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은 팔레스타인 출신의 세계적인 영문학자 에드워드 사이드 교수(미 콜럼비아대)의 중동평화협상에 대한 분석이다. 사이드 교수는 부시 행정부가 내놓은 이른바 '로드맵'이 테러 종식 등 팔레스타인측의 책임과 희생만을 요구하고 있다는 점에서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간의 평화를 이루기는커녕 팔레스타인인들간의 내전을 유발할 가능성이 크다고 경고하고 있다.
그는 또 아라파트가 이끄는 팔레스타인자치정부는 무능과 부패 때문에 팔레스타인 대중의 지지를 받지 못하고 있다면서 진정한 풀뿌리 민주주의를 지향하는 <국민정치이니셔티브(NPI)>에 주목하라고 말하고 있다. 'Archaeology of the roadmap'이라는 제목의 이 글의 원문은 이집트의 영자 주간지 알-아흐람 위클리(6월 12-18일자)에 실려 있다. 편집자
***막다른 골목으로 향하는 로드맵(Archaeology of the roadmap)**
지난 5월말 아랍언론과의 일련의 인터뷰에서 부시는 똑같은 요점을 반복했다. 평소와 마찬가지로 특수성보다는 보편성을 강조했다. 그는 요르단에서 팔레스타인 및 이스라엘 지도자와 만났고, 그 전에는 주요 아랍국의 지도자들을 만났다. 물론 시리아의 바샤르 알 아사드는 제외됐다. 이 모든 것들은 미국의 중동평화구상의 일환이다. 아리엘 샤론이 로드맵을 받아들임으로써(그가 내세운 14개의 유보조항 때문에 진실성이 약간 의심되기는 하지만) 팔레스타인 국가 창설이 다가온 것처럼 보이게 한다.
부시의 비전에 따르면 팔레스타인측은 자치정부(PA)를 재구성하고, 이스라엘에 대한 모든 폭력과 도발을 중지하며, 이스라엘 및 로드맵을 작성한 이른바 쿼르텟(미국, 유엔, 유럽연합, 러시아)의 요구에 걸맞는 팔레스타인 정부를 수립한다는 것이다. 한편 이스라엘측은 인도주의적 상황을 개선하고, 통행제한 완화 및 통행금지 조치를 철폐하도록 돼 있다. 그러나 언제, 어느 곳에서 그러한 조치를 시행해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구체적으로 규정돼 있지 않다.
로드맵의 1단계는 2003년 6월 완료된다. 최근에 건설된 60개의 유태인 정착촌을(2001년 3월 이후 건설된 이른바 '불법적 전진 정착촌들') 철거하도록 돼 있다. 그러나 로드맵에는 다른 유태인 정착촌의 철거에 대해서는 아무런 언급이 없다. 이스라엘에 불법점령된 동예루살렘의 20만 유태인 정착민은 말할 것도 없고 서안지구와 가자지구의 20만 유태인에 대해서도 아무 언급이 없다. 2003년 6월부터 12월까지의 과도기, 즉 2단계에서는 "잠정적 국경과 주권국가의 속성을 갖는 팔레스타인 독립국가의 창설 방안의 모색"에 집중된다. 어떤 사항도 구체적으로 명시돼 있지 않다. 특히 "잠정적 국경"을 갖는 팔레스타인 국가 계획을 승인하고 "창설"하기 위한 국제회의를 연다는 것도 희한한 일이다. 3단계에서는 갈등이 완전히 종식된다. 이 단계에서도 역시 국제회의를 통해 난민 귀환, 유태인 정착촌, 예루살렘 귀속, 국경 확정 등 팔레스타인-이스라엘 갈등의 가장 골치 아픈 문제들의 해결에 나선다. 이 모든 과정에서 이스라엘이 해야 할 일은 그저 협력하는 것뿐이다. 모든 책임은 팔레스타인측에 지워져 있다. 팔레스타인측은 모든 부문에서 신속하게 해결책을 마련해야 하는 반면 이스라엘의 군사점령은, 2002년 봄 이후 침공한 일부 지역에서의 완화를 제외하고는, 거의 변화가 없다. 로드맵 이행의 감시를 위한 체제도 마련돼 있지 않다. 팔레스타인인들의 인권 상황 개선을 위한 아무런 구체적 조치도 로드맵에는 명시돼 있지 않다.
