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시 대통령 아르헨티나 도착**
미주대륙 정상들이 제4회 미주정상회담 참석을 위해 속속 아르헨티나의 휴양도시 마르 델 쁠라따로 입국하고 있는 가운데 이 회담 참가를 놓고 설왕설래하던 조지 W. 부시 미 대통령이 3일 오후 8시(현지시각) 마르 델 쁠라따 현지에 도착했다.
이날 부시 대통령의 까멭 공항 도착작전은 한편의 영화를 보는 것 같은 특별경호작전 속에 이루어져 현장 취재기자들을 깜짝 놀라게 했다.
3일 오후 7시40분 미합중국의 마크가 선명한 미 대통령 전용기가 공항에 도착하자 부시 대통령의 아르헨 도착취재를 위해 출영장에서 대기 중이던 사진기자들은 부시대통령 부부가 나타나기를 숨 죽여 기다렸다. 그러나 각종 화물과 대표단만 내리고 부시 부부는 끝내 트랩에서 내려오지 않아 모두가 실망하는 눈치였다. 잠시 후 오후 8시 정각 공항 상공에서는 또 다른 비행기의 엔진소리가 들려오며 똑같은 미국문장을 단 비행기 한 대가 착륙을 시도했다.
부시 부부가 탄 진짜 공군1호기였다. 먼저 도착해서 기자들을 속였던 비행기는 1주일 전 미국대표단 선발대가 타고 온 비행기로서 아르헨 북부 멘도사라는 도시에서 비밀리에 대기중이다 이날 공군1호기에 앞서 마르 델 쁠라따 공항에 내려 만일의 사태에 대비를 한 것이다. 이를 본 현장 취재기자들은 두 대의 똑같은 비행기까지 동원한 미국의 경호작전에 혀를 내둘렀다.
이렇게 부시 대통령의 아르헨 도착과 함께 제4차 미주정상회담 의제로 미국 정부가 내놓은 미주대륙자유무역협정(FTAA)안과 관련된 분위기가 일반적인 예상을 뒤엎고 긍정적인 분위기로 바뀌고 있다.
3일 오전 속개된 미주대륙 외무장관 연석회의에서 베네수엘라를 제외한 대다수 중남미 국가들은 미국측의 제안에 긍정적인 반응을 보이며 자유무역협정안의 대폭적인 수정을 요구하는 선으로 가닥을 잡아가고 있다.
만일 미국측이 제안한 범미주대륙자유무역협정이 제한적이지만 합의에 이르게 되면 현재 마르 델 쁠라따에 모여있는 중남미 20개 국 600여 좌파 민중단체들의 수만 시위대가 강력히 반발할 것으로 보여 대규모 폭력시위가 일어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감돌고 있다.
이들은 신자유주의를 반대하고 있으며 미국과 미국이 주도하는 미주대륙자유무역협정에도 반대하는 입장을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중남미민중연합회의는 미군이 중미의 파나마, 콜롬비아에 이어 최근 파라과이에까지 진출한 것을 강하게 비난하고 남미가 미국의 군사기지화 되는 것을 비난하고 있다. 이들 중 특별히 아르헨 출신 노벨 평화상 수상자인 아돌포 페레스 에스끼벨은 "남미에 미군은 필요 없다"며 " 남미의 자원은 미국의 것이 아닌 남미인들의 것이며 이 자원들은 남미인들의 건강분야와 교육확대에 사용돼야 할 것"이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이들은 또 아르헨티나의 인기 축구스타였던 마라도나를 특별초청, 일반시민들의 관심을 끈 다음 중남미 빈민들의 실상을 알릴 것이라고 밝혔다. 마라도나는 수도인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특별열차를 전세 내어 수도권 민중회의 지도자들과 함께 4일 오전 6시 회의장인 마르 델 쁠라따역에 도착해 월드컵운동장까지 행진할 계획이다.
이는 정상회담에 쏠린 이목을 민중지도자회의에 집중시키고 아르헨티나 국민들의 반미 목소리를 부시 미 대통령에게 들려준다는 의도로 기획되었다.
