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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미군에게 돌을 던질거야" "나는 아마 칼을 던질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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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미군에게 돌을 던질거야" "나는 아마 칼을 던질걸"

한 미국 언론인의 이라크 민심기행

"겨우 시가전 훈련과정을 마친 나자프시 민병대의 일원 카라르 하산(22)은 "마지막 피 한방울이 떨어질 때까지 싸울 것"이라고 말했다. 자부심에 가득 찬 하산의 말은 이라크 곳곳에서 들을 수 있었다.

카르발라 시장에서 만난 농부 하킴 알-칼은 "누가 우리를 위협할 경우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고 있다"며 셔츠 속에서 권총을 보여줬다.

바스라의 여자 박사인 투하 파룩은 "나는 사우디아라비아의 여성을 볼 때 미안함을 느낀다. 그들은 배울 수 없으며 자신을 향상시킬 수 없다"고 말했다. 바스라 산부인과 재활의대의 산부인과 학생 26명중 25명이 여성이며, 건너 마을 바스라 대학의 학생중 54%가 여학생이다.

나는 바그다드의 한 영어책 중고서점에서 두 젊은 여성, 달리아 압둘라힘과 인티다르 압둘라힘을 만났다. 달리아가 낭만소설을 즐기는 동안 인티다르는 토마스 하디를 읽고 있었다. 미군이 공격해 올 경우 어떻게 할 것인지를 그들과 이야기했는데 달리아는 "나는 미군에게 돌을 던질 거야"라고 말했고 인티다르는 가볍게 "나는 아마 칼을 던질 거야"라고 대답했다.

카르발라에서 농사를 짓는 라힘 마지드는 "미국은 지배하기 원하는 새로운 제국주의 세력"이라고 말했다. 나자프의 상인인 나셈 자와드는 "미국은 우리를 도우려 오는 것이 아니라 석유 때문에 오는 것"이라고 불만을 털어놨다.

한 분노한 대학총장은 내게 연필을 보여주며 "이것이 보이냐"고 물었다. 그는 "학생들에게 필요한 연필을 수입하는 데 15개월이 걸렸다"고 말했다(시간이 오래 걸린 이유는 관료주의와 연필 심에 쓰이는 흑연이 무기제작에 사용될 수 있다는 가능성 두 가지였다)."

위의 글은 반미 성향을 지닌 중동지역의 언론인이 쓴 글이 아니다. 미국 주류사회를 가장 잘 대변하고 있다는 뉴욕타임스의 칼럼니스트 니콜라스 크리스토프가 지난 9월말부터 10월초에 걸쳐 이라크 여러 곳을 직접 돌아다니면 쓴 글 중에 인용된 이라크 국민들의 목소리이다.

부시 행정부의 이라크 침공이 거의 기정사실화된 마당에 '적국'의 언론인이 이라크를 현지 취재했다는 것도 놀랍지만 그가 전하는 이라크의 실상은 대부분의 서방매체에서는 보고 듣기 어려운 것들이 많다.

그가 이 일련의 칼럼에서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미국의 이라크 군사정복은 가능하지도, 바람직하지도 않다는 것이다. 그는 이렇게 말한다.

"첫째 이라크 사람들은 후세인을 좋아하지 않으며 신뢰하지 않는다. 특히 혜택을 받지 못하는 지역 주민들은 더욱 그러했는데 많은 이라크인들은 후세인이 사라지기를 희망하고 있다.

둘째 이라크인들은 사담보다 미국 정부를 더 미워한다. 그들은 사담보다 미국 정부의 의도에 대해 더 불신하고 있다."

그는 또 부시에 의해 '살인 독재자'로 명명된 후세인 이라크 대통령이 이라크 최대의 베스트셀러 소설가이며 예술애호가라는 사실, 이라크 여성의 지위가 이슬람권에서 가장 나은 편에 속한다는 새로운 사실 등도 소개하고 있다.

