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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두환과 치욕의 한국언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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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두환과 치욕의 한국언론

<김창룡의 미디어비평>

다시 전두환 전대통령이 언론의 집중조명을 받고 있다. 재판이 연기되면서 이 조명은 잠깐 비켜갔지만 다음달말 ‘가족재산공개목록’ 제출기한과 함께 재판이 재개되면 언론은 그에게 스포트라이트를 비추게 될 것이다.

그는 과연 재판부가 요구하는 ‘가족ㆍ친인척 재산공개목록’을 솔직하게 밝힐 것인가. 그것보다 재판정에 나오기라도 할 것인가. 한국언론사 최악의 오명으로 기록된 제5공화국 탄생의 장본인 전두환. 22년전 한국의 신문과 방송은 일제히 그를 ‘영웅중의 영웅’ ‘민족의 지도자’ ‘사나이중 사나이’로 찬양했다. 영웅만들기에 나섰던 그 언론들이 사과나 반성 한번 없이 이제는 ‘전두환 죽이기’를 즐기고 있다.

그가 애초부터 영웅이 아니었다면 언론은 국민을 상대로 사기를 친 것이다. 독재자의 하수인이 되어 국민의 눈과 귀를 가리고 인권을 유린하는 데 앞장 선 언론은 여전히 인권과 정의를 부르짖고 있으며 그의 ‘충견노릇’을 한 전직 언론인들은 국회로 진출해서 여전히 목에 힘을 주고 있다. 전두환 보도에 앞서 한국언론은 반성과 사과부터 하는 것이 순서다. 세월의 망각에 기대어 과거를 외면한다는 것은 스스로 부끄러운 언론임을 고백하는 것이다. 전두환이 등장할 때 한국언론이 무엇을 어떻게 보도했는데?

먼저 역사의 죄인을 영웅만들기로 국민을 우롱한 보도.

경향, 서울신문(현 대한매일)은 ‘새 시대를 여는 새 지도자 전두환 장군’ ‘새 역사 창조의 선도자’란 제목으로 기획기사를 시리즈로 내보냈다. ‘포용의 바다’ ‘컨닝 거부한 단 한 명’ 등의 소설보다 더 소설적인 작문을 기사라는 이름으로 버젓이 독자들에게 내보냈다.‘주요신문사’를 자처하는 ‘조중동’도 예외가 아니었다.

중앙일보는 ‘합천에서 청와대까지’란 큰 제목하에 부제로 ‘전두환 대통령-어제와 오늘’로 시리즈로 내보냈다. 첫 회는 ‘솔직하고 사심없는 성품’이란 타이틀로 영웅만들기를 노골화 했다. “그는 공사간에 청교도적인 엄격함이 체질화되어 있는 사람이다...그는 사사로운 청탁이나 이권에는 철두철미 냉정하다...”이런 내용이 주를 이뤘다. 이런 보도가 사실이라면 ‘5공비리’나 현재의 의혹들은 무엇으로 설명할 수 있는가.

조선일보 역시 ‘인간 전두환’이란 특집면을 마련해서 ‘육사의 혼이 키워낸 신념과 의지의 행동’‘私에 앞서 公...나보다 국가 앞세워’ ‘이해관계 얽매이지 않고 남에게 주기 좋아하는 성격’ 등을 강조했다. 이런 보도내용은 사실이 아니라 거꾸로라는 점이 역사가 증명하며 언론의 허위를 밝혀냈다. 국가보다 나를 앞세웠고 남에게 주기 좋아하는 성격이 아니라 친인척이나 측근에게 주기를 좋아하며 그 외 국민은 안중에도 없었다는 것이 ‘광주민주화 운동’ 등으로 이미 확인됐다.

동아일보도 특집면을 통해 ‘의협심 많은 청소년 시절’ ‘흰종이가 까맣게 되도록 글씨 연습’ ‘운동경기에 거의 만능’...어릴 때부터 영웅이었다는 식으로 전두환을 ‘시대의 지도자’로 부각시키기 위해 저널리즘을 배반했다.

영웅만들기에 그친 것이 아니라 한국언론은 인권유린에도 앞장 섰다.

