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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小學 풍토에서 다시 주목해야 할 인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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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小學 풍토에서 다시 주목해야 할 인문학”

신영복 고전강독<156> 제13강 강의를 마치며-10

평천하(平天下), 즉 평화로운 세계는 명덕(明德)과 친민(親民)과 지선(至善)이 실현되는 세상을 의미합니다. 인간관계가 존중되는 사회(明德), 민주적인 사회(親民) 그리고 선량한 사회(至善)를 만들기 위하여 개인의 품성이 도야되어야 함은 물론이며 개인뿐만이 아니라 가(家)와 국(國) 그리고 국가간(天下)의 관계가 평화로워야 합니다.

뉴욕의 WTC건물 붕괴 이후 고조되는 테러논의를 예로 들어 보지요. 세계가 평화롭기 위해서는 물론 테러국가가 있어서도 안 되지만, 테러를 야기하는 원인제공자로서의 패권적 국가가 없어야 함은 물론입니다. 테러란 기본적으로 거대폭력(巨大暴力)에 대한 저항폭력(抵抗暴力)입니다. 거대폭력이 먼저 거론되어야 하는 것이지요.

더구나 저항폭력을 테러로 규정하고 테러를 빙자하여 폭압적인 개입과 일방주적 지배를 관철하려는 패권국가(覇權國家)의 거대폭력이 건재하는 한 세계평화는 요원한 것이지요. 근대 이후의 세계질서가 침략과 수탈로 점철된 제국주의 역사였다는 사실은 이를 단적으로 증명합니다.

개인의 해탈과 수양만으로 평화를 만들어 낼 수는 없는 것입니다. ‘대학’에는 노불(老佛)에 대한 비판적 관점이 그 저변에 확실하게 깔려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대학’은 와해된 사회질서를 재건하려는 당대 인텔리들의 고뇌에 찬 선언이었다고 하여야 합니다.

세계평화는 세계를 구성하는 각 국가의 평화이며, 국가의 평화는 국(國)을 구성하는 각 가(家)의 평화에 의하여 이룩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가(家)의 평화에는 가(家)의 구성원인 개개인의 품성이 높아져야 됩니다.

‘대학’은 개인과 사회와 국가와 세계가 맺고 있는 관계에 대한 체계적인 논리입니다. 이러한 체계적 논리의 최상에 놓여 있는 것이 ‘명덕(明德)’입니다. ‘대학’의 최고강령은 명덕(明德)입니다. 덕(德)이 무엇인가에 대하여 여러분은 ‘논어’에서 읽은 덕불고 필유린(德不孤 必有隣)을 기억할 것입니다.

덕(德)은 ‘관계(關係)’입니다. 개인과 사회, 사회와 국가, 국가와 세계가 맺고 있는 관계성의 자각과 실현이 궁극적으로는 세계평화의 기초인 동시에 한 개인의 수양의 기초가 된다는 점을 통일적으로 선언하고 있는 것입니다.

‘대학’ 독법에 있어서는 송대 신유학이 어떠한 학문적 동기를 가지고 있는가, 그리고 그것이 오늘날 우리의 현실에 어떤 의미를 갖는가를 생각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나는 주자(朱子)에서 그 절정(絶頂)을 발견하는 당시의 지식인들의 고뇌를 충분히 이해할 수 있을 듯 합니다.

사회적 관심이 매우 촌스러워진 현재의 상황, 개인의 감성을 가장 상위에 두는 오늘날의 문화, 단편적인 이미지에 의하여 그 전체가 채색되는 부분의 춘화적(春畵的) 확대가 지배하는 오늘의 사회와 문화를 생각하면 주자의 시대가 당면했던 사회적 과제를 짐작할 수 있을 듯 합니다.

개인적 수양에 아무리 정진한다 하더라도, 한 장의 조간 신문에서 속상하지 않을 수 없고, 한 나절의 외출에서 속상하지 않을 수 없는 사회가 바로 우리가 속하고 있는 사회라면 우리는 생각을 고쳐 가져야 합니다.

개인의 수양이 국(國)과 천하(天下)와 무관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닫지 않을 수 없는 것이지요. 마찬가지로 아무리 훌륭한 법과 제도를 완비하고 있다고 하더라도 그것을 운용하는 사람들의 품성이 그것을 따르지 못하는 한 우리의 삶과 우리 사회가 바람직한 것이기는 어렵지요.

불교철학이 모든 것을 꽃으로 승화시키는 뛰어난 화엄학(華嚴學)이면서 동시에 모든 것을 덧없이 만드는 무상(無常)의 철학인 것과 마찬가지로 해체주의(解體主義)는 자본주의에 대한 거대한 집합표상을 해체하는 침통한 깨달음의 학이면서 동시에 개인을 탈사회화하고 단 하나의 감성적 코드에 매달리게 만드는 일탈(逸脫)과 도피(逃避)의 장(場)이 아닐 수 없습니다.

‘대학’은 그런 점에서 소학(小學)밖에 없는 오늘의 학문 풍토에서 다시 한번 주목되어야 할 인문학(人文學)이라 할 수 있으며, 그리고 우리가 모색하는 새로운 문명론(文明論)의 서장(序章)이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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