20세기의 양대 혁명인 러시아혁명과 중국혁명에 대한 가장 생생한 르포가 모두 미국 언론인들에(존 리드와 에드가 스노) 의해 씌어졌다는 사실, 그리고 이들의 후배인 크리스토프가 언론인의 양심에 따라 최대한 객관적이며 공정한 보도를 하고 있다는 사실은 한국의 언론인들에게 무엇을 말하는가.

미국의 위대함은 막강한 군사력에 있는 것에 아니라 크리스토프처럼 진실보도를 추구하는 언론인들 때문이 아닐까.

크리스토프는 이라크 전역을 여행하며 경험한 전쟁과 후세인 정권에 대한 이라크 국민들의 생각과 반응, 정권 전복에 대한 전망 등을 담은 4차례의 칼럼과 함께 미국에 귀환한 후 제2 걸프전을 추진하는 부시 행정부에 대해 또 한편의 칼럼을 썼다.

그는 지난 89년 중국 천안문 사태에 대한 탐사보도로 부인 셰릴 우던(Wudunn)과 함께 1990년 퓰리처상을 공동수상했다. 부부가 공동 수상한 경우는 풀리처상 역사상 전무후무한 일이다.

국경을 초월한, 진정한 언론인 크리스토프와 함께 이라크 민심여행을 떠나보자.


***시가전이 벌어진다면/9월 27일, 바스라에서**

내가 이라크 여행을 시작한 것은 미국의 이라크 침공이 백악관이 기대하듯 '누워서 떡먹기'인지를 알아보기 위해서였다. 20달러를 주고 이라크 수도 바그다드에서 미군이 비행금지구역으로 지정한 항로를 통해 이라크 남단 바스라로 향하는 한 이라크 항공사의 비행기를 탔다.

미국의 전쟁계획은 어느 비행기든 비행금지구역을 위반하면 발포한다고 돼 있다. 하지만 이라크 사람들은 얼음처럼 냉정한 자세를 유지한 채 개의치 않는 모습이었다. 그들은 미 공군기가 민간항공기를 공격하지 않으리라는 것과 위반시 발포라는 협박은 '뻥'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한 이라크 비행사는 걱정하고 있는 내 모습이 즐거운 듯 "비행금지구역을 통제하는 미군 전투기들은 때때로 무선통신을 통해 우리에게 경고한다. 그들은 '당신은 지금 비행금지구역으로 들어가고 있으니 항로를 변경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러면 우리는 '이 곳은 이라크의 영공이며 우리는 통과할 것'이라고 말한다"고 설명했다.

미국이 우려하는 것은 이라크의 전투기 조종사들이 전쟁에 참여하는 것이다. 이라크는 미국이 학교와 회교사원, 그리고 주민 거주지에는 폭격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따라서 이라크 군인들이 숨어 있을 장소도 아주 많이 있는 셈이다. 지난 걸프전 때 미군은 사막에 노출된 적들을 소탕할 수 있었지만 이번 전쟁에서 이라크는 다른 방법을 선택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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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스라에 도착한 나는 이라크가 미군 침공시 공격루트가 될 쿠웨이트 접경지대를 어떻게 수비하고 있는지를 살펴보기 위해 '죽음의 고속도로'를 타고 국경지역으로 차를 몰았다. 그러나 내가 목격한 군인들은 미국의 시내 고등학교 입구를 연상시키는 몇 명의 초병이 전부였다.

하지만 이같은 이라크의 준비상황이 전쟁에 대한 대비가 부족함을 의미하진 않는다. 이라크 국경수비대를 강화하는 대신 시내 곳곳에 군대를 숨겨놓고 있어 미국의 공중 포격은 민간인들의 생명을 담보로 하지 않는 한 가능하지 않다. 5백만명의 시민이 살고 있는 바그다드의 사담 후세인은 오사마 빈 라덴보다 훨씬 유리한 곳에 은신처를 마련하고 있는 것이다. 후세인은 더욱이 한 곳에서 이틀밤을 보내지 않는다.

