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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전이 낳은 괴물 북핵, 대타협 외길만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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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휴전이 낳은 괴물 북핵, 대타협 외길만 남았다

[정전 60주년, 평화를 선택하자] <1>

2013년, 정전 60년을 맞아 <프레시안>과 참여연대는 장기간의 정전이 낳은 문제점을 짚어 정전체제의 한계를 진단하고, 한반도 주민들의 안녕과 평화를 담보할 수 있는 평화적·포괄적인 해법을 모색하고자 '정전 60주년, 평화를 선택하자' 연재를 공동 기획했습니다. 다양한 분야의 필자들을 통해 현안 대응책은 물론, 평화를 바라는 이들에게 외교·안보 쟁점과 관련해 바람직한 관점을 제안하고자 합니다. <편집자>

북한이 3차 핵실험을 단행하는 날, 필자가 관심을 가진 것은 핵실험이 아니라 숫자 3이었다. 영어에서 3(three)의 어원은 변화, 전환을 의미하는 trans이다. 동서양의 역사와 여러 고등종교, 그리고 단군신화를 막론하고 3은 창조, 완성, 조화 등 대체로 긍정적인 의미를 나타냈다. 물론 삼진아웃 같은 좋지 않은 의미도 있지만 말이다. 북한의 입장에서 3차 핵실험은 핵개발 기술이 본궤도에 올랐음을 의미할 것이다. 본궤도란 핵무기 개발에 필요한 기술적 요건을 거의 충족했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

▲ 북한이 3차 핵실험을 한 다음 날인 13일 북한 <조선중앙통신>은 북한 노동자들이 3차 핵실험 성공 소식을 듣고 환희에 차 있다며 사진을 공개했다. ⓒ연합뉴스

3차 핵실험의 무게

그러나 북한의 핵무장 능력이 높아진 한반도에 살고 있는 한 사람으로서, 또 한반도 평화를 갈망하는 한 사람으로서 3차 핵실험 앞에서 깊은 절망이 일어났음을 고백한다. 북한이 핵개발을 하는 전후 사정과 맥락을 알고 있지만, 3차 핵실험은 1차, 2차 때와 그 느낌이 확연히 달랐다. 북한은 물론 북한의 핵개발을 막지 못한, 아니 미필적 고의로 방치한 관련국들, 한마디로 국가에 대한 잠재된 회의가 갑자기 일어난 것이다.

북한은 왜 핵무장에 나섰는가? 언제부터? 이 질문에 대한 답이 대응 방향과 방법을 일차적으로 정해줄 것이다. 왜라는 질문에 대한 답은 복합적이고, 그 복합적인 답을 구하는 방법도 복합적이다. 불공정한 핵 독점체제와 북한의 구조적인 안보 불안이 일반적으로 제시되고 있는 답이다. 안전보장, 경제·과학기술상 이익, 북한 정권의 대내외적 존재 과시가 또 다른 일반적 답이다. 제재와 압박에 나서지만 핵확산을 한계선으로 북한 위협론을 재생산해 분단체제를 유지하려는 주변 강대국과 그 하위 동맹자들의 거대한 음모는 소수설에 해당한다.

언제부터인가? 적어도 1990년대 초, 냉전 해체로 북한의 안보가 역내 세력균형 체제로 담보되지 못하면서. 정말 그때부터인가? 그러면 북한과 미국 사이의 1994년 제네바 기본합의, 2000년 공동 코뮤니케, 그리고 두 차례의 남북정상회담과 2005~2007년 6자회담을 통한 일련의 비핵화 조치는 무엇인가? 일관된 북한의 기만전술? 그러면 한미중일러 등 6자회담 참가 5개국은 모두 북한의 기만전술에 당한 것인가?

북한은 냉전 해체기 국제적 고립에서 벗어나기 위해 주변국들과 관계 개선(이른바 전방위 외교, 특히 대미관계 개선) 전략을 먼저 취했다. 물론 핵개발을 완전히 포기하지 않았다. 합리적이었다. 비군사적인 방식으로 체제 생존을 구속력 있게 보장받지 못했으니까. 제네바 합의 이행을 부정하고 '악의 축' 발언, 선제 핵공격 노선을 천명한 조지 W. 부시 정부 들어 북한은 핵 옵션을 선택했다고 본다. 물론 9.19 이행 프로세스에 일말의 기대를 취했지만, 오바마 민주당 행정부의 전략적 인내(무시, 압박)에 직면해서 핵개발 드라이브를 걸었다. 북한의 핵개발은 미국의 대북정책, 혹은 한미 간 대북정책 방향에 의해서 결정된 부분이 있다는 점을 지적하고자 한다. 협상 전략의 문제에 앞서 대북 정책에 관한 시각, 접근 방향에 문제가 있었던 것이다. 진정성 있는 태도 및 역사구조적 인식의 결여로 포괄적이고 일관된 접근이 불가능했다. MB의 등장은 그 촉매제 정도. 요컨대 3차 핵실험으로 분명해진 북한의 핵무장 능력 강화는 북한 정권의 권력욕과, '불량국가' 북한을 필요로 하는 국제안보족의 합작품이다. 대작은 합작 아닌 것이 없다.

