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치운을 만나는 일은 프로메테우스와 대면하는 일이다. 그의 몸매의 표정은 우람하고 강단 지고 윤곽 뚜렷하고 낙관적이며 친절하게 과묵하지만, 묻는 말에 대한 대답은 늘 진지하고 고통이 묻어난다. 그를 괴롭히는 것, 매일 새로 돋아나는 그의 생간을 맨처음처럼 쪼아 먹으며 고통을 주는 제우스의 독수리는 천박화 경쟁을 갈수록 노골화하는 천민자본주의 대중문화다. 프로메테우스는 제우스를 물 먹이려고 인간에게 불을 가져다 준 죄로 영원한 고통의 벌을 받지만, 결코 제우스에게 무릎을 꿇은 적은 없다. 하지만, 영웅적인 거역과 상관없이, 인간에게 불(문명)을 가져다준 것이 과연 잘 한 일이었을까? 인간이 과연 불을 누릴 자격이 있는 동물일까?....프로메테우스의 고뇌는, 회의는, 그렇게, 고통보다 깊다. 사실 프로메테우스 자신이 모순적인 존재다. 그는 제우스 이전 거인족 출신이고, 제우스시대는 문명시대의 시작을 뜻한다. 문명 이전 거인족이 문명 이후 신을 거역하는 방법으로 인간에게 문명을 선물한다는 것이 도대체 어떤 의미를 갖는단 말인가? 프로메테우스의 답은 단연 연극예술적이다. 문명 이전이 육체 만을, 문명 이후가 정신 만을 뜻하는 것은 아니다. 육체의 응집인 정신과 정신의 해방인 육체의 변증법이야 말로 문명 발전의 행로다….연극은 그런 프로메테우스적 깨달음에서 비롯된다. 연극은 시와 소설 혹은 그림이 `제우스(혹은 그 아들 딸들) 고전적`이라면 연극은, `프로메테우스 고전적`이고, 이 연극이 바로 안치운의 희망이며, 삶의 근거며, 그를 절망시키는 것은 오늘날의 절망적인 연극 현실이다. 일찌기, 최승자도 그런 절망을 노래했다.
일찌기 나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마른 빵에 핀 곰팡이
벽에다 누고 또 눈 지린 오줌 자국
아직도 구더기에 뒤덮인 천년 전에 죽은 시체.
아무 부모도 나를 키워 주지 않았다
쥐구멍에서 잠들고 벼룩의 간을 내먹고
아무 데서나 하염없이 죽어 가면서
일찌기 나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떨어지는 유성처럼 우리가
잠시 스쳐갈 때 그러므로,
나를 안다고 말하지 말라.
나는너를모른다 나는너를모른다.
너당신그대, 행복
너, 당신, 그대, 사랑
내가 살아 있다는 것,
그것은 영원한 루머에 지나지 않는다.
-<일찌기 나는>, 전문
일찌기 절망했던, 아니 절망으로 노래를 시작했던, 그리하여 초짜 시절 이승우(소설가)를 종교적으로 경악시켰던 최승자는 지금 어디있는지 행방과 소식이 묘연하고(연락 요망) 안치운은 지금 히말라야 산 속으로 깊이 깊이 들어가 삶과 죽음의 경계가 없는 곳에 서 보고 싶은, 혹은 사라지고 싶은 충동에 시달린다. 하지만, 안치운 이야기는 끝내 `사라진 이야기`가 아니다. 사라지기에는 그의 고통이, 혹은 고뇌가 너무 프로메테우스적이다.(그는 최승자의 시의 명구 `이럴 수도 없고 저럴 수도 없을 때 여자 나이 서른은 온다`와 `괴로움 외로움 그리움 내 청춘의 트라이앵글`을 더 외었다.) ``