동아일보는 80년 8월13일자 ‘人間再生’이란 제목으로 삼청교육대 관련 기사를 이렇게 내보냈다. “국보위 사회악 일소 방침에 따라 그 동안 사회 구석구석에서 선량한 사람을 괴롭혀 온...빡빡머리에 군복차림인 이들의 모자와 상의에는 과거의 잘못을 증명이나 하듯이 일련번호가 적혀있다...한쪽에서는 유격 한쪽에서는 공수접지...현역군인들도 힘들다는 강훈련을 받느라 여념이 없었다. 이들중에는 15세의 어린 소년에서부터 53세의 초로의 뒷골목 터주대감도 있다...”

민주주의 사회라는 말은 법의 지배를 받는 사회를 말한다. 기사에서처럼 현역군인도 받기 힘들다는 강훈련을 15세의 어린 소년이 혹은 53세의 초로의 노인이 받고 있다면 잘못된 것이다. 그 잘못을 고발은커녕 오히려 무법천지를 찬양하는 보도 일변도를 적어도 세월이 흐른 뒤에는 부끄러워 할 줄 알아야 한다.

중앙일보도 ‘폭력배 순화교육 현장’ 보도에서 “최고령자 55세 김갑영씨도 ‘좀 쉬라’는 중대장의 권유에도 아랑곳없이...”라고 묘사했다. 폭력과 인권유린이 난무하는 현장을 보고 문제점을 지적하지는 못한 언론인은 누구란 말인가.

조선일보 역시 ‘땀을 배우는 인간 교육장’이라는 제목으로 기사를 게재하며 ‘새마을 성공사례를 듣자 연병장은 울음 바다라고 묘사했을 정도다. 뒤틀린 역사의 현장을 언론인들이 더욱 교묘하게 곡필을 휘두르고 있는 모습이다.

삼청교육은 사회악 일소 차원에서 4차례에 걸쳐 일제 단속으로 5개월동안 5만 7천여명이 군으로 잡혀갔다고 한다. 경기도 파주군 모부대에서 지프 뒤에 훈련원을 매달아 연병장 네 바퀴나 돌려 사망케한 사건, 삼청근로봉사대에서 소대원 3명이 견디기 어려운 생활을 비관, 바늘을 먹고 자살을 기도한 사건, 특수교육대의 인천 임근실씨가 화장실에서 목을 매어 자살한 사건, 며칠이고 손과 얼굴, 발 등을 씻지 못하게 하고 하루동안 물 2컵만 주며 자신의 소변으로 얼굴을 씻게 한 사건...이루 열거할 수 없을 정도의 인권유린 사건이 점철됐지만 어느 언론도 문제를 제기하지 못했고 부도덕한 정권은 무한홍보의 기회를 맞은 것이다. 그 한가운데 전두환이 있었다.

독재정권시절 언론자유에 한계가 있었다는 점은 누구나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이렇게 전두환을 위해 찬양과 인권유린을 예사로 해온 한국의 신문과 방송이 과거에 대한 고해성사를 하지않고 스스로 만든 그 영웅에게 침을 뱉는 행위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나. 처음에는 독재의 강압에 의해 그러나 곧 독재와 결탁해서 ‘정의를 외면하고 상업적 이익에 스스로 함몰돼 간 치욕의 한국언론 역사의 한 페이지’에 대한 평가와 자기반성이 없는 한 언론의 기회주의적 전통에는 변화가 없을 것 같다.

자신의 수중에 29만원 밖에 없다며 국민을 기만하고 법집행을 우습게 보는 전두환과 측근들. 언론의 보도와는 정반대로 무법천지와 자기들 마음대로 살아온 그들은 ‘가족과 친인척 재산목록’을 공개하기 위해 재판을 연기한 것이 아니다. ‘배웠다’는 변호사 측근들을 동원해서 법리논쟁을 벌이며 막후협상을 시도할 것이다.

29세 판사와 강금실 법무부 장관에게 막중한 책임이 맡겨져 있다. 밝혀진 것만 수백억원대에 달하는 전두환 식구의 재산일부를 수사기관도 이른바 주요 언론사도 밝혀내지 못했다는 것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일요신문의 집요한 사실추적 보도는 저널리즘의 역할이 무엇인지 덩치큰 대형신문사와 방송사에 교훈을 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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