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태식 게이트와 같은 각종 사회비리에 일부 언론인과 언론사가 연루되고 있는 현상은 이미 언론계의 관행(?)으로 자리잡은 지 오래다. 사회적 공기임을 자처하는 언론이 사회적.직업적 특성상 가장 높은 도덕성을 요구받고 있음에도 온갖 종류의 사회비리에 ‘약방의 감초’처럼 등장하는 까닭은 무엇일까.
우선 윤태식 게이트를 통해 부패고리의 연결 메커니즘과 원인부터 살펴보자.
***한 기자가 30건이나 윤태식 기사 작성**
이번 사건을 계기로 현재 신병처리가 확정된 언론인은 지난 6일 사기혐의로 구속된 SBS 정수용 전 PD와 8일 배임수재 혐의로 구속된 매일경제 이계진 전 기자다.
정 전PD의 경우 2000년 1∼3월 방영된 SBS <그것이 알고 싶다 ‘살인 미스테리, 누가 수지김을 죽였나’> 프로그램의 방영을 막아주겠다는 대가로 윤씨로부터 2억여원 규모의 주식과 현금 등을 제공받은 혐의를 받고 있다. 정 전PD는 수지김 관련 프로그램 방영당시 계약직 PD로 방영을 막을 능력이 없었음에도 이를 조건으로 금품을 받았다는 의혹을 받고 있어 사기혐의가 적용됐다. 윤씨 사건 발생 이후인 최근 정PD는 SBS에 사표를 제출했다.
8일 구속된 매경 이계진 전 기자는 지난 99년 12월 22일자 매일경제에 보도된 <패스21세기, 지문인식보안 ‘패스폰’ 개발> 기사를 필두로 지난해 10월 24일 <패스21, 생체인증기술 사우디 1억달러 규모 수출>까지 모두 30건에 이르는 패스21 관련기사를 쓴 것으로 확인됐다.
검찰은 이기자가 윤씨로부터 수차례에 걸쳐 주식 1천4백주와 현금 1천2백만원 등 1억9천만원 상당의 금품을 받은 것으로 조사됐다고 밝히고 있다. 같은 기간 매경 지면에 등장한 59건의 패스21 관련기사중 반 이상을 이기자가 작성했으며 그 대가로 금품을 취득한 혐의를 받고 있는 것이다.
기자가 우호적 기사를 대가로 금품을 받고 배임수재 혐의로 구속된 것은 이번이 처음으로 법원의 최종 판결에 귀추가 주목된다.
구속된 두명의 언론인을 포함해 검찰이 확보한 패스21 주주명부에 올라있는 언론인은 모두 25명이다. 매일경제가 5명으로 가장 많고 SBS 4명(전직포함), KBS MBC 각 3명, 대한매일 서울경제 연합뉴스 조선일보 각 2명, 동아일보와 방송위원회 각 1명씩이다. 검찰은 일차적으로 명단에 올라 있는 이들을 대상으로 주식취득과정 등에 대한 경위를 조사할 계획이나 명단에 오르지 않은 관계자들도 조사대상에 포함시키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언론계를 긴장시키고 있는 상황이다.
‘윤태식 게이트’와 관련해 언론사나 언론인이 대가성 보도나 프로그램을 통해 개입한 경우는 이외에도 서울경제가 99년부터 2001년 10월까지 38건의 기사와 사설 등으로 과잉보도를 했다는 의혹을 사고 있고, 월간조선 또한 2000년 5월호에 실린 장문의 윤씨 인터뷰 기사를 통해 패스21의 주가상승에 크게 기여했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주식 받고 자신의 프로그램에서 윤태식 칭송하기도**
방송3사 중에는 KBS가 2000년 1월 23일 방영한 <경제전망대>에서 ‘지문으로 완벽보안 실현’이란 패스21 소개프로그램을 통해 윤씨의 지문인식 시스템을 크게 보도했다. 당시 <경제전망대>가 소개한 패스21 관련 꼭지의 일부내용은 다음과 같다.
“땀샘을 이용한 지문인식시스템과 해킹을 완전히 차단한 암호화 기술은 대표이사 윤태식씨의 아이디어입니다.”
“직원의 80%를 연구와 기획팀으로 둘 만큼 윤사장의 기술투자는 남다릅니다”
최근 언론에 공개된 패스21의 주주명단에 포함된 KBS 관계자는 모두 3명이며 이 가운데 현재 KBS 지역방송총국장을 맡고 있는 두명의 간부가 각각 주식 1백주를 소유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두명의 간부중 K총국장은 당시 <경제전망대>의 MC를 맡았고 다른 K총국장은 당시 해설위원으로 재직중이었다. 또다른 한명은 영상취재부 K기자로 부인명의로 주식 50주를 갖고 있던 것으로 밝혀졌다.
