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누구나 의무적으로 졸업해야 할 초등학교조차 살아 생전 졸업하지 못했습니다. 1950년 말 60년대 초 가난으로 말미암아 초등학교조차 제대로 다닐 형편이 못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리하여 그는 결국 서울 남대문초등학교를 잠시 다니다가 중퇴해 버렸습니다.
그때 초등학교마저 다니지 못하고 거리를 방황해야 했던 그는 어느 뒷골목에서 절망과 탄식의 눈물을 뿌렸는지도 모릅니다. 그런 상황에서 어느 누가 상처 난 어린 영혼을 따뜻이 보듬어주었는지, 사회는 그에 대해 관심이나 가졌는지 되돌아 봐야 합니다.
그러나 어린 그는 학교도 다니지 못한 채 거리를 방황하며 세상의 무관심과 냉대에도 불구하고 결코 좌절하거나 자신을 더럽히지 않았습니다. 그는 오히려 그 참담한 현실 속에서도 언제나 희망을 잃지 않고 높은 이상과 깨끗한 심성을 가지고 자신을 냉대하는 세상을 따뜻하게 바라봤습니다. 그는 어떠한 악조건에서도 늘 배움에 대한 열망을 저버리지 않고, 어린 동생들을 돌보고 어머니를 걱정하고 자신보다 더 어려운 이웃에 대한 사랑을 잃지 않았습니다.
그가 바로 1948년 경북 대구에서 태어나 열두 살 되던 해인 1960년에 서울 남대문국민학교 4학년에 편입해 짧은 학창시절을 보냈던 전태일입니다.
전태일은 부족함을 모르며 사는 오늘의 청소년들, 그런가 하면 온갖 어려움 속에서 매일 좌절하고 있는 모든 사람들한테 많은 얘기를 해주고 있습니다. 그는 길거리를 방황하면서도, 사과 상자로 만든 움막에서도 책을 손에서 놓지 않고 항상 공부를 했습니다.
그는 방황 끝에 들어간 대구의 청옥고등공민학교 시절이 그의 짧은 생애에서 가장 행복했다고 고백합니다. 그는 그 시절 가장 행복했던 순간인 고등공민학교 대항 체육대회 때를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 남녀 선수들과 같이 즐거운 대화를 나눌 때 문득 내가 아직도 서울에서 방황하고 있었으면 어떻게 되었겠나를 생각할 때 가슴이 뭉클하면서 (…) 어떻게든지 공부를 끝까지 해서 지금도 서울에서 고생하고 있는 친구들을, 그리고 거리에서 허기진 배를 움켜쥐고 5원의 동정을 받고 양심까지도 다 내어보여야 하는 언제든지 밑지는 생명을 연장하려고 애쓰는 불쌍한 사람들을 위해 일하리라고 막연하게 생각을 했었다."
이처럼 전태일은 자신의 입신출세나 돈벌이 수단, 계층상승 또는 다른 사람한테 내세우기 위한 간판을 따기 위해서 그토록 공부하고자 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그는 그렇게 즐겁고 행복했던 고등공민학교마저도 끝내 마치지 못하고 가난 때문에 중도에서 포기해야 했습니다. 그래서 전태일의 학력은 이것이 전부입니다. 국민학교(초등학교) 4학년 중퇴, 그리고 중학교 과정인 고등공민학교 1학년 중퇴.
전태일은 노동자가 되어 어린 시다를 비롯한 연약한 동료들을 위해 온갖 노력을 기울이다가 스스로 각성하여 노동운동을 시작하였습니다. 이때 그는 한문투성이 근로기준법 책을 공부하면서 "나에게 대학생 친구 하나 있었으면 좋겠다"라고 갈망하기도 했습니다. 이것만 봐도 그가 얼마나 이웃을 위해 공부하고 자신의 모든 노력을 다 했는가를 알 수 있습니다.
