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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의 목숨은 결코 ‘부수적‘인 게 아니다”

김재명의 뉴욕통신 <14> 이라크전쟁의 민간인 희생자들

전쟁은 막을 내렸다. 그러나 살아남은 자들은 서글프다. 전쟁 탓에 사랑하는 이들을 잃어서다. 이번 이라크전쟁(제2차 걸프전쟁)에서 얼마나 많은 이라크 사람들이 죽었을까. 미군은 사망자 규모를 대충이나마 알고 있지만, 정치적 이유로 그것은 비밀이다. 밝혀서 이로울 것이 없는 사실을 굳이 드러내 반미감정의 부스럼을 제손으로 긁어댈 이유가 없다. 민간인 사망자뿐 아니다. 이라크 군인들이 얼마나 죽고 다쳤는지도 불투명하다. 사담 후세인을 비롯한 옛 이라크 정권 수뇌부들은 그 규모를 파악하고 있겠지만, 지금으로선 제 한 몸 숨기기가 급하다.

(사진) 가족이 미군 오폭에 희생된 데 절규하는 이라크 여인 연합뉴스

***전술교범 다시 쓴 전쟁의 뒤안길엔...**

미국 사람들은 5월 마지막 월요일을 "Memorial Day"로 기린다. 올해는 5월26일로, 우리의 현충일보다 열흘 앞선다. 이라크전쟁 승리 뒤 처음 맞는 기념일이라 미 신문ㆍ방송들은 저마다 특집을 마련, 전쟁터에서 죽은 미군 장병들을 기렸다. 지금껏 미국은 나라 바깥에서의 군사개입으로 많은 사망자를 내왔다. 주요 전쟁만 살펴보면, 1차 세계대전에서 11만6천명, 2차 세계대전 40만5천명, 6.25 한국전쟁에서 3만6천명, 베트남전 5만8천명이었다. 이번 이라크전쟁은 비교적 짧은 기간 동안 전투를 벌여 승리한 전쟁으로 기록된다. 미 국방부는 바그다드가 함락된 직후인 지난 4월11일 영미 연합군 사망자는 1백36명이라 발표했었다(전투중 사망자는 82명).

미 군사전문가들은 "전사자 1백36명으로 3주만에 전쟁을 마무리한 것은 전사에 남을 새로운 기록"이라고 평가한다. "앞으로 전쟁대학의 교과서로 사용될 수 있는 사례", 또는 "전술교범을 다시 썼다"는 평가마저 내린다. 그렇다면, 이번 전쟁에서 얼마나 많은 이라크 사람들이 죽었는가. 이 물음에 대해 미 국방부(펜타곤)는 말이 없다. 전쟁 초기부터 미군은 그 대목에 대해선 입을 다물겠다는 태도를 보였다. 미 중부군 사령관 토미 프랭크스 대장은 전쟁 초기 카타르 도하에서 가진 종군기자들과의 기자회견에서 "우리 미군은 이라크 민간인들의 희생자 숫자는 세지 않는다"고 분명히 밝혔었다. 미 국방부(펜타곤)도 이 대목에 관한 한 "우리는 모르쇠"다.

이라크 새 정권이 아직 들어서지 않은 상황이라 민간인 피해자 규모를 집계할 공식기구도 없다. 그것은 비정부기구(NGO)들이나 할 수 있는 일로 남겨진 모습이다. 미국의 인권단체인 '분쟁지역 민간인피해자를 위한 캠페인'(Campaign for Innocent Victims in Conflict)이 1백50명의 조사연구원을 동원, 이들이 병원과 시체안치소 기록을 뒤지고, 집집마다 찾아 다니며 민간인 사망자, 부상자, 재산피해 규모를 조사중이다. 이 조사작업은 앞으로 몇달 동안에 걸쳐 이뤄질 예정이다. 5월 하순 현재 이 조사에서 걸프전쟁 격전지의 하나였던 이라크 나시리야에서 1천명 이상의 민간인이 죽임을 당했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민간인 피해가 특히 컸던 지역은 미군 미사일 포격의 과녁이었던 바그다드, 그리고 미 해병대의 진격로였던 유프라테스 강 언저리의 도시와 마을들, 특히 나사리야와 나자프 지역인 것으로 알려진다.

