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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풍' 바라보는 조ㆍ중ㆍ동의 고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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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노풍' 바라보는 조ㆍ중ㆍ동의 고민

예상밖 노무현 태풍 "계속 등돌릴 순 없어..."

노무현 바람이 거세지며 한국의 주류언론을 자처하는 '조중동'의 대응이 주목을 받고 있다. 이들 보수언론들은 정도의 차이가 있긴 하지만 그동안 노무현 후보를 정가의 이단아로 취급하며 그의 행보를 애써 무시해 왔다. 그러나 자신들의 푸대접에도 불구하고 최근 노무현 현상이 거세지면서 그의 집권가능성까지 현실화되는 상황이 전개되자 과연 이같은 상황에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내심 당혹스러워 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노풍'으로 불리는 상승세를 타고 있는 노무현 민주당 상임고문은 현재 각종 여론조사에서 이회창 한나라당 총재와의 격차를 거의 20% 포인트 차이로 벌리며 지역구도로 고착돼 있는 기존 정치판의 패러다임 자체를 흔들어놓고 있다. 진보를 표방하는 노 후보의 상승세가 지역정당 등으로 대변되는 현실 정치판도의 변화를 갈망하는 젊은 세대와 개혁세력을 중심으로 압도적인 지지세를 구축하고 있어 기존 보수언론과 정치인들에게 심각한 위협이 되고 있는 것이다.

***조선, '노풍' 관망하며 우회적 비판**

개혁과 진보라는 정체성으로 대표되는 노 후보와 가장 대척점에 놓여 있는 언론사는 조선일보. 노 후보는 그 동안 수차례 방송토론이나 언론 인터뷰 등을 통해 공개적으로 조선일보와의 적대관계를 표명해 왔으며 지금도 조선일보와의 직접인터뷰는 거절하고 있다.

한국 신문중 최대 발행부수를 자랑하며 한국사회의 여론을 주도한다는 조선일보의 고민은 무시할 수 없는 노 후보의 대중적 지지도에 편승할 수도 없고, 그렇다고 상당한 지지를 얻고 있는 노 후보를 공격함으로써 개혁세력에 등을 돌리며 수구·보수로 낙인찍히는 위험을 감수하기도 어려운 현실적 상황에 있다.

최근 지면상으로 드러나는 조선일보의 노무현 관련보도는 '관망형'이자 '예의주시형'으로 평가할 수 있다. 급격한 정치판의 변화를 그대로 따라가며 있는 사실만을 중계하는 데 그치고 있으며 특별히 노 후보를 자극하는 기사는 자제하고 있는 형국이다.

그렇다고 조선일보가 적대관계를 천명한 노 후보에게 우호적인 입장으로 변화된 것은 아니다. 조선일보의 노무현 때리기는 직접적인 비판보도가 아닌 이인제 후보측의 노 후보 비판 인용과 한나라당이나 이회창 총재에 대한 훈수를 통해 답답함을 토로하는 우회적인 방법으로 표현되고 있다.

22일자 조선일보가 21일 열린 춘천KBS 주최 TV토론에서 이인제 후보의 노 후보 관련 비판과 주장을 1면과 3면, 4면 등 3개면에 걸쳐 자세하게 보도한 것이 대표적인 사례다. 조선일보는 이 후보의 주장을 빌어 노 후보의 재산과 사상문제("생수공장 투자-노 후보 귀족" 3면, "보안법 폐지 땐 혼란" 4면 등)를 집중 거론하고 나선 것이다.

또 하나의 대표적인 사례는 지난 16일자 류근일 칼럼 '이회창 대세론의 허점'이다. 류 주필은 먼저 한나라당의 내분을 지적하며 이에 대한 이 총재의 대응에 문제가 있다고 넌지시 타이른다. 류 주필은 이 총재가 "내가 무엇을 잘못했느냐"고 느낄 법도 하다며 "지금 반란을 일으키고 있는 인사들의 경우가 전적으로 천하위공의 명분만 띤 것은 아닐 수도 있기에 이 총재로서는 더욱 그러할 것"이라고 띄어준다.

현 난관을 극복하라며 이 총재에게 주는 류 주필의 훈수는 첫째 당 장악을 위한 확고한 응집력을 발휘하라, 둘째 YS와 JP에게 큰 절이라도 하며 밀어달라고 부탁하라, 셋째 빌라게이트로 불거진 집문제와 당내에서 지적되고 있는 측근독주 등에 대해 비정치적으로 방심하지 말고 정치적으로 처신하라 등이다. 아직 '비정치적'으로 순진한 이 총재가 최소한의 '정치적'자세를 갖춰야 한다는 것이다.

***노 후보측과 화해 기대하며 '검증 작업' 준비중**

뜨는 노무현에 대한 조선일보의 고민은 여기에 그치지 않는다. 현재 폭풍처럼 일고 있는 '노풍'을 차단할 마땅할 대안이 없는 것이다. 한 조선일보 기자는 "아직 공개되지 않은 노무현의 실체를 알릴 수 있는 파일이 있으나 언제 터뜨릴지가 고민"이라며 "노 후보가 대선주자로 나선 이상 철저한 검증과정을 거쳐야 하는 것 아니냐"고 말했다.