KBS는 현재 이들에 대해 자체 감사를 실시중인 것으로 알려졌는데, 박권상 사장이 이번 사건에 일부 간부가 연루된 것에 대해 상당히 분노하고 있어 검찰소환이 없더라도 이들에 대한 회사차원의 징계가 이뤄질 것으로 보인다. 보도국의 한 중견기자는 “이번 윤태식 사건과 관련해 보도국 간부들이 사장이 상당히 강경한 입장을 보이고 있어 걱정스럽다는 말을 하고 있다”며 “감사결과 대가성 의혹 등이 밝혀지면 사표를 써야 할지도 모르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K총국장 등 관련자들은 이미 패스21 주식을 처분했으며 대가성으로 주식을 받은 것이 아니라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언론계는 이번 윤태식 게이트로 검찰소환조사를 받는 언론인이 계속 늘어날 것으로 보고 최종적으로 5명 내외의 언론인이 사법처리 대상에 오를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PD가 벤처사장에게 주식달라고 강요하기도**
그런데 언론이 이처럼 각종 게이트나 비리사건에 연루되는 것은 사실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지난 99년 8월 취재과정에서 얻은 미공개정보를 동생에게 전달해 4억원대의 부당이득을 취한 혐의로 구속됐다 증권거래법 위반죄로 징역 1년6월에 집행유예 2년의 실형을 선고받은 길진현 전 중앙일보 경제부 차장이 비근한 예라 할 수 있다.
또 매일경제TV 조호현 PD는 지난 99년 프로그램 제작상 만난 D기업 L사장에게 수차례에 걸쳐 지분참여를 요구해 막대한 차익을 얻었다가 사표를 내기도 했다. 조PD는 당시 L사장으로부터 액면가 5000원짜리 주식 1천4백주를 주당 2만5천원에 샀는데 이 주식은 99년 6월에 있은 D기업의 액면가 분할로 1만4천주가 돼 당시 가격으로 10억원을 호가했다.
조PD는 이렇게 취득한 주식을 매경TV 간부와 동료 등 2명에게 자신이 산 가격으로 팔고 명의변경을 해주었으며 자신의 몫은 다른 기자 2명에게도 판 것으로 드러났다.(미디어오늘 2000년 3월 9일자 1면 참조)
언론계의 주식투자는 언론인 개인 차원에만 그치지 않는다. 언론사들은 특히 코스닥시장에 상장된 정보통신주를 중심으로 주식을 매수해 상당한 시세차익을 보기도 했던 것이다. 주식시장의 침체로 현재는 시세가 많이 떨어졌으나 한 때 일부 언론사는 주식거래를 이용해 수천억원대의 시세차익을 올리기도 했다.
***윤리규정 있기는 하나 사문화**
언론사나 언론인의 주식투자는 정상적인 단순한 투자에 그치지 않는다는 데 문제가 있다. 언론은 일반 개인투자자에 비해 취재나 보도자료 등을 이용해 미공개정보를 얻을 수 있는 위치에 있어 주식투자에 따른 위험부담을 최소화할 수 있어 경제적 윤리 차원에서 비판의 대상이 되며, 또 언론이라는 권력을 이용해 비정상적인 방법으로 주식을 취득하는 경우도 많이 발생하고 있기 때문이다.
상당수 언론사는 주식투자로 인해 발생할 수 있는 문제들을 사전에 차단하기 위해 윤리강령이나 방송강령 등의 내규를 제정해 운영하고 있다. 길 전 차장문제로 홍역을 앓았던 중앙일보의 경우 “경제관련부서 기자와 데스크, 편집자는 주식에 직접 투자를 해서는 안된다. 단 펀드 등 간접투자는 가능하다”고 규정하고 있고 일반 편집국 기자들에 대해서도 “기사와 관련된 미공개 정보를 이용해 주식을 사고 팔 수 없다”고 명시했다.
조선일보 윤리강령은 “취재원으로부터 금전 또는 주식, 채권 등 유가증권을 받지 않는다. 금융증권시장을 담당하는 기자 데스크, 편집자는 주식 직접투자를 하지 않는다. 취재담당분야의 기업주식에 대한 직접투자나 지분참여 등 이해관계를 맺지 않는다”고 규정했다. 매일경제와 한국경제도 미공개정보, 내부정보를 이용한 주식투자를 금하고 있으며 “취재원의 회사나 관계회사에 투자나 사업관계를 맞지 않는다”는 규정도 제정하고 있다. 방송중에는 MBC가 “증권시장 담당자는 어떠한 기업의 주식도 소유할 수 없다”는 규정을 갖고 있다.