모든 평론가들은 부시가 중동평화 정착을 위한 진정한 희망을 제시했다고 말하고 있다. 백악관은 의도적인 정보유출을 통해 샤론이 지나치게 고집을 부릴 경우 이스라엘에 대해 이러저러한 제재조치를 내릴 것 같은 인상을 풍겼으나, 이는 곧 부인되었고 없었던 일이 돼버렸다. 언론들은 한결같이 이번 로드맵의 내용들은-대부분은 이전 평화계획에서 따온 것들이다-이라크전쟁 승리 후 부시의 새로운 자신감에서 나온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팔레스타인-이스라엘 갈등에 관한 대부분의 논의가 그렇듯이 힘의 현실과 실제의 역사보다는 조작된 상투적 수사와 근거 없는 가정들이 담론의 흐름을 형성하고 있다. 유태인 지도부의 상당 부분은 로드맵이 이스라엘에게 지나친 양보를 강요하고 있다고 비난하고 있는 가운데 회의적이거나 비판적인 의견을 표명하는 사람들은 반미주의자로 치부되고 있다.
그러나, 제도권 언론들은 샤론이 "점령"이라는 단어를 처음으로 사용했다는 점을 끊임없이 상기시키고 있다. 물론 샤론은 지금까지 "점령"이라는 현실을 단 한번도 인정하지 않았다. 최근 발언에서 3백50만 팔레스타인인들에 대한 이스라엘의 통치를 종식하겠다고 말한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과연 그는 자신이 종식시키겠다는 것이 무엇인지 알고 있기나 한 것일까? 하레츠(이스라엘의 자유주의적 신문: 역주)의 칼럼니스트 기디온 레비는 6월 1일자 칼럼에서 샤론은 다른 대부분의 이스라엘인들과 마찬가지로 "수년째 포위상태와 통행금지 하에 사는 (팔레스타인들의) 삶에 대해서" 전혀 모른다고 지적하면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이스라엘군의 검문 초소에서 당하는 수모에 대해, 또는 이제 막 아기를 낳으려는 부인을 병원으로 데려가기 위해, 생명의 위험을 무릅쓰고, 자갈길과 진흙탕길을 가야만 하는 고통에 대해 그가 무엇을 아는가? 기아선상에서 허덕이는 삶에 대해 무엇을 아는가? 이스라엘군에 의해 파괴된 집을 쳐다보는 쓰라림을 아는가? 또는 한밤중에 두들겨맞고 수모를 당하는 부모들을 바라보는 어린이들의 고통을 아는가?"
***높이 7.5m, 폭 3m, 길이 3백47km의 거대한 분리 장벽**
현재 이스라엘에 의해 서안지구에 세워지고 있는 거대한 '분리 장벽'에 대해 로드맵은 일체의 언급이 없다. 소름끼치는 일이다. 북에서 남으로 3백47km가 건설될 예정인 이 분리 장벽 중 1백20km는 이미 세워졌다. 높이 7.5m에 폭 3m인 이 분리 장벽의 건설비는 1km당 1백60만 달러나 된다. 이 장벽은 단순히 이스라엘과 1967년의 국경선에 의거한 상상 속의 팔레스타인 국가를 분리하는 것만이 아니다. 실제로는 팔레스타인 땅을, 곳에 따라서는 5-6km까지 침범해 들어오고 있다. 게다가 참호와 전선과 해자 등으로 둘러싸여 있다. 또 일정한 간격으로 감시탑이 세워져 있다. 남아공의 아파르트헤이트(인종차별정책)가 종식된 지 10년이 다 되가는 지금, 이 소름끼치는 인종주의의 장벽은 이스라엘인 대부분은 물론 공사비의 대부분을 대줄 미국인들의 눈에도 띄지 않은 채 차츰차츰 그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4만명의 팔레스타인인이 살고 있는 칼킬랴(Qalqilya)의 경우 이들의 집은 분리 장벽 한 편에, 그들의 생계를 유지할 경작지는 그 반대편에 있다. 이 장벽이 완공된다면 약 30만명의 팔레스타인인이 칼킬랴 마을 주민처럼 집과 경작지가 장벽에 의해 분리되는 사태를 맞게 될 것으로 보인다. 로드맵은 이 모든 것에 대해 침묵하고 있다. 샤론이 최근 승인한 서안지구 동부지역의 분리 장벽이 완공될 경우 부시가 약속한 꿈의 팔레스타인 국가는 그 영토의 40%를 잃게 된다. 이것이 바로 샤론이 노리고 있는 것이다.
