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볼리비아, '토착민 출신 좌파 대통령' 탄생 유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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볼리비아, '토착민 출신 좌파 대통령' 탄생 유력

18일 대선…남미에 '반미 삼각편대' 구축될까

18일 대통령 선거를 앞둔 남미의 가난한 나라 볼리비아에서 우고 차베스 베네수엘라 대통령과 반미·민족주의 노선을 같이 하는 좌파 후보인 에보 모랄레스의 당선 가능성이 높아지면서 미국의 신자유주의적 대(對) 남미 정책이 난관에 봉착하게 됐다.

미국의 조지 부시 행정부가 '안데스의 탈레반'으로까지 부르며 '혐오'의 대상으로 삼고 있는 모랄레스 사회주의운동당(MAS) 후보가 당선될 경우 남미 대륙에는 쿠바, 베네수엘라, 볼리비아를 잇는 '반미 3각편대'가 자리잡게 돼, 내년까지 이어질 중남미 8개 국가의 대선에도 적잖은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볼리비아의 '체 게바라'…남미 좌파 중 '가장 급진적' 평가**

모랄레스는 마약인 코카인의 원료로 쓰이는 코카 재배농(코칼레스)의 정치지도자로 10여년 전부터 정가에서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했다. 코칼레스들은 미국의 지원을 받아 자신들을 몰락시키려는 볼리비아 정부에 맞서는 모랄레스에게 절대적인 지지를 보내고 있다.

인구의 85% 이상이 순혈 혹은 혼혈 인디오인 볼리비아에서 모랄레스가 원주민 출신의 첫 대통령이 된다면 정치적으로 뿐만 아니라 사회경제적으로도 '혁명'이라 부를 수 있는 일대 사건이 된다.

〈사진 1 : 모랄레스 후보 연설 장면〉

모랄레스의 인기와 좌파적인 정책에 신경이 쓰였던 부시 미 행정부는 일찌감치 그의 정치적 영향력의 싹을 자르기 위해 냉전시대의 남미정책을 방불케 하는 각종 공작을 펴왔다.

주 볼리비아 미국 대사였던 마뉴엘 로카는 2002년 대선 때 당선이 유력한 후보인 모랄레스가 대통령이 되면 미국은 경제원조를 중단하겠다고 협박하며 선거운동에 직접 개입했다. 이에 대한 여론의 반발로 모랄레스는 오히려 더 큰 인기를 누렸지만 산체스 데 로사다 후보에게 2%포인트 차로 석패했다. 미국은 그 뒤로도 볼리비아 정치에 교묘히 개입했고, 지난 4년간 코카 재배 근절을 명분으로 연간 1500억 달러의 사회·군사적 원조를 퍼부었다.

부시 행정부는 연이어 벌어진 대통령 하야 사태 등 볼리비아 정국이 요동칠 때마다 피델 카스트로 쿠바 대통령의 지지를 받고 있는 우고 차베스 베네수엘라 대통령이 모랄레스와 사회주의운동당에 뒷돈을 대 정부를 흔들고 있다고 주장해왔다. 제임스 힐 전 미 남부군 사령관은 올해 1월 〈마이애미 헤럴드〉와의 인터뷰에서 차베스가 모랄레스에게 뒷돈을 주고 있다고 주장했지만 특별한 근거를 제시하지는 못했다.

로저 노리에가 미 국무부 중남미 담당 차관보는 뒤이어 등장한 카루로스 메사 대통령이 쫓겨났을 때도 쿠바와 베네수엘라가 불리비아의 내정에 간섭하고 있다며 메사 축출의 배후에 차베스가 있음을 시사했다.

로저 파드로 마우러 국방부 서반구 담당 차관도 쿠바와 베네수엘라가 볼리비아를 주요 타깃으로 삼고 있는 것은 볼리비아에 혁명의 조건이 무르익고 있기 때문이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그러나 미국 관리들의 이같은 비난은 역으로 모랄레스의 인기에 자양분이 됐다. 이번 선거운동에서도 모랄레스는 차베스와 카스트로에 대한 존경을 공공연히 표명하면서도, 차베스로부터 재정지원을 받았다는 의혹에 대해서는 거론할 가치조차 없는 일이라고 일축했다. 차베스 대통령도 볼리비아 내정을 간섭하는 것은 자신이 아니라 오히려 미국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미국은 이번 선거에서 '제2의 차베스'가 탄생할 것이라고 우려해 인근 파라과이 국경지대에 수백 명의 군대를 파견해 놓고, 볼리비아에서 민중봉기가 일어나 천연가스가 국유화하는 것을 막으려 하고있다.