***영미군 사망자 1명 당 33-66명 꼴 사망**

3.20 바그다드 공습 이래 민간인 사망자 숫자를 표기해온 한 웹사이트(관련링크, www.iraqbodycount.net)는 5월 말 현재 최저 5천4백25명, 최대 7천41명으로 보고 있다. 몇 달 뒤 더 정확한 숫자가 나오겠지만, 이번 이라크전쟁에서 미군의 공습 또는 지상군의 직접 사격으로 죽은 이라크 민간인은 약 5천명에서 1만명 사이로 얘기된다. 이같은 집계가 사실로 드러날 경우, 이라크전쟁은 베트남전쟁 이래 가장 많은 민간인이 사망한 전쟁으로 기록될 것이다. 11년전 제1차 걸프전쟁에서 사망한 민간인은 3천5백명으로 집계됐다. 사망자 숫자로만 본다면, 이번 제2차 걸프전쟁은 미국이 그동안 주권국가를 침공해 벌인 전쟁 가운데서도 가장 참혹한 전쟁이다. 5월말 현재 영미군 사망자가 1백50명 미만이므로, 이라크 민간인이 5천명 죽었다고 가정하면 영미군 1명당 33명의 이라크 민간인이 숨진 셈이다.민간인 사망자가 1만명일 경우, 그 비율은 1대 66이 된다.(관련링크, www.commondreams.org/headlines03/0522-07.htm)

이라크전쟁이 일어나기 전부터 많은 이들이 이번 전쟁에서 민간인들이 죽고 다칠 것이라 걱정했었다. 1985년 노벨평화상을 받았던 '핵전쟁 예방을 위한 국제의사모임'(International Physicians for the Prevention of Nuclear War, 약칭 IPPNW) 같은 단체는 미국이 이라크 침공으로 전쟁이 일어나면 적게는 4만8천명, 많게는 26만명의 이라크 사람들이 죽임을 당할 것으로 내다봤다. 그리고 전쟁이 끝난 뒤로도 후유증과 질병으로 20만명이 희생당할 것으로 걱정했었다. 이같은 숫치의 근거는 12년전 1차 걸프전 당시 이라크 군 1만-1만5천명이 사망한 점에 미뤄서였다. 1차전에 비해 전쟁 강도가 세질 것이고(이라크 군의 결사적인 저항-이에 따른 미군의 보다 강도 높은 공격), 그만큼 희생자가 많이 나올 것이란 판단에서였다. 그러나 예상 밖으로 이라크군이 빨리 무너지는 바람에 최악의 시나리오는 일단 벗어난 모습이다.

2001년 10.7 공습이 시작되었던 아프간전쟁에서도 공습에 따른 민간인 피해가 문제가 됐었고, 지금도 후유증의 긴 그림자를 끌고 있다. 필자가 2002년 초 아프간 취재 당시 수도 카불의 전쟁부상자 병원에 갔을 때 만났던 한 부상자는 "미군이 왜 나를..."하며 원망하는 눈빛이었다. 아프간전쟁 초기 '영속하는 자유 작전'(Operation Enduring Freedom)이란 이름의 공습이 이뤄졌던 65일 동안(2001년 10월7일-12월10일) 약 1천-1천3백명의 민간인들이 공습에 희생된 것으로 알려지지만 정확한 희생자 숫자는 알기 어렵다.

탈레반 정권은 2001년 10.7 공습이 시작된 그 해 10월말 "3주 동안의 공습에서 1천6백명의 민간인들이 죽었다"고 주장했다. 1주 평균 5백33명이 희생됐다는 얘기였다. 그러나 영국 정보기관의 주장에 따르면, 같은 기간에 생긴 희생자 규모는 모두 합쳐 3백명이었다 (1주일 평균 90명). 어느 쪽이 맞는지는 검증이 어렵다. 미국인인 마크 해롤드(뉴햄프셔 교수. 경제학)가 조사한 자료에 따르면, 10.7 공습 뒤 그해 말까지 두달 남짓한 기간 동안 민간인 희생자 숫자는 약 4천명. 미 공습이 11월 들어 격화되고 토라 보라 공방전에서 많은 공습이 이뤄졌던 점을 떠올리면, 그같은 희생자 숫자는 설득력을 갖는다.