이스라엘이 로드맵을 받아들이고 미국이 이를 추진하게 된 데에는 공개되지 않은, 나름대로의 이유가 있다. 팔레스타인인들의 저항이 그런 대로 성공을 거두었다는 점이다. 저항의 방법, 그에 따르는 엄청난 희생에 대해 동의하든, 하지 않든 이는 엄연한 사실이다. 팔레스타인의 젊은 세대들은 아직도 저 막강한 이스라엘-미국에 맞서 싸우겠다는 의지를 포기하지 않고 있다.
***팔레스타인에게만 포기와 희생을 강요하는 로드맵**
로드맵이 태동된 배경에 대해서는 온갖 해석들이 제기되고 있다. 이스라엘인의 56%가 지지하고 있다, 마침내 샤론이 국제정세의 현실에 굴복했다, 부시가 다른 지역에서 군사적 모험을 계속하기 위해서는 아랍과 이스라엘간의 화해가 필요하다, 팔레스트인인들이 마침내 정신을 차려 아부 마젠(아바스 총리)을 내세웠다, 등등. 이들 중 일부는 맞는 말일 수도 있다. 그러나 팔레스타인인들의 완강한 저항이 없었다면 어떠한 평화계획도 탄생할 수 없었다고 나는 감히 주장한다. 팔레스타인인은 "패배한 민족'이라는 최근 이스라엘 참모총장의 주장을 팔레스타인인은 결단코 인정하지 않았으며 앞으로도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이번 로드맵이 실제로 해결 비슷한 것을 제시할 것이라든가 근본적 문제들에 대처할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면 이는 잘못된 것이다. 로드맵은 자제와 포기와 희생의 책임을 거의 전적으로 팔레스타인인들에게만 요구하고 있다. 현재의 평화담론도 압도적으로 이러한 경향을 보이고 있다. 이는 한마디로 팔레스타인 역사의 밀도와 무게를 부정하는 것이다. 로드맵을 읽어나가노라면 시간과 공간을 초월한 추상적 문서를 대하는 느낌을 갖게 된다.
다시 말해 로드맵은 평화(peace)를 위한 계획이라기보다는 문제를 잠재우기(pacification) 위한 계획이다. 팔레스타인이라는 문제는 제거하기 위한 것이다. 따라서 로드맵의 무미건조한 문장 속에 무수히 반복되고 있는 '이행(performance)'이라는 낱말은 팔레스타인 측에 대해 이러저러한 행동을 취하라고 요구하고 있는 것이나 다름없다. 폭력도 안 되고 항의도 안 된다, 민주주의를 증진하고 더 나은 지도자와 더 나은 제도를 채택하라 등등의 요구는 팔레스타인인들의 과격한 저항이 문제의 근원이라는 인식에 기초한 것이다. 그 저항을 가져온 근본원인인 이스라엘의 점령에 대해서는 일체의 관심도 기울이지 않은 채... 이를 가장 잘 보여주는 사례가 바로 유태인 정착촌에 관한 사항이다. 로드맵은 2002년 3월 이후에 건설된 이른바 '불법적 전진 정착촌들(illegal outposts)'(이 용어는 팔레스타인 땅 안에 있는 다른 유태인 정착촌들은 합법이라는 뉘앙스를 풍기고 있다)의 철거를 이스라엘 측에 요구하고 있다. 그러나 대부분의 정착촌들은 '동결'하라고 돼 있다. 다시 말해 팔레스타인 땅 안에 있는 유태인 정착촌의 거의 대부분은 철거하거나 이스라엘 영토로 옮겨가지 않아도 된다는 뜻이다. 1948년 이후, 그리고 1967년 이후 고향땅에서 쫓겨나 이스라엘과 미국의 핍박을 받고 있는 팔레스타인 난민에 대해서는 일언반구도 없다. 팔레스타인 경제의 재건에 대해서도 아무 언급이 없다. 이스라엘 군에 의해 파괴되고 뿌리 뽑혀진 주택과 나무들, 5천명 이상의 팔레스타인 정치범, 팔레스타인 요인 암살, 1993년 이후의 팔레스타인 마을 포위 및 통행제한, 사회간접자본의 철저한 파괴, 믿을 수 없을 만큼 많은 사망자와 부상자, 이런 것들에 대해서는 아무런 말도 없다.