이제 한반도 비핵화는 물 건너갔다, 눈에는 눈, 핵에는 핵. 한반도 전역에 핵 유령이 횡행하는 시대를 맞이하려나. 그러나 무거운 마음을 진정시키고 3차 북핵실험을 생각하면, 이제 모호하고 어정쩡하고 임시방편적인 접근은 일말의 유용성도 없다. 근본적 선택에 직면해 있다. 이분법적 선택을 강요받고 있다.

이분법이 필요한 경우

두 가지 길은 대타협과 대파국이다. 상황의 엄중함에 따른 깊은 사고, 그에 따른 책임 있는 판단이 필요하다. 북한이 3차 핵실험을 하지 않을 것이라고 판단한 사람은 1%도 안 될 것이다. 그러면 북한의 길은? 비타협적인 핵 보유국의 길, 아니면 그런 의도 및 능력 과시를 통한 이익 극대화 전략이다. 실제 북한은 3차 핵실험을 전후로 그런 메시지를 계속해서 던지고 있다. 북한이 나아갈 최종 선택은 물론 관련국들의 반응과 상호작용하며 결정될 것이다. 예단은 금물이다.

북한을 믿을 수 없는 존재, 대화 부적격자로 판단하고, 그래서 북한이 비타협적인 핵 보유국의 길로 간다고 간주하고 '우리도 핵무장으로 나서야 한다', '선제 타격이 최상의 안보다', '억제력을 강화해야 한다'는 주장이 주류 언론을 통해 넘쳐나고 있다. 이들은 평화적 통일을 추구하는 대한민국 헌법을 부정하고, 북한의 핵무장 강화를 정당화해주고, 동북아 군비 경쟁과 핵 도미노를 방조하는 자들이다.

두 가지 길이 있지만 사실은 외길밖에 없다. 북핵은 휴전체제가 낳은 괴물이다. 휴전체제 60년에 즈음하여 한반도에 평화체제를 수립하는 대타협의 길에 나서는 것이다. 부시 정부 시절인 2002년 10월 3~5일 평양에서 열린 북미회담에서 북한은 핵개발 계획을 시인하며 핵 포기를 대가로 미국에 핵공격 위협 중단, 평화협정 체결, 경제 제재 해제를 요구했다. 그런 요구가 수용되지 않았기 때문에 핵개발을 계속해왔다는 것이다. 휴전체제에 종지부를 찍고 한반도에 공고한 평화를 가져와야 한다. 그 방법은 북한의 핵개발 목적을 다른 방법으로 대체시키고, 한국전쟁 종식을 선언하고, 북미 간에 관계정상화를 해 북한을 국제사회의 규범에 순응시키는 것이다. 그래서 대타협이다.

휴전체제 하에서 누린 전쟁 없는 평화는 그 시효가 다했음을 우리는 지난 짧은 시간에 다시 절감했다. 불균형적인 힘에 의한 거짓 평화(pax)를 평화의 전부로 생각해왔다. 다른 사람을 공격하고 위협하면서 나의 평화를 얻는 것은 평화의 불가분성에 위배되고, 그것은 지속가능한 평화도 참다운 평화도 아니다. 휴전체제 아래서 평화를 누리고 그런 평화를 참다운 평화라 선전해온 메커니즘과 손 끊고 평화체제의 길로 나설 때이다.

평화운동의 역할

대타협은 타협할 내용이 많고 당사자 간 이해관계가 복잡하다. 그래서 시간과 인내가 필요하다. 정말이지 지금부터 전략적 인내가 필요한 때인지도 모른다. 한반도 평화를 갈망하는 사람들은 핵무장을 비롯한 각양의 방법으로 적대와 대립을 연출해온 모든 국가권력과 거리를 두고 감시하고 경계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3차 핵실험 국면에 직면하여 한국의 평화운동이 취할 태도 몇 가지를 제시하며 토론을 기대한다. 우선, 긴장과 갈등을 조장하는 일체의 언동을 경계하고, 대신 현 국면을 진정시키고 평화적으로 문제를 논의할 대화가 필요하다. 핵 보유국이 주도하는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와 관련 국가들의 일련의 대북 제재는 한반도 비핵화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한다. 남한을 포함한 주변국들의 권력교체기에 이루어진 북한의 핵실험과 관련 군사 조치가 상황을 악화시킨 것은 모두 지적하는 바이다. 그러나 핵실험 이후 하나의 도발적 행동도 지금과는 다른 통제불능의 긴장을 초래할 수 있다. 신뢰를 형성하기 위한 신뢰 프로그램! 마찬가지로 평화를 조성하기 위한 평화적 조치가 절실하다. 관련국들의 대화가 조속히 이루어지지 못하면 민간 차원의 대화를 먼저 하는 것도 필요하다.