문제는 시기다. 한창 주가가 오르고 있는 노 후보를 섣불리 건드렸다간 오히려 역풍을 맞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일단 조선일보 내에선 현 시점에서 노 후보를 자극하는 기사는 쓰지 않으면서 있는 사실이나 주장들만을 전달한다는 암묵적 합의가 전제돼 있는 것으로 보인다.

조선일보는 진보성향인 노 후보의 중도로의 전향과 조선일보와의 화해를 기대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노 후보가 대통령이 되겠다고 나선 이상 민주당 대선 후보로 선출될 경우 개혁과 진보라는 정체성과 조선일보와의 적대관계를 고집할 수는 없을 것이라는 계산이다. 조선일보의 한 중견급 기자는 "노 후보가 민주당 대통령 후보로 결정되면 결국은 보수층도 끌어안는 중도적 입장으로 선회하지 않겠느냐"며 "조선일보와의 관계도 지금처럼 적대적 관계를 고집할 수는 없을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그러나 조선일보와의 관계에 대한 노 후보측의 입장은 분명하다. 유종필 공보특보는 21일 "특별히 조선일보의 태도에 변화가 없는 한 노 후보의 입장이 바뀌지는 않을 것"이라며 "현재 조선일보와는 직접적인 인터뷰를 거절하고 있는 상태이나 조선일보 출입기자와는 협조할 때는 협조하고 있으며 서로 불편함이 없는 상태"라고 말했다. 유 특보는 또 '노무현 X파일'에 대한 질문에 "두렵지 않다. 어떠한 검증작업에도 자신있다"고 밝혔다.

조선일보와 노 후보 모두 상대방이 먼저 변화하기를 기대하고 있는 것이다. 노 후보와 조선일보와의 악연은 본지가 21일 보도한 '노무현, 재산가인가 주간조선 92년 판결문 전문'에 나오듯이 91년 주간조선이 '통합야당 대변인 노무현 의원, 과연 상당한 재산가인가' 기사에서 일부 사실을 왜곡·과장하며 노 후보를 공격한데서 시작됐다.

노 후보는 또 '지난해 5월 대우자동차 부평공장 방문시 정부와 노동자 사이에서 중재를 서다가 노조원들로부터 계란세례를 받았는데도 조선일보가 보도하지 않았다는 점'과 '대선후보군에 대한 여론조사에서 두 번이나 자신을 배제하고 보도한 사실' 등을 들어 조선일보가 자신을 의도적으로 '왕따'시키고 있다고 비판했다. 조선일보에 대한 노 후보의 앙금이 어느 정도인지를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다.

조선일보와는 다르지만 보수층을 대변하고 있는 중앙일보와 동아일보도 노 후보의 약진에 대해서는 고민이 많다.

중앙일보가 21일 노 후보가 이회창 총재를 55% 대 33.6%로 크게 앞선 자체 여론조사 결과를 스트레이트와 해설기사 두 꼭지로 보도하며 개혁세력의 전면등장이라는 정치적 평가를 외면한 채 '빌라게이트' '며느리 원정출산' 등의 이 총재 악재와 거품론으로 '노풍'의 원인을 간략하게 분석한 게 대표적인 사례다. 중앙일보는 박근혜 의원의 한나라당 탈당 파장에 대한 자사 여론조사 결과에 대해서는 지난 2일 4꼭지에 걸쳐 여야 반응 등을 자세하게 보도한 바 있다.

중앙일보의 한 차장급 기자는 "노 후보의 바람은 한국 정치사에 남을 만한 큰 사건"이라며 "과거의 제도권 정당에서 재야세력이나 개혁세력을 흡인하는 데 한계가 있었지만 노 후보가 민주당 대선 후보로 결정될 경우 진보진영이 설 자리가 생길 수 있고 지역위주였던 정치구도가 정책을 위주로 한 보혁대결로 갈 수 있다는 점에서 한국 헌정사에 큰 변화라고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중앙, '김심 배후설' 첫 제기**

노 후보에 대한 중앙일보의 고민은 예상치 못했던 '노풍'의 확산에 대한 당혹스러움에 있다. 한 기자는 "갑작스런 노 후보의 약진에 대해 내부에서 당혹스러워 하는 분위기가 있다"며 "노무현 관련보도에 중앙일보가 취하는 특별한 방향이 있는 것은 아니며 있는 사실을 그대로 쓴다는 입장"이라고 밝혔다.

중앙일보 역시 22일자를 통해 이인제 후보의 노 후보 비판을 '"노풍 막아라" 칼 빼든 이인제'(4면) 기사 등을 통해 이 후보측의 주요 공세포인트와 노 후보측의 반박을 싣고 있다. 중앙일보도 직접 취재를 통한 노 후보에 대한 비판은 아직 시작하지 않은 단계로 볼 수 있다.