미국 및 이스라엘 협상팀의 잔인한 호전성과 경직된 일방주의는 이미 널리 알려져 있다. 하지만 늙고 식상한, 아라파트의 충복들로 이루어진 팔레스타인 협상팀도 거의 신뢰감을 주지 못한다. 사실 이번 로드맵은, 파월 등이 아라파트와의 대면을 극력 피했음에도 불구하고, 아라파트에게 새로운 생명줄을 던져준 것이나 다름없다. 그를 라말라의 팔레스타인자치정부 청사에 가두어 놓음으로써 욕보이려 했던 이스라엘의 어리석은 정책에도 불구하고 아라파트는 여전히 사태를 장악하고 있다. 그는 여전히 팔레스타인의 민선 대통령이며, 팔레스타인의 돈줄을 쥐고 있고, 현재의 이른바 '개혁'팀(2,3명의 주요 인물이 새로 추가됐을 뿐인)에서도 그의 카리스마와 권력에 견줄 만한 사람은 없다.
***오슬로협상의 실상**
우선 아부 마젠의 예를 들어보자. 나는 그를 1977년 3월 카이로에서 열린 팔레스타인 민족평의회에서 처음 만났다. 당시 그는 가장 긴 연설을 했는데, 카타르에서의 중학교 교사 생활에서 익힌 것이 분명한 강의조의 연설을 통해 그 자리에 모인 팔레스타인 대의원들에게 시오니즘과 시오니즘 반대파 사이의 차이에 대해 설명했다. 그것은 대단히 중요한 연설이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대부분의 팔레스타인들은 이스라엘에는 아랍과는 불구대천의 원수인 근본주의적 시오니스트 외에 다양한 종류의 평화운동가와 활동가들이 있다는 사실을 거의 모르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제 와서 생각해 보면 아부 마젠의 연설은 팔레스타인해방기구(PLO)의 이스라엘인과의 대화 운동이 시작되는 계기였다. 양자는 주로 유럽에서 비밀리에 만나 평화에 관해 대화를 나눴으며, 이는 각각의 사회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쳐 오슬로협정의 지지기반을 형성하는 데 기여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부 마젠의 이 연설 및 뒤이은 이스라엘인들과의 대화는 아라파트의 승인이 있었기에 가능했다는 점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또한 팔레스타인측 대화참가자들은 팔레스타인 정치의 핵심(즉 Fatah)에서 나온 반면 이스라엘측 참가자들은 작고, 주변적이며, 국내에서 비난을 받는 평화지지자들이었다. 물론 그 악조건 속에서 대화에 나섰다는 바로 그 점 때문에 이들의 용기는 평가받을 만하다. PLO가 레바논 베이루트에 쫓겨가 있었던 1971년부터 1982년까지 아부 마젠은 당초 시리아 다마스쿠스에 있다가 곧 튀니스에 망명 중인 아라파트에 합류해 약 10년간을 같이 지냈다. 그 기간동안 나는 그를 몇 차례 만났는데 그의 잘 정돈된 사무실, 조용하고 관료적인 매너, 이스라엘과의 평화구축을 위한 유용한 장으로서의 유럽과 미국에 대한 그의 관심 등에 깊은 인상을 받았다. 1991년의 마드리드 협상 후 그는 유럽에 있는 PLO 소속원 및 독립적 지식인들을 한데 모았다고 전해진다. 1992-93년의 오슬로 비밀협상에 앞서 수도, 난민, 인구, 국경 등에 관한 자료와 협상전략을 마련하기 위한 팀을 꾸린 것이다. 그러나 내가 알고 있는 한 이들이 작성한 자료는 협상에 활용되지 않았고, 팔레스타인측 전문가들도 협상에 직접 참가하지 못했다. 이들의 연구 결과 중 어느 하나도 협상의 최종 문서에는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못한 것이다.