마르 델 쁠라따 시민들 역시 지나친 경호와 신원조회 등으로 심기가 불편해진 것을 노골적으로 드러내 보이며 이들 좌파 민중지도자들을 지지하는 분위기도 상당하다. 정상회담장 주변에 산다는 한 시민은 "지난 몇 개월 동안 외출은커녕 필요한 식료품을 사는 데에도 불편을 겪는 등 부시 미 대통령의 방문으로 우리는 감옥생활을 하고 있다"며 고개를 설레설레 흔들어 보였다.
그러나 이번 미주정상회담은 마르 델 쁠라따시의 발전을 약 10여 년 앞당겼다는 긍정적인 평가가 주류를 이루고 있다. 필자가 들러 본 시가지는 예전의 마르 델 쁠라따가 아니었다. 모든 게 각국의 정상들을 맞기 위해 깨끗하게 정리되고 말끔하게 단장을 했다는 얘기다.
한편 마르 델 쁠라따 거주주민들은 거의가 정상회담 기간 중 다른 지역으로 여행을 떠난 것으로 알려져 주인들은 떠나고 객들이 설치는 묘한 현상을 보이고 있다. 실제로 마르 델 쁠라따시 정부는 정상회담기간을 임시공휴일로 선포해 각급학교는 휴교를 하고 은행 등 관공서도 문을 닫았다.
또한 시내에서 식당과 관광업을 제외한 다른 업종들은 사실상 철시를 한 상태다. 게다가 좌파 시위대가 부시 미 대통령 방문을 기점으로 대규모 시위를 예정하고 있어서 상점 파괴나 약탈 등을 염려한 주민들 사이에는 '일찌감치 문을 닫고 여행이나 가자'는 분위기가 팽배해 대다수 주민들은 짐을 챙겨 여행을 떠나고 없는 것이다.
마르 델 쁠라따에서 거주하는 한국교민 김현연씨 부부도 "부시 덕에 몇 년만에 휴가 간다는 기분으로 오는 일요일까지 여행이나 갔다 오겠다"며 3일 오전 주위 친구들과 짐을 챙겨 남쪽으로 여행을 떠났다.
한편 민중연합은 반미 대열의 선봉장격인 우고 차베스 베네수엘라 대통령이 자신들의 마지막 회의 폐막식에 참석, 폐막연설을 할 것이라고 발표해 마르 델 쁠라따 현지의 시위대들과 중남미국가 언론들의 관심을 끌고 있다.
이와 관련, 아르헨티나의 한 여론기관은 3일 수도권과 마르 델 쁠라따 현지의 중산층 이상 주민을 대상으로 이번 정상회담에 대한 아르헨티나인들의 여론을 알아보았다. 결과는 54%의 아르헨티나 사람들은 부시 미 대통령의 아르헨 방문을 반대하고 있으며, 74%가 우고 차베스 베네수엘라 대통령의 반미 행보에 지지를 보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이는 중산층을 상대로 한 전화조사의 결과여서 빈민층을 상대로 했다면 상당히 양상이 달라질 수도 있었을 것이라는 설명을 곁들였다.
이와 함께 마르 델 쁠라따 국립대 학생들은 최근 현지 누리꾼들을 상대로 '부시 대통령과 차베스 대통령의 마르 델 쁠라따 방문을 어떻게 보느냐'는 설문조사를 실시하기도 했다. 현지 대학생들은 78%가 차베스의 마르 델 쁠라따 방문을 환영한 반면 26%만이 부시의 방문을 반대하지 않겠다고 답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제4차 미주정상회담장의 현지 분위기는 온통 부시와 차베스 이야기로 이번 미주정상회담은 사실상 '부시-차베스 정상회담'이라는 소리가 높다.
"이번 미주정상회담에서 부시와 차베스를 빼고 나면 다른 32개 국 정상들은 정상회담이 아닌 미주기구(OSA) 회의에 따로 참석하는 것 같다"는 한 남미 기자의 볼멘 소리가 정상회담장 프레스센터의 분위기를 대변해주고 있다.
4일 오전 서로 대면하게 되는 부시 대통령과 차베스 대통령이 어떤 대화를 나누게 될 것인가와 부시 대통령을 축으로 하는 친미파 정상들과 차베스를 축으로 하는 반미좌파 정상들이 정상회담 의제를 놓고 누구의 손을 들어 줄지가 이번 미주 정상회담의 최대 관심사다.
따라서 이번 제4차 미주정상회담은 이래저래 부시 대 차베스, 친미 대 반미의 대결 구조임을 극명하게 보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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