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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함이 이뤄낸 뜻밖의 반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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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함이 이뤄낸 뜻밖의 반전

김연호의 '워싱턴 탐구' <6> 부시-케리 대선 토론

부시와 케리의 첫 TV 대선 토론에서 케리가 판정승한 것으로 각종 여론 조사에서 나타난데 이어, 두 번째 토론에서도 케리가 앞선 것으로 나타났다. 케리는 두 토론에서 모두 간결하면서도 분명하게 부시의 이라크 정책을 비판하고, 자신의 정책비전을 차분히 제시했다. 대통령감같다는 인상을 분명히 심어놓은 것이다. 부시는 특유의 ‘서민적’ 가두연설식 논법으로 케리에게 역공세를 폈다. 첫 토론에서는 케리의 초반 공세에 밀려 감정을 자제하지 못하는 모습마저 보였지만, 두 번째 토론에서는 여유를 보이며 답변하는 모습을 보였다. 그러나 첫 번째 토론에서 케리가 심어놓은 인상을 흔들기에는 역부족이었다. 구체적인 답변을 요구하는 질문들에 대해 두리뭉실하게 짜놓은 답변을 똑같이 되풀이하는 모습은 변함이 없었다.

사실 첫 번째 토론이 열리기 직전까지 미국 언론의 관심은 부시가 얼마나 실수할 것인가 보다는 케리가 얼마나 잘 해 낼 것인가였다. 케리 진영에서는 첫 번째 토론에서 지지율을 반전시킬 발판을 마련하지 못하면 이번 선거는 끝난 거나 다름없다는 절박한 입장이었다. 토론 직전까지만 해도 부동층은 물론이고 민주당원들조차 케리를 미덥지 않게 여겼기 때문이다. 이라크 문제에 대한 케리의 입장이 불분명하고 상황에 따라 흔들린다는 것이 그 주된 이유였다. 그 어느 때보다도 테러와의 전쟁과 국가안보 문제가 유권자들의 관심사로 떠오른 이번 선거에서 치명적인 약점일 수밖에 없다. 이처럼 유권자들이 케리에 대해 부정적인 인식을 갖게 된 것은 부시 진영의 케리 때리기 전략이 먹혀들어간 측면이 컸지만, 케리 스스로 자초한 측면도 적지 않았다.

상원의원으로서 이라크 전쟁을 승인하는 의회 결의안에 찬성표를 던진 것은 자신의 실수였다고 처음부터 깨끗하게 인정했으면 문제는 간단히 풀렸을 것이다. 그러나 케리는 책임을 인정하지 않았다. 심지어 이라크에 대량살상무기가 없다는 게 드러난 지금 시점에서 투표를 하더라도 여전히 찬성표를 던졌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다 최근에는 입장을 바꿔 자신은 이라크에 대량살상무기가 있다는 것을 전제로 찬성표를 던진 것이라고 말했다. 논점을 따라가기가 어려울 수밖에 없다. 케리는 또 부시의 이라크전쟁은 전쟁자체보다 전쟁을 수행하는 방식에 문제가 있다는 입장을 견지했다. 이 모든 주장들이 의회결의안에 찬성표를 던진 사실을 옹호하다 보니 생겨난 것이었다. 당연히 부시의 이라크 전쟁에 대한 공격의 날끝도 무뎌질 수밖에 없었다. 심지어 이라크에서 미군 전사자가 1천명을 넘어서고, 부시가 이라크 전쟁의 명분으로 삼았던 대량살상무기도 발견하지 못하고, 이라크 정국은 불안을 면치 못하는데도 오히려 부시의 지지율이 올라가는 기현상이 연출됐다.