한 이라크 관리는 생각에 잠긴 채 "미국인들은 공중폭격에 능하다. 그러나 어느 날엔가 그들은 지상으로 내려올 수밖에 없다. 우리는 그 때를 기다리고 있다. 이라크 국민은 모두 집안에 권총을 갖고 있으며 일부는 소총(칼라시니코프)을 휴대하고 있다. 또 모든 이라크인들은 전투경험이 있다. 미군들이 지상전을 펼친다면 어떻게 되는지 한번 보자"고 말했다.

그같은 상황은 악몽이 될 것이다. 지난 걸프전에서 드러났듯이 폭탄투하로 교량과 병영은 초토화시킬 수 있었지만 내부 쿠데타가 일어날 정도의 큰 행운이 뒤따르지 않는 한 우리는 후세인을 죽일 수 없다. 지상에서 후세인을 사냥하는 것은 아프가니스탄에서 오사마 빈 라덴을 찾는 것만큼 어려울 것이며 더 많은 피를 요구할 것이다.

미군의 마지막 지상전 경험은 소말리아 모가디슈에서 벌어진 전쟁 당시 훈련받지 않은 암살단과의 전투로 거슬러 올라간다(당시 수 명의 미군이 사망했고 이들의 주검은 개처럼 시가지에 끌려다녔다). 하지만 이번 전쟁은 생화학무기를 사용할 가능성이 있는 군대와의 전투이며 40만명의 정규군과 7백만명의 민병대와 싸우는 것이다.

겨우 시가전 훈련과정을 마친 나자프시 민병대의 일원 카라르 하산(22)은 "마지막 피 한방울이 떨어질 때까지 싸울 것"이라고 말했다. 자부심에 가득 찬 하산의 말은 이라크 곳곳에서 들을 수 있었다.

카르발라 시장에서 만난 농부 하킴 알-칼은 "누가 우리를 위협할 경우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고 있다"며 셔츠 속에서 권총을 보여줬다.

대부분의 이라크인들은 사담을 좋아하지 않는 것 같으며 과반수는 전쟁중 침대 밑에 숨어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허풍쟁이들의 말중 일부만 현실화된다고 가정할 경우 상황은 심각해진다. 더욱이 몇몇 부족은 박격포와 자동소총으로 무장하고 있다. 탱크를 멈출 수 없을지는 모르지만 그들은 미군에 심각한 타격을 줄 수 있다.

미국의 침공은 결국 미풍에 그칠 가능성이 높은 것이다. 미국은 이런 모든 경우에 대비하고 있는가.


***이라크의 작은 비밀/10월 1일, 바그다드에서**

백악관은 이라크가 전체 중동지역에서 가장 억압적인 국가라고 말하고 있다. 그러나 이는 당신이 남자일 경우에만 해당하는 말이다.

얼마나 많은 아랍 국가들이 여성들에게 보다 억압적인 국가인가를 알아보기 위해 미군의 공격이 시작됐을 경우를 가정해보자. 미 지상군이 사우디아라비아를 거쳐 이라크로 들어간다고 생각해 보자.

미 여군들은 사우디 영토 안에 있는 한 원칙적으로 운전을 할 수 없다. 또 아바야(머리부터 발목까지 덮는 검정색 긴 옷)를 입으라는 충고를 받게 될 것이다. 하지만 국경을 넘어 적지인 이라크 땅에 들어서면 그들은 갑자기 자유의 땅에 들어선 것과 같은 느낌을 갖게 될 것이다. 이라크에서는 여성의 운전이 허용되며 얼굴을 가릴 필요도 없고 남자들을 '바보(idiots)'라고 부를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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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라크 여성들은 군대에서도(비전투 병과의 경우) 책임자를 맡는 경우가 많다. 이라크 생물학 무기 개발의 책임자는 여성인 리하브 라시드 타하 박사인데 그녀는 '세균 박사(Dr. Germ)'라는 별명으로 불린다.

이라크 바그다드에서는 남성이 여성을 멈추게 하고 길을 물어도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다. 남성과 여성들은 함께 회교사원에서 기도하고 식당에 가고 수영하며, 교제하고 말싸움한다. 여학생들은 방과 후에 남학생들과 마찬가지로 운동을 즐기며 이라크 텔레비전은 남성 스포츠와 같이 여성 스포츠도 중계한다.

