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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이라크전 '결정적 증거' 제출 못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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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이라크전 '결정적 증거' 제출 못해

파월 기자회견에도 프랑스,러시아, 중국 등 냉담

"사담 후세인의 비인간성은 한계를 모른다."

콜린 파월 미 국무장관이 5일(현지시간) 이라크 전쟁에 대한 우려로 전 세계의 이목이 집중된 가운데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연설을 통해 이라크가 체계적으로 대량살상무기들을 숨겨왔으며 유엔 무기사찰단의 활동을 방해했다고 주장하며 한 말이다.

***파월의 증거 '녹음테이프 위성사진 첩보보고서 등'**

파월 장관의 유엔 안보리 특별회의 연설은 멀티미디어 쇼로 연출됐다.

파월의 등장에 맞춰 미국 관리들은 각 2개씩의 작고 큰 영상화면를 설치해 안보리 회의 참석자들이 연설 내용과 제시된 증거를 놓치지 않도록 배려했다. 파월 장관이 이라크의 대량살상무기 보유 증거로 제시한 자료들은 녹음테이프와 위성사진, 비밀첩보보고서 등으로 구성됐다. 파월 장관은 유엔과 국제사회가 이라크의 무장해제라는 의무를 회피하지 말아야 한다며 이라크에 대한 군사행동을 지지하고 동참할 것을 촉구했다.

그러나 이라크에 대한 군사행동보다는 유엔 무기사찰단에 더 시간을 줘야 한다고 주장해온 프랑스와 러시아 등 안보리 상임이사국들의 입장은 크게 변화하지 않았으며 이라크는 파월 장관이 제시한 이라크의 무기 은닉과 테러조직 알-카에다 연계 증거들은 "곡예와 특수효과로 채워진 전형적인 미국식 쇼"에 불과하다고 일축했다.

파월 장관은 이날 90분간 진행된 안보리 연설에서 대량파괴무기 은닉과 사찰단 기만을 위한 이라크의 "적극적이고 체계적인 노력"들을 조목조목 지적했다. 그는 "이런 노력들은 한두개의 고립된 사건이 아니라 12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는 회피와 기만의 일단일 뿐"이라고 말했다.

그는 자신의 주장을 입증하는 갖가지 증거들을 제시하면서 "이는 이라크가 사찰단의 임무 완수를 위해 협조하기보다는 사찰단이 아무것도 찾을 수 없도록 하느라 여념이 없음을 보여주고 있다"며 "이 증거들은 반박할 수도, 부인할 수도 없는 결정적인 것들이다. 이라크는 이로써 스스로를 심각한 위험에 빠뜨렸다"고 주장했다.

파월 장관은 "분명히 사담은 누군가가 자신을 멈출 때까지 스스로 멈추지 않을 것"이라며 "유엔은 이라크에 무장해제의 마지막 기회를 줬으나 이라크는 지금까지 이 기회를 잡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우리는 이 기구(유엔)가 대표하는 국가들의 시민에 대한 우리의 의무와 책임을 회피하지 말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라크와 알-카에다의 관계에 대해 파월 장관은 오사마 빈 라덴의 고위 측근으로 아프가니스탄 전쟁 이후 이라크에 도피한 아부 무삽 자르카위가 이라크에서 8개월 이상 자유롭게 활동하면서 바그다드를 활동거점으로 삼았다는 점을 제시했다.

파월 장관은 이와 함께 이라크가 금지된 화생방무기 개발을 포기하지 않았으며 사찰단을 기만해 왔음을 입증하는 다양한 자료들을 제시했다.

그가 제시한 녹음 테이프에는 사찰단 방문에 대비해 금지된 무기의 은폐 대책을 거론하는 이라크 장교 2명의 육성이 담겨 있었으며 다른 녹음 테이프에서 이라크 장교들은 금지된 개조차량의 은폐문제를 논의했다. 파월은 또 사찰을 앞두고 깨끗이 치워지고 있는 화학무기 벙커와 유엔 사찰이 재개되기 이틀전 화학무기와 탄도미사일 관련 시설에서 행렬을 지어 이동하는 트럭 등이 담긴 위성사진도 제시했다.

파월 장관은 "이라크 과학자들이 사찰단에 정보를 제공하면 '심각한 결과'가 초래될 것이라고 후세인 대통령이 경고했으며 이 과학자들은 정보를 누설할 경우 죽음으로 처벌받는다는 각서에 서명을 강요당했다"는 정보원의 진술도 소개했다.

그는 또 4명의 각기 다른 정보원으로부터 이라크가 탄저균 등 생물무기 생산과 연구를 위한 이동식 시설을 설치했고 최소한 7개에 이르는 이같은 이동시설은 18대의 트럭에 실어 은폐할 수 있다고 밝혔다. 파월 장관은 미국 정보를 인용해 이라크가 1백~5백t의 화학무기와 1만6천개의 전장 로켓 등을 보유하고 있으며 후세인 대통령은 군이 이를 사용할 수 있도록 허용했다고 말했다.

파월 장관은 이밖에도 한 정보원으로부터 이라크가 80년대 이후 1천6백명의 사형수들을 대상으로 생물, 화학무기 시험을 해왔으며 이런 무기의 효과를 입증하기 위해 숨진 사람들의 부검도 실시해 왔다고 주장했다.

