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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예계 PR비 실태를 해부한다 <下>

방송사 게이트키퍼제 도입해야

***짧은 음반산업 역사**

국내 음반산업의 역사는 그리 오래 되지 않았다. 한 가요계 전문가는 우리나라 음반산업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시점을 1960년 4∙19 이후로 보고 있다. 당시 지방에서 온 조직폭력배들이 서울 토박이 조직폭력배들을 유흥업소 등에서 밀어내자 서울 조폭들이 조직재건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음반산업에 뛰어들었다는 이야기가 가요계에 회자되고 있다.

1970년대에는 정부가 가요 테이프를 삐라처럼 풍선안에 넣어 북한으로 날려 보내기도 했다. 이러한 정부의 지원이 국내 음반산업의 성장에 기여하기도 했다. 80년대 들어서 컬러TV가 보급되며 방송의 쇼 문화가 크게 발달했고 이때 비로소 체계적인 연예 매니지먼트 사업이 형성됐다. 80년대 이전까지는 가수나 연예인이 매니저 없이 활동하는 경우가 많았다.

대중음악의 발전에 걸림돌이 되고 있는 PR비는 우리 사회의 일천한 가요산업 역사와 척박한 문화풍토가 빚어낸 산물이다. 공연을 하고 싶어도 공연할 장소가 없고 방송을 타지 않으면 스타로 클 수도 없다. PR비 관행을 근절하고 대중음악의 발전을 이룰 길은 없을까. 대중문화 발전을 위해 정부가 정책적으로 지원해야 할 일은 무엇이 있을까.

PR비 폐해의 근절과 대중문화 발전은 한 쌍의 수레바퀴처럼 연결돼있다. PR비와 같은 연예계의 구조적 부조리가 사라져야 신인가수들의 등용문이 확대되고 그 비용은 공연장 확보와 음반 제작 등 대중문화 발전에 직접 사용될 수 있다.

PR비 관행근절을 위해서는 우선 지난 4일 문화개혁을 위한 시민연대(문화연대)가 검찰에 제보한 내용 등을 토대로 엄정한 수사를 펴 비리를 없앤 뒤 재발방지책을 마련해야 한다.

PR비 제보를 받고 있는 문화연대 이동연 사무차장은 "방송계 비리는 대부분 PD 한두명을 정리하는 수준에서 문제를 봉합하는 경우가 많았다"며 "부장이나 국장 선에서 PR비를 받는 경우도 있기 때문에 좀더 광범위한 범위의 수사와 방송사 자체의 감사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선곡, 캐스팅 과정 투명해져야**

PR비 문제는 근본적으로 관련자 사법 처리만으로 해결될 수 없다. 재발방지를 위해 구조적인 문제부터 해결돼야 한다. 이 사무차장은 "한두명의 PD가 캐스팅이나 선곡 권한을 갖기 때문에 비리가 발생할 수밖에 없다"며 "캐스팅 과정이 투명하고 공정해질 수 있는 시스템이 도입돼야 한다"고 제안했다.

미국의 경우 1950년대 말까지 DJ(Disc Jockey)가 직접 선곡했으나 몇 번의 뇌물 스캔들이 있은 후 방송국 직원이 음반 제작자들과 가까워지는 것을 막기 위한 제도적 장치를 마련했다. 대표적인 것이 게이트키퍼(Gatekeeper) 제도다. 대부분의 미국 라디오 방송국은 PD 외에 한두명 이상의 게이트키퍼를 두고 프로그램 선곡을 결정한다.

음악프로그램 전체를 기획하고 관리할 수 있는 전문인력도 늘려야 한다. 현재 방송사에는 음악 전문 연출자나 스탭들이 턱없이 부족한 실정이다. 시민단체들은 "지금처럼 일반상식이나 토익점수 위주로 PD를 뽑은 후 실무 책임자 수준에서 프로그램 제작을 맡긴다면 PD에게 주어진 고유 권한은 그저 권력으로만 남용될 뿐"이라고 지적한다.

***순위프로그램을 정보프로그램으로**

지상파 방송사의 가요프로그램 자체도 많은 문제를 내포하고 있다. 문화연대 등 시민단체들은 지난해부터 공중파 방송의 가요 순위프로그램이 대중가요 발전을 저해한다며 폐지 운동을 벌여왔다.

"공중파 방송이 대중음악에 절대적인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기 때문에 가요 순위프로그램의 순위결정은 공정해야 한다. 그러나 전산화된 음반판매망이 갖춰져 있지 않은 상태에서 방송횟수에 기반한 주먹구구식 순위결정은 문제를 야기할 수밖에 없다.

재작년 서태지가 MBC 순위 프로그램에서는 1위를 차지했지만 타 방송사의 순위 프로그램에서는 순위에 들지도 못했다. MBC에 독점출연했다는 '괘씸죄' 때문이었다. 또 장르별 구분이 없는 무차별 가요 순위프로그램은 댄스 등 10대 취향의 음악만을 방영해 다른 장르들의 균형 있는 발전을 저해한다."

가요 순위 프로그램 폐지운동을 벌이고 있는 문화연대 한 관계자의 지적이다.

이들의 주장은 방송사의 가요 프로그램 자체를 폐지하자는 것은 아니다. 대중음악을 알릴 창구가 부족한 현실에서 지상파 방송사의 가요프로그램이 폐지될 경우 대중음악 가수들이 대중과 접촉할 기회가 박탈되기 때문이다. 방송사의 가요순위프로그램은 공신력이 떨어지고 PR비 등 부조리의 원인이 되므로 이를 폐지하고 다른 형태의 가요프로그램을 만들자는 것이 시민단체나 기획사의 제안이다.