오슬로협상에서 이스라엘은 지도, 문서, 각종 통계자료와 함께 일단의 전문가들을 동원했고 팔레스타인측은 이렇게 마련된 최소한 17개 이상의 예비문서에 서명했다. 반면 팔레스타인측 협상팀은 불행하게도 서로 전혀 다른 3명의 PLO 인사들로 한정됐다. 이들 중 어느 누구도 영어를 할 줄 몰랐을 뿐만 아니라 국제협상, 아니 어떤 종류의 협상에도 경험이 없었다.
아라파트가 협상팀을 이끈 주된 이유는 자신이 협상 과정에서 소외되는 것을 막기 위해서였던 것 같다. 설사 그가 다른 목표를 갖고 있었다 하더라도 아라파트는 평소 그의 스타일대로 협상에 대비한 준비를 거의 하지 않았다. 오슬로협상에 관한 아부 마젠의 회고나 기타 일화 등에 따르면 아라파트의 심복이 오슬로협정의 팔레스타인측 '설계사'였다고 하는데 이 인물은 튀니스를 떠난 적이 단 한번도 없다. 심지어 아부 마젠은 워싱턴에서의 오슬로협정 선언 이후 1년이 지나도록 아라파트는 이 협정으로 (자치정부가 아닌) 독립국가를 갖게 될 것으로 착각하고 있었다고 말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슬로협상에 관한 대부분의 기록들은 아라파트가 모든 중요한 결정을 내렸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오슬로협상이 팔레스타인의 전반적 상황을 훨씬 악화시킨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이스라엘의 로비스트로 활약했던 데니스 로스가 이끄는 미국측 협상팀은 언제나 이스라엘측 입장을 두둔했다. 꼬박 10년이 걸린 협상의 결과는 치안유지, 국경 및 수도관리 책임을 이스라엘 군이 맡는 등 팔레스타인에게 극히 불리한 조건으로, 이스라엘 점령 영토의 18%만을 돌려받는다는 것이었다. 유태인 정착촌의 숫자로 2배로 늘어난 것은 당연한 결과였다.
***아라파트와 PLO는 팔레스타인의 희망이 아니다**
PLO가 피점령영토로 돌아온 1994년 이후에도 아부 마젠은 여전히 2류 인사로 남아 있었다. 비록 파타(Fatah)의 창립멤버였고 중앙위원회 사무총장이기는 했지만, 아부 마젠은 이스라엘에 대해 '융통성'이 있고, 아라파트에게 고분고분하며, 그 자신만의 조직적 정치기반은 전혀 없는 인물로 알려져 있다. 내가 알고 있는 한 그는 팔레스타인입법평의회는 물론 어떤 선출직 공직에도 당선된 적이 없다. 아라파트가 이끄는 PLO나 팔레스타인자치정부(PA)는 결코 투명하지 않다. 정책결정이 어떻게 이루어지는지, 돈이 어떻게 쓰여지는지, 어디에 있는지, 아라파트 이외에 누가 발언권이 있는지 등에 대해 알려진 바가 거의 없다. 그러나 모든 중요한 결정에서 여전히 아라파트가 중심적 인물이라는 점에는 모두가 동의하고 있다. 미국과 이스라엘을 그토록 즐겁게 해준 아부 마젠의 개혁총리 기용이 대부분의 팔레스타인인들에게는 일종의 만담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뭔가 변화가 있는 것 같은 인상을 주면서 권력을 계속 유지하려는 아라파트의 속임수일 뿐이라는 것이다. 대체로 아부 마젠은 무색무취에, 적당히 부패한, 그리고 백인들의 비위를 맞추겠다는 것 외에는 그 자신만의 명료한 사상이 없는 인물로 평가되고 있다.
