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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헨티나 페론이즘의 실체와 포퓰리즘

김영길의 '남미 리포트' <4> 페론 사망 30주년을 맞아

아르헨티나 역사상 가장 오랫동안 장기집권(3선)을 했고 아르헨 정치인 가운데 가장 유명한 후안 도밍고 페론이 사망한 지 7월 1일로 30년이 지났다.

아르헨티나의 모든 언론들은 페론 사망 30주년을 맞아 페론의 업적 재평가 작업을 활발하게 벌이고 있다. 아르헨티나의 유력 일간지들은 페론의 업적과 당시의 보도 자료들을 재구성해서 특집을 꾸미는가 하면 TV매체들은 페론 집권 당시의 업적들을 화면으로 구성해 하루 종일 내보내고 있다.

아르헨티노들의 뿌리깊은 반미정서, 국민들 사이에서 식을 줄 모르는 페론에 대한 향수, 한국이 정치ㆍ경제적으로 어려울 때마다 반면교사로서 단골 메뉴로 활용되는 포퓰리즘과 페론이즘의 실체는 아르헨 현지 학자들간에도 서로 그 평가가 서로 엇갈린다.

한국의 대다수 아르헨 분석가들은 아르헨을 경제적으로 가장 실패한 나라, 지구상에서 가장 못사는 나라 쯤으로 평가한다. 그리고 아르헨의 몰락은 페론이즘이 불러 왔다는 섣부른 평가를 내리고 포퓰리즘의 대명사로 아르헨티나를 지적한다.

과연 그럴까. 필자 역시 20여년 동안 현지 학계와 정치인들 그리고 사회 지도층 인사들과 포퓰리즘과 페론정권의 정치적 업적에 대해 논쟁을 벌여왔었다. 그러나 아직까지 명쾌한 답변을 보류한 상태이다. 그러다 우연히 지난 3월 주아르헨 한국대사관(대사 최양부)이 주최한 경제 강연회에서 이와 같은 의문들에 대한 회답을 듣게 되었다.

‘미국과의 뿌리깊은 반목의 역사’세미나의 연사로 초청된 경제학자이자 역사학자인 마리오 라포포르트 Bs.As대학 교수의 아르헨 역사와 페론에 대한 평가를 요약한다.

“1800년 말에서 1930년대까지 세계의 곡창으로 불리웠던 아르헨티나는 인구는 적었으나 연간 3억의 인구를 먹일 만큼의 식량을 생산했다. 그리고 전국에서 생산되는 질 좋은 쇠고기는 유럽시장을 독점했다. 물론 당시 세계를 주름잡았던 영국의 경제에 종속된 상태였지만 아르헨티나는 그야말로 태평성대를 누렸다.

아르헨산 곡물과 육류를 수입해 가던 미국이 유럽시장에서 주도권을 잡자 1926년부터 미국과 아르헨티나는 경쟁국가로서 대립의 각을 세우기 시작했다. 그러나 아르헨티노들은 유럽을 겨냥한 곡물 경쟁에서 미국인들의 단결된 힘에 곡물 수출 1위 자리를 내놓게 된다.

그때부터 아르헨티나는 세계시장에서 미국에 밀리기 시작했다. 아르헨티나의 뿌리깊은 반미 역사는 이렇게 시작이 됐다. 당시 아르헨의 소수의 대지주들은 드넓은 기름진 땅에서 생산되는 곡물로 넘쳐나는 부를 주체하지 못하고 유럽의 부유층과 귀족들과의 교류만을 경쟁적으로 고집했고 가진 재산을 흥청망청 소비하는 데 혈안이 돼 있었다. 그들은 주체할 수 없는 재산을 재투자라는 개념보다는 소비하는 데 전념, 미국과 유럽자본이 아르헨으로 들어와 각종 기간산업에 투자하는 모순을 낳게 한다. 따라서 아르헨티나의 국부는 자연스럽게 해외투자가들 손에 넘어가게 된 것이다.

미국과의 악연은 지난 70년대 군정시대와 90년대 정권을 잡은 메넴으로 이어진다. 자유시장과 금융시장 개방 물결을 탄 미국 자본은 소비를 미덕으로 아는 아르헨티노들에게 다가와 돈을 쉽게 쓸 수 있게 빌려주고 상황이 불리하면 썰물처럼 빠져나가 버려 아르헨정부의 외채는 매년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게 된다. 그리고 정권유지를 위해 외국에 손을 벌리는 아르헨 정치가들에게 국제시장에서는 몇 배나 높은 이자를 책정, 돈을 빌려주어 지금의 대다수의 외채는 이자에 이자가 붙은 액수다.

