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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두닦이에서 대통령까지, 룰라는 누구"

브라질 최초 좌파 대통령의 인생역정과 당면과제

수감번호 12717.

브라질 최초의 좌파 대통령으로 당선된 중도좌파 노동자당(PT)의 룰라가 노조위원장 당시 투옥됐을 때 달았던 번호다.

초등학교 졸업 학력으로 구두닦이와 금속노동자를 거쳐 노동운동가로, 급기야 브라질 대통령 선거 역사상 최고 득표를 얻으며 대통령 꿈을 이룬 루이스 이나시오 룰라 다 실바 대통령 당선자는 누구인가. 룰라의 입지전적 인생과정과 경제위기 등 브라질의 당면과제에 대한 향후 전망을 살펴보자.

<사진>

***가난으로 12살에 구두닦이·첫 부인과 아이 잃어**

룰라는 1945년 브라질 북동부 오지인 페르남부쿠 주의 바르젱 그랑지(현 카에테스)에서 가난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는 룰라가 갓난아기였을 때 가족(부인과 자식 8명)을 남겨둔 채 상파울루 외항인 상투스항의 노무자로 일을 하기 위해 집을 떠난다.

그의 어머니는 룰라가 7살이 됐을 때 남편을 찾아 자식들과 함께 허름한 배를 타고 13일간의 여행 끝에 상투스항이 보이는 과루자에 도착한다. 이후 다시 상파울루로 이사간 그들은 가난에 허덕이며 작은 방 한칸을 빌어 모두 함께 지내야 했다.

다른 형제들과 마찬가지로 12살에 구두닦이로 일을 시작한 룰라는 14살 때 정식 근로자 자격을 얻어 금속공장에서 일하게 된다. 룰라는 이 때 금속공장에서 밤샘 선반작업을 하던 중 잠시 졸던 직장 동료의 실수로 왼손 새끼손가락을 잃었다. 금속공장에서의 하루 일과는 12시간의 고된 노동의 반복이었으나 룰라는 밤마다 국가에서 운영하는 직업훈련소에 다니며 1963년 선반공 자격증을 취득한다.

선반공 자격증을 취득한 룰라는 1966년 빌라리스 금속공장으로 직장을 옮겼는데 이 때 맏형 프레이 쉬쿠의 권유로 노조에 가담하며 정치적 야망을 갖기 시작한다. 그해 그는 같은 근로자였던 마리아 지 로우르지스와 결혼했으나 입원 치료를 제대로 받지 못한 아이와 산모는 불행히도 출산 도중 모두 사망하고 말았다.

룰라는 이런 고통을 잊으려고 애를 쓰듯 노조활동에 적극성을 보이며 1972년 상 베르나르두 두 캄푸 이 지아데마 금속노조의 제1서기로 당선된다. 그는 2년 후인 1974년 지금의 부인인 마리자를 만난다. 당시 그녀는 한명의 아들을 둔 미망인이었으며, 룰라도 이미 루리앙이라는 소녀의 아빠였다. 룰라와 마리자는 결혼 후 지금까지 세 명의 자녀를 두었다.

***군사독재에 맞선 노조활동으로 투옥·1980년 노동자당 결성**

남다른 노조 활동을 계속한 룰라는 마침내 1975년 10만명의 노조원이 가입한 브라질 철강노조 위원장으로 당선된다. 1978년까지 연이어 위원장으로 선출된 룰라는 상파울루 인근 도시들(일명 ABC지역)에서 금속노조 파업을 주도한다.

군사독재 시대 속에서 노조위원장으로 맹활약하던 룰라는 갑자기 투옥되기도 했다. 그가 입었던 죄수복 이름표에는 '12717'이란 수감번호가 붙었다. 당시 룰라를 연행했던 경찰관은 "대통령이 된 노동운동가를 누가 상상했겠는가"라며 과거의 룰라를 연상했다.

군부 독재 치하였던 당시 브라질은 살벌한 분위기였으나 그럴수록 투옥생활을 거친 그의 노조활동은 힘을 더해 갔고 룰라는 1980년 2월 10일 상파울루의 전통있는 고등학교인 시온 고등학교에서 노동자당(PT) 결성을 알리는 선언문을 발표하고 다른 노조운동가들과 지식인들을 규합해 노동당을 출범시킨다.

1980년대 군정의 말기 현상이 나타나던 시기에 룰라와 PT는 브라질 정계의 새 세력으로 등장하는 데 성공한 것이다.

