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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벌과 나비애벌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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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벌과 나비애벌레

[해림 한정선의 천일우화(千一寓話)]<15> 좀비를 위한 나라는 없다

승자독식의 신자유주의 시대. 무한경쟁과 이기주의라는 담론 속에 갇힌 우리들에게 세상은 배신과 암투가 판치는 비열한 누아르 영화일 뿐이다. 이는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우화(寓話)를 처세를 위한 단순한 교훈쯤으로 받아들이는 근거로 작용하기도 한다. 그러나 아리스토텔레스와 조지 오웰에게 우화는 고도의 정치적 언술이자 풍자였으며, 대중을 설득하는 탁월한 수단이었다. 또 어떤 철학자와 사상가들에게는 다양한 가치를 논하는 비유적 수단이자 지혜의 보고(寶庫)였다.

<프레시안>에서는 <해림 한정선의 천일우화(千一寓話)]>를 통해 우화의 사회성과 정치성을 복원하고자 한다. 부당하고 부패한 권력, 교활한 위정자, 맹목적인 대중. 이 삼각동맹에 따끔한 풍자 침을 한 방 놓고자 한다. 또 갈등의 밭에 상생의 지혜라는 씨를 뿌리고, 아름답게 살고 있고 그렇게 살아가고자 하는 사람들의 바람과 감동을 민들레 꽃씨처럼 퍼뜨리고자 한다. 한정선 작가는 "얼음처럼 차갑고 냉정한 우화, 화톳불처럼 따뜻한 우화, 그리하여 '따뜻한 얼음'이라는 형용모순 같은 우화를 다양한 동식물이 등장하는 그림과 곁들어 연재하고자 한다"고 밝혔다.

한정선 작가는 화가로서 한국미술협회 회원이다. 대한민국 전통미술대전 특선을 수상했으며 중국 심양 예술박람회에서 동상을 받았다. <천일우화>는 열흘에 한 번씩 발행될 예정이다. <편집자>


살진 나비 애벌레가 잎사귀를 사각사각 갉아먹고 있었다. 그때 말벌이 애벌레의 머리 위를 맴돌며 윙윙거렸다. 애벌레는 몸을 잔뜩 움츠린 채 말벌을 올려다보았다.
"나를 보고 겁을 먹다니. 맘 놓으렴."
말벌이 애벌레의 곁에 내려 앉아 날개를 접으며 다정한 목소리로 말했다.

"넌 참 예쁜 나비가 되겠구나. 몸도 살지고 빛깔도 너무 고와."
말벌의 칭찬에 애벌레는 웅크린 몸을 폈다. 그리고는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난 나비 꿈 안 꿔. 언제 잡혀 먹힐지 모르는데. 그냥 그날그날 잎사귀 뜯고 배부르기만 하면 좋겠어."
"불안은 영혼을 갉아 먹는 법이지. 나한테 불안을 없애는 침술이 있단다."
말벌은 뾰족한 침을 살짝 내보였다. 애벌레는 믿기지 않는 눈으로 말벌을 쳐다보았다.
"내 침은 참 달콤해. 조금 따끔하지만 곧 편안해지지. 벌레로 사는 시간도 줄어들어."
말벌의 눈이 검은 유리알처럼 반짝였다. 말벌의 눈에 빨려든 애벌레의 눈빛이 흔들렸다.

"그 침을 놓아줘."
고민하던 애벌레가 자신의 몸을 말벌에게 내맡겼다. 말벌은 지혜로운 선택이라고 칭찬하면서 애벌레의 머리에 긴 침을 조심스럽게, 또 깊숙이 찔러 넣었다. 애벌레의 눈동자가 이내 흐리멍덩해졌다.
"이제 편안해졌을 거야. 날 따라와. 할 일이 있어."
말벌은 더듬이를 까딱여 애벌레를 나무 구멍으로 불러들였다. 애벌레는 몽롱한 표정으로 구멍 속으로 기어들어가 말벌 앞에 납작 엎드렸다.

이번에는 말벌이 애벌레의 등에 꽁지를 박고 알을 낳았다.
말벌의 알을 몸속에 담은 애벌레는 혼미한 표정으로 걸귀처럼 나뭇잎을 갉아 먹고 수시로 통잠을 잤다.
그러던 어느 날, 말벌의 유충들이 애벌레의 살을 뚫고 고물고물 기어 나왔다. 그 순간 애벌레는 배와 등이 갈기갈기 찢겨지고 숭숭 뚫리는 아픔으로 신음하며 바들거렸다.

애벌레는 그것들이 고치를 만드는 동안에도 자신의 새끼들인 양, 남아있는 힘을 다해 지켰다.
"가까이 오지 마."
나뭇가지로 엉기는 진딧물을 물어 죽이고, 노린재나 무당벌레들을 쫓아내기 위해 몸을 곧추세우고 허수아비 춤을 추었다. 어린 말벌들이 고치에서 날아오를 때까지.

▲ 말벌과 나비애벌레 ⓒ한정선

* * * * *

부두 말벌(voodoo wasp)이라 불리는 기생말벌이 있습니다. 이 말벌은 나비유충을 숙주로 삼아 몸속에 수십 개의 알을 낳습니다. 알들이 부화해 어느 정도 성장하면 부두 말벌의 유충들은 나비유충의 몸을 뚫고 나옵니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기괴한 일이 있지요. 수십 마리의 말벌의 유충들이 나비유충의 몸을 뚫고 나오는데도 그 나비유충은 죽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더욱 괴기스러운 일은 몸속을 나온 후 곧바로 성충의 과정을 거치는 그 말벌 유충들이 변태를 끝내고 밖으로 나올 때까지 나비유충이 보호해 준다는 사실입니다. 왜 그럴까요. 나비 유충이 부두 말벌을 위한 완벽한 좀비(zombie)가 되어버렸기 때문입니다.

박근혜 정부가 시작되었습니다. 사실 박근혜 정부는 부자와 유력자를 걱정해 주는 다수의 빈자와 무력자들의 지지로 탄생했습니다. 단칸방에 사는 사람이 재벌의 세금을 걱정해 주는 계급 배반은 부두 말벌의 좀비가 되어 버린 나비 유충의 기괴한 행태와 놀랍게도 닮았습니다. 섣부른 판단일지 모르지만 박근혜 정부는 구밀복검(口蜜腹劍) 정부가 될 가능성이 매우 높습니다. 임기가 시작되기도 전에 박근혜의 핵심공약인 경제민주화는 슬그머니 빠졌고 서민들을 위한 일부 복지공약들도 재원을 이유로 후퇴했습니다. 대신 전교조의 법외노조 등 공안정국이라는 불길한 조짐이 포착됩니다.

좀비가 되어 버린 국민. 그 나라에 희망은 없습니다. 나비를 꿈꾸지 않는 나비애벌레는 그저 벌레일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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