이라크 여자축구 국가대표팀 주장인 나디아 야세르는 "누구도 스포츠가 남자만을 위한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물론 내가 축구를 한다고 했을 때 어머니는 조금 걱정을 했었다. 하지만 내가 계속 주장하자 그녀는 받아들였고 나를 위해 기도하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내 말은 무모한 전쟁과 정책으로 수십만명의 남자와 여자들을 죽인 사담 후세인을 칭찬하려는 것이 아니다. 이라크 여성들의 사정은 후세인 축출 이후 더 좋아질 것이며 어떤 경우에도 이라크 여성들의 상대적 평등은 후세인의 리더십과 별 다른 관계가 없이 보장될 것이다.

이라크의 문명화의 길을 걸어온 기간은 영국의 두배이며 첫 여성박사가 나온 것은 1922년의 일이다. 이란-이라크 전이 발발했을 때 이라크는 남자들은 전선으로 보내고 여자들은 공장 노동자로, 버스운전사로, 그리고 정부관리로 일하게 했다.

우리는 지배자의 악령과 적이라는 이유로 이라크를 악마로 취급해서는 안된다. 오히려 미국의 중동 연합국들이 여성을 억압하고 있는데 우리는 여성의 인권은 도외시한 채 쿠르드족과 시아파의 인권만을 운운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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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중동지역에서 여성들은 짓밟혀도 가만히 있는 발판처럼 취급당하고 있는 반면 이라크는 어떻게 아랍 국가가 여성에게 기회를 제공하며 이슬람 원리에 충실할 수 있는지 본보기를 보여주고 있다.

바스라의 여자 박사인 투하 파룩은 "나는 사우디아라비아의 여성을 볼 때 미안함을 느낀다. 그들은 배울 수 없으며 자신을 향상시킬 수 없다"고 말했다. 바스라 산부인과 재활의대의 산부인과 학생 26명중 25명이 여성이며, 건너 마을 바스라 대학의 학생중 54%가 여학생이다.

이라크 근로여성들은 6개월간의 완전 출산휴가를 가진 후 6개월간은 반만 일한다. 작업장에서는 정부보조금이 가능하다. 미국의 동맹국 이집트와 나이지리아에서 아직도 행해지는 여성할례는 이라크에서 찾아볼 수 없다.

우리가 이라크를 야만적이고 억압적인 국가라는 이유로 침공할 경우 미국의 동맹국인 다른 회교국가들은 이라크같은 깡패국가가 어떻게 여성들에게 그들보다 더 많은 여성평등을 보장하고 있는지를 목격하고 크게 당황할 것이 틀림없다.


***바그다드의 돌들/10월 4일, 바그다드에서**

워싱턴의 높은 곳에 있는 부시 대통령과 그의 자문관들은 미군의 이라크 공격시 많은 이라크인들이 거리에서 춤을 추며 미군을 환영할 것이므로 이라크 전쟁은 '누워서 떡먹기'라고 확신하고 있는 것 같다. 하지만 이는 이라크를 지나치게 오해한 것이다.

나는 바그다드의 한 영어책 중고서점에서 두 젊은 여성, 달리아 압둘라힘과 인티다르 압둘라힘을 만났다. 달리아가 낭만소설을 즐기는 동안 인티다르는 토마스 하디를 읽고 있었다.

미군이 공격해 올 경우 어떻게 할 것인지를 그들과 이야기했는데 달리아는 "나는 미군에게 돌을 던질 거야"라고 말했고 인티다르는 가볍게 "나는 아마 칼을 던질 거야"라고 대답했다.

두 여성이 한 말은 내가 만난 이라크 국민 대부분의 의견과 일치했다. 만일 미군 전략이 이라크인들로부터의 지지를 가정하고 세워졌다면 백악관은 앞으로 수년간 우리를 괴롭힐 엄청난 실수를 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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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라크 북쪽의 모술로부터 남부 바스라까지 다양한 사람들과 대화를 나눠본 결과 나는 두 가지 결론에 도달할 수 있었다.