그는 우리나라 최초의 프랑스정부 장학생이다. 프랑스정부가 그를 처음 들여보낸 것은 국립연극학회. 이 학교를 졸업했더라면 `김정환한테 술을 살 정도로` 돈도 주량도 넉넉했었겠으나(설마. 이 학교를 졸업하고 연극 실기자가 되었다면, 연극평론가이자 대학교수인 지금보다 주머니가 더 쪼들렸을 텐데…) 그는 45일 만엔가 퇴학당했다. `예술적`이라고 소문난 프랑스교육제도도 그의 강한 자의식(은 무대공포증을 유발한다. 쪽 팔릴 각오, 후안무치가 없이는 무대에 서지 못하는 것.)을 깨지 못했다. 나이든, 유명한 할아버지 교수들이 고색창연한 건물 강의실에, 교수와 학생 한 열명이서, 칠판 없이(!), 교수와 학생 사이 직접 만남으로 수업을 진행했다. 교수가 농담을 하라 하면 그는 못하고, 남들 앞에서 뭘 해보라 하면 도망가는게 특기다. 기숙사에서 열심히 연습을 하고 나가서도 `내가 뭘 하면 누가 볼 것이다` 그런 생각에, 잘 못하고 내 시간이 처음 5분에서 4분으로 다시 3분으로 줄어 들고 뒤 차례 학생들은 자기 시간이 늘어나 좋아하고, 그렇게 한 달 쯤되자 땡땡이 치고 싶고 교실 문 열다 다시 도망가고 도서관에서 책이나 읽지 뭐 그러다가 결석이 잦아지자 교수가 `불어를 못해 그러느냐, 너희 나라 말로 해봐라, 그것도 아니면 음성언어로 해도 좋다` 했으나 그것도 못하니 교수가 마침내 말한다. 넌 여기 그만 둬라…교수는 그의 `이론` 체질을 알아 보고 추천서를 써서 그를 대학으로 보내주었다.
자의식이라. 나도 무대공포증 때문에 연극반을 하면서도 `출연`을 한번도 못해 봤지만(그냥 평소대로 주정만 해도 되는 김지하 <구리 이순신> 중 시인 역은 공연 금지 처분을 받았다), 한 5년 인간에 대한 능멸을 겪고, 즉 자존심을 철저히 짓밟히고 나서야 그것을 극복했다), 사실 자의식은 연극의 출발점이다. 자아가 발전하면서 자기 내부의 야만을 자의식하고, 그렇게 자기 분열된 자아가 그 야만을 이성보다 열린, 이성보다 총체적인 어떤 `정신=육체` 총체성을 위한 통로로 끌어 안는 과정이야말로 친족살해, 인육 섭생, 근친상간으로 얼룩진 (고대 그리스)연극 탄생 과정이고 연극 발전 과정이다. 그리고, 그러므로, 안치운의 자의식은 연극이론, 프랑스 `대학=이론`교육 제도는 안치운 자의식에 걸맞았다. 프랑스 교육제도는 한 가지 코스를 계속한 사람들이 학점 등 문제에 불이익을 받지 않도록 배려한다. 안치운은 교수 인터뷰를 거친 후 교수 싸인을 받는 식으로 어렵지 않게 박사과정에 입학할 수 있었고, 교무처로 가서 입학 등록을 하기도 전에 교수는 `앞으로 말을 트자`고 제안했다. 박사 과정에 들어왔으니 같은 연구자 아닌가?....그는 물론 자의식 때문에라도, 술자리에서 마지 못한 반말 말고는 제대로 말을 트지 못했지만, 제자를 연구자를 존중하는 정신은 물려 받았다. 그는 `제3대학`을 다녔는데, 정교수도 대개 연구실이 따로 없었고, 아침에 도서관엘 가면 늘 교수들이 먼저 와 공부를 하고, 자기 강의 시간이 되면 나갔다 들어오고 그랬다. 하지만, `누구보다 더 중심에서 연극 공부를 한` 그를 한국연극계는 받아들이지 않았고 그래서 비평을 하기 시작했지만 연극 동네에서 글을 싫어주지 않으므로 연극과 아무래도 제일 가까운 <문학과 사회>, <창작과 비평>, <문예중앙> 등에 글을 실었다….그가 낸 적지 않은 저서 대부분은 유명 문학출판사에서 나왔고, 대부분 연극이 주제지만, 연극 장르에 대한 배려라기 보다는 문학성을 인정받아 출간되었다. 