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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공 危機一髮 - 007 아닌 술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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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공 危機一髮 - 007 아닌 술 때문에

남재희 회고 文酒 40年-그래도 잘 마셨다 <40>

<남재희 회고 文酒 40年>의 제 5부 <그래도 잘 마셨다> 연재를 재개한다. 이 글은 필자가 서울강서문인협회가 매년 발행하는 <강서문학>에 기고한 것으로 필자와 강서문인협회측의 양해를 얻어 게재한다. 필자와 협회측에 감사드린다. 편집자

“술이란 항상 그 유혹에서 빠져나오기 힘든 승화의 대상이다. 모호한 어법은 이상과 현실을 다정하게 만들어 준다.”

-프랑스 작가 철학자 쟝 그르니에 <술>에서

***사이공 危機一髮 - 007 아닌 술 때문에**

2002년 여름에 단체로 캄보디아의 앙코르와트에 가는 길에 사이공에 들렸다. 1970년 월남전이 한창일 때 방문하고 30여년만, 감회가 새롭다는 말 그대로다. 특히 전쟁증적(証跡) 박물관 관람과 쿠치 터널(古芝地道라 한다) 방문은 숙연해지게 했다. 쿠치 터널은 사이공 서북방 쿠치 지역에 거미줄처럼 광범하게 두더지 굴을 판 것인데 그 안에 병원, 무기수리공장 등 베트콩의 간이시설이 있었다. 총 연장 250km. 이 지방의 토질은 특이하여 일단 마르면 딱딱해져 터널이 견고해진다. 앙코르와트에서도 그곳의 진흙은 벽돌로 만들어 말리면 굽지 않아도 견고해진다는 설명이었다.

30여년간 초보적인 무기를 갖고 현대적 첨단무기로 무장한 강대국들과 맞선 월남인들의 의지력에 감탄하며 존경한다. 기념으로 다른 것은 안 사고 최근에 나온 호지명(胡志明) 추모책자를 꼭 읽겠다고 사왔다.

그런 엄숙한 사이공인데, 이 무슨 타락한 꼬락서니인가, 나의 술 마신 이야기를 하게 되다니. 우리 군의 월남 파병도 실리차원이 아닌 도덕적으로는 잘못이지만 그곳서 그때 유흥가에 가서 술이나 마신 것도 도덕적으로 가책 받을 일이다. 그 당시 나는 <청맥(靑脈)>이라는 잡지에 파병반대론을 기명으로 쓴 일이 있다.

서울뿐만 아니라 지방을 포함하는 신문사의 정치담당 논설위원 동아일보의 송건호(宋建鎬), 중앙일보의 양흥모(梁興模), 한국일보의 임방현(林芳鉉), 경향신문의 이명영(李命英) 씨 등등 15명쯤이 동남아를 일주하는 길에 사이공에 들려 낮에는 주월사의 전제현(全濟鉉) 정보참모(그 후로도 친하게 지냈는데 사단장을 거쳐 오산고교 교장이 됨)의 안내로 전선을 시찰하고, 밤 구경을 나섰다. 큰 회사는 특파원을 두고 있었기에 그들이 안내하였으나 작은 회사, 특히 지방사 사람들의 많이는 안내할 사람이 없어 당혹스러웠다. 나는 조선일보 소속이라 특파원에 부탁하여 그들 모두인 5~6명을 데리고 술 마시러 나섰다.

주월사령부(당시 李世鎬사령관)도 있고 대기업도 많이 진출하고 하여 한국인들이 경영하는 술집도 줄지어 있었다. <마린>이란 술집으로 기억한다. 많이 팔아 주었다. 특파원인 정원열(鄭元迾) 형이 특별히 교섭하여 호텔서 2차를 마시기로 하고 여급을 데리고 나올 수 있었다. 프랑스 혼혈여성, 월남여성, 화교여성 등 다양하다. 숙소는 엠버시 호텔, 말하자면 내가 인솔자격이라 10여명을 택시에 분승시켜 호텔로 떠나게 하였다. 그러다 보니 어쩌다 타지 못하고 뒤처진 게 나 한사람. 여간해 택시가 오지를 않는다.

그때 오토바이를 탄 월남청년이 다가오더니 자기가 호텔까지 태워다 준다기에 뒤에 올라탔다. 그리고 기세좋게 달렸다. 그런데 어럽쇼, 점점 번화가를 벗어나는 게 아닌가. 저녁나절이지만 어둡지는 않았다. 겁이 덜컹 났다. 아차, 베트콩에 납치되는구나, 내가 너무 방심했지, 전쟁이 치열한, 전선과 후방이 구별 안되는 월남에 와서 이 무슨 낭패냐, 죽을 수도 있겠구나!

월남청년이 더듬더듬 영어로 실은 엠버시 호텔이 어디인지 모른다고 했다. 나는 무술을 배우지 않았지만 어떻게 하겠는가, 뒤에 탔으니 그 청년 목에 팔을 감았다. 그리고 그보다는 유창한 영어로 협박 조로 이야기했다. 만약에 이상한 반응을 보이면 죽기 살기로 목을 조이고 한탕 싸워볼 계획이었다. 허사라도 말이다. 월남사람들은 무더위 때문에 유전자가 적응했는지 거의 모두 체구가 작다. 거기에 비하면 나는 체격이 큰 편이다. 그 체격과 쏟아져 나오는 험한 영어 때문인지 아니면 다행이 베트콩이 아니어서인지, 그는 고분고분했다.

공포에 질린 나는 계속 경계를 늦추지 않으며 출발했던 곳으로 다시 가라고 명령했다. 적지에서 무슨 명령이라고 할 수 있겠는가만 말이다. 정말 다행하게 그는 술집동네로 오토바이를 몰았다. 007 위기일발과 같은 과장된 표현도 가능하겠다.

출발점에 돌아가니 호텔에 갔던 친구들이 걱정이 되어서 전원 되돌아와 기다리고 있었다. 모두 안도의 빛이고 다행이라는 인사 말이다.

월남 민족은 치열하게 독립전쟁을 하는데, 6.25의 참화를 겪은 비슷한 처지였던 한국사람이 사이공에서 술과 여자이니 벌을 받아 마땅하다.

그 때도 골똘하게 반성했다. 그리고 2차 방문에서도 가슴에 와 닫는 절실한 느낌을 받고 많은 생각을 하였다. 사이공에서는 로버트 맥나마라 당시 미 국방장관의 <회상-베트남의 비극과 교훈>이란 책을 행상들이 전쟁증적 박물관 부근에서 외국 관람객들에게 팔고 있었다. 월남 개입을 후회하고 반성하는 내용이기 때문이다.

그 유명한 인류문화유산 앙코르 와트가 장렬한 현대역사의 현장 사이공에서 빛을 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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