첫째 이라크 사람들은 후세인을 좋아하지 않으며 신뢰하지 않는다. 특히 혜택을 받지 못하는 지역 주민들은 더욱 그러했는데 많은 이라크인들은 후세인이 사라지기를 희망하고 있다.

둘째 이라크인들은 사담보다 미국 정부를 더 미워한다. 그들은 사담보다 미국 정부의 의도에 대해 더 불신하고 있다.

카르발라에서 농사를 짓는 라힘 마지드는 "미국은 지배하기 원하는 새로운 제국주의 세력"이라고 말했다. 나자프의 상인인 나셈 자와드는 "미국은 우리를 도우려 오는 것이 아니라 석유 때문에 오는 것"이라고 불만을 털어놨다.

이라크와 같은 독재국가에서 여론을 정확하게 평가하기란 대단히 어려운 일이다. 기자들의 취재는 대부분 정부관리들에 동행하에 이뤄지며 후세인을 비판하는 사람은 혀가 잘릴 위험을 감수해야 한다. 이라크인들과 제대로 된 대화를 나누기 위해선 아락(arak)이라는 이라크 전통 술이 필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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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라크는 아직 조지 오웰의 소설에 나오는 북한과 같은 전체주의 국가는 아니다. 이라크인들은 공개적으로 BBC 방송을 들으며 이란 라디오를 청취한다. 또 뉴스와 함께 대중음악을 보내주는 라디오 사와(Sawa)라고 불리는 새로운 미국방송도 듣는다. 그들은 지금 세계에서 무슨 일이 진행중인지 알고 있으며 전쟁에 대한 걱정을 했고 사담 후세인이 한 일에 대해 증오하기도 했다.

부패는 만연하고 도덕은 전체 사회시스템이 붕괴했을 정도로 찾아보기 힘들다. 이라크 화폐인 디나르의 화폐가치가 떨어져 방값을 치르려고 했을 때 나는 20파운드(9kg) 정도의 디나르를 담은 쇼핑백을 질질 끌어 호텔 프론트에 올려야 했다.

아직까지 나는 후세인을 위해 싸우겠다는 사람은 별로 만나보지 못했다. 그러나 수많은 애국주의자들이 이라크를 지키기 위해 양키들과 싸우겠다고 한다. 평범한 이라크인들이 내게 매우 친절하게 해줬는데 그들은 미국에 의한 11년간의 경제제재 조치에 대해서는 화가 나 있었다.

한 분노한 대학총장은 내게 연필을 보여주며 "이것이 보이냐"고 물었다. 그는 "학생들에게 필요한 연필을 수입하는 데 15개월이 걸렸다"고 말했다(시간이 오래 걸린 이유는 관료주의와 연필 심에 쓰이는 흑연이 무기제작에 사용될 수 있다는 가능성 두 가지였다).

더욱 문제인 것은 무기로 사용될 수 있다는 가능성 때문에 (식수 정화에 쓰이는) 염소와 같은 화학류의 수입이 어렵다는 점이다. 유엔식량농업기구에 따르면 의약품 부족으로 소아 사망률이 두 배로 늘었다고 한다. 또 이라크 국민들은 모두 남부도시 바스라가 암과 어린이 백혈병, 기형아 탄생 등으로 고통받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일부 외국인과 이라크 전문가들은 그 원인이 1차 걸프전 당시 미국이 포탄에 사용한 열화우라늄에 있다고 비판하고 있다.

바스라의 아미르 니싸 산부인과 의사는 "우리는 미국을 비난한다. 이라크에 경제제재를 가한 것은 미국이다. 모든 이라크인들은 100% 미국을 비난하고 있다"고 말했다.

만일 후세인이 이라크 국민들이 자신을 좋아할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망상이다. 그러나 만일 부시 대통령이 미국의 공격과 점령이 이라크인들의 환영으로 쉽게 이뤄질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그 또한 자기기만에 불과하다.