아라파트와 마찬가지로 아부 마젠은 걸프지역과 시리아, 레바논, 튀니지, 그리고 현재 팔레스타인의 피점령영토 외에서는 살아본 적이 없다. 외국어는 전혀 모르며, 대단한 연설가도 유능한 지도자도 아니다. 반면 가자지구의 새 보안책임자인 모하메드 달란(Mohamed Dahl an)은-이스라엘과 미국이 커다란 희망을 품고 열심히 선전하고 있는 또 다른 인물-보다 젊고 똑똑하며 상당히 대담하다. 아라파트의 14-15개의 치안조직 중 하나를 이끌어 왔던 지난 8년동안 가자지구는 달라니스탄(Dahlanistan)으로 알려졌다. 그는 지난 해 사임했으나 유럽 및 미국, 이스라엘에 의해 '통합보안책임자'로 다시 기용됐다. 그 역시 언제나 아라파트의 사람임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이제 그는 하마스와 이슬람 지하드 분쇄에 나설 것이다. 테러 종식이라는 이스라엘의 집요한 요구의 배후에는 팔레스타인 내전과 같은 상황이 벌어질지도 모른다는 기대가 깔려 있다.
어찌 됐건 내가 보기에 다음 하나는 분명하다. 아부 마젠이 아무리 열심히, 아무리 융통성 있게 로드맵을 '이행'한다 해도 그는 다음 3가지 요인에 의해 제약받을 것이라는 점이다. 그중 하나는 물론 아라파트 자신이다. 그는 여전히 파타를(이론상으로는 아부 마젠의 권력기반이기도 한) 장악하고 있다. 또 다른 하나는 샤론(언제나 미국의 후원을 받고 있는)이다. 5월 27일자 하레츠에 보도된 14개의 '언급'(로드맵에 대한 14가지 유보사항)을 통해 샤론은 이스라엘측의 융통성이라고 해석될 여지가 어떤 것에 대해 양보할 여지가 거의 없음을 시사했다. 세 번째는 부시와 그 일당들이다. 전후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를 다루는 그들의 솜씨로 보아 부시 일당은 국가건설(nation-building)에 반드시 필요한 능력도 배짱도 없는 것이 분명하다. 벌써부터 부시의 주요 지지기반인 남부의 보수 기독교세력은 미국정부의 이스라엘에 대한 압력에 대해 요란스럽게 항의하고 있다. 또 벌써부터 막강한 유태인 로비세력은, 그 유순한 부속물이자 이스라엘에 의해 점령된 미 의회와 함께, 이스라엘에 대해 조금치의 강압도 행사해서는 안 된다고 으름장을 놓고 있다. 로드맵 첫 단계의 막바지에 접어든 지금, 그러한 압력행사가 필수적인데도 말이다.
***희망은 다른 곳에: NPI**
팔레스타인의 전망이 지금 당장은 어둡다 하더라도 장기적으로는 결코 그렇지 않다고 말한다면 돈키호테처럼 비칠지 모르겠다. 그러나 나는 앞에서 말한 팔레스타인인들의 완강함(stubbornness)을 다시 한번 강조하고 싶다. 팔레스타인 사회는 여러 면에서 유린당하고 황폐해졌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 짙어가는 어둠 속에 자신의 영혼을 내던질 수 있는 힘을 갖고 있다는 사실을 말이다. 아랍의 어떤 사회도 팔레스타인만큼 활력에 넘치며 건강한 무질서를 갖고 있지 못하다. 팔레스타인 사회만큼 시민적, 사회적 이니셔티브로 가득 넘치며 활력있는 제도(믿을 수 없을 만큼 활력을 보이고 있는 음악학교 등을 비롯하여)들을 갖고 있는 사회도 없다. 비록 그들 대부분은 조직되지 못했고 상당수는 망명과 나라 없음의 비참한 삶을 살고 있지만 팔레스타인인들은 자신들의 집단적 운명에 관한 문제들에 정력적으로 대처하고 있으며, 내가 알고 있는 팔레스타인인 모두는 자신들의 대의를 이룩하기 위해 어떤 형태로든 노력하고 있다. 이들의 에너지 중 극히 일부만이 팔레스타인자치정부로 향하고 있다. 자치정부는 이상할 정도로 팔레스타인인의 공통운명으로부터 주변부에 밀려나 있다. 최근 여론조사에 따르면 팔레스타인 유권자의 45%만이 파타와 하마스를 지지하고 있으며 나머지 55%는 이와는 전혀 다른, 훨씬 더 희망적으로 보이는 정치적 구성체 주위를 맴돌고 있다.
