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사간의 평행선 대치로 '파국'의 어두운 그림자를 드리웠던 한국일보가 지난 8일 오후 2004년도 임금·단체협약을 극적으로 체결해 새로운 국면을 맞게 됐다.
***체불 임금 이달 중 전액 지급키로**
장재구 한국일보 회장과 전민수 전국언론노조 한국일보지부 위원장은 8일 △평균 17.8% 임금삭감 △채권단 공동관리기간 중 퇴직금 누진제의 단수제 전환, 관리기간 끝난 뒤 추후 다시 논의 △관리기간 중 퇴직금 가산제 유보 △정년 만 56세 △2년 이상 근속 계약직 정규직 전환 △인적 구조조정시 노사 협의 등의 내용이 담긴 임·단협 노사합의서를 정식 조인했다.
이번 노사합의서에는 부칙조항으로 △체불임금 9월 중 전액 지급 △9월 8일부터 10일 사이 상반기 증자 미이행분 54억원 증자 △연말까지 약속된 2백억원 증자 등의 내용도 들어 있다.
임·단협 타결로 현행 임금도 조정돼 연봉 3천만원 이하의 부분은 10%를 삭감하고, 3천만원 초과∼4천만원 이하는 30%를, 4천만원 초과분은 50%를 삭감키로 했다.
한국일보 노사는 지난 4월 말 첫 교섭을 시작했으나 서로간의 입장 차이가 커 4개월여만인 지난 8월 19일 최종 교섭결렬을 선언했다. 이후 서울지노위 중재에서도 '조정중지' 결정이 내려졌던 양측은 이날 회사측이 줄곧 주장해 왔던 퇴직금 누진제와 가산금제의 전면 폐지를 유보하고, 노조측은 임금삭감을 받아들임으로써 타결점을 찾을 수 있게 됐다.
***'배수진' 친 회사측에 전 구성원 '맞불 작전' 유효**
이처럼 전 구성원의 동의서까지 요구하며 '배수진'을 쳤던 한국일보 회사측이 전향적으로 방향을 틀어 노조와 대화를 시작하게 된 것은 마찬가지로 '배수진'으로 맞불을 놓았던 노조의 전술이 유효했다는 분석이다.
실제로 노조측은 동의서 거부 이후 회사 로비 농성과 수요일 집중집회, 파업 찬반투표 가결 등을 통해 장 회장에 대한 압박을 가속화했고 또, 지난 8월 6일 주채권은행인 우리은행 앞 집회와 여러 차례의 은행측 관계 간부 면담 등을 통해 채권단에 대한 압박도 병행했다. 이에 따라 우리은행측도 장 회장에게 상당한 압력을 가했다는 후문이다.
또 비조합원으로 구성된 편집국 비상대책위원회도 "이달 8일까지 증자약속이 이뤄지지 않을 경우 사주 퇴진운동에 나서겠다"며 장 회장의 운신폭을 좁히는 데 한몫 했다.
결국 "노조가 임금 삭감에 동의하지 않으면 증자대금이 인건비로 전부 사용된다"는 식으로 증자약속을 차일피일 미뤄왔던 장 회장은 최근 채권단에게 '노조의 임금 삭감 동의가 없더라도 8일까지 1백억원 증자약속을 지키겠다'는 서면각서를 제출하고 단절됐던 노사 대화도 다시 복원하게 됐다.
***연말 증자 여전히 불투명, 독자 생존방안 시급**
한국일보는 8일 임·단협이 타결됨으로서 일단 '발등의 불'은 끌 수 있게 됐다. 그러나 일부에서는 이를 '1차 투쟁'의 마무리로 보는 시각도 적지 않다.
장재구 회장이 비록 오는 10일까지 상반기분 미이행분 54억원을 증자한다고 해도 올해 연말까지 2백억원을 더 증자할 수 있을 지의 여부는 여전히 불투명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만약 이러한 계획이 어긋날 경우 장 회장 퇴진과 채권단의 결단을 촉구하는 내부 구성원들의 더욱 강력한 '2차 투쟁' 가능성은 매우 높다는 관측이다.
이와 관련해 전국언론노조 조준상 교육국장은 "이번 투쟁 과정을 통해 한국일보 내부에서는 '장 회장이 있는 한 한국일보 정상화가 힘들다'는 공감대가 널리 확산된 것으로 보인다"며 "따라서 장 회장의 증자 약속 불이행에 대비해 노조와 편집국 비대위의 연대, 공동의 독자 회사생존 방안 모색 등이 지금 당장 이뤄지는 게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조 국장은 또 "한편으로 노조와 비대위의 채권단에 대한 상시적인 압박도 필수적"이라며 "이를 통해 지나치게 엄격한 현행 양해각서(MOU)를 수정하고, 채권단 또한 한국일보에 운영자금을 투입토록 요구해 나가야 한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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