***내가 만난 이라크 소설가/티크리트, 10월 8일**

이라크의 베스트셀러 소설가이자 시인인 이 사람은 류트(현악기의 일종) 연주를 즐기며 헤밍웨이의 열렬한 팬이다. 그는 현대미술과 조각, 건축 등에 대해 해박한 지식을 가진 예술 후원자이기도 하다.

하지만 만일 어떤 비평가가 그의 소설을 경솔하게 비판한다면 그는 비평가의 혀를 자르고 그의 전 가족들을 죽음으로 몰 것이다. 이후 그는 그러한 학살을 찬양하는 시를 쓸 것이다.

이 소설가는 누구인가. 바로 인간의 이중적 성격을 띠고 있는 사담 후세인이다. 그는 자식들(우다이와 쿠사이)을 음악회에 데려가는가 하면, 강하게 키우기 위해 감옥으로 데려가 사람들이 고문받는 모습을 지켜보게 한다.

서방세계의 사람들은 대체로 후세인에 대해 평면적인 인상만을 갖고 있다. 그래서 나는 후세인에 대한 입체적 조명을 위해 이라크를 돌아다녔다.

나는 먼저 사담 후세인이 출생하고 성장한 이라크 북쪽 도시 티크리트를 찾았다. 사담은 티크리트 출신 인사들, 특히 친척들을 군대와 정부 요직에 중용했다. 이것이 바로 미국의 침공이 내부 쿠데타를 일으킬 것이라는 데 대해 회의를 갖게 하는 이유다. 사담에 의해 중용된 사람들은 사담이 끝나면 자신들도 끝장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사담은 티크리트 부족의 족장처럼 이라크를 지배하고 있다. 부족간의 싸움과 부인들간의 싸움은 때로 살인을 일으킬 정도로 격렬하다.

이라크 정부가 티크리트 출입을 금지해 나는 다른 도시로 우회하는 방법을 통해 두 차례 잠깐씩 티크리트를 살펴볼 수 있었다.

티크리트 곳곳에는 탱크들이 배치돼 도시 방어에 우선권을 두고 있는 듯 보였다. 실제로 후세인은 티크리트 사람들이 바그다드보다 자신을 배반할 가능성이 없기 때문에 그의 마지막 저항지를 티크리트로 정할 것이다.

티크리트와 관련된 사실 중 중요한 것은 후세인이 티크리트가 나은 가장 유명한 인물이 아니라는 점이다. 티크리트는 1187년 십자군 전쟁 당시 기독교군을 물리친 술탄 살라딘(Saladin)의 탄생지다. 살라딘은 전사로서 뿐만이 아니라 문화의 인물로도 추앙받고 있다. 제2의 살라딘이 되겠다는 사담 후세인의 열망은 그의 문학적 군사적 야망을 대변해준다.

사담의 첫 소설은 2001년 출판됐다. 그는 이후 두 편의 소설을 더 썼는데 모두 무명이다. 하지만 누가 저자인지 를 모든 사람들이 알고 있다.

사담의 첫 소설을 연극으로 만든 사미 압델 하미드는 "집필은 그의 취미다"며 "그는 문학을 좋아하고 시를 좋아한다"고 말했다.

사담의 첫 번째 소설 '자비바와 왕(Zabiba and the King)'은 영웅적인 사담을 왕으로 표현했다. 자비바라는 여성은 이라크 국민을 상징한다. 소설에서 자비바를 능욕하는 폭군은 미국을 상징한다. 그의 두 번째 소설 '갇혀진 요새'는 한 영웅이 이라크를 침략하는 적에 대항해 싸우는 모습을 그렸다. 이라크가 침략자들의 무덤이 될 것이라는 메시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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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최근의 소설 '인간과 도시'는 사담의 자전적인 이야기로 그의 할아버지가 얼마나 용감하게 오스만 투르크 제국 치하에서 터키족과 싸웠던가를 그렸다.