중앙일보가 노 후보에 대해 보인 경계심은 20일자 '노무현 바람에 김심 실렸나'란 기사에서 찾아볼 수 있다. 노 후보의 갑작스런 약진에 김대중 대통령의 뜻이 개입됐다는 이인제 후보측의 주장을 그대로 보도한 것인데 중앙일보 스스로도 실체나 증거는 없다는 입장이다. 정운경 화백이 중앙일보 22일자 '왈순아지매' 4컷 만평을 통해 '돈이 많다' '서민용요트가 있었다' '(김심을 암시한) 뒷배 봐준다' 등의 설들을 묘사하며 "믿거나 말거나-설설사"라고 꼬집은 것이 그 방증이다.

정치부의 한 기자는 김심 기사와 관련해 "노무현 흠집내기의 하나로 볼 수도 있으나 정치판에서는 뭔가 이상하다는 이야기가 있는 것도 사실"이라며 "19일 회의에서 '김심'에 대한 이야기가 화제가 됐고 실제로 정치판에서 돌고 있는 이야기이므로 쓰게 된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중앙일보가 지적한 '김심'에 대해서는 조선일보의 한 중견급 기자도 "민주당 경선에 김심은 없다"고 단정하며 "김심이 개입되는 순간 김 대통령의 정치적 생명이 끝날 수 있기 때문에 개입하고 싶어도 개입하지 못할 것"이라고 말해 실체없는 '김심'이 있는 것처럼 처음 보도한 중앙일보의 의도가 의심받고 있는 상황이다.

22일자 신문에서 이인제 후보측의 노무현 비판(이측 "지난 총선전 생수공장 인수설" 등 5면)을 자세하게 다룬 동아일보 또한 아직까지는 인용보도에 그치고 있으며 노무현에 대한 특별한 지지나 반대입장은 드러내지 않고 있다. 노 후보와 동아일보간 악연으로 인한 어떤 관계가 형성된 적이 없기 때문이라고도 볼 수 있으나 아직은 노 후보의 정책 등에 대한 동아일보의 검증이 완료되지 않은 상태라는 이유가 더 설득력을 갖는다.

한 편집국 간부는 "노 후보의 정책이나 실체 등에 대해서는 검증해봐야 한다"며 "(노 후보가 민주당 대선 후보가 될 경우) 당론이나 당의 정책 등을 보고 검증하는 과정을 거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노 후보가 현실적으로 동아일보와 갈등을 빚을 수 있는 가장 큰 정책은 노 후보가 강한 톤으로 주장해온 언론개혁 정책이다. 노 후보는 일관되게 편집권 독립을 위한 제도적 장치 마련이나 신문사 사주의 소유지분 제한 등을 주장해왔다. 이는 동아일보를 비롯해 조선일보와 중앙일보도 반대하는 입장을 분명히 하고 있어 앞으로 언론개혁 문제를 둘러싼 공방이 벌어질 경우 곤란한 상황이 초래될 수도 있다는 게 동아일보 한 중견간부의 지적이다.

이 간부는 "특별한 악연은 없으나 진보와 개혁을 정체성으로 하고 있는 노 후보를 동아일보가 썩 좋아하기는 힘들 것"이라며 "특히 언론개혁 문제와 관련해서는 충돌이 예상된다"고 말했다.

결국 보수층을 대변하는 동아 조선 중앙일보의 입장에서 개혁성향의 노 후보는 꺼림칙한 상대임이 틀림없다는 것인데 현재 대중의 압도적 지지를 얻고 있는 노 후보의 정치적 비중이 상상외로 너무 커져 조중동의 분명한 입장정리가 어려운 상황이라고 해석할 수 있다.

***노 후보측, "정치인은 정치인의 길을,언론은 언론의 길을 걸으면 되는 것"**

노무현 후보측은 조중동과의 관계에 대해 "각자가 자기의 길에서 정도를 걸으면 된다. 정치인은 정치인의 길을 걷고 언론은 언론의 길을 걸으면 되는 것이다"며 "노 후보는 당의 정책에 충실한 후보다. 아직은 대선후보로서 노 후보가 내세운 공약이 없는 상태이나 후보가 되면 당 차원의 검토를 거쳐 공약을 만들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

노 후보는 지난해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조중동에 대한 견해를 묻자 "동아일보와 중앙일보는 차기 정권을 좌지우지하려 들지는 않는다. 중앙일보와 동아일보는 지극히 보수적인 시각을 갖고 있으나 유연해질 수 있으며 이들의 보수적 시각에 합리적 책임감을 더한다면 합리적 보수신문, 건강한 보수언론으로의 변화 가능성이 있다고 본다. 그러나 조선일보의 방씨 일가가 스스로 변화할 가능성을 기대하기는 어렵다"고 대답한 적이 있다.

지역구도로 정착돼 고질적인 지역감정의 악순환을 끊지 못하고 있는 한국의 정치구도가 과연 개혁과 보수라는 정책대결의 장으로 변화될 수 있을지 개혁세력을 등에 업고 메가톤급 태풍의 위력을 발휘하고 있는 '노풍'과 조중동간의 향후 관계에 귀추가 주목되는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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