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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마스의 무한전쟁, 반드시 이긴다“

김재명의 뉴욕통신 <16> 하마스 간부들이 말하는 ‘테러 균형론’

중동에서 타오르는 유혈투쟁의 불길은 언제 꺼질 것인가. 세번에 걸친 필자의 중동 취재 경험에 바탕한 결론부터 말한다면, "이스라엘 군의 불법적 팔레스타인 점령이 끝장나지 않는 한 어렵다"는 것이다. 팔레스타인의 지도자 야세르 아라파트에 비판적인 노선을 걸어온 강경 무장세력인 하마스(Hamas)와 이슬람 지하드, 이들과는 달리 아라파트에 충성해온 알 아크사 순교여단의 자살폭탄 공격을 비롯한 대(對) 이스라엘 저항, 그리고 이를 무력으로 누르려는 이스라엘의 강공책은 쳇바퀴 돌듯 계속될 것이다.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자살폭탄 공격이란 극한수단을 감행할 수밖에 없는 그들 나름의 충분한 이유가 있다. 중동의 군사강국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에게 가하고 있는 '국가테러'에 맞서는 효과적인 수단이 바로 자살폭탄공격이라 여긴다. 이스라엘도 그들 나름의 '보안' 논리에 바탕, 팔레스타인 쪽의 저항을 '테러'라 몰아붙이며 강공책을 휘둘러 왔다.

<사진 1> 다음 사진들은 모두 필자 김재명의 팔레스타인 현지 취재 당시 촬영된 것이다.

끝을 모르는 중동 유혈사태의 한 주요변수는 하마스(HAMAS)다. 이슬람 근본주의(Islamic Fundamentalism) 깃발 아래, 팔레스타인 땅에 엄격한 이슬람국가를 세운다는 목표를 지닌 하마스를 빼고 중동사태를 논할 수 없다.

'HAMAS'는 '팔레스타인을 지키는 회교운동'의 아랍어 머릿글자를 합성한 것이다. 1차 인티파다(1987-1993년)가 일어난 지난 87년 말에 전직 교사 출신인 셰이크 아메드 야신에 의해 조직됐다. 이스라엘의 점령정책에 무력으로 저항하는 팔레스타인 조직들은 하마스말고도 여럿 있다. 이슬람 지하드, 팔레스타인 인민해방전선(PFLP) 등이 그러하다. 노선상의 차이로 본다면 하마스와 이슬람 지하드는 이슬람 근본주의에 바탕한 이슬람국가 건설을 지향하는 반면, PFLP는 아랍민족주의와 마르크스레닌주의를 결합한 조직이다. 이들 가운데 대중적인 지지기반과 탄탄하고 조직력이 강한 것이 하마스다. 2000년 9월말 팔레스타인 민중들의 이른바 2차'인타파다'(봉기)가 터진 뒤 '하마스의 자살폭탄 공격=이스라엘 군의 강경대응'이란 군사적 등식(等式)은 중동정치를 설명하는 하나의 공리(公理)처럼 자리 잡았다.

***"우리가 총을 내릴 수 없는 까닭은.."**

<사진 2>

지난 6월4일 요르단 아카바에서 열린 3자(조지 부시 미 대통령-아레엘 샤론 이스라엘 총리-마흐무드 아바스 팔레스타인 총리) 평화회담을 두고 미국 주류 언론들은 '역사적인 회담'이었다는 평가를 냈었다. 이미 알려진 바처럼, 3자가 합의한 중동평화 이정표(road map)의 일정대로라면, 2005년엔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오랜 열망인 독립국가가 태어날 판이다. 그러나 합의문 내용을 꼼꼼이 들여다 보면, 샤론의 의도대로 결론이 났고 따라서 "샤론의 정치적 승리"라는 평가를 받아 마땅했다. 팔레스타인 민중들의 눈엔 (부시와 샤론이 다루기 거북한 아라파트를 '왕따'시키기 위해 그동안 줄기찬 공작 끝에 내세운 인물인) 신임 총리 아바스의 정치적 무능력을 드러낸, 한마디로 실패한 회담으로 비쳐졌다. (회담에서 아바스가 보인 어리벙벙한, 끌려다니는 듯한 태도를 TV로 지켜보면서 필자는 참으로 안타깝게도 지난 5월 워싱턴에서 부시를 만난 노무현 대통령을 떠올렸다).