부시는 케리가 손바닥 뒤집듯 입장을 바꾼다는 점을 TV 토론에서 확실히 부각시켜 지지율 상승세를 굳히겠다는 전략을 숨기지 않았다. 당연히 시청자들의 관심사도 케리가 또 어떤 ‘복잡한’ 논리로 자신을 변호할 것인가였다. 그러나 뜻밖에도 케리는 첫 번째 토론에서 자신의 실수를 인정하는 솔직함으로 정면 승부에 나섰다. 케리는 “나는 이라크 전쟁에 관해 얘기하는 데서 실수를 했다. 그러나 부시 대통령은 이라크를 침공하는 데서 실수를 저절렀다. 어느 것이 더 큰 실수인가?”라고 맞받아쳤다. 필자는 케리의 이 발언을 듣는 순간 토론의 중심이 케리로 넘어가는 것을 느꼈다. 토론 직후 방송에서 NBC의 한 백악관 출입기자는 케리의 입에서 이 말이 나오기까지 왜 그토록 오랜 시간이 걸렸는지 모르겠다고 코멘트했다.

어느덧 수세에 몰린 부시는 케리가 이라크에 파견된 미군과 이라크 임시정부 그리고 동맹국들에게 혼선을 일으키고 있다는 비난을 거듭했다. 이라크 전쟁은 잘못된 전쟁이었다고 말하면서 어떻게 이들에게 참여와 협조를 바랄 수 있겠냐는 것이었다. 케리는 복잡하고 불분명하고 일관되지 못하다는 주장인 것이다. 이에 대해 케리는 간접적으로 자신의 실수를 또 한번 인정하면서 반론을 폈다. 새로운 사실들이 나왔을 때 서둘러 잘못을 깨닫고 정책을 수정하는 것이 옳지, 잘못된 확신에 매달리는 것이 옳으냐는 것이었다. 그리고 자신은 깨진 그릇을 버리겠다는 것이 아니라 고쳐서 다시 쓰겠다는 비유로 이런 입장을 설명했다.

두 번째 토론에서도 이라크 문제가 집중 거론됐지만, 양쪽의 논리는 첫 번째 토론과 다를바가 없었다. 첫 번째 토론에서 케리가 심어놓은 ‘대통령감’같다는 인상을 지울 만한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사실 케리는 두 번째 토론에서 후세인이 미국에 위협적인 존재였는가를 놓고 또 한번 말이 왔다갔다 하는 모습을 보였다. 그러나 이미 미국 언론의 관심은 케리의 모순된 입장보다는 각종 현안마다 ‘내게 계획이 있다’는 케리의 발언으로 옮겨가 버렸다. TV 심야 코메디 프로에서도 이런 변화를 볼 수 있다.

그러나 케리 역시 아직까지는 완전한 승리를 장담하기 어려운 상태다. 케리가 말하는 ‘계획’들에는 그의 의지는 엿보이지만 구체성은 찾아볼 수 없다는 유권자들의 불만이 남아 있기 때문이다. 이라크에서 미군을 빼내고 동맹국들이 그 자리를 채우도록 하겠다는 케리의 구상은 현재로서는 실현가능성이 매우 낮다. 동맹국들과 회담을 갖겠다는 것 말고는 어떤 식으로 이를 가능하게 하겠다는 얘기도 찾아보기 힘들다. 케리의 입장은 결국 자신의 임기 내에 이라크에서 깨끗이 손을 떼겠다는 것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는데, 그 이후에 이라크와 중동정세를 어떻게 관리할지에 대해서도 구체적인 설명이 전혀 없다.

그러나 TV 토론은 논문 발표회가 아니다. 정해진 규칙과 한정된 시간안에 누가 더 대통령감 같냐는 ‘인식’을 심어주는 ‘공연’인 것이다. 그리고 그 첫 공연에서 케리는 예상밖의 성과를 거두었고, 두 번째 공연에서도 이런 분위기를 이어갔다. 케리의 이라크 수습안이 현실성이 떨어진다는 네오콘 논객 찰스 크로소머의 ‘걱정어린’비판도 어찌보면 이런 중론을 스스로 인정하고 있는 것인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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