연극론은 아닌 <옛길>(학고재, 1999년)에는 이런 귀절이 나온다. 목소리만 존재하는 옛길은 자기 모습을 숨겼다 감추었다 하면서 걷는 이에게 말을 건다….이 책에는 유구와 참신을 아우르는 시적 서정성의 극치라 할 만 한 것을 보여주는 표현들이 이것 말고도 숱하다. 안치운의 `연극글`이 문학판으로 들어온 것은 물론 그의 빼어난 산문력 때문이지만, 돌이켜보면 안타까운 일의, 아슬아슬한 반영이기도 하다. 그가 데뷔한 것 1990년대는 연극 비평의 전성기였다. 일간지에 얼핏설핏 실리던 연극평론이 89년, 90년부터 모든 신문에 나타났다. 그리고 지금, 일간지 연극비평란은 없거나, 기자들이 리뷰를 대신한다. 90년대 10년 동안 열심히 글을 썼던 사람들은 지금 글을 쓰지 않거나 비평적 입장을 취하지 않고 있거나 둘 중 하나다. 문학하는 친구들은 전과 달리 연극에, 연극 행위에 관심갖지 않는다. 그리고 연극하는 사람들 사이 `왜 연극을 하는가?`라는 질문이 어언 `연극 할 돈 어디서 생겼느냐?` `지원금 받았으냐?`로 바뀌었다. 그리고 물론, 가장 중요한 질문은 `연극을 왜 하는가?`며, 이 질문에 대한 안치운은 대답은 과연 자의식적이다.
나는 `맨`자를 제일 좋하한다. 그냥 발보다는 `맨발`이 좋고 손보다는 `맨손`이 좋다. (그렇다면 `정신`보다 `맨정신`이 좋을까? 나는 맨정신과 `횡설수설 상태`를 아우르는 제정신이 좋은데…). `연극을 왜 하는가?`라는 것은 걸국 `왜 연극을 좋아하는가?`라는 질문이다. 연극은 우리 삶 속에 분명 진짜가 아닌 가짜, 즉 환영이지만, 그 가짜가 실제보다 용량이 더 크고, 실제가 품지 않는 어떤 것, 실제가 드러내지 않는 어떤 것을 드러내므로(재현), 우리에게 즐거움과, 실제 반성 기회를 준다. 우리가 실제라고 알고 있는 것, 우리가 일상적으로 누구를 사랑한다 혹은 좋아한다 어떻든 욕망하고 상상한다고 믿는 것들도 사실 허망한 가짜일 수 있다, 그 허망한 것이 도대체 어디서 오는가? 실제가 아닌 허망함을 어떻게 보아야 하는가? 헛 것은 왜 헛 것인가? 헛 것과 실제가 둘 다 우리 몸 안에 있는 것 아닌가? 우리는 왜 헛 것에 의존하는가? 가짜가 진짜를 반성케하고 즐거움을 준다는 거, 우리가 본 것의 허망함, 허망함에 대한 어떤 새로운 깨달음…..
이쯤돼면 그도 `맨`정신보다는 `제`정신 과 아닐가? 아니다. 연기자와 관객의 `감정 공유 현상에 대해서도 그는 자의식-분석적이다. 연극은 가상현실이되, 너무도 생생한, 육체적인 가상현실이므로 다른 예술 장르에 비해 무대와 관객의 호흡이 더 직접적 아닌가?
물론 감정 공유는 있다. 가난한 나라든 부자 나라든, 못 배운 백성이든 많이 배우든 백성이든, 어느 나라 어느 시대는 극장이 존재했다는 것은 인간의 감정 공유 욕망 때문이다. 다만 배우들이 흔히 이야기하는 `관객과 직접 소통하는 매력`은, 물론 있겠지만, 너무 오래 동안 점검 없이 남발된 면이 없지 않다. 예를 들면 관객을 뭘 보고, 배우는 뭘 보는가, 그것 또한 사실 각자 헛 것으로 인식하는 부분은 없는가? 자칫 잘못하면 분명하지도 않으면서 잔부 다 공유하는 듯 느끼는, 신앙현상이 생기기 쉽다. 배우들은 공유 안되는 부분부터 이야기하는게 순서다. 내 경우 공유 안되는 부분이 더 많았다.
