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가나 묵가는 백성을 자식처럼 사랑하고, 백성은 임금을 부모와 같이 여겨야 한다고 주장한다. 사법관이 형벌을 집행하면 음악을 멈추고, 사형집행 보고를 받고는 눈물을 흘리는 것이 선왕의 정치라고 한다.
그러나 아무리 부모가 자식을 사랑한다고 하더라도 자식은 부모를 따르지 않을 수 있는 것이다. 임금이 백성을 사랑하는 것이 부모가 자식을 사랑하는 것보다 더 할 수는 없는 것이다. 눈물을 흘렸다면 그것은 임금이 자기의 인(仁)은 이루었다고 할 수 있을지 모르나 좋은 정치를 하였다고 할 수는 없는 것이다.
해내(海內)의 모든 사람들이 공자의 인(仁)을 따르고 그 의(義)를 칭송하였지만 제자로서 그를 따른 사람은 겨우 70명에 불과하였다. 임금이 되기 위해서는 권세를 장악하여야 하는 것이지 인의(仁義)를 잡아서는 안 되는 것이다.
지금의 학자들은 인의를 행하여야 임금이 될 수 있다고 주장하고 있는데 이것은 임금이 공자같이 되기를 바라고 백성들이 그 제자와 같이 되기를 바라는 것이나 마찬가지이다.”
내용이 다소 길지만 법가사상의 요지가 잘 나타나 있습니다. 요컨대 맹자가 양혜왕을 만났을 때 의(義)를 말할 것이 아니라 이(利)를 말하는 것이 옳다는 것이지요.
법가의 이러한 변화사관은 한비자의 스승인 순자(荀子)의 후왕사상(後王思想)을 계승하였다는 것이 통설입니다. 후왕(後王)이란 금왕(今王)을 의미합니다. 후왕사상은 과거모델을 지향할 것이 아니라 오늘의 현실을 대상으로 하여야 한다는 현실정치론이라 할 수 있습니다.
순자는 “후왕(後王)이야말로 천하의 왕이다. 후왕을 버리고 태고(太古)의 왕을 말하는 것은 자기 임금을 버리고 남의 임금을 섬기는 것과 같은 것이다.”고 하였습니다. 순자의 성악설과 후왕사상이 제자인 한비자에게 계승되었으리라고 추측하는 것은 어렵지 않습니다.
한비자는 내외정세가 위급존망지추(危急存亡之秋)여서 나라의 운명을 걱정하여 숱한 시무책을 국왕에게 바칩니다. 그러나 받아들여지지 않습니다.
비단 한비자와 한(韓)나라만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변화된 현실을 인식하고 새로운 사고로 발상을 전환한다는 것이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닌 것이지요. 다음 예제는 여러분도 잘 아는 화씨지벽(和氏之璧)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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