여기에는 아르헨티나의 국가신용도를 매기는 미국계 신용평가 회사들도 한몫 했음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국가 위험도가 높을수록 많은 이자를 지불해야 하기 때문이다. 남미의 대국 아르헨티나가 아프리카 대륙의 미개국보다 국가위험도가 몇배나 높은 것은 좋은 본보기일 것이다.

이와같은 미국의 견제로 한때 아르헨 국채는 미 월가에서 액면가 1백달러 짜리가 20~30달러로 거래되기도 했다.최근 아르헨정부가 원금의 75%를 탕감하자고 버티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아르헨티나가 가장 많은 외채를 기록했던 메넴정권 당시에는 민영화라는 허울을 내세워 모든 민간차관을 정부가 보증을 해주는 제도를 도입하기까지 했다. 이에 따라 부패한 지방관리들은 미국계 은행과 연계, 유령회사를 차려놓고 차관을 제공받아 부도를 내는 등 대다수의 외채는 정부가 알지도 못한 부채라고 할 수 있다.

미국과 아르헨티나의 뿌리깊은 반목은 이제 IMF가 이어받은 셈인데 국제통화기금이라는 게 민간 투기펀드 투자자들의 변호사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다.”

***‘아르헨 중산층의 대부 페론과 포퓰리즘’**

혹자는 ‘아르헨티노들이 페론이즘의 망령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한 아르헨티나의 장래는 없다’고 평가한다.그러나 라포포르트 박사는 아르헨 역사상 소득의 분배가 가장 잘 이루어지고 산업이 활발하게 움직였던 시기가 페론집권 시절이였다고 반박한다. 계속해서 그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결론부터 말하자면 페론집권 시기인 1949년에서 1976년까지 국민총생산은 127%의 성장을 기록했고 개인소득은 232%가 증가했다. 이런 수치의 발전은 아르헨 역사상 처음이었고 앞으로도 없을 것이다. 페론은 정권초기 시행착오를 겪기도 했으나 아르헨 역사상 가장 많은 산업투자를 단행했고 아르헨이 농업국가에서 공업화로 가는 데 이바지했다. 그리고 모든 기간산업을 국유화 시켰다.

이 과정에서 지방의 토호세력들과 해외 자본가들과의 마찰은 불가피했고 이런 불만세력들이 군부를 움직였던 것이다. 그러나 그 당시는 산업의 국유화가 세계적인 추세였다. 물론 제2차 세계대전이라는 명분도 있었지만. 76년 정권을 잡은 군부는 페론의 업적을 말살시켰으며 국민들을 세뇌시키는 작업을 단행했다.

따라서 페론의 업적이 아직까지 제대로 평가받지 못했던 것이다. 페론은 사회주의자나 공산주의자가 아닌 자본주의 사상을 지녔지만 소득의 재분배에 심혈을 기울여 소수에 몰린 부를 다수에 재분배하는 데 기여했다. 이 기간동안 아르헨 국민가운데 60%를 차지했던 극빈서민들이 전체 국가소득의 33%를 분배 받았다. 이 또한 아르헨 역사상 처음 있는 부의 재분배 현상이었다.

다시 말해서 그때까지 소작인들과 대지주로 구분되던 아르헨티나에 중산층이라는 개념이 생기기 시작했다. 페론은 몇몇 대지주들에 편중된 부를 서민들에게 분배, 60%에 가까운 중산층을 만들어 당시 세계에서 가장 두터운 중산층을 형성하는 데 절대적인 역할을 했다. 대중 인기에 영합하는 포퓰리즘의 시조로 페론을 꼽는데 나는 이에 동의할 수 없다. 페론은 대중을 이용해 자신의 집권 연장을 노리거나 선거에 이용하지 않았다. 지방 토호세력과 대지주들에 착취당하던 민중들이 페론을 통해 자신들의 권리를 찾았기 때문에 지금까지도 페론을 못 잊어 하는 것이다.

아르헨티나에 연금제도와 휴가, 상여금, 무료의료혜택 등 사회보장 제도가 생긴 것도 페론의 업적이었다. 그리고 페론은 여성들의 참정권을 이끌어내기도 했다. 그 전까지는 일반국민들은 대지주들이나 자본가들에게 노예와 별반 차이가 없이 착취를 당했다는 말이다. 이 과정을 통해 국민들은 아직까지 페론의 업적을 고맙게 여기는 것이다. 이것이 포퓰리즘이란 말인가.

