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나라당은 26일 상임운영위원회 회의와 운영위원회 회의를 잇달아 열어 후보자 자격 규정과 선거인단 구성 등을 골자로 하는 2004년 총선 공천규정 개정안을 발표했다. 최병렬 대표는 이날 “국민들도 당의 여망도 물갈이 혁명을 요구하고 있어 선택을 달리 할 수 없는 엄중한 시대 상황”이라며 “최대한 계량화해서 후보를 찾아내야 한다”고 ‘공천 물갈이’ 의지를 거듭 확인했다.
그러나 이날 발표된 한나라당 공천 프로그램이 최 대표의 ‘혁명적 물갈이’ 의지를 의심케 하는 대목이 곳곳에서 지적되고 있다.
***공천 부적격자 기준 모호**
우선 한나라당은 공직후보자로 추천될 수 없는 기준으로 ▲피선거권이 없는 자 ▲2개 이상 선거구에 중복신청한 자 ▲후보신청자가 당적을 이탈 변경한 경우 ▲2곳 이상의 당적을 보유한 자 ▲금고 이상의 형을 선고받고 재판 계속 중에 있는 자 ▲후보등록 서류에 허위사실을 기재한 자 등으로 명시했다. 여기까지는 국회의원 후보 추천 부적격기준을 그대로 적용한 것이다.
따라서 한나라당이 자체적으로 제정한 ▲파렴치한 범죄 전력자 ▲부정, 비리 등에 관련된 자 ▲탈당, 경선불복 등 해당행위자 ▲여론조사 결과 등 유권자의 신망이 현저히 부족한 자 등의 부적격 기준이 한나라당의 공천개혁 의지와 관련된 대목이다.
하지만 ‘파렴치한 범죄’나 '부정비리에 관련된 자’라는 기준의 구체적인 가이드라인이 모호해, 적용 대상과 관련한 논란의 소지가 크다. 예컨대 불법대선자금 수수 혐의가 드러난 김영일 의원이나 최돈웅 의원의 경우 이 기준에 해당되는지 확실치 않다.
김문수 위원장은 이날 김영일 의원의 해당 여부와 관련, “그에 대한 판단은 전적으로 공천심사위원회가 맡게 될 것”이라고 즉답을 피했다. 그는 “공천심사기준은 별도로 제정하여 추후에 의결할 것”이라며 “우리 자체의 지지도 조사나 인지도 대비 지지도, 현역에 대한 교체 희망 지수, 당내 ARS, 당외 공정한 기구 여론 조사 의뢰하는 경우 등 여러 가지 기준을 도표화해서 적용할 계획”이라고 덧붙였다.
김 위원장은 여러 조사 가운데 “국민의 눈과 판단인 여론조사를 가장 중요시할 것”이라며 “상습낙선자의 경우는 이번에 반드시 정리할 계획”이라고 말해, 당선가능성이 높을 경우 ‘부적격자’도 공천될 수 있는 길을 터 놓기도 했다.
***“외부인사에게 자리드릴 것”**
한나라당은 한편 선거구별로 단수후보자 또는 3인 이내 경선후보군을 선정하도록 했다. 정치신인과 여성 후보자 공천에 대해서는 ‘특별배려 심사’를 하겠다고 규정했다.
그럼에도 외부영입 인사에 대한 배려는 각별하다. 김 위원장은 “우리가 영입이라고 할 때는 정말 ‘자리’를 드리고, 적어도 총선 출마까지는 가능하게 해드리도록 하려고 한다”며 “경선 없이 단수 추천하거나, 상당한 승산이 있는 곳에 경선을 붙이게 될 것”이라고 ‘낙하산 공천’을 예고했다.
이에 따라 외부인사가 영입된 지역구는 사실상 경선이 없거나 있더라도 형식적 경선이 될 소지가 커, 정치신인의 기회를 박탈하고, 외부 인사에 대한 기득권을 유지시킬 소지가 크다.
***“비례대표는 ‘원칙적으로’(?) 신인”**
한나라당은 비례대표 후보에 대해 '전원 신인'을 원칙으로 내부 추천과 일반 공모를 통해 선발키로 하고 여성에게 홀수 번호로 절반을 배정키로 했다. 이에 따라 비례대표 국회의원은 ‘국회의원 유경력자를 원칙적으로 배제’한다고 밝혔다. 그러나 ‘원칙적으로’라는 표현이 삽입된 배경이 논란이 되고 있다.
박진 대변인은 “원안에선 ‘원칙적으로’라는 표현이 없었으나 상임위와 운영위 논의를 거치면서 이 표현이 들어갔다”며 비례대표 공천 규정에 대한 반발이 컸음을 시사했다.
비례대표 선출 규정에 반발한 의원은 최병렬 대표와 같은 지역구인 강남갑구 출마를 준비 중인 김영선 의원이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김 의원은 “비례대표 의원에 국회의원 유경력자를 1백% 배제하면 문제가 있지 않느냐”며 반발한 것으로 전해졌다. 은연중 최병렬 대표가 전국구로 옮겨가기를 희망한 반발로 해석된다.
한나라당 공천심사위원회는 29일 결정될 예정이다. 후보자 공천에 전권을 행사하게 될 공심위가 논란의 여지가 있는 개정안의 여러 규정에 대해 어떤 판단을 내릴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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