3자 중동평화 이정표의 1단계 핵심은 "팔레스타인은 무조건적으로 폭력을 포기하고 이-팔 양측은 안보협력을 재개한다"는 것이다. '안보 협력'이란 이름 아래 샤론과 아바스가 손을 잡고 하마스를 비롯한 팔레스타인 과격세력의 재갈을 물리는 것이 뼈대다. 국제법상으로 '불법점령'인 것으로 비난받아온 이스라엘 군의 팔레스타인 철수란 선결조건이 빠졌다. 그저 일부 유대인 정착촌(숱한 유대인 정착촌 가운데 극히 일부!)을 철거하는 조건과 맞바꿔, 팔레스타인 무장세력의 저항을 억누르는 데만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하마스 지지자들을 비롯한 많은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아바스 총리가 우리 팔레스타인인들을 부시와 샤론에게 팔아넘겼다"고 비난했다. 하마스가 "우리는 총을 내릴 수 없다"는 태도를 나타낸 것은 자연스런 귀결이었다.

<사진 3>
이스라엘 강경파들의 시각에선 하마스는 눈엣가시다. 오래 전부터 샤론의 기본노선은 하마스 박멸이다. 요르단 아카바 3자 중동 평화회담 바로 뒤인 6월10일 가자 시내에서 차를 타고 가던 압델 아지즈 란티시(하마스 정치위원회 고위간부이자 대변인)를 죽이려고 이스라엘군 아파치 헬기가 미사일을 발사, 경호원과 길 가던 행인을 죽인 것도 '타고난 우파 강골(强骨)' 샤론의 본능적인 결정에 따른 것으로 보인다. 란티시는 첫 미사일에 부상을 입은 채 차를 빠져나와 기적적으로 살아남았다. 3자회담 바로 직후 벌어진 이같은 샤론의 강공책은 중동 평화회담에서 보인 샤론의 '진지함'을 의심토록 만들기에 충분한 사건이었다.

3자 평화회담 직후에 벌어진 하마스 간부 란티시 암살기도사건에 대해 부시와 아바스는 입을 모아 샤론을 비난했고, 이스라엘 언론들도 마찬가지였다. 대부분 친(親)샤론 논조를 펴왔던 이스라엘 언론들이 그날 하루 아랍 언론들과 마찬가지로 비판 논조를 편 것은 매우 이례적인 일로 기록된다. 대체적인 논조는 "roadmap to peace가 아니라 roadmap to kill로 가려는 것이냐"는 비판이었다. 하마스는 곧 반격에 나섰다(예루살렘 버스 자살폭탄공격으로 16명 피살). 그 뒤로 이스라엘 아파치 헬기는 날마다 팔레스타인 저항세력을 향해 미사일을 발사 중이다. 중동평화회담은 물 건너간 듯하고. 중동은 우리가 지금껏 보아온 '피가 피를 부르는 악순환'의 먹구름에 뒤덮이는 모습이다.

***"하마스 정치위가 공격 시점을 정한다"**

필자는 란티시를 팔레스타인 현지 취재길에 두 차례(2001년 6월과 2002년 6월) 만난 적이 있다. 가자 시내에 있는 그의 집에서였다. 이웃건물들과 다닥다닥 붙은데다 복잡한 내부구조를 지닌 4층 건물 가운데 2층에 살고 있어, 이스라엘 군이 그의 집을 미사일로 공격하기란 쉽지 않아 보였다. 란티시는 이동전화기 사용을 중지했다고 밝혔다. 이스라엘 암살요원이 그의 이동전화기에다 고성능 폭탄을 장치할 가능성에 대비해서였다. 그는 1947년 생으로 이집트에서 의학을 공부한 소아과 의사다. 1차 인티파다 기간 중인 1980년대 말 이스라엘에 체포돼 2년 반 넘게 감옥에서 지냈다. 그러다 1992년 다른 4백명의 팔레스타인 정치범들과 함께 레바논으로 추방됐다가, 오슬로 평화회담 뒤 다시 고향인 가자로 돌아왔다. 야세르 아라파트를 타협적이라 비난하다가, 1998년엔 팔레스타인 당국에 붙잡혀 2개월 동안 갇혀 지낸 적도 있다.

<사진 4>

란티시는 근시 안경을 썼지만, 강인하다는 느낌을 던졌다. 그는 "우리의 저항은 테러리즘이 아니다.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 사람들에 가하는 테러에 대한 저항일 뿐"이라고 주장했다. 그를 만나기 앞서 인터뷰했던 하마스 최고 지도자 셰이크 아흐메드 야신의 '테러 균형론'이 떠올랐다. 야신은 "우리의 저항이 테러라 한다면, 그것은 이스라엘 국가테러에 대한 균형을 맞추기 위한 것"이란 말을 했다. (하마스의 조직은 정치부문과 군사부문으로 나뉘어 2원적으로 운영되고 있다. 하마스 창립자인 셰이크 아메드 야신은 조직의 '정신적 지도자'로 불리지만, 강력한 카리스마에 바탕해 실질적인 지도력을 행사하고 있다. 정치위원회는 5인으로 구성돼 있다.)

