도 이상을 잃지 않았다는 것이 학력 중심주의 사회에서 자기만을 위해 공부하는 세태에 대해 큰 메시지를 던지는 것 같다"고 말했다.

***"우리 아들을 기억하고 기념하는 사람들에게 감사하다"**

이소선 여사는 졸업식이 막바지에 이를 즈음에야 단상에 올라 "나는 아들이 초등학교도 다 마치지 못하게 한 죄인이라 이 자리에 서는 것이 너무 부끄럽다. 하지만 우리 아들을 기억하고 기념해주는 사람들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하기 위해 왔다"고 말했다.

이소선 여사는 오늘 졸업식에 참석한 학생들에게 당부의 말을 했다. "이렇게 졸업식을 할 수 있는 여러분은 정말 행복한 사람"이라면서 "시대나 현실이 좋아졌다고 믿지 말고, 나를 이기고, 내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충분히 고민해서 큰 일꾼이 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나는 국민학교를 못 마쳤지만, 여러분은 대학까지 가 무엇인가를 하고자 할 때 양심과 생각이 깊어지길 바란다"고 말했다.

학생들은 사뭇 진지한 표정으로 이소선 여사의 말을 경청했다. 그러나 기자가 "오늘 명예졸업장을 받은 분이 누군지 아느냐"고 묻자 아이들은 거의 다 "아까 교장선생님이 설명해주셨는데, 그 외에는 잘 몰라요"라고 대답했다. 하지만 아이들은 이소선 여사로부터 들은 전태일의 학교시절 이야기에 대해서는 "가슴 아팠다", "슬펐다" 고 말했다.

졸업식에 참가한 한 학부모는 '학생들이 전태일을 잘 모르는 것 같다'는 기자의 말에 "아직 아이들은 자기와 함께 졸업한 이 사람이 누군지 모르겠지만, 철이 들면 그 분이 얼마나 의미 있는 삶을 살았는지 알게 될 것"이라고 답했다.

졸업식이 끝나고 몇몇 아이들이 이소선 여사에게 달려왔다. 아이들은 "같은 졸업생끼리 같이 사진 찍어요"라며 이소선 여사와 어깨동무를 하고 사진을 찍었다. 이소선 여사는 아이들과 함께 사진을 찍으며 비로소 미소를 보였다.

(사진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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