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나라당이 행정수도 이전에 대한 당론 발표를 연기했다.
당초 한나라당은 당내 수도이전대책특위에서 마련한 행정수도이전에 대한 대안을 22일 의원총회에서 당론으로 확정하고 박근혜 대표가 기자회견을 통해 이를 발표할 예정이었지만, 소속 의원들의 반대로 당론 결정을 유보했다.
***청와대 유지하고 중앙 일부부처 이전 대안**
한나라당이 마련한 대안은 정부에서 추진하는 행정수도 이전에 대해선 반대하고 신행정수도 건설예정지인 공주.연기를 '행정특별시'로 지정하고 일부 중앙부처 이전, 지방분권 강화 등이 골자다.
대안은 우선 정부에서 추진하고 있는 행정수도 이전에 대해 ▲헌법정신 무시 ▲경제여건과 재정여건 무시 ▲통일과 안보 도외시 ▲문화역사 정체성 훼손 ▲국가경쟁력 약화 ▲지역균형발전 역행 ▲환경파괴 초래라는 7가지 문제점을 지적하며 정부안에 대한 반대 의사를 분명히 밝혔다.
이에 대안은 ▲국가 통치기구 서울 존치 ▲수도권 이외 지역에 강력한 성장거점 건설 ▲장기적인 국가발전 방향에 부합한다는 세 가지 원칙을 내세우며 ▲강력한 지방분권 ▲충청권에 대한 행정시 건설 ▲해양 지향 ▲수도권 성장관리체계 구축 등을 제시했다.
구체적으로 대안은 청와대와 외교, 국방, 재정 등 대통령이 직접 관장해야 하는 부서는 서울에 유지하고 그 외 과학기술부, 교육부 등 일부 지방 부처는 이전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충청권 여론을 위해서 남해안 관광벨트 등의 충청권 개발 계획도 포함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이어 대안에는 국세 일부를 지방세로 전환, 현재 '8 대 2' 비율인 국세와 지방세 비율을 '6 대 4' 정도로 조정하는 방안이 포함될 것으로 전해졌다. 또한 중앙정부는 외교ㆍ안보, 사회 간접자본 건설에 주력하고 나머지 정책권한은 지방에 대폭 이전하는 한편 지방분권 강화 차원에서 행정구역 개편이 필요한 만큼 향후 구체안을 내놓겠다는 내용도 담겨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박근혜 대표는 이날 이 같은 대안을 최종 확정해 발표하고 여당의 안과 타당성 토론을 벌일 것을 촉구할 예정이었다.
***"충청권에 대한 확인 사살"**
그러나 이 같은 안은 의원총회에서 소속 의원들의 격렬한 반대에 부딪혔다. 대안은 수도이전의 완전 반대를 주장하는 의원들과 찬성 입장인 의원 어느 쪽도 만족시키지 못했다.
개인적으로 수도이전에 찬성하는 의원들도 이날 대안에 대해선 강하게 비판했다. 원희룡 최고위원은 "오늘 제시된 안은 한마디로 충청권을 버리자는 안"이라며 "과천도 일종의 실패사례로 생각하는데, 분산을 시키는 것은 명분도 설득도 없다"고 비판했다. 유일한 충청권 의원인 홍문표 의원도 "한 마디로 이것은 충청권에 대한 확인사살"이라며 "국가대계차원에서 내용을 꼼꼼히 다시 검토해야 된다"고 말했다.
심재철 기획위원장은 "이 대안은 현실적 측면을 고려하지 않은 연구 논문 같다"며 "반대인지 찬성인지를 분명히 제시하는 것도 한 방법으로 대안을 제시할 필요가 있다고 보지 않는다"며 국민투표 방법도 검토해 줄 것을 촉구했다.
당내 수도이전대책특위 위원인 박진 의원조차 "행정기능의 분산은 필요하지만 당이 제시하고 있는 구체적 대안에 대해선 문제가 많다는 점을 지적한다"고 밝혀 당내 의견수렴 절차가 부족했음이 드러나기도 했다.
박계동 의원은 "국민들 시각으로 보면 이 시점에 수도이전을 하겠다는 것은 한마디로 헛소리"라고 비판했고 김광원 의원은 "수도이전과 맞물려 있는 분권화와 지방균형발전 정책은 전국을 하향 평준화하겠다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대안에 포함돼 있는 교육부 이전 방침에 대해 당내 교육위원들의 반발도 거셌다. 이군현 의원은 "부처별 일부 이전에 대한 안은 기준이 모호하고 적절치 못한 대응"이라고 말했고, 김영숙 의원도 교육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대안에 반대했다.
일부 의원들은 "지난 대선 때의 실패 경험을 반복하는 것이냐"고 비판하면서 "추석 때 귀향 가서 논란을 벌일 일이 있냐"고 '추석 직전'이라는 시기도 당론 발표에 적절치 않다는 문제를 제기한 것으로 전해졌다.
비록 권경석, 박형준 의원 등 수도이전대책특위 위원들이 "현실적으로 선택가능한 최선의 안"이라고 의원들을 설득했지만 오전 의총에서 결론을 내지 못하고 오후 의총에서 계속해서 논의키로 했다.
***박 대표, 서울-충청권 양쪽에서 협공**
행정수도 이전에 대한 당론이 '없다', 혹은 '모호하다'는 비판을 당안팎에서 받아온 박근혜 대표가 이날 소속의원들의 격렬한 반대로 당론 결정을 유보함에 따라 박 대표의 지도력에도 적잖은 타격을 입을 것으로 보인다.
수도이전의 완전 반대를 주장하고 있는 의원들이 이명박 시장 혹은 손학규 경기도지사계로 분류되는 당내 비주류 의원들이라는 점은 수도이전 문제로 연찬회 직후 다소 잠잠해진 주류-비주류 갈등을 재연시킬 수 있는 계기로 작용할 수 있어 박 대표가 당론을 강행하는데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다.
이재오, 홍준표, 김문수 등 비주류 의원들은 지난 17일 이명박 서울시장, 손학규 경기도지사와 함께 수도이전반대 범국민운동본부를 출범시키고 본격적인 수도이전 반대 장외투쟁을 나설 방침이라 지도부를 곤혹스럽게 하고 있다. 이재오 의원은 범국민운동본부의 공동 대표를 맡고 있다.
한편으론 한나라당 소속 충청권 시의원들의 압박도 가시화되고 있다. 염홍철 대전시장을 비롯해 당 지도부에 수도이전 찬성 당론을 촉구해온 충청권 시의원들은 최근 한나라당의 당론 결정 시기가 임박해오자 '반대 당론시 탈당'이라는 초강수를 두며 지도부를 압박했다.
이 같은 상황에서 박 대표가 제시한 절충안이 두 마리 토끼를 모두 놓치는 결과를 낳게 돼 이 문제를 어떻게 풀어나갈 지가 박 대표의 지도력을 입증하는 척도가 될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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