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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의료인 폭행·협박 가중처벌법은 이중 규제"

[기고] 환자와 의사에겐 '가중처벌'이 아니라 '대화'가 필요해

환자나 보호자가 의료인을 폭행하거나 협박하면 가중 처벌하는 법안인 '의료인 폭행·협박 가중처벌법(의료법 일부 개정안)'의 국회 통과 여부를 두고 논란이 분분하다.

이 법안은 진료 중인 의료인을 폭행하거나 협박하면 5년 이하의 징역 혹은 2000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규정한다. 의사단체들은 "최근 2년 간 의료인 3명이 의료기관에서 환자가 휘두른 흉기에 찔려 숨지거나 대수술을 받았다"며 국회가 조속히 이 법안을 통과해야 한다고 촉구하고 있다.

반면 환자단체는 의사를 폭행한 환자나 보호자는 현행 법으로도 중형에 처해진다고 반박한다. 환자단체는 이 법이 단순히 욕설을 하거나 화가 나서 순간적으로 때리는 시늉을 하는 것만으로도 환자나 보호자를 전과자로 만드는 것은 과잉 처벌이라고 주장한다.

이에 한국환자단체연합회가 해당 법안에 반대하는 기고를 <프레시안>에 보내와 싣는다. <편집자>


민주당 이학영 의원이 진료 중인 의료인을 폭행하거나 협박하는 경우 5년 이하의 징역이나 2000만 원 이내의 벌금에 처할 수 있고, 피해자가 처벌을 원하지 않아도 처벌하도록 하는 의료법 개정안을 지난해 12월 3일 대표 발의했다. 이 법안은 현재 국회에 계류 중이다.

'의료인 폭행·협박 가중처벌법'은 지난 제18대 국회 때 두 번의 아픈 상처가 있는 법안이다. 당시 민주당 전현희 의원과 새누리당 임두성 의원이 대표 발의했다가 시민, 환자, 소비자 단체의 강력한 반대로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문턱을 넘지 못했다. 그 후 전현희 의원이 한 번 더 발의했지만 이번에는 같은 당인 민주당 소속 의원들이 반대해 통과되지 못했다.

'의료인 폭행·협박 가중처벌법'을 반대하는 네가지 이유

시민 환자 소비자 단체는 '의료인 폭행·협박 가중처벌법'에 대해 다음과 같은 이유로 반대했었다. 첫째, 형법상의 폭행·협박죄로 처벌하는 것보다 범죄예방 효과를 기대하기 어렵다. 둘째, 응급 의료에 관한 법률, 폭력 행위 등 처벌에 관한 법률, 공무 집행 방해죄 등 이미 지금도 의사를 폭행하는 환자나 보호자를 가중처벌하는 다수의 법률이 존재한다. 셋째, 반의사불벌죄도 아니고 형량도 과도하게 높아서 형벌 체계상 타 법률과 형평성에 맞지 않는다. 넷째, 국민 정서상 '의사 특권법'으로 인식된다.

최근 몇 년간 의료인 폭행·협박 사건이 여러 번 언론을 통해 보도되면서 의사들의 불안이 커져가고 있고, '의료인 폭행·협박 가중처벌법' 도입에 대한 의사들의 목소리도 높아졌다. 여기에 대한의사협회, 전국의사총연합, 대한전공의협의회 등 의사단체까지 잇달아 성명을 내고 있다.

ⓒ환자단체연합회

'의료인 폭행·협박 가중처벌법'은 정답이 아니다.

만일 '의료인 폭행·협박 가중처벌법'이 의료인 폭행·협박을 예방해 의료기관에서의 안정적 진료 환경을 조성할 수만 있다면 시민환자소비자단체가 반대할 이유가 없다. 하지만 '의료인 폭행·협박 가중처벌법'의 범죄예방 효과에 대해서 자신 있게 'Yes'라고 말하는 사람은 없다. 학자들도, 법조계도 부정적이다. 의료계도 마찬가지다. 그럼에도 의료계가 '의료인 폭행·협박 가중처벌법'에 집착하는 것은 모양새가 좋지 않다. 이보다는 '폭행·협박 없는 진료실 환경 만들기'에 '올인'해야 한다.

먼저 최근 몇 년간 언론에 보도되었던 대표적인 의료인 폭행·협박 사건 몇 개를 살펴볼까 한다.