시민단체들은 차제에 가요 순위 및 오락 프로그램들은 폐지하고 대신 일본과 같이 음악정보프로그램을 신설하자고 제안한다.

일본도 민영방송인 TBS에 가요순위프로그램이 있지만 가수들이 직접 출연해 노래를 부르는 우리의 순위 프로그램과는 성격이 다르다. 음반판매 집계로 선정된 1∼100위까지 순위가 모두 소개되며 뮤직비디오를 틀어준다. 순위차트 이외에 장르별 차트, 싱글 차트, DVD 차트 등을 세분화해 소개하며 일반 시청자에게 필요한 음악정보를 소개한다. 대중음악의 세분화와 전문화를 통해 대중음악 수요를 창출하는 것이다.

시민단체가 제시하는 또 다른 방법은 장기적으로 지상파 방송의 음악 프로그램을 외주로 돌리는 것이다. 문화연대는 "외주제작을 통해 좀더 전문적이고 다양한 방송이 가능하며 PR비 등 제작과정의 비리를 근절할 수 있을 것"이라고 제안했다.

이동연 사무차장은 "방송국은 시청률에 연연해 댄스, 발라드 등 특정 장르 위주의 프로그램 편성에 안주하고 있다"며 "음악프로그램에 대한 시청자들의 욕구는 이 수준을 훨씬 넘어선다고 확신하며 다양한 시청자들의 욕구를 충족하기 위해서는 제작진들의 새로운 인식 전환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최근 급증하고 있는 토크쇼 등 오락 프로그램에 가수들이 대거 출연하고 있는 점도 문제다. 몇 년전부터는 대부분 연예인들이 출연하는 오락 프로그램이 주말 지상파 방송의 시청률을 가늠하는 주요 기준으로 자리 잡고 있다.

인기 있는 연예인이 얼마나 출연하냐에 따라 시청률이 좌우되다 보니 방송사는 연예인 섭외에 사활을 건다. 통상 탤런트나 개그맨은 특정 방송국에 소속되어 활동하기 때문에 전속이 아닌 가수들이 주요한 출연 섭외 대상이 된다. 주말의 각종 버라이어티쇼나 토크쇼에 출연하는 연예인 중 70% 정도가 가수다. 이런 프로그램에서 음악과 상관없이 다양한 '개인기'를 선보임으로써 인기가수가 되는 경우가 늘고 있다.

***"대중음악도 문화다"**

그러나 근본적인 문제점은 국가가 대중음악을 영화와 출판처럼 하나의 문화산업으로 인정하지 않고 있는 데 있다. 영화진흥을 위한 공사나 위원회는 있지만 대중음악 발전을 위한 조직이나 위원회는 없다. 국가적 지원이나 세금부과 등에서도 대중음악은 영화 등 다른 문화산업에 비해 천대받고 있다.

이동연 사무차장은 "음반은 사치품으로 분류돼 41.2%의 높은 세금이 부과된다. 핸드폰은 6.5%, 서적은 10.8%이고 사치품인 악세서리도 28.8%에 불과하다. 침체되어 있는 대중음악계를 활성화시키기 위해 음반에 대한 조세율을 다른 문화상품의 수준에 맞춰야 한다"고 지적했다.

PR비가 존재하는 원인은 대중음악이 지나치게 방송매체에 의존하기 때문. 한 음악전문 PD는 "대중음악이 방송매체 파워에 의존하는 한 PR비라는 악순환은 끊어질 수가 없다. 대중음악 스스로 새로운 문화산업 영역을 개발해야 하며 국가도 정책적으로 공연문화 등이 성장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해줘야 한다"고 말했다.

주로 라이브 무대를 통해 가수들을 길러내는 한 기획사 사장은 "대중음악 장르를 다양화하고 차별화해야 대중음악 기반이 넓어진다"며 "손쉬운 방법인 PR비를 통해 방송을 타게 하려는 기획사나 매니저들의 태도부터 고쳐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 사장은 "현재 한국 대중음악계의 문제점은 방송 외에는 가수로 살아갈 수 있는 창구가 없다는 데 있다"며 "국가가 공연문화 발전을 위해 서울뿐 아니라 지방에도 공연시설 등을 늘려 문화환경을 조성하는 정책을 펴는 게 급선무"라고 덧붙였다.

공연문화의 발전을 저해하는 구체적인 요인으로 지적되는 게 높은 세율이다. "다른 나라에 비해 우리나라는 대관료가 상당히 비싼데다 25%나 되는 공연세를 내야 한다. 정부와 지방자치단체는 각종 공공문화시설을 대관할 때 대관료를 대폭 인하하고 세율도 내려야 한다"고 이 사무차장은 주장한다.

***가수의 신변잡기 기사 벗어나야**

신문이나 방송 등 언론도 가수들의 신변잡기에만 주의를 기울일 것이 아니라 가수들의 음악세계에 대한 평론기사에 지면을 더 할애해야 대중음악이 하나의 문화로 발전할 수 있는 토양이 마련된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한 기획사 대표는 "가요계를 담당하는 기자들은 독자나 시청자의 말초신경을 자극할 수 있는 신변잡기성 기사에만 몰두하는 경향이 있다"며 "대중음악을 당당한 하나의 문화영역으로 인정하고 그에 대한 비판적 평론이 성행해야 대중음악의 질과 수준도 높아질 수 있다"고 말했다.

결국 현실을 인정하면서 모색할 수 있는 대안은 점진적으로 방송사 가요 순위프로그램의 문제점들을 개선해 나가면서 국가는 대중음악을 하나의 문화산업으로 인식해 공연문화 발전을 위한 환경을 조성해 나가야 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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