하긴 그렇네. `몸의 공유`를 너무 강조하다 보면 관객은 무대로 뛰어 오른 싸이코 혹은 스토커와 다를 바가 없겠네. 이거, 잘 하면, 내가 맨정신 과로 가는 거 아닌가?.....`침체한` 한국연극에 대해 안치운이 할 말이 많을 것은 당연하지만, 그의 문제제기는 단아하고 완강하게 고전적이었다. 지금 한국연극계에서는 고대 그리스나 셰익스피어 작품들, 이른 바 고전들을 고전대로 하지 않기 때문에 왜 그런 작품들이 오늘날까지 살아있는가 하는, 다시 말해서 연극의 햇김은 무엇인가하는 것을 느끼지 못하고 전달하지 못한다. 텍스트를 난도질하고 어떤 한 부분만 확대해석하므로 전체를 알 수가 없고, 고전에 대한 여러가지 해석이 미리 차단된다. 그리스 연극의 최대 최고 후원자였던 국가와 연극 전망의 관계, 그것에서 비롯되는 아름다움과 감정 공유의 이상 등등의 문제를 조감해볼 장치는 사라진다. 무엇보다, 비극 운문 대사와 희극 산문 대사 구분조차 모호하므로 대사가 풍기는 문학적 아름다움을 누릴 여지가 애당초 없다. 연극이 왜 중요한가, 이거 몰라도 좋지만, 연극 존재론 어쩌구 하는거 다 치우더라도, 연극이 베푸는, `운문=대사`의 아름다움 하나는 놓지지 말았으면 좋겠다. 몇 년 전 셰익스피어 <베니스 상인> 공연을 보러 갔는데, 거짓말 보태지 않고 대사 반이 없어졌고 나머지 반은 어처구니없는 오역 투성이였다. 우리나라 일상 대화에서 아름다운 말 표현이 사라진 것은 무엇보다 연극 침체 때문이다…내가 보기에, 오늘날 연극 대사 투가 너무 과정적이라, 비국풍이 오히려 텔레비전 코메디의 희화화 대상으로 되는 까닭 또한 같다. 그리고, 내가 보기에, 오늘 날 현극 현실에 가장 필요한 것은 고전성의 회복이며, 레퍼토리의 창출이다. `레파토리`란 스토리가 궁금해서 가는 게 아니라, 요번엔 이 사람이 연출 한다더라, 요번엔 누가 주연을 맡는다더라, 요번에는 특히 어떤 부분을 새롭게 해석한다더라, 뭐 그런 이유로 열 번 스무 번 씩 찾게 되는 작품이다. 일전에 무슨 지원금 심사를 하다가 `이미 공연한 것은 대상에서 제외하자`는 소리를 듣고 (안치운과 함께)경악한 적이 있다. 레퍼토리의 생성을 원천적으로 차단하자는 뜻으로 들렸기 때문이다.
75-78년쯤 `창작극`이란 말이 본격적으로 쓰이기 시작하고, 그 후 20년 동안 번역극보다는 창작극이 우선시되고 많은 지원이 있어 왔다. 80년대 중반 대한민국연극제는 아예 창작극으로만 열렸다. 이 정책은 이강백 같은 훌륭한 작가를 배출했다. 그런데, 이강백 작품이 계속 창작될 수 있는 풍토란 무엇인가? 지원인가? 그건 아닌 듯 하고, 실제로 불가능하기도 하다. 지금 젊은 작가들은 훨씬 문화가 개방된 상태에서 경쟁을 해야 한다. 그것이 일을 어렵게 만들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연극은 희곡에서 시작된다는 원칙의 재확인이다. 90년대부터 `연극은 연출이다`라는 얘기가 나왔고 그 결과 연극이 여기까지 왔다. `글로 쓰여진 것`에서 출발해야 하고, 그러려면 고전 작품들을 더 많이 읽어야 할 것 아닌가, 그렇게 생각한다. 무엇보다 좋은 희곡들이 많이 쌓여야 한다.