***미국, 남미의 '반미 바람' 차단에 부심**

이번 볼리비아 선거에서는 모랄레스 외에 호르헤 키로가(사회민주당, Podemos) 전 대통령과 일본인 기업가 출신인 사무엘 도리아 메디나(국민연합, UN)가 주요 후보로 꼽히고 있다.

이들은 모두 해외무역을 늘리고 투자를 유치하기 위해서는 석유와 천연가스의 개발을 대외정책의 최우선 과제로 삼고 태평양에 접한 항구를 가져야 한다고 주장하는 등 몇 가지 공약에서 일치점을 보인다. 볼리비아는 1879~1983년 '태평양 영토전쟁'에서 칠레에 항구를 빼앗겨 내륙국가가 된 뒤 태평양 항구의 회복을 숙원으로 삼아왔다.

또 세 후보는 모두 천연가스 개발이 경제성장에 핵심이라고 믿고 있다. 에너지 빈국에 둘러싸여 있는 볼리비아의 가스 매장량은 남미 대륙에서 베네수엘라에 이어 2위를 자랑하고 있으며 약 700억 달러 정도의 가치를 갖고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그러나 모랄레스와 나머지 두 후보의 공약은 석유·가스 산업의 국유화 문제와 코카 재배의 합법화 문제에서 극단적으로 갈린다.

모랄레스는 해외 에너지 기업들이 소유하고 있는 자산을 몰수해버리는 쿠바식 국유화는 배제하면서도 에너지 분야에서 브라질 최대의 석유 기업 페트로브라스 같은 공기업을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를 위한 구체적인 계획은 아직 밝혀지지 않고 있다. 하지만 그는 국가가 에너지 기업에 대한 '주인'이 아니라 '파트너'가 되는 방향으로 가기 위해 기업과 국가가 맺고 있는 계약을 재협상해야 한다는 주장을 펴왔다.

코카 재배와 '마약과의 전쟁'에 대한 모랄레스의 입장은 미국의 신경을 건드리고 있다. 모랄레스는 가난한 원주민들의 생계를 위해 코카 재배를 합법화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는 따라서 자신이 당선되면 코카 농업의 대부분을 없애버리려는 미국의 정책을 거부할 것이라고 말해왔다. 그는 또 코카 잎을 식품이나 의약품으로 만드는 산업을 육성하고 코카 재배의 합법화를 위한 국제적인 캠페인도 벌이겠다고 말해왔다.

〈월드피스헤럴드〉에 따르면 그는 "미국이 원조를 그만두겠다고 해도 상관하지 않겠다"고 말할 정도로 강경한 입장을 취하고 있다. 만약 그가 이런 장담대로 행동하게 된다면 미국이 벌이는 '마약과의 전쟁'의 전선이 확대될 것이 뻔하다. 반면 2001~2002년에 코카 재배농을 몰살시키는 정책을 주도했던 키로가 전 대통령은 코카 대신 오렌지나 바나나를 심도록 하겠다고 주장해왔다.

칠레와의 관계 및 태평양 항구 문제와 관련해 민족주의 문제가 이번에 또다시 선거이슈로 등장했다. 최근까지 모랄레스는 에듀아르도 로드리게스 현 대통령이 중국산 견착식 미사일 30여 개를 미국에 인도한 것을 '반역'이라고 비난했다. 그는 견착 미사일은 영공 방위에 필수적인 것인데 미국이 볼리비아를 지배하기 위해 이것을 빼앗으려 한다고 주장했다. 부시 미 행정부는 소형 무기들이 테러리스트에게 유입된다는 이유로 남미 국가들에게 소형무기를 압수하도록 하고 있다.

서부 고원지대 주민들과 남동부 평야지대 주민 간의 지역갈등도 선거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천연가스가 매장된 남동부 지역의 기업가들은 가스를 최대한 개발해 더 많은 부를 누리기를 원하고 있어 서부 안데스 지역 주민들과 갈등을 빚고 있다. 인구의 다수를 차지하는 인디오 빈민들과 지배엘리트 간의 첨예한 갈등도 문제다. 몇몇 지방의회에서는 토착민들로 구성된 독립국가를 구성하자는 얘기까지 나오고 있다.