이같은 과대망상증에서 우리가 얻을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사담이 무엇 때문에 이같은 수수께끼를 냈는지 알기는 어렵다. 그 의미는 사담이 소멸의 위험을 무릅쓰려고 하지는 않을 것이나 그가 아들 쿠사이로 세습되는 거대한 아랍제국 건설을 희망하고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여전히 사담에 대한 정확한 진실을 알아내기는 어렵다. 나는 사담의 기괴함을 뛰어 넘는 다른 깊이를 찾기 위해 모든 이라크를 돌아다녔으나 결국 실패했다.


***괴물들의 회전문/10월 11일, 뉴욕에서**

부시 대통령과 딕 체니 부통령은 사담 후세인이 너무 잔인하고 끔찍할 정도로 묘사하고 있어 마치 그들이 몇해동안 사담에 대해 많은 걱정을 해온 것처럼 여겨진다.

그런데 체니 부통령이 석유회사인 핼리버튼을 운영할 때 핼리버튼은 다른 어떤 회사보다도 많은 장비를 이라크에 판매했다. 파이낸셜타임스 2000년 11월 3일자 보도에 따르면 핼리버튼의 한 자회사는 98년부터 99년 사이 미국 제재위원회의 승인을 거쳐 이라크와 2천3백80만달러 어치의 석유 관련 장비를 판매했다.

내가 보기에 이는 불법적인 것은 아니나 천박한 짓이다. 이라크 전쟁을 앞두고 한번쯤 깡패국가에 대한 우리의 인식변화를 돌아볼 필요가 있다. 오늘날 공적 1호인 이라크 정부는 불과 수년전만 해도 딕 체니 부통령이 버팀목이 돼 주던 정부였던 것이다.

보다 크게 보면 미국은 괴물로 표현되는 사담과 오랜 역사를 갖고 있다. 1980년 미국은 위성정보를 제공하며 이라크가 이란과의 전쟁에서 이란 군인들에게 화학무기를 사용할 수 있도록 했다. 사담이 1988년 신경가스와 최루가스로 쿠르드족을 공격할 때 레이건 행정부는 주로 이란을 비난했다.

오늘날 미국은 이라크를 우리의 삶을 위협하는 적으로 간주하고 있다. 하지만 변한 것이 무엇인가. 변한 것은 이라크가 아니라 9.11 이후 우리 자신의 민감함이다.

워싱턴에 있는 석유금융회사의 분석가 라드 알카디리(Alkadiri)는 "무엇이 이라크와의 전쟁으로 몰아가는가. 동인은 이라크의 도발이 아니다. 후세인 정권은 지금까지의 방향을 고수하고 있을 뿐이다. 이를 부추겨온 것은 바로 미국의 국내 유권자들이다"고 말했다.

***크리스토프는 누구**

저자 니콜라스 D. 크리스토프(43)는 1984년부터 뉴욕타임스에서 일했으며 홍콩과 베이징, 도쿄 지국장을 역임했다. 2000년 미 대선 때는 조지 부시 대통령의 선거캠페인 보도를 담당했다.

크리스토프는 지난 90년 중국의 민주화운동인 천안문 사태를 부인 셰릴 우던(Wudunn)과 함께 커버스토리로 다루며 공동 퓰리처상 수상자가 됐는데 부부 공동수상은 지금까지 크리스토프 부부가 처음이자 마지막이다. 크리스토프는 이외에도 해외리포트에 주는 조지 폴크상과 해외언론상 등을 수상했다.

1959년 4월 27일 오레곤주의 버찌 농장에서 태어난 크리스토프는 1981년 하바드대를 졸업하며 우등상(Phi Beta Kappa)을 받았다. 그는 로즈 장학생으로 옥스퍼드에서 법학을 전공하기도 했으며 카이로의 아메리카 대학에서 아랍어 졸업장을 받았다.

크리스토프 부부는 '깨어나는 중국: 일어나는 강대국 영혼의 전쟁(China Wakes: The Struggle for the Soul of a Rising Power(1994)'과 '동양으로부터의 천둥: 일어나는 아시아의 초상화(Thunder from the East: Portrait of a rising Asia(2000)'의 공동 저자다. 크리스토프 부부는 세 아이를 두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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