코소보전쟁에 비추어 볼 때, 공습 횟수 대비 피해자는 아프간전쟁에서 훨씬 많이 생겨났다. 78일 동안의 공습이 이뤄졌던 코소보전쟁에서 민간인 피해자는 약 5백명이었다. 당시 미군이 주축이 된 나토(NATO) 군은 1만3천회 출격에 2만3천개의 폭탄을 떨어뜨렸다. 그러나 아프간전쟁에선 처음 65일 동안 4천700회 출격에 1만2천개의 폭탄이 떨어졌다. 출격 횟수와 폭탄 투하에서 코소보전쟁 때보다 적었는데도, 오폭으로 인한 민간인 피해자는 아프간전쟁에서 훨씬 많이 생겨났다. 폭탄의 파괴력에서 얼마간 차이가 있을지라도, 아프간전쟁에서 정밀 공습이 이뤄지지 않았음을 드러낸다. 이를 두고 인종적인 시각을 펴는 논의도 있다. 같은 기독교문화권인 세르비아를 폭격하는 것과, 이교도 문화권인 아프간-이라크를 폭격하는 것은 그 강도에서 다를 수밖에 없다는 주장이다. (필자는 이런 문명 대결구도에 바탕한 시각이 올바르다고 보지는 않는다).

***"전쟁의 규범을 벗어난 행위"**

이번 2차 걸프전쟁에선 아프간전쟁 때보다 훨씬 더 많은 민간인 사상자가 났다. 미군의 작전개념으로 보면, 아프간전쟁은 주로 공습에 의존했던 전쟁이었다면, 이번 2차 걸프전에서는 공습에 이어 지상전을 곧바로 벌였기에, 민간인 사망자가 더 늘어난 것으로 분석된다. 아울러, 미군이 넓은 지역에 걸쳐 살상력을 더 높은 폭탄을 마구잡이로 떨어뜨린 탓이다. 폭 5백미터 안에 있는 모든 것들을 불바다로 만드는 무서운 살상력을 갖춘 데이지 카터(Daisy Cutter)를 비롯, 집속탄(Cluster Bombs), 벙커 파괴탄(Bunker Buster), 게다가 '모든 폭탄의 어머니'(Mother of All bombs, 약칭 MOAB)라고 일컬어진 10톤 가까운 초대형 살상무기들도 민간인 피해자를 양산하는 데 한몫 했을 것이다. (미군은 집속탄을 사막지대에만 썼다고 주장해왔지만, 그런 주장이 잘못됐다는 사실은 이미 드러난 바다). 뉴욕에 본부를 둔 국제적인 인권단체인 인권감시협회(HRW)는 한 보고서에서 "전쟁에서 대량 살상용무기를 마구잡이로 사용하는 것은 전쟁의 일반적인 규범을 벗어나는 무차별 살상행위"라고 부시 행정부를 비난했었다.

물론 미군이 일부러 이라크 민간인들을 살상하려 들지는 않았을 것이다. 미군 지휘부도 기회 있을 때마다 (다시 말해 바그다드 시내 민간인 주거지역에 미사일이 '잘못' 떨어질 때마다) "우리는 부수적인 피해(즉 민간인 피해, collateral damage)를 줄이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오폭 사고는 유감이다"라는 말을 되풀이했었다. 그러나 때로는 오폭을 시인하려 들지도 않고 사과도 않는 오만함을 보였다. 이를테면, 지난 3월말 바그다드 시장에 미사일이 잇달아 떨어지자, 카타르 도하의 미 중부군사령부 기자회견장에서 한 미군 준장은 "미국의 미사일이 아닐 것이다. 민가에 배치된 이라크 군의 미사일이 잘못 터졌을 가능성이 크다. 미군 공격에 대한 일반의 여론을 악화시키기 위해 일부러 터뜨렸을 가능성에 대해서도 조사중이다"고 얼버무렸다.

오폭사건이 날 때마다 미군이 쓰는 '부수적(민간인) 피해'란 용어는 참으로 고약하다고 여겨진다. 미군의 시각에선, 민간인들이 죽고 다치는 사건은 적의 전투력을 살상하기 위한 본래의 전투과정에서 고의가 아니고 작전상 어쩔 수 없이 일어나므로 말 그대로 '부수적'인 것이다. 그러나 그런 오폭, 또는 오인사격으로 부모형제를 잃고, 목숨을 잃은 민간인들로선 그 고통이 결코 '부수적'인 것이 아니다. 삶과 죽음이라는 우리 인간존재의 기본 가닥을 밑둥부터 잘라내는 '본질적'인 심각성을 띤 것이다. 국제적인 인권단체인 인권감시협회(Human Rights Watch)는 "미군이 이번 전쟁에서 이라크 인구 밀집지역에 집속탄 등을 아프간 전쟁 때보다 더 많이 썼던 탓으로 민간인 피해를 더했다"고 비판했다.