***의회 과반 못 넘어 정책이행 쉽지 않을 듯**

문제는 모랄레스가 대통령이 된다고 해도 의회에서 사회주의운동당이 의석이 과반수를 넘지 못한 상태여서 그의 국유화와 농촌개발 정책이 발목을 잡힐 수 있다는 점이다. 가스를 생산하는 다국적 기업들과의 계약을 재협상하는 데는 수개월이 걸릴 수 있는데, 그 기간에 가스산업에서 나오는 세수가 줄 경우 새 정부는 전기와 상수도 등 빈민들에게 필수적인 공공서비스의 개선 등 선거공약을 이행할 동력을 잃을 수 있다. 사회주의운동당 지지자들의 염원인 개헌의회 구성도 지난한 과정이 될 것이다. 새 정부의 정책 이행이 이처럼 한계에 부딪힐 경우 모랄레스 행정부는 비판자들은 우려하고 지지자들은 원하는 수준보다 완화된 정책을 펴야 할 것으로 보인다.

볼리비아의 유력 일간지 〈라 라존〉은 최근 사설을 통해 이번 선거에서 누가 이기건 볼리비아의 대결적인 정치구도는 계속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모랄레스가 승리하더라도 사회민주당이 상원의 과반수 의석을 유지할 것으로 보이고, 따라서 그가 사회주의운동당의 정책을 펴기 위해 관련 입법을 시도하는 과정에서 사회민주당의 견제가 상당한 장애로 작용할 것으로 보인다. 심지어는 모랄레스가 집권할 경우 쿠데타가 일어날 가능성도 벌써부터 거론되고 있다.

남미와 안데스 지역 주변국들이 이번 볼리비아 대선에 주목하는 것은 이번 선거가 신자유주의 정책에 대한 심판대가 되고 있기 때문이다. 1990년대에 몰아친 신자유주의 정책으로 남미 국가들은 외국인투자를 유치하고 정부의 세수는 증가시켰지만 경제적 이득이 빈빈들에게 돌아가지 않아 양극화가 심화됐다는 문제점을 공통으로 안고 있다. 미국식 경제체제가 남미지역으로 확산되는 것을 의미하는 '워싱턴 컨센서스'는 부시 행정부의 근시안적 정책에 의해 그 효력을 더욱 상실하게 됐고, 그렇잖아도 불안정한 이 지역의 정치환경을 더욱 극단적인 불안정 상황으로 몰아갔다. 남미 전 지역을 휩쓴 정치적 격변으로 볼리비아에서는 불과 몇 년 사이에 대통령이 세 번이나 바뀌었고, 에콰도르의 경우에는 2002년 대선에서 대통령을 지지했던 인디오 출신 정치지도자들이 바로 다음해 4월 그 대통령을 축출하기도 했다.

라틴아메리카 전문가인 이성형 이화여대 정외과 교수는 "볼리비아는 아줘 오래 전에 신자유주의적 개혁을 한 나라여서 거의 모든 공공부문이 이미 민영화됐다"며 "이런 나라에서 국영화를 주장하는 모랄레스가 당선 가능성이 높은 것은 신자유주의의 실패를 단적으로 보여준다"고 설명했다.

이 교수는 또 "사회주의운동당이 정당이긴 하지만 실제로는 사회운동 세력을 토대로 만들어진 조직"이라며 "모랄레스의 대선 승리는 남미에서 사회운동이 정당을 누르고 제도정치로 진입하는 보기 드문 사례가 될 것"이라고 평가했다.

그는 그러나 "볼리비아는 산맥으로 둘러싸인 아주 작고 못 사는 나라라서 좌파 정권 수립이 남미 다른 나라들에 큰 영향을 미치지는 못한다"면서도 "하지만 베네수엘라, 페루, 칠레 등지에서 좌파 세력이 부상하는 경향이 두드러지는 것은 의미심장하다"고 덧붙였다.

최근의 여론조사에서 모랄레스는 2위인 키로가 후보에 약 4~5%의 근소한 차로 앞서고 있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볼리비아 대선이 남미 좌파 정권 확대의 분수령이 될 것을 우려한 미국이 선거 막판에 모종의 '공작'을 벌일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는 상황이다.

숀 맥코맥 미 국무부 대변인은 16일(현지시간) "워싱턴은 오랫동안 볼리비아 정부의 반 마약 정책을 지원해왔다"며 "새 정부도 같은 정책을 이끌어가기를 희망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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