둘째는 관련국들이 포괄적·근본적 접근으로 한반도 비핵화를 추구하기를 바란다. 한반도 비핵화 입장을 고수하는 것이 힘든 것이 사실이지만 그 목표를 포기하는 것은 위험한 일이다. 북한이 한반도 비핵화 공약을 위반하고, 6자회담의 소멸을 선언하고, 3차 핵실험을 단행한 것이 비핵화에 강력한 도전이 되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북한이 보인 일련의 조치를 '비핵화 포기 → 핵무장·선제공격' 등으로 반응하는 것은 북한의 핵무장에 마지막 주단을 깔아주는 것이다. 전화위복! 북한의 핵 개발 배경과 목적을 객관적으로 인식해 한반도 비핵화를 달성할 담대한 전략으로 전환을 시도해야 한다. 비핵화를 평화체제 수립의 전기로 활용하는 지혜가 필요하다. 북한의 무거운 요구에 부응하는 동시에 그에 상응하는 통제 및 검증 체제를 제시하며 대타협 방안을 수립해야 한다.

셋째는 안보와 환경 분야로 나뉘어 전개되고 있는 비핵평화운동을 통합적으로 전개할 필요성이다. 이에 대해 이미 많은 논의가 있는 것으로 알고 있지만, 둘로 나뉜 평화운동은 실효성은 물론 인식상의 차이로 여론의 지지를 높이고 핵안보 지지 세력과 경쟁하는 데 어려움을 가질 수 있다. 핵문제에 대한 인식상의 차이로 비핵평화운동이 통합되지 못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군사적·비군사적 방법과 평상시·비상시 어떤 경우든 핵이 인류의 생존과 미래에 유용하다거나, 한발 양보해서 필요악이라는 주장은 적어도 평화운동에서는 설득력이 없다. 북핵 문제의 특수성으로 인해 '핵의 평화적 이용'이 전략적으로 필요하다는 점을 이해하지 못하는 바 아니지만, 평화운동이 그런 접근을 취하는 것은 적절해보이지 않는다. 북한 문제를 보편성의 예외로 간주하는 것은 인식상·실천상의 문제가 적지 않기 때문이다. 북핵 문제가 보편적 평화 문제의 하나이고 한국의 평화운동이 보편가치 구현을 지향한다면, 북핵 문제에 대한 절충적·방편적 대응은 정리할 때가 되었다. 그렇지 않을 경우 평화운동은 소위 북핵 해법이라는 국가 간 공학적 접근을 추종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넷째, 평화운동을 동북아 지역 차원에서 전개하자는 제안이다. 비정부기구 활동은 국가의 경계를 넘어서 협력하고 네트워크를 형성하는 것이 그 특징 중 하나이다. 물론 한반도의 특수성과 민족국가 단위의 동북아 지정학이 제약으로 작용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동안 무장 갈등 방지를 위한 글로벌 파트너십-동북아 회의(GPPAC-NEA), 여성 6자회담 등 역내 평화네트워크가 존재해왔지만, 동북아 비핵지대화를 목표로 북핵 문제를 포함해 역내 전반적인 군비 경쟁 감시, 활동 공유 및 공동 행동 기획 등을 위해 상시 평화네트워크를 조직할 필요가 있다.

마지막이지만 중요도에서 떨어지지 않는 일로서, 적대와 갈등에서 혹은 그것을 조장해서 이익을 누리는 소위 안보족의 반평화성과 반민주성을 감시하는 일이다. 미국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한국에서도 적을 상정하고 그 적의 위협을 과장해서 군사비를 늘리고(따라서 복지비를 줄이고), 안보 정책에 관여하는 사람들의 정치적 영향력을 높이고 때때로 부정한 방법으로 경제적 이익도 챙기고, 비민주적 정책 결정을 관행화하는 작태가 비일비재하다. 위기를 조장하고 안보 이익을 추구하는 집단의 핵심 인물들이 군대에 가지 않는 비율이 높다는 것은 그 부대현상 중 하나에 불과하다. 이들은 국가 안보에 기여한 적이 없거나 그럴 의향이 없으면서 시민들을 위협해, 다시 말해 공공의 문제를 이용해 사익을 추구하는 공공의 적이다. MB가 물러간다 해도 안보족의 네트워크는 평화네트워크보다 강고하다. 외교 안보 문제 역시 문민 통제의 대상이 되는 이유이다.

북한의 3차 핵실험은 평화운동에도 깊은 성찰과 설득력 높은 방향 정립을 요구하고 있다. 현상에 따라가는 접근보다는 시민들의 안전과 역내 평화를 지속가능하게 만들어갈 지향과 연대의 틀을 다져나갈 때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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