군부는 페론의 이와같은 업적을 말살하고 그의 부인 에바를 내세워 페론을 무능하고 부패한 통치자로 만들었던 것이다. 페론의 업적이 언젠가는 제대로 평가를 받겠지만 한가지 기억해야 할 사실은 아르헨티나는 아직까지 정치 통제가 존재한다는 사실이다. 아르헨티나의 경쟁국이었던 미국이 빠른 기간안에 세계 최대의 경제 대국으로 성장할 수 있었던 것은 이민자 누구에게나 쉽게 시민권을 주어 참정권을 행사하게 하고 국가에 봉사할 기회를 주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르헨티나는 아무에게나 시민권을 주지 않았다. 이것은 정치통제를 위한 것이었으며 부정선거에 이용하고자 했던 것이다. 다시 말해서 지방토호세력과 연방 대부호들의 끼리끼리 문화가 성행, 새로운 이민자들이나 인재들이 정치에 참여하는 것을 막았다는 말이다.”

"아르헨티나는 1990년대초 자칭 페론주의자라고 부르짖는 카를로스 메넴이 집권을 했다. 그러나 메넴은 페론주의자가 아니며 좌도 우도 아닌 특색없는 정치가였다. 그는 집권기간동안 페론이즘을 적절히 활용했을 뿐이다. 그와 운명을 같이한 미 하버드대학 출신의 까발로 경제장관의 등장으로 아르헨 경제는 유럽에서 미국에의 종속으로 바뀌게 된다. 그 당시 아르헨티나는 모든 통화를 달러화시켜 완전히 미국에 종속되려고 하는 시도도 있었다.

친미파였던 그는 무분별한 투기펀드의 유입으로 경제 위기를 가속화 시켰으며 막대한 외채의 증가만을 남긴 채 냄비부대에 의해 쫓겨나는 신세로 전락했다. 까발로의 가장 큰 실책은 외자유치를 위해 모든 민간 차관을 정부가 보증해 주는 실속 없는 정책과 4백억 달러에 달하는 연금기금을 민영화한 데 있다고 할 것이다. 다시 말해서 정부는 상시 활용이 가능한 4백억 달러 정도의 예비비를 민간인들에게 이양하는 실수를 범한 것이다.

그로 인해 자금 고갈을 느낀 까발로는 일반예금을 동결하고 델라루아와 함께 몰락의 길을 걷게된 것이다. 그리고 대책없이 태환을 장기간 실시하고, 수입을 자유화 함으로써 국내산업이 경쟁력을 잃고 공업분야가 연쇄 도산하는 우를 범한 것이다. 또한 자금시장의 자유화로 많은 민간자본이 해외로 유출됐다. 메넴과 까발로 집권기간 동안 해외로 빠져나간 민간 자본은 1천억 달러가 넘는다.

마지막으로 나는 페론주의자가 아니다. 그러나 역사학자로서 나는 전 세계에 흩어진 아르헨티나의 역사적 자료와 각종 경제지표의 사료를 모으는 데 한 평생을 바쳤다. 따라서 오늘 이 세미나의 자료들은 내 개인적인 생각이 아닌 확실한 증거 자료들에 의한 것임을 밝힌다.”

***‘키르츠네르 대통령에 대한 평가’**

“지난해 중반 정권을 잡은 키르츠네르 정부는 지난 40년대 말 산업화를 주장했던 정치인들을 대거 기용, 국내시장의 활성화를 이룰 것이다.그리고 그 기초위에 해외시장 확대라는 목적을 달성할 것으로 보인다. 키르츠네르 정부가 미국주도의 ALCA나 IMF의 압력에 자신있게 대항하는 것은 메르코수르라는 인구 2억 이상의 시장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브라질이라는 거대한 시장이 아르헨으로서는 미국에 대항할 응원군이라 할 것이다.

지금까지 영국과 미국에 끌려다녔던 역대 통치자들과는 다르게 당당하게 미국에 맞서 외채협상을 벌이는 모습은 국민들에게 옛 페론의 향수를 불러 일으키고 있다. 그것이야말로 키르츠네르 대통령이 80%에 가까운 지지도를 유지하면서 페론 이후 가장 인기 있는 대통령이 된 비결이다.키르츠네르 정부는 페론이즘의 재건을 위해 노력할 것이다.”

