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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북핵 해결에 일본 기여를 끌어내려면...

미래전략연구원의 '지구촌, 분석과 전망' <17> 정상회담 이후의 한일관계 (2)

한국사회에서 일본에 대한 인식이나 정책에는 여전히 정서적인 입장이 강한 것 같다. 여기에서 말하는 정서적 입장이란 일본이 과거에 그러했던 것처럼 여전히 군국주의에 대한 야망을 갖고 지난 역사를 미화하고 있으며, 현재에는 미일동맹에 편승하여 팽창적인 대외정책을 전개하고 있다고 보는 시각을 말한다. 이같은 정서적 입장에 설 경우 일본은 선험적으로 나쁜 나라, 부정해야 할 대상으로 찍혀버리게 된다. 그렇게 인식된 일본과 더불어 대화할 수 있는 어젠다도 역사문제나 영토문제, 야스쿠니 참배문제 등에 국한될 수 밖에 없게 된다. 이번 6월20일, 청와대에서 열린 한일 정상회담은, 참여정부 출범 이후 일본측과 가졌던 5번 정도의 정상회담 가운데 한국측의 정서적 입장이 가장 강하게 투영된 회담이었다고 할 것이다. 2시간의 회담시간 가운데 무려 1시간 50분을 역사문제에 할애하였다고 전해진다.

그러나 주변국에 대한 외교안보정책을 정서적 입장에 입각하여 풀어갈 경우, 한국의 국가이익에도 도움이 되는 미래지향적인 지역질서 구축은 요원한 과제가 될 수 밖에 없다. 예컨대 북한이 한국전쟁을 도발하고 휴전 이후 갖은 정전협정 위반을 위반하였다고 해서 이에 대한 북한측의 공식사죄를 받아내는데 고집했다면, 6.15 남북공동성명 같은 남북간 합의는 가능하지 않았을 것이다. 마찬가지로 중국과 러시아가 한국전쟁에 개입하였다고 해서 양국의 책임을 묻는 자세로 일관했다면 한국외교의 지평을 넓힌 1990년대 초반의 한러 및 한중 수교는 불가능했을 것이다. 요컨대 국가와 국가간 외교관계에서는 정서적 입장에 집착하기보다는, 국가목표 달성에 보탬이 되는 방향에서 대외관계를 구축하거나 이용하려는 전략적 사고가 무엇보다 요청된다고 할 것이다.

외교안보적인 측면에서 우리의 국가목표와 국가이익은, 2004년 3월에 NSC가 공간한 국가안보정책 기본문서인 『평화번영과 국가안보』에 규정되어 있듯이 한반도 평화와 번영의 질서를 구축하는 데 있다. 이러한 목표를 추구하는데 있어 당면의 과제는 북핵 문제 해결 및 북한의 평화적 체제변혁 문제에 모아진다. 북핵 문제를 평화적으로 해결하고, 남북한의 화해협력 단계를 거쳐, 평화공존의 제도화를 이룩하는 것, 이것이 21세기 한국이 지향해야 할 국가안보정책의 궁극적인 목표로 설정된다. 그런데 이러한 목표를 추구해 가기 위해서는 한국 단독의 힘만이 아니라 주변 각국과의 유기적이면서 밀접한 협력이 불가결하다. 한국과 동맹관계를 맺고 있는 미국의 이해와 협력이 무엇보다도 중요할 것이다. 그런데 일본의 역량과 역할도 이 지점에서 전략적으로 재음미될 수 있다. 즉 일본이 지금까지 구축해 놓은 정치경제적 역량과 대외관계가 한국의 국가적 목표를 달성하는데 전략적으로 활용될 수 있는 자산으로서 잠재성을 갖고 있음을 주목하지 않으면 안될 것이다.