노동자당 홈페이지(www.pt.org.br)는 룰라와 PT가 1983년 단일노조연맹(CUT) 결성에 참여했고 다음 해에는 유명한 민주화운동인 '디레타스 자(Diretas Ja. 당장 직접선거를 이란 뜻)'에 적극 가담해 군정에 반기를 드는 데 앞장섰다고 밝히고 있다.

***1986년 하원의원 당선과 3전4기의 대선 승리**

1986년 권력이 민정으로 넘어온 뒤 룰라는 연방하원에 출마해 브라질 전역에서 가장 많은 득표(65만여표)를 기록하며 화려하게 '현실 정치판'에 등장한다. 이후 1989년 룰라는 30여년만에 브라질에서 처음으로 실시된 대통령 직접선거에 노동자당 후보로 출마해 47%(3천1백만여표)의 높은 지지를 얻었으나 자유당의 페르난두 콜로르 후보에게 석패한다.

룰라는 94년과 98년에도 대통령 선거에 출마해 각각 25%와 33%의 득표율을 기록하며 페르난두 엥히키 카르도소 현 대통령을 위협했고, 마침내 3전4기라는 말처럼 4번째 도전에서 60%가 넘는 지지율로 사회민주당(PSDB)의 조제 세하(60) 후보에게 압승을 거두면서 극적인 승리를 거머쥐었다.

룰라가 4번째 도전에서 성공할 수 있었던 이유는 그가 극좌파 이미지를 벗고 중도좌파를 지향하며 '사랑과 평화의 전도사'로 탈바꿈한 데 있다. 오랜 노동운동가 생활을 거친 룰라는 대선에 처음 출마한 1988년까지도 카를 마르크스 공산주의 이론에 충실한 극좌파 노동운동가이자 급진과격 정치인이었다.

***룰라의 변신 '급진좌파에서 사랑과 평화의 전도사로'**

룰라는 사회주의국가인 쿠바의 피델 카스트로 국가평의회 의장을 '이상(理想)'으로 여겼으며 브라질의 무토지 농민·노동자운동(MTST)을 콜롬비아의 좌익 반군단체에 비유하고 지주와 자본가들의 착취에 대항하는 이들의 활동을 공개적으로 비호해 왔다.

올해 57세인 룰라가 40대 후반까지 텁수룩한 구레나룻과 턱수염을 즐겨 기른 이유도 사상뿐 아니라 외모까지도 카스트로 의장을 닮아보겠다는 의지를 드러낸 것이었다고 한다.

가난했던 가정환경으로 인해 초등학교만을 졸업하며 정규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한 룰라는 천부적인 선동가 기질을 발휘해 노동자와 농민, 빈민층의 가슴을 파고드는 연설과 대중적 카리스마를 바탕으로 지지기반을 착실하게 다져왔다.

노동자와 농민 등 빈민층과 서민층에만 지지기반을 두었던 룰라는 3차례의 낙선 끝에 그들의 지지만으로는 한계가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그가 이번 대선부터 '평화와 사랑의 룰라'로 변신하며 노조와 농민뿐 아니라 정치인과 기업인, 지주계층까지도 포용하겠다는 정책과 이미지를 내세운 배경이다. 룰라는 변신을 시도했고, 보기좋게 성공했다.

룰라는 먼저 강경투쟁을 연상케 하는 카스트로식 구레나룻과 턱수염에 변화를 줘 '인자한 아저씨'로 이미지를 연출했고 투쟁 일변도였던 연설내용을 온건개혁쪽으로 바꾸었다. 미국을 라틴 아메리카의 자본과 인민을 수탈하는 신제국주의의 상징으로 몰아붙이며 미국 정부를 신랄하게 비판해온 룰라는 이번 대선에서 미국은 '협상의 상대'로 간주하는 등 비판의 톤을 낮췄다.

룰라는 국제통화기금(IMF)과 세계은행 등 다국적 금융기관에 대해서도 개발도상국을 착취하기 위한 선진공업국들의 '꼭두각시 기관'으로 간주하고, 채무 불이행 등을 공공연하게 선언해 IMF뿐 아니라 브라질내 금융인과 기업인들로부터 거센 비난을 받아왔다. 그러나 룰라는 이번 대선에서는 IMF와 세계은행 등에 대한 비판수위를 크게 낮추며 "그들과 브라질은 동반자 관계"라는 인식을 확산시켰다.