현재 미 부시행정부는 지난 4월 중순 미군의 작전 중에 손실을 입은 이라크 민간인 피해자들을 돕기 위한 구호재건비용으로 24억 달러를 배정했다. 그러나 이는 사망자 배상금으로만 쓰여지는 것이 아니라, 가옥 파손 등 재산상의 손실을 메우는 이른바 이라크 재건비용으로 쓰여질 것이다. 현실적으로 민간인 희생자에 대한 배상이 제대로 이뤄질 가능성은 매우 낮다. 배상금이 지급된다 해도 사망자 1인당 겨우 몇백-몇천 달러도 안 돌아갈 전망이다. (9.11 당시 죽은 미국인 1인당 보상금이 평균 2백만 달러였다. 사람 목숨의 가치를 물질적인 잣대, 다시 말해 돈으로 따질 일은 결코 아니지만, 너무 큰 차이다. 이라크의 혼란스런 치안상황을 떠올리면, 그 적은 돈이나마 제대로 분배가 될지도 불투명한 일이다).

독자 여러분들도 기억하듯, 지난 3월 말에는 민간인 차량에 탄 피난민 15명을 향해 미군 검문소 초병이 마구 총알을 내갈겨 10명의 부녀자들을 죽인 사건도 있었다. 그때 미군 쪽에선 액수가 알려지지 않은 보상금 지급을 제안했지만, 이라크 사람들은 그같은 제안을 즉석에서 거부했던 것으로 알려진다. (아프간전쟁 때 미군 오폭으로 아프간 동부지역 한 마을이 심각한 피해를 입자, 현지 미군 지휘관은 한사람당 1백달러씩을 지불했었다. 이로 미뤄 그 비슷한 제안을 하지 않았을까. 미군 규정상 현지 지휘관이 피해자 보상금 흥정을 할 수는 없다. 민간인 피해자 응급처치와 구호물자 지급은 가능하지만...). 이번 이라크전쟁에서 사담 후세인에 충성을 바치는 '페다인"이란 이름의 비정규군이 민간인 복장을 하고 미군에 맞서 싸우다 많이 죽고 다쳤지만, 이들을 민간인 부수적 피해자 범주에 넣기를 고집하는 것은 아니다. 이는 내용의 본질을 흐리는 얘기다.

***미, 제네바협정 프로토콜마저 거부**

국방부 대변인으로선 "전쟁 중 뜻하지 않은 인명과 재산상의 손실은 유감스럽고 불행한 일이지만, 그것이 전쟁의 현실(the reality of war)"이란 답변이 고작이다. 민간인 피해는 전쟁에서 피할 수 없는 현실이란 주장이다. 미군 지휘부의 시각에선 민간인 피해 사건은 전쟁범죄가 아니다. 1949년 <제네바협정>은 비전투원(민간인) 살상을 금지하고 있음은 물론이고 부상당한 민간인 치료를 의무로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미국은 국제사회가 1977년에 합의한 <제네바협정 부속의정서>(Protocol Additional to the Geneva Conventions)에 대한 인준을 미루고 있는 상태다. 이 부속의정서는 교전국의 전쟁행위 가운데 비전투원들이 죽고 다치는 것을 막기 위해 보다 구체적인 규정을 내린 것으로, 미 군부가 말하는 '부수적(민간인) 피해'를 엄격하게 제한하고 있다.

많은 이라크 민간인들이 죽고 다쳤지만, 전쟁의 주역인 부시 미 대통령이나 토니 블레어 영국수상이 전범으로 체포돼 국제형사재판소(ICC) 법정에 설 가능성이 있을까. 대답은 "거의 없다"다. "전쟁터가 법을 결정한다"(Battlefields determine the law"). 필자가 국제정치학을 공부하면서 가장 절실하게 느낀 결론이다. 이는 곧 "이긴 자가 역사를 쓴다"는 말이나 "지면 역적, 이기면 충신"이란 우리 옛말과 맥락을 같이 한다. 미국이 이라크전쟁에서 이겼기 때문에, 부시 미 대통령이나 토니 블레어가 전범재판에 회부될 가능성은 없다. 21세기 유일 패권국가인 미국의 최고사령관 부시의 공격적인 대외정책은 현실적으로 '국제법'의 상위개념이다. 전쟁 희생자들을 보호하려는 <제네바협정 부속의정서>은 물론이고, 전쟁범죄자 재판을 위한 법적 바탕으로 2002년 7월부터 효력을 발휘한 <로마협약>도 부시를 비롯한 미 매파들에게는 그저 휴지일 뿐이다.

관련 링크 www.iraqbodycount.net
http://www.commondreams.org/headlines03/0522-07.ht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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