첫째, 고이즈미 정권이 발족 이후 구축해 놓은 대북관계가 북핵문제를 평화적으로 해결하는데 우리에게 큰 도움을 줄 수 있다. 2001년 4월, 취임한 이래 고이즈미 수상은 북한에 의한 일본인 납치자 문제 해결 및 북일 국교정상화에 강한 의욕을 보이면서,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2002년 9월17일 및 2004년 5월22일의 2차례에 걸쳐 직접 북한을 방문하여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정상회담을 가진 바 있다. 서방세계의 지도자들 가운데 김정일 위원장과 2차례에 걸쳐 단독회담을 가진 정치가는 고이즈미 수상이 유일한 사례일 것이다. 게다가 고이즈미 수상은 김정일 위원장과의 1차 회담에서는 북한에 의한 일본인 납치사실을 직접 확인받았고, 2차 회담에서는 일부 납치피해자 가족을 귀국시키는 등의 성과를 거두기까지 했다. 북한측 정상과 직접적인 대화채널을 갖고 있고, 그 채널을 통해 북한 실세를 직접 움직여 예기치 않은 외교적 성과를 얻어낸 일본 외교의 역량을 우리는 간과해서는 안될 것이다.

북한 핵문제와 관련하여 일본측이 거둔 중요한 성과 가운데 우리가 특히 눈여겨 보아야 할 점은 1차 정상회담시에 발표된 북일평양선언의 제4항에서, 북일 양국이 「한반도 핵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관련국 합의를 준수한다」고 공동선언한 점이다. 여기에서 관련국 합의란 1991년에 남북한간에 합의된 비핵화공동선언, 혹은 1994년 10월, 제네바에서 미북간에 체결된 핵기본합의를 총칭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잘 알려진 바와 같이 1991년에 발표된 남북 비핵화 공동선언은 그 제1항에서 「남과 북은 핵무기의 시험, 제조, 생산, 접수, 보유, 저장, 배비, 사용을 하지 아니한다」라고 규정하고 있다. 1994년에 제네바에서 합의된 북미 핵기본합의문은 제3항에서 「북미 양측이 핵이 없는 한반도 평화와 안전을 위해 함께 노력」할 것을 합의하였고, 제4항에서 「양측은 국제적 핵 비확산 체제를 위해 노력」한다고 선언한 바 있다. 즉 북한은 일본에 대해 핵무기의 시험, 생산, 보유 등을 하지 않을 것과 핵 비핵산을 위해 노력할 것을 다짐한 기존의 국가간 약속을 재차 보증한 것이다.

북한 핵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한국은 1991년의 남북비핵화공동선언에 입각하여 북핵불용을 기본입장으로 견지하고 있다. 마찬가지로 일본과 북한간에 합의한 2002년 평양공동선언의 제4항 및 미사일 발사동결에 관한 구두약속도 북한에 대해 핵보유 및 핵실험 불가를 강하게 촉구하는 근거로서 활용할 여지가 충분한 것이다. 일본이 북한에 대해 거둔 외교적 성과를 활용하여 북핵문제의 평화적 해결을 모색해 가는 전략적 사고가 대일정책에서 강하게 요청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역사문제나 영토문제를 둘러싸고 감정대립의 평행선을 달리기 보다는 양국이 북핵배제라는 공통의 목표를 향해 거둔 성과를 토대로 동아시아 지역질서 공동의 이익을 모색하기 위해 추가적인 전략적 협력관계를 강구하는데 노력을 기울이는 것이 보다 바람직한 외교안보정책방향이 되었을 것이다.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이라는 한국의 국가목표 달성을 위해 도움을 줄 수 있는 우방으로서의 일본을 정확하게 평가해야 하는 두 번째 이유는 일본이 북한의 연착륙을 실질적으로 지원할 수 있는 국가라는 점에서이다. 만일 북한이 베이징 6자회담이나 북미 양자간 협상을 통해 핵문제를 해결하고 체제의 생존을 담보받은 연후, 개혁개방 정책으로 본격적으로 전환한다면 실질적으로 북한의 성공적인 개혁개방을 위한 자금과 기술지원의 필요성이 대두할 것이다. 북한의 연착륙 지원을 위한 일차적인 책무는 한국이 지게 될 것이지만, 한국의 경제적 역량은 충분치 않다. 이 지점에서 일본의 존재를 어떻게 활용하고 우리에게 유용한 역할을 어떻게 끌어낼 것인가를 우리는 고려해야 한다.