***‘남미 대국 아르헨의 실체’**

한국의 언론들과 아르헨 전문가들이 주장하는 실패한 경제, 그리고 국민의 대다수가 헐벗고 굶주린다는 주장에 대해서도 현실과는 너무나도 차이가 있다. 물론 미국 주도의 언론플레이의 영향이겠지만 말이다. 정부가 디폴트를 선언하고 국가신용도가 몇천 %로 치솟아도 아르헨티나의 중산층은 별 영향을 받지 않는다. 그들은 평상시와 다름 없이 주말에는 각종 파티에서 포도주와 샴페인을 터트리며 축구와 예술을 논하면서 즐겁게 살아간다. 요즘 한국에서 유행하는 ‘웰빙’의 의미를 생활 속에서 가장 잘 누리고 사는 게 아르헨티노들이라면 틀림이 없을 것이라는 게 필자의 생각이다.

아르헨티노들은 매년 여름이면 우루과이나 브라질 휴양지의 개인 별장으로 느긋한 여름 휴가를 떠난다. 그 숫자가 극소수일 것이라는 생각은 잘못이다. 매년 12월부터 다음해 3월초까지 아르헨은 전국의 거리가 한산할 정도로 국민 대다수가 휴가를 떠난다.

아르헨티나 국민들이 한국에서 생각하는 것처럼 가난한 사람들일까. 단순하게 각종 실업자 수치와 극빈자 비율 등만을 본다면 아르헨티나는 가난한 나라처럼 보일 것이다. 그러나 한국의 언론이나 학자들이 잘못 평가하고 있는 한 가지 사실은 국경의 사방이 열려 있는 아르헨티나로 ‘아르헨 드림’을 찾아 오늘도 국경을 통과하는 주변국가 극빈자들의 수가 많게는 수천에서 수만에 이른다는 것이다.

따라서 아르헨티나에는 볼리비아, 페루, 브라질, 우루과이, 칠레에서 일자리를 찾아 몰려든 체류자 수가 1천만명을 육박한다. 지방의 상황도 거의가 비슷해서 농장에서 일하는 사람들 중에는 이들 불법, 혹은 정식으로 고용된 외국인 인부들이 대다수를 차지한다.

물론 외신들의 입장에서는 볼때 이들 주변국가 노동자들도 같은 언어와 문화를 가진 남미 사람들이라는 점에서 다같은 아르헨티노로 볼 수는 있다. 아르헨티나에 경제적인 파동이 일어날 때마다 떼를 지어 몰려드는 외국언론들, 특히 한국의 TV매체들은 이들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아 주변국가의 불법 체류자들의 생활이 아르헨티나 전체국민들의 모습인 양 방영을 한다.

이것은 마치 한국의 실상을 취재하기 위해 한국을 방문한 외신들이 한국에서 일하고 있는 동남아 근로자들의 생활상을 카메라에 담아 이것이 한국사람들의 생활 모습이라고 방영하는 것과 같은 것이다. 그리고는 정치가 부패하고 부정 부패가 어떻고 세계에서 가장 못사는 나라라는 독설을 퍼붓는다면 한국 언론들은 어떤 반응을 보일까.

한국의 언론 매체들이 한가지 기억해야 할 것은 아르헨티나에 대한 이런 악의적인 보도가 주한 아르헨 대사관 관계자들에게 알려지고 이들이 아르헨 현지 언론에 이런 사실을 귀띔해 준다면 결국에는 아르헨 현지에 살고 있는 한인동포들에게 그 불똥이 튄다는 사실이다.

실제로 몇년 전 한국의 한 유력 TV방송이 아르헨티나 특집을 방영한 후 그 내용이 아르헨티나 언론에 알려지고 난 후 아르헨티나 언론들은 재아 한인들이 불결하고 불친절하며 탈세의 주범들이고 불법고용을 일삼는다고 연일 대서특필한 사례도 있었다. 이를 현지 한인들은 4월사태라고 부른다.

이 때문에 상당수의 한인 동포가 이곳을 떠나는 잊지 못할 경험을 하기도 했다. 이는 순전히 한국언론과 아르헨을 잘 알지 못하는 엉터리 전문가들의 논평이 낳은 쓰라린 해프닝이다. 사회문제가 되고 있는 불법 체류자들에 대해 아르헨 정부는 한국과는 달리 관대하다. 이들이 각종 범죄 연루와 사회불안 요소가 되고 있는데도 말이다.최근 아르헨 입법부는 이들 불법 체류자들을 사면해서 정식으로 이곳에 정착하게 하자는 법안을 통과시켰다. 이들의 인권이나 개인 수익을 착취당하는 것을 막아주자는 조치인 것이다.

세계화를 외치는 한국도 이제는 아르헨티나에 대한 올바른 평가를 내릴 때가 아닌가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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