룰라는 또 지난 대선 때까지만 하더라도 공식석상에 자신의 부인을 동반하는 예가 거의 없었고 미소 대신 항상 경계하거나 긴장한 모습을 보였다. 그러나 이번 선거유세에는 시종일관 부인을 동반했고 파안대소하는 모습도 자주 보여 브라질 언론의 주목을 받기도 했다.

당연히 룰라의 변화에 대해 지금까지 그와 이념을 같이하던 순수 좌파 일각에서는 "변해도 너무 변한 것이 아니냐"는 비판론도 고개를 들고 있다. 이러한 비판에 대해 룰라는 최근 기자회견에서 "나는 '영원한 야당'으로 남기 위해 대선에 출마한 것이 아니라 정권을 잡고 우리의 뜻을 펼쳐보이기 위해 출마했다"며 "누구나 다 알고 있듯이 나는 분명히 야당이지만 반대자라고 해서 반드시 '추악한 얼굴'을 지닐 필요는 없다"고 해명했다.

룰라의 경제정책 참모인 기도 만테가는 "우리는 70-80년대가 아닌 21세기를 살아가고 있다"며 "노동자당의 정강이나 이념이 바뀌지는 않았지만 상황에 맞춰 변신할 줄도 알아야 하며, 그것은 때로는 '성숙'이라는 모습으로 나타나기도 한다"고 말했다.

***룰라의 과제 '브라질 경제위기와 빈부격차 해소'**

대통령의 꿈을 이룬 룰라에게 주어진 과제는 바로 어떻게 서로 상충하는 '가진 자'와 '못가진 자'의 이해관계를 잘 조정하면서 국정을 운영해 나갈 수 있느냐에 있다. 이런 점에서 브라질의 일부 정치평론가들은 룰라에 대해 "그가 사회민주주의를 지향하겠지만 '양의 탈을 쓴 늑대'가 될 수도 있다"고 평가한다. 대통령으로서 한 쪽을 선택해야만 하는 정책의 기로에 섰을 경우 어느 한 쪽에 등을 돌릴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다.

브라질 국민들이 룰라를 선택한 이유는 카르도소 대통령 집권 8년동안 두배인 8.3%까지 치솟은 실업률과 실질임금의 지속적인 하락, 그리고 통제불능 상태에 빠진 사회폭력의 급증 때문이다.

하지만 문제는 룰라가 이런 산적한 문제들을 해결하는데 필요한 여력이 없다는 점이다. 현재 룰라의 노동자당은 연립 좌파정당들의 표를 합해도 브라질 국회 과반수를 차지하지 못한 상태이며 중도우파인 카르도소 대통령 지지정당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 또 브라질은 IMF에 긴축재정을 통해 최근 차입한 3백40억달러를 갚겠다는 약속을 지켜야 한다. 이같은 우려 때문에 브라질 통화인 레알은 선거 전 거의 40%까지 평가절하됐다.

하지만 이러한 경제적·정치적 난제에도 불구하고 임금인상과 일자리 창출을 희망하는 브라질 노동자와 농민, 실업자들의 요구는 더욱 거세지고 있다. 정치평론가인 알렉산드레 바로스는 독일 일간지 쥐드도이체차이퉁(SZ)과의 인터뷰에서 "브라질에 좌파인기주의를 위한 자리는 없다. 룰라는 베네수엘라 우고 차베스 대통령이 취한 길보다는 토니 블레어 영국 총리가 선택한 길을 갈 가능성이 높다"고 전망했다.

***FR "룰라는 용의 피로 목욕한 승리자 타입"**

'삼바의 나라' 브라질 서민들의 희망인 룰라는 대통령으로 선출된 후 가진 TV연설을 통해 "브라질은 아메리카 대륙의 발전을 위해 특별한 역할을 수행할 수 있다"며 "우리는 아메리카 대륙 국가들이 경제적으로 사회적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만드는 평화의 세계를 건설할 수 있다"고 말했다.

과연 룰라 대통령이 어떻게 산적한 브라질의 난제들을 헤쳐나갈지 주목된다. 다행인 점은 룰라가 어려운 역경에도 굴하지 않고 성공을 거듭한 입지전적 인물이라는 점이다. 독일 일간지 프랑크푸르터룬트샤우(FR)는 룰라를 '용의 피'로 목욕한 사람과 같다며 승리자 타입이라고 평가했다.

(위 기사는 연합뉴스와 독일 시사주간지 슈피겔, 일간지 SZ와 FR의 보도내용을 종합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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