일본과 북한은 이미 2002년 9월의 북일평양선언 제1항을 통해, 양국간의 국교정상화 이후 무상자금협력, 저리장기차관, 국제기구를 통한 인도주의적 지원 등의 경제협력을 실시하기로 합의한 바 있다. 1965년의 한일국교정상화 과정에서 한국에게 공여된 무상 및 유상 청구권 자금이 60-70년대 한국 경제개발의 견인차 역할을 했던 역사적 사실을 회상할 때, 국교정상화 이후 북한에 대해 제공될 일본의 경제협력은 북한의 개혁개방과 한반도 평화공존을 위한 중요한 자산이 될 것임이 분명하다. 이미 일본은 1994년 제네바 일괄합의에 따라 착수된 한반도에너지개발기구(KEDO) 사업에서 2003년의 시점까지 4억달러를 투자해온 실적을 갖고 있다. 당사자인 한국이 13억 달러, 유럽연합이 1800만 달러, 미국은 일절 부담하지 않은 주변 정황을 고려할 때, 비록 경수로 건설사업이 북핵 보유로 인해 2003년 11월 이래 중단된 실정이지만, 북한의 연착륙 및 한반도 평화질서 구축을 위해 일본이 수행해온 역할을 우리는 정당하게 평가해야 할 것이다.

2004년 7월21일에 제주도에서 개최된 한일정상회담에서도 북한 핵문제가 해결되면 한국은 포괄적이고 구체적인 남북경협사업을 추진하고, 일본도 평양선언에 입각하여 북일수교와 대북 경제협력에 적극 나선다는데 합의한 바 있었다. 이같은 양국간의 기본적인 입장표명을 바탕으로 이번의 한일정상회담에서는 보다 구체적으로 북핵문제를 해결하고, 나아가 북한의 연착륙을 지원하기 위한 양국의 협력태세를 논의하는 것이 보다 바람직한 의제가 되었을 것이다. 더욱이 한일정상회담 3일전에 있었던 정동영 통일부 장관과의 회담에서 김정일 위원장은 6자회담에의 복귀와 한반도 비핵화 선언 이행의지를 밝히지 않았던가. 7월로 예상되는 북한의 6자회담 복귀시 한미일 3국이 어떻게 정책공조를 해갈 것인가, 한국측이 준비하는 것으로 알려진 소위 「중대 제안」에 대해 일본측이 양해하고 협력할 분야는 무엇인가, 북핵 해결을 위해 강온 양면의 정책을 어떻게 병행해 갈 것인가 등 논의해볼 만한 의제가 적지 않았다고 여겨진다. 한반도 평화질서 및 동북아 질서의 바람직한 전망을 염두에 두면서 미래를 향한 과제를 논의할 시점에서 역사문제에 매달릴 수 밖에 없었던 이번 회담에 대해 아쉬움을 금할 길 없다.

1990년대 초반 미국에서는 경제적으로 부상하는 일본에 대해 위협론이 대두된 바 있었다. 미국의 패권이 쇠퇴하고 세계 최대의 채권국이 된 일본이 이를 대체할 것이라는 논의, 일본이 군국주의화되어 제2차 태평양전쟁이 미일 간에 벌어지리라는 논의가 미국의 조야를 지배하였다. 그러한 시기에 하버드대학 교수에서 국방차관보에 취임한 조셉 나이는, 일본을 배척하고 견제하기 보다는 일본의 증대되는 힘을 미국의 국가이익과 지역질서 이익을 위해 활용하는 편이 바람직하다는 판단을 하였다. 이 결과 1995년에 동아시아 전략보고서, 일명 나이 리포트가 작성되었고, 오히려 미일동맹 재정의가 추진되었다. 미국이 21세기에도 초강대국으로서의 지위를 누리는 이유의 하나로는 바로 조셉 나이와 같은 전략적 사고가 대외정책의 배경으로 작동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일본이 경제적으로, 외교적으로, 또한 군사적으로 성취한 역량을 1930년대의 군국주의와 단순하게 동일시하여 위협으로 보기보다는, 한국의 국가이익과 지역질서의 안정을 위해 어떻게 활용할 것인가를 묻는 전략적 사고가 우리에게도 절실히 요구된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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