'이제디네 알 카삼' 여단으로 알려진 하마스 군사부문의 정확한 조직원 숫자는 알려지지 않은 상태다. '이제디네 알 카삼' 여단은 잇단 자살폭탄 공격으로 많은 이스라엘 사람들이 '테러 노이로제'에 걸리도록 만든 장본인들이다. 란티시는 "폭탄 공격을 지원하는 젊은이들이 인티파다 뒤 줄을 서있을 정도로 많다"고 주장했다. 그의 설명에 따르면, 5인 정치위원회 간부들은 폭탄공격 계획에 일일이 개입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공격시점을 언제로 할 것인가, 그리고 언제 잠잠할 것인가를 결정하는 것은 그들의 몫이다. 이를테면 미국이 공격당한 9.11 직후, 하마스는 "우리의 저항이 미국에서 벌어진 일과 혼동을 주므로, 당분간은 투쟁을 멈춘다"는 결정을 내렸다고 란티시는 밝혔다. (하마스는 알 카에다와 연결돼 있지 않고 노선도 다르다. 이념적으론 반미라는 공통점을 지녔지만, 하마스에겐 대 이스라엘 테러가 초점이다. 하마스가 알 카에다처럼 반미 테러를 저지르지 않는 것은 종교적 이념적 차이라기보다는 정치적 이유에서다.)

***무기의 불균형, 테러의 균형**

<사진 5>

또다른 하마스 정치위원회 간부 알-자헤르는 필자와의 인터뷰에서 군사적 불균형이란 관점에서 하마스의 자살폭탄 공격론을 옹호했다. "F-16 전폭기와 탱크, 그리고 아파치 헬기를 앞세워 공격하는 이스라엘 군에 비해 우리가 지닌 무기는 고작 AK-47, 또는 그 개량형인 AK-74 소총이 고작이다. 군사력에선 엄청난 불균형이다" 알-자헤르는 "우리 하마스가 죽음을 마다한 폭탄 공격을 가함으로써 공포라는 면에서는 균형을 이루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른바 테러로 인한 '공포의 균형'이다. 그의 '공포 균형론'은 하마스 최고지도자 야신의 '이스라엘 국가테러와의 균형론'과 동전의 앞뒷면쯤으로 여겨졌다. 물론 그 동전의 이름은 '테러'다. 하마스는 자살폭탄 공격을 "순교작전"이라 부른다. 아울러 그들의 순교작전을 '테러'라 일컬어지는 걸 못마땅해 한다. 이스라엘 압제에 맞선 순교행위다. 자살폭탄 공격자는 '테러리스트'가 아닌, '자유전사'(freedom fighter)이자 '순교자'다.

알-자헤르도 동료 정치위원 란티시와 마찬가지로 이스라엘 군의 표적사살에 나름대로 대비하는 모습이었다. 그는 타고 다니는 차량을 거의 날마다 바꾼다고 했다. 팔레스타인 '배반자'들이 그가 타고 다니는 차량을 이스라엘 군에 알려, 헬기로부터 미사일 공격을 가해올 가능성에 대비해서다. (하마스 최고지도자 아메드 야신은 필자가 "목숨의 위협을 느끼지 않는가"를 묻자, "살고 죽는 것은 알라 신의 뜻에 달려 있다"고 담담한 어조로 말하는 모습이 매우 인상적으로 받아들여졌다. 하마스 창립 초기인 지난 1989년 이스라엘에 체포된 뒤 옥고 탓에 하반신과 손가락이 마비된 야신은 말을 하는 것조차 자유롭지 못한 상태였다).

이스라엘을 겨냥한 이른바 순교작전(자살 폭탄테러)이 하마스 활동의 전부는 아니다. 이는 하마스의 주요활동의 일부다. 가난한 팔레스타인 사람들을 위한 공익사업도 하마스 활동의 주요부분이다. 하마스는 87년 창립 이래 학교와 병원들을 세우고 빈민들에게 식량을 나눠주는 등 팔레스타인 공동체 지원에 적극 나서왔다. 재정은 해외로부터의 기부금에 의존하고 있다. 사우디아라비아 등 아랍권의 자선단체들, 그리고 수만명에 이르는 해외 지지자들로부터 보내오는 성금이 주요 활동재원이다. 하마스 정치위원 알-자헤르는 "지지자들로부터 수입의 2.5%를 납부받고 있다"고 밝혔다.