2008년 6월 충남대병원에서는 치료 결과에 불만을 품은 환자가 퇴근하던 담당 의사를 깔로 찔러 살해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이것은 살인죄로 처벌된다. 2008년 11월 부산의 한 병원에서는 신장 장애 환자가 비싼 약 처방과 사후 관리에 불만을 품고 담당 의사를 흉기로 찌른 사건이 발생했고, 올해 2월에는 대구의 한 정신과의원 원장이 환자에게 피습을 당해 복부에 상해를 입은 사건이 발생했다. 이것은 살인미수죄로 처벌된다. 올해 7월에는 고양시 일산의 한 성형외과에서 피부시술 결과에 불만을 품은 조선족 환자가 흉기를 휘둘러 의사의 팔과 배 등을 6차례 찌른 사건이 발생했다. 이것도 살인미수죄로 처벌된다.

의료 현장에서 절대 일어나서는 안 되는 불행하고 안타까운 사건들이고, 피고인들은 엄하게 처벌해야 한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이 사례들 모두가 이학영 의원이 발의한 '의료인 폭행·협박 가중처벌법'의 적용 대상이 아니라는 것이다.

이런 환자들까지 꼭 가중처벌해야 합니까?

응급실에서의 의료인 폭행·협박은 대부분 만취한 환자나 보호자 또는 조직 폭력배 등 폭력성이 강한 환자나 환자 보호자에 의해 발생한다. 이렇게 응급실에서 의료인을 폭행·협박하는 경우 가중처벌하는 규정은 이미 '응급 의료에 관한 법률'에 있다. 이와 관련한 개정안이 재작년 발의되어 2012년 5월 4일 개정되었을 때도 시민 환자 소비자 단체는 반대하지 않았다. 그 이유는 운전 중인 자동차의 운전자를 폭행·협박하는 경우 가중처벌하는 규정을 둔 '특정 범죄 가중처벌에 관한 법률'(제5조의10 제1항)의 입법 취지와 다르지 않다. 응급실에서의 의료인 폭행·협박은 다른 응급 환자들의 치료에 심각한 피해를 줄 수 있기 때문이다.

이렇듯 응급실에서의 폭행·협박에 대해서는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3천만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가중처벌하고 있고(응급 의료에 관한 법률 제12조, 제60조 제1항 1호), 흉기를 휴대하고 폭행·협박하는 경우에는 '폭력 행위 등 처벌에 관한 법률' 제3조 제1항에서 1년 이상의 징역형에 처하는 등 이미 가중처벌하고 있다. 즉, '폭력 행위 등 처벌에 관한 법률'은 흉기 기타 위험한 물건을 휴대한 경우뿐만 아니라 상습적으로 또는 단체, 다중의 위력을 이용해 폭행, 협박하는 경우까지 중형으로 가중처벌하고 있다.(폭력 행위 등 처벌에 관한 법률 제2조 제1항·제2항, 제3조 제1항·제3항)

그렇다면 이학영 의원이 대표 발의한 '의료인 폭행·협박 가중처벌법'은 어떤 경우에 적용될까? "한 사람이 본인 혼자서 흉기 등 위험한 물건을 휴대하지 않고 딱 한 번 진료 중인 의료인에게 상처가 나지 않도록 단순한 폭행(때리려는 제스처 등도 폭행에 해당)하거나, 협박(심한 욕설 등도 협박에 해당)한 경우에만 적용된다." 그럼에도 형량은 5년 이하의 징역이나 2000만 원 이하의 벌금이고, 피해자가 처벌을 원하지 않아도 처벌받는다.(비반의사불벌죄) 한마디로 중형이다.

진료실 안에서 의사와 마주한 환자는 극도로 예민해 있다. 언제 죽을지 모른다는 불안감과 2시간 대기하고 3분 진료 받는 것에 대한 불만으로 가득한 상황에서 환자의 질문에 의사는 건성으로 답변하거나 쓸데없는 거 물어본다고 핀잔까지 준다. 이런 경우 의사 멱살이라도 잡아서 한번 흔들어 주고 싶고 '욕'이라고 한바탕 하고 싶을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하지만 참는다. 왜냐하면 폭행·협박은 범죄이기 때문이다. 의사가 고소하면 형사 처벌받는다는 사실을 환자도 상식적으로 알고 있다.

그런데도 일부 환자는 이성을 잃고 의사의 멱살을 잡는다. 어떤 경우에는 "확 때려 죽여버릴라"라고 심한 욕설을 하기도 한다. 이런 경우 모두 형법상 폭행·협박죄가 성립하고, 의사가 고소만 하면 2~3년 이하의 징역형 또는 500만 원 이하의 벌금형에 처해지고 환자는 전과자가 된다. 다만 이런 경우 경찰이나 검찰의 수사과정 또는 법원의 재판 과정에서 정상이 참작되어 형벌이 감경되는 경우가 많다.