***프랑스ㆍ러시아ㆍ중국 "파월이 제시한 증거는 전쟁이 아니라 사찰연장의 필요성 강조하는 것"**

미국과 영국 주도의 이라크 군사행동에 반대해온 안보리 상임이사국들의 반응은 파월의 연설과 증거에도 불구하고 일단 기존 입장과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결정적 증거'가 없다는 이유에서다.

도미니크 드빌팽 프랑스 외무장관은 파월이 제시한 증거들에 대해 우려를 표명하면서도 "무력 사용은 최후 수단"이라며 사찰활동을 강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유엔결의 1441호는 지금까지 사용되지 않았던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며 "유엔 무기사찰단의 증원과 지역별 사무소의 추가설치, 기존 사찰대상 지역의 감시를 위한 특별기구 설치 등 사찰과 정보수집 능력을 강화하자"고 주장했다.

이고리 이바노프(Ivanov) 러시아 외무장관은 "파월 장관이 제시한 정보들은 전문가들에 의해 검증돼야 한다"며 이라크의 대량살상무기 문제는 정치적으로 해결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유엔 무기사찰단의 활동이 연장돼야 한다고 강조하고 "러시아는 무기사찰단과 이라크 정부의 대화지속을 환영하며 유엔 안보리 활동에 적극 동참하겠다"고 밝혔다.

탕자쉬앤(唐家璇) 중국 외교부장도 유엔 무기사찰단의 활동은 지속돼야 한다며 "이라크 문제를 정치적으로 해결하고 전쟁을 피해야 한다는 것은 국제사회의 보편적 희망이다. 최소한의 정치적 해결의 희망이 있다면 우리는 이를 성취하기 위해 최대한의 노력을 경주해야 한다"고 말했다.

반면 안보리 상임이사국 가운데 유일하게 미국을 지지해온 잭 스트로(Straw) 영국 외무장관은 "이라크가 계속 협조하지 않을 경우 안보리는 이에 따른 의무를 이행해야 한다"면서 "후세인 대통령은 자신이 직면한 심각한 상황에 관해 추호도 의문을 갖지 말아야 한다"고 경고했다.

***이라크 "파월이 제시한 증거는 특수효과로 채워진 미국식 쇼"**

이라크는 파월 장관이 제시한 이라크의 무기은닉과 알-카에다 연계 증거는 "곡예와 특수효과로 채워진 전형적인 미국식 쇼"라는 입장이다. 사담 후세인 이라크 대통령 보좌관 아미르 알-사아디 장군은 파월 장관의 유엔안보리 연설 직후 가진 내외신 기자회견에서 미국은 유엔 무기사찰단에게 증거를 제시하지 못함으로써 유엔 안보리 결의 1441호를 위반했다고 역공했다.

알-사아디 보좌관은 또 파월 장관이 이라크의 무장해제 기만행위 증거로 제시한 전화 감청내용에 대해 "3류정보기관의 작품"이라며 "전혀 사실이 아닌 조작된 증거"라고 반박했다. 그는 "파월 장관이 증거로 제시한 내용은 일반 대중과 주로 충분한 지식이 없는 사람들을 겨냥한 것으로 일반 여론을 움직여 이라크를 침략하기 위한 것"이라고 비난했다.

그는 특히 파월 장관이 이라크의 유엔안보리 결의 '중대 위반' 증거로 제시한 내용은 유엔감시검증사찰위원회(UNMOVIC)와 국제원자력기구(IAEA)에 모든 증거를 제출하도록 요구하고 있는 유엔 안보리 결의 1441호 10항에 위배된다고 지적하고 UNMOVIC과 IAEA가 이같은 주장들을 처리, 검증, 평가할 적절한 창구라고 주장했다.

알-사아디 보좌관은 이번주 말 한스 블릭스 유엔 무기사찰단장과 모하메드 엘바라데이 IAEA 사무총장이 바그다드를 방문하면 유엔과 현안들을 논의할 용의가 있다며 "유엔 안보리 이사국들이 파월 장관의 견해에 동조할 것으로 생각하지 않는다. 유엔 사찰단이 임무를 계속할 수 있게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알-사아디 보좌관의 기자회견은 이라크 국영 TV와 CNN, BBC 등 국내외 방송으로 생중계됐다. 이라크 공보부의 우다이 알-타에이 프레스센터 소장은 파월 장관이 제시한 증거들에 대한 "구체적이고 포괄적인 반응"을 유엔에 전달할 것이라고 밝혔다.

한편 리투아니아과 루마니아 등 동유럽 10개국은 5일 이라크가 유엔결의안을 위반했다는 콜린 파월 국무장관의 안보리 연설을 지지한다고 발표했다.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가입을 위해 결성된 소위 '빌뉴스 그룹' 10개 회원국들은 성명을 통해 "우리는 이라크의 무장해제를 평화적으로 달성하려는 국제사회의 노력을 적극 지지한다"고 밝혔다.

빌뉴스 그룹은 리투아니아 에스토니아 라트비아 등 발트해 3국을 포함해 슬로베니아 슬로바키아 불가리아 루마니아 크로아티아 마케도니아 알바니아 등 10개국으로 구성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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