<사진 6>

하마스는 이슬람 형제주의(brotherhood) 정신에 바탕, 부패하고 세속적인 팔레스타인 자치정부 관리들과는 달리 국제사회의 구호물품들을 이른바 '삥땅'하지 않고 효율적으로 분배해왔다. 그래서 국제구호기관들로부터도 신용을 쌓은 상태다. 가자지구에서 만난 유엔 팔레스타인난민 구호기관 UNRWA의 한 실무자는 "하마스를 통해 구호물품을 전달하면 정확한데, 팔레스타인 자치정부를 통해 전달하면 누수(漏水)가 생겨났다는 사실을 나중에 알게된다"고 귀띔했었다.

***하마스의 낙관론- "지난 역사를 보라"**

하마스 내부의 강경파들은 이스라엘과의 공존이란 불가능하다는 생각들을 품고 있다. 다시 말해 "적과 더불어 같은 땅에 살 수 없다"는 입장이다. 이들은 "역사적인 팔레스타인 땅"(Historical Palestine)이 회복돼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 속에는 이스라엘도 들어있다. 이를 두고 이스라엘 극우파 지식인의 한사람인 제랄드 스타인버그 교수(바르 일란 대학·정치학)는 예루살렘에서 가진 필자와의 인터뷰에서 "그들(아랍인들)이 우리 이스라엘을 지중해 바닷속으로 수장(水葬)시키려 하는" 음모를 차단하고 이스라엘이 생존하려면, 전략적으로 67년 6일전쟁 점령지인 서안지구와 가자지구를 무단통치할 수밖에 없다는 논리를 폈다. 그러나 하마스 지도부의 공식적인 노선은 "67년 국경선으로의 복귀"다. 67년 6일전쟁으로 이스라엘이 점령한 팔레스타인 서안지구와 가자지구에서 이스라엘이 물러나야 한다는 것이 하마스의 요구다.

그런 자살폭탄 공격으로 이스라엘과의 유혈투쟁에서 승리할 수 있을까. 이런 물음에 대해 하마스 정치위원 무하메드 알-자헤르는 낙관적이다. 그는 역사적 사실들을 꼽는다. "독립의지가 강한 민족은 무기를 지닌 민족을 이겼다는 것은 역사가 증명하고 있다. 베트남에서의 미국(1975년 철수), 알제리에서의 프랑스(1962년 철수), 그리고 남부 레바논에서의 이스라엘(2000년 철수)이 그러하다" 하마스의 무한 정치투쟁은 결국 승리할 것이란 낙관론이다. 과연 그럴까.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 강점을 풀고, 팔레스타인은 독립의 날을 맞이할 것인가? 그 대답은 비관론이 우세하다. "샤론 같은 골수강경파들이 이스라엘 정치를 지배하는 한 거의 없다"는 것이다.

2001년 6월 서안지구 정치중심도시 라말라에서 만났던 파타(Fatah) 서안지구 사무총장 마르완 바르구티(현재 이스라엘 감옥에 갇혀 재판중)는 '지금의 인티파다가 3년은 갈 것'이라고 내다봤었다. 아라파트 이후를 맡을 차세대 지도자의 한 사람으로 꼽혀온 그의 말은 희망섞인 전망일 뿐이었다. 가까운 시일 안에 끝날 가능성은 없어 보인다. 팔레스타인 민중의 대 이스라엘 항쟁을 강력히 후원해왔던 이라크 사담 후세인 정권이 무너진 뒤 중동에서의 힘의 균형도 이미 무너졌다. 팔레스타인에 국가가 들어서면, 그래서 군대를 갖게 되면, 궁극적으로 이스라엘의 안보에 치명적인 위협이 된다고 이스라엘 우파들은 주장해왔다. 그런 우파를 부시 행정부는 지지해온 형국이다. 문제는 이스라엘에 '샤론'들이 너무 많고, 그들을 지지하는 미국 내 유대인 영향력이 막강하다는 데 중동사태의 심각성이 있다. 따라서 하마스의 자살폭탄 공격과 이스라엘의 강공은 앞으로도 계속 되풀이되고 더 많은 사람들이 죽고 다칠 전망이다"가 이 글의 우울한 결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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