이외에도 지난해 11월 23일 언론현업인들의 최대단체인 전국언론노조가 선포한 ‘언론인자정선언’은 강령6에서 “우리는 취재 및 보도, 업무수행 과정에서 발생하는 금품의 수수 등 직접이익은 일절 도모하지 않고 간접이익도 엄격히 제한해 높은 청렴성을 확립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또 언론인자정선언 실천요강 3장 ‘청렴’은 “지위를 이용해 취재원으로부터 금전 주식 또는 주식 채권 등 유가증권을 일절 받지 않는다(3항)” “취재 및 활동과정에서 알게된 미공개정보를 이용해 개인, 친족, 친구의 투자, 재산증식 등 금전적 이익을 추구하지 않는다”고 명시했다.
그런데 기자들의 주식투자 등을 금지하고 있는 각 언론사의 윤리규정중 회사 차원이나 경영진의 주식투자를 금지하는 조항은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다. 언론사 구조상 기자들이 취득한 정보를 일반 독자들에 비해 가장 빨리 취득하게 되는 것이 언론사와 각 해당언론사의 간부 등 경영진이라는 것을 감안할 때 이에 대한 윤리규정과 정보공개 등도 반드시 필요하다는 게 언론계 일각의 지적이다.
또다른 문제는 이러한 윤리강령이나 자정선언만 갖고는 언론의 고질적 병폐인 벤언유착의 폐해가 사라지지 않는다는 점이다. 보다 엄격한 처벌규정과 언론인의 자정의식 선행만이 이를 방지할 수 있는 사실상의 유일한 수단이다.
***언론이 '기생산업'인 한 비리는 계속될 것**
그렇다면 언론은 왜 각종 사회비리의 온상이 되고 있는 것일까. 매체경제학자들은 이를 언론산업의 구조적 한계와 모순 때문이라고 분석한다. 다시 말해 매체산업은 '기생산업'이라는 한계를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인데 언론인 권력과 자본에 종속될 수밖에 없는 한계를 지적하는 말이다.
기생산업이라는 특성을 갖고 있는 언론이 정보화 사회에서 정보유통자라는 독점적인 지위를 이용해 받게 되는 것이 바로 언론의 특권인데, 현대 사회에서는 이 특권의 형태가 촌지에서 주식수수 등으로 변형되고 있다는 지적이다. 기자나 PD 등 언론인의 특권은 바로 수요가 공급을 초과하는 데서 발생한다. 신문이나 방송이라는 한정된 재화를 이용할 수 있는 사람이 제한돼 있으며 이 한정된 자원을 독점하고 있는 언론인은 그 지위를 이용해 ‘지위지대(positional rent)’인 촌지나 주식 등 금품과 향응접대를 받는다는 분석이다.
한 경제지 기자는 “기자들이 자발적으로 주식을 요구하는 경우도 있으나 기사홍보의 효과를 아는 기업체에서 주식을 제공하겠다고 유혹하는 경우도 많다”며 “결국은 언론과 기업간의 유착고리를 완전히 끊을 수 있어야만 언론인의 비리문제가 사라질 수 있다”고 말했다.
KBS의 한 기자는 “프로그램이나 뉴스 제작에 있어 기자나 PD들 역시 소재의 제한을 받고 있다. 충분한 검증과정을 거쳐 프로그램을 제작하고 뉴스를 생산해야 하나 주변 사람들의 소개나 추천으로 별다른 검증과정없이 프로그램을 만들었다가 사고가 발생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며 “구체화된 윤리강령을 만들어 비리에 연루된 언론인에 대해 엄격한 처벌을 하는 수밖에 없다. 이번 사건은 그런 의미에서 차라리 언론발전의 계기로 삼을 수도 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한편 현직 언론인들의 조직인 전국언론노조 한국기자협회 한국방송프로듀서연합회 등 언론3단체는 8일 모임을 갖고 대국민사과문 형식의 ‘윤태식 게이트 언론인 연루의혹에 대한 언론3단체 입장’을 발표하고 언론계의 반성과 검찰의 철저한 수사를 촉구했다.
김용백 언론노조 사무처장, 이상기 한국기자협회장, 장기랑 PD연합회장이 각 단체를 대표해 공동 서명한 발표문은 “사회의 부패와 비리를 감시하고 견제해야 할 언론이 오히려 비리와 부패의 공범이 되었다는 점에서 국민앞에 사죄드린다”며 “언론의 부패는 깨끗한 사회에 대한 희망을 앗아가는 것으로 생각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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