이들 단체 중에서도 특히 인상적인 조직이 하나 있다. 나 자신이 이 단체 소속원이기도 한데 이 단체는 세속적 정치를 펼치는 종교정당이나 아라파트의 파타가 제공하는 전통적 민족주의를 모두 벗어나 진정한 풀뿌리민주주의를 실천하는 유일한 단체라는 점에서 매우 중요하다. 그 단체의 이름은 <국민정치이니셔티브(NPI)>로 모스크바에서 수학한 내과의사 무스타파 바르구티(Mustafa Barghouti)가 이끌고 있다. 바르구티의 주요 활동은 <촌락의료구호위원회>라는 인상적인 단체의 책임자로서, 이 단체는 지금까지 10만명 이상의 농촌 팔레스타인인들에게 의료혜택을 가져다주었다. 과거 열혈 공산당원이었던 바르구티는 조용한 말씨의 조직가이자 지도자로서 이념을 초월한 팔레스타인의 해방과 사회개혁을 약속하는 정치프로그램에 대한 개인 단체들의 지지를 끌어내기 위해 팔레스타인인들의 이동 및 해외여행을 가로막는 수백가지의 물리적 장벽들을 극복해냈다. 상투적이고 진부한 수사를 거부하는 바르구티는 이스라엘인은 물론 유럽, 미국, 아프리카, 아시아인들과 협력해 다원주의와 공존을 주창하는, 탐이 날 정도로 잘 운영되고 있는 연대운동을 구축해냈다. NPI는 인티파다의 방향성 없는 군사화를 지지하지 않는다. NPI는 실업자에 대한 직업교육과 곤궁한 이들에 대한 사회봉사를 펼치고 있다. 이런 활동이야말로 현재 상황과 이스라엘의 압력에 대한 가장 적절한 대응이라는 이유에서이다. 무엇보다도, 이제 막 공인된 정당으로 발돋움하고 있는 NPI는 진정한 자유선거, 즉 이스라엘이나 미국이 아닌 팔레스타인의 이익을 대변하는 자유선거를 위해 국내외의 팔레스타인 사회를 동원하려 하고 있다. 이 진정성의 느낌이야말로 아부 마젠에게서는 찾아볼 수 없는 것이다.
우리의 비전은 본래 팔레스타인 영토의 40%만을 가진, 난민들은 방치해두고, 예루살렘은 이스라엘에게 빼앗긴, 급조된 임시국가가 아니라 아랍인이든 유태인이든 가능한 모든 수단을 동원한 대중행동을 통해 (이스라엘의) 군사점렴으로부터 해방된 주권국가이다. NPI는 진정한 팔레스타인인들의 운동이라는 점에서 개혁과 민주주의가 일상의 관행으로 자리잡았다. 이스라엘의 통행제한에 따른 엄청난 어려움을 무릅쓰고 이미 수백명의 팔레스타인 저명 활동가들이 서명에 동참했으며 조직 결성을 위한 모임이 속속 열리고 있다.
공식 협상과 토론이 진행되고 있는 동안에도 일련의 비공식적, 자발적 대안들이 존재한다는 것은 기쁜 일이다. 그중에서도 NPI와 점점 커져가는 국제적 연대는 이제 가장 주요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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