경찰이나 보완요원을 배치하는 방법으로 해결해야

2012년 11월 15일 개정된 '응급 의료에 관한 법률'이 시행되어 응급실에서 의료인을 폭행·협박하는 경우 가중처벌하는 규정이 신설되었지만 응급실에서의 폭행·협박이 현저히 줄어들었다는 보고는 없다. 만취된 환자나 폭력적인 환자에게 '의료인 폭행·협박 가중처벌법'은 무용지물이기 때문이다. 이런 경우에는 관할 경찰서의 협조를 얻어 경찰관을 상주시키거나 청원경찰이나 보완요원을 배치하는 방법이 가장 효과적이다.

그리고 만취된 환자나 폭력적인 환자가 응급실에서 폭행·협박을 할 때는 의료기관이 반드시 고소해 형사 처벌받도록 하는 원칙을 세우고, 경찰이나 경찰의 수사 과정 또는 법원의 재판 과정에서 엄격하게 수사하고 재판하는 원칙을 세우도록 요구하는 것이 우선이다.

환자와 의사는 대화가 필요해

의료기관 내에서 의료인 폭행·협박을 줄이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의사와 환자간의 신뢰를 형성하는 것이다. 이것을 흔히 '라포'(Rapport)라고 한다. 환자가 자신이 존경하는 의사를 폭행하거나 협박할 리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의사가 환자에게 존경받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간단하다. 환자를 잘 치료하고 또 환자에게 잘 설명하면 된다. 역지사지(易地思之)가 정답이다. 의사가 환자의 입장이 되어 환자의 눈높이에서 환자가 궁금해 하는 것을 이해하기 쉽게 설명해 주면 된다.

조금 더 욕심을 낸다면 의사가 환자의 얘기를 조금만 더 들어주면 좋겠다. 환자가 진료실에 들어와서 처음으로 말을 시작하고 난 뒤 의사가 그 말을 끓는데 걸리는 시간이 69%에서 평균 18초라는 외국 통계도 있다. 반대로 환자가 진료실에 들어와서 아무 방해 없이 이야기 하도록 두었을 때 평균 진술시간이 60초라고 한다. 그렇다면 의사가 50초만 환자의 얘기를 더 들어주면 된다. 어려운 일이 아니다.

ⓒ환자단체연합회 제공

그러나 상당수의 의사는 환자의 얘기를 평균 18초 이상 듣지 않는다. 그 뒤의 말은 하지 않아도 다 안다는 표정을 지으며 가차 없이 잘라버린다. 이때 환자는 '욱'하게 된다. 진료실에서 환자와 의사의 신뢰 형성을 위해서는 좀 더 대화가 필요하다.

환자단체는 최근 환자와 의사간 진료실 커뮤니케이션을 개선하기 위한 연구에 들어갔다. 의사의 진료 시간을 연장하고 이를 수가에 반영하는 방법도 있겠지만, 단기간 내 실현할 수 없고 넘어야할 산도 너무 많다. 그보다는 환자와 의사간의 커뮤니케이션 기술을 높이기 위해 3분의 진료시간을 가장 효율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다양한 도구나 기법을 개발하는 것이 현실적 대안이라고 판단했다.

폭행·협박 없는 진료실 환경, 환자와 의사가 함께 만들어보자

환자와 의사간의 커뮤니케이션을 개선해 '라포'(Rapport)를 형성하고, 관할 경찰서의 협조를 받거나 청원경찰, 보완요원을 배치해 만취 및 폭력성 환자의 폭행·협박을 방지해야 한다. 실제 이런 환자가 의료인을 폭행·협박하면 의료기관이 '고소'를 원칙으로 단호히 대처하고, 경찰, 검찰, 법원도 수사 및 재판 과정에서 엄정한 법 집행을 하는 문화를 만들어가는 것이 의료인 폭행·협박 문제의 현명한 해결책이다.

그럼에도 의료인에 대한 폭행·협박이 줄어들지 않는다면 그때 이를 예방할 수 있는 방안으로서 '의료인 폭행·협박 가중처벌법'에 대해 논의하면 된다. 어쨌든 형벌의 가중처벌은 최후의 수단이어야 한다. 이제 '의료인 폭행·협박 가중처벌법' 논쟁은 중단하고 '폭행·협박 없는 진료실 환경'을 만들기 위한 논의를 시작했으면 한다. 그것도 의사들끼리만이 아니라 의사와 환자가 함께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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