그는 세속적인 잣대로 보자면 아주 보잘 것 없는 학력임에도 불구하고 문학, 시사, 철학 등 다양한 방면으로 독서하고 사색도 했습니다. 맞춤법도 잘 맞지 않는 그의 일기는 이런 그의 사색의 기록입니다.
그는 공부를 통해 아름다운 품성을 가지게 된다는 것을 우리에게 알려 주고 있습니다. 또한 공부의 절실한 목적과 진정한 의미가 무엇인가를 우리에게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전태일은 마침내 가난 속에서 혹사와 착취에 시달려 시들어가는 어린 동심들을 위해 "나를 버리고, 나를 죽이고" 갔습니다. 그들의 곁을 떠나지 않기 위해 청옥시절 다짐에 다짐하고, 삼각산에서 맹세했던 그대로 말입니다.
전태일은 그 짧은 학력과 생애에도 불구하고, 그의 진실과 사랑이 참으로 처절하고 절실했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한테 감동을 주고 교훈을 주고 그래서 우리 스스로를 부끄럽게 했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전태일의 사랑과 투쟁과 결단은 노동운동의 발전은 물론 우리사회의 민주화를 진전시켰습니다. 그리하여 전태일은 우리 역사에서 가장 훌륭한 사람 중 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바로 전태일이 높은 학력의 소유자여서가 아니라 숭고한 사랑과 드높은 이상을 가지고 실천했기 때문입니다.
이제 전태일은 특정계층이나 특정 정파, 이념을 떠나 전 국민의 역사적인 인물이 되었습니다. 역사적 인물은 남다른 영웅도 아니요 더구나 높은 학력의 소유자여만 하는 것도 아님을 전태일은 말해줍니다.
때마침 전태일이 다녔던 서울 남대문초등학교 총동문회에서 나서서 그에게 명예졸업장을 수여하는 문제를 추진하고, 그 결과 서울시 교육청에서 좋은 취지라고 받아들였다는 소식이 들려 왔습니다. 15일 이 학교의 졸업식 때 전태일의 가족이 저 세상으로 간 전태일을 대신해 이 졸업장을 받게 됩니다. 참으로 아름다운 일이 아닐 수 없으며, 또한 요즘 우리 사회의 왜곡된 교육열을 되돌아보는 성찰의 계기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학력, 학벌 중심주의와 입신출세주의, 남을 딛고 서기 위한 무한경쟁을 부추기는 교육, 이런 것들을 위해서는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고 쏟아 붓는 사교육비 등 우리 사회에 만연해 있는 병폐를 전태일이 지켜본다면 뭐라고 말을 할까요? 전 생애에 단 한 장의 졸업장도 가져보지 못했던 전태일이 말입니다. 더 좋은 학교, 더 높은 학벌을 위해 전력투구하는 이 사회에서 아무 짝에도 쓸모없는 최종학력 초등학교 졸업장은 결코 자랑거리가 아닐 것입니다. 어찌 보면 초라하고 부끄럽다 할지언정 명예롭다 여길 사람은 아무도 없을지 모릅니다.
그러나 몇 년 전 어느 재벌 회장이 어떤 대학에 명예박사학위를 받으러 갔다가 그 재벌에서 노동운동을 탄압한다 하여 학생들의 반대로 결국 박사학위 수여식이 무산된 일이 있었음을 기억합니다. 그 재벌 회장님이 돈을 많이 기부해서 명예박사학위를 학교 측에서 주었는지 모르겠습니다.
이 박사학위 수여식과 전태일 초등학교 명예졸업장 수여식은 요즘 졸업 철을 맞아 졸업의 의미는 무엇이며 공부란 무엇인가를 생각하게 합니다. 진정 명예로운 것은 무엇이며 더 나아가 우리가 어떤 가치관 속에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를 되짚어보게 합니다.
우리는 자랑스럽게 말하고 싶습니다. 전태일은 초등학교 4학년을 다니다 말았으나 이제 수여되는 초등학교 명예 졸업장은 그 어떤 박사학위보다 값진 것이라고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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