영화든 연극이든, 희곡-시나리오 작가의 저작권이 보호되는게 우선이다. 원작과 연출은 구분되어야 결합될 수 있다. 사실, 문학 잡지 시대가 계속 이어지고 잇지만, 정말 잡지가 필요한 것은 `대본의 `저작권` 확립이 필요한 연극과 무용계다. 한국문화예술진흥원 문예진흥기금 심사위원을 여러 해 맡고 있는, 내가 보기에 연극계에서 `심의의 원위`를 상당히 인정받고 있는 처지지만, 안치운의 `예술가지원론`은 매우 시민적이다. .
프랑스 이야기를 많이 하는데, 프랑스는 우선 노동조합이 결성되어 있다. 교사도, 예술가도 모두 노동자다. 국가는 교사든 예술가든 최소한의 삶 조건을 보장해주는데, 사회주의 정책의 영향으로 그 보장 제도가 매우 발달해 있다. 임신 4개월부터 육아 지원을 한다던가, 집을 임대하면 임대료 중 몇 %를 국가가 대신 지불한다던가, 동거하면 동거 수당 나오고, 임신하면 4개월부터 육아 지원하고, 국회의원이 좌파냐 우파냐에 따라 지역구 따라 다르지만, 부자 동네는 대개 우파고 가난한 동네는 대개 좌파다. 국가는 근본적으로 어떤 사람이 예술가라서 지원하는게 아니라 어떤 예술가가 사람이므로 지원한다. 예술가 스스로 자신의 예술로 얼마 번다, 혹은 얼마 밖에 못 번다고 얘기하는 것은 사실 남사스럽다. …..
그리고, 희극도, `자본주의와 춤추는` 뮤지컬과 팔짱을 끼고 우왕좌왕 비틀 걸음을 거듭하기 보다는, 고전성을 회복하는 것이 관건이다. 몰리에르는 희극의 고전성으로 국가의 간섭을 버티고, 끝내는 탈출할 수 있었다. (몰리에르)희극은 루이 14세 이후 새로운 시민사회 형성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 비극의 귀족 혹은 절대왕정 가족의 윤리에서 희극의 광장-시민-폴리스의 윤리로 넘어 온다. 한국연극은 가족의 윤리를 중요하게 여기는가 시민 사회 윤리를 중요하게 여기는가? 한국연극은 아직도 자족 윤리에 의존하는 부분이 많다…산문은 하층민의 언어며, 운문의 귀족의 언어다. 희극은 산문풍이고 비극은 운문풍이다. 비극은 `위에서 아래로`, 희극은 `아래에서 위로` 창작된다. 희극이 비극을 압도하기 시작할 조짐을 보인 것이 이탈리아에서 발생한 `콤메디아델라르테고, 몰리에르 희극은 그 완성이며, 그 후 희극은 특히 이탈리아 오페라부파(희극오페라)를 거쳐 현대예술의 근간으로 이어지게 된다.
Ps. `대담 겸 강연` 행사를 마치고 여전히 어깨가 무거운 그의 체구를 `차나 한 잔 하자`며 끌고 학림 다방엘 가니, 술이 몇 순배 돌고, `한 진지`로는 안치운보다 선배인 김민기(작곡가)가 나타나, 그날따라 경쾌한 웃음을 날리며 이런저런 말을 걸었지만, 안치운은 내내 울적해 하더니, 2차는 아무래도 사양하고 인사동에서 차를 내렸다. 그의 뒷모습의 `고전주의`가 무지근하게 내 눈을 때렸다. 슬픔인지 분노인지, 그의 감정인지 내 감정인지 분간되지 않는 어떤 것이….그는 무로 여전하겠지만, 비극이든 희극이든, 진지한, 그래서 고전적인(모든 걸작은 고전이다) 연극이야기를 하면서 그와 유쾌한 시간을 보낼 날이, 올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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