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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편적 무상보육, 반년 만에 말 뒤집은 진짜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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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편적 무상보육, 반년 만에 말 뒤집은 진짜 이유

[복지국가SOCIETY] 보육지원 정책의 올바른 개편 방안

지난 9월 25일 발표된 정부의 보육지원 체계 개편 방안에 대한 정치사회적인 파장은 매우 컸다. 지난해 연말, 이명박 대통령은 국회의원 총선거를 앞두고 '만 5세 누리과정의 전 연령 확대'라는 이름으로 소득계층별 차별이 없는 보편적 무상보육 정책을 발표하였다. 여기서 이 대통령은 "보육이 복지이고, 보육은 미래를 위한 투자"라고 하였는데, 보편적 무상보육을 시행한 지 6개월이 채 되지 못해 국민을 상대로 자신이 했던 말을 전면적으로 부정하는 정책을 발표한 것이다.

보편적 무상보육 정책의 시행으로 인해 보육시설 이용 아동들이 급격하게 늘어난다거나, 이로 인해 보육료 지원에 대한 정부재정 소요가 늘어나는 등의 당연히 예상되는 결과조차도 미리 내다보지 못하고 임박한 총선거에 여당이 유리하도록 중앙정부 예산만을 다급하게 반영하여 발표했던 것이나, 정책을 시행한 지 몇 개월 되지 않아 이를 철회함으로써 국민들을 불안하게 하고 불편하게 만드는 것 등 이명박 정부가 행한 일련의 보육정책 과정 모두가 그야말로 무책임과 무능의 극치라 하겠다.

박근혜 후보가 새누리당의 공식 대선 후보로 선출되어 청와대 면담을 하고 돌아온 이후에 정부가 이러한 정책을 발표한 것을 두고 일각에서는 '현 대통령과 여당의 대선 후보 간 불화설'조차 나오고 있는 실정이다. 선거를 두 달 정도 앞둔 시점에 집권여당 후보에게 큰 타격이 될 이러한 정책 번복을 발표하는 것은 장관이 대통령과 협의 없이 독단적으로 벌인 일이 아니라면 청와대의 국정 장악 능력에 문제가 있다는 것이고, 대통령과 협의하여 발표한 것이라면 여당의 공식 후보로 선정된 분이 대통령의 마음에 들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해석하는 것이 상식적일 것이다.

특히, 지난 2010년 6.2지방선거를 앞두고 김상곤 교육감이 제출한 보편적 무상급식 예산을 한나라당 도의원들이 중심이 된 경기도 의회에서 별 생각 없이 일방적으로 삭감하여 이후 일련의 선거에서 보편적 복지 바람을 불러오고, 지방선거의 패배를 넘어 궁극적으로는 서울시장 중도사퇴까지 초래했던 일련의 정치적 과정들에 대한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기 때문에 새누리당의 입장에서도 이명박 정부의 이러한 보육정책에 대한 번복이 참으로 이해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이러한 이해하기 어려운 결정이 내려진 근본적인 이유는 무엇일까. 나는 이것이 현 정부의 철학과 국정노선의 한계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보육을 국가가 온 국민에게 제공해야 할 기본적인 사회서비스로 보지 않고 저소득층에 대해 선별적으로 지원하는 잔여주의 복지 정책으로 보기 때문이다. 즉, 시설 이용은 실수요자 중심으로 전환하여 최대한 줄이고, 전업주부들은 되도록이면 가정보육을 하도록 유도하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이러한 정책 결정의 더 직접적인 이유는 내년부터 확대 적용하기로 되어 있는 3세와 4세 아동의 누리과정에 필요한 재원을 마련하기 위해서 일 것이다. 누리과정의 확대는 지방교육재정 분담금으로 조달하도록 되어 있으므로, 지방비 대응 없이 전액을 국비로 지원해야 한다. 그래서 중앙정부 입장에서는 신규로 늘어날 이들 재원을 마련하기 위해 기존에 주던 보육지원 대상자들 중에서 30%를 떼어내는 방식으로 보편적 무상보육의 일부 철회를 무리하게 발표하였을 것이다.

이번에 정부가 발표한 '0세에서 2세까지 아동에 대한 보편적 무상보육 포기' 정책은 크게 잘못된 발상에 근거하고 있고, 실제로도 시대에 뒤떨어진 내용으로 가득 채워져 있다.

첫째, 정부는 가정양육과 시설보육 지원 간의 형평성 확보를 위해서 지원제도의 개편이 필요하다고 하였으나, 가정양육에 대한 방문보육교사 파견 사업이나 가정보육 도우미를 가정으로 보내 주는 것 등의 실질적인 가정양육 지원 정책이 더 절실한 것이지, 시설보육 이용자들에 대한 지원을 줄여서 양육수당으로 지원해 준다고 형평성이 높아지는 것은 아니다. 부모 소득 하위 70%까지만 지원을 받으면 71%에 속하는 가구에 대한 형평성은 어떻게 구현할 것이며, 어차피 본인부담금으로 시설을 이용해야 하는 상위 30%가 자신들만 이용할 수 있는 고가의 보육시설을 이용할 경우 나머지 70%의 자녀들이 차별받는 문제나 전체적으로 저소득층 아이들이 다니는 보육시설의 질이 낮아지는 어떻게 방지할 것인가.

정부는 이번 조치가 부모의 선택권을 높이기 위한 것이라고 하지만, 현금으로 직접 양육수당을 지원하면 저소득층의 경우 이 현금을 활용하기 위해 아이들을 보육시설에 보내지 않게 되면서 오히려 저소득층으로 하여금 보육시설 이용을 못하게 하는 차별이 생길 우려가 높아진다.

둘째, 정부는 가정양육의 부담을 완화하기 위해 양육수당 수혜 대상자를 확대하고 지원 금액을 현실화 하겠다고 하였으나, 이는 문제의 올바른 해법이 아니다. 가정양육을 활성화 하려면 월 평균 10만 원 수준의 양육수당을 주어서 해결하려 할 것이 아니라 근본적으로 육아휴직 제도를 정상화하여야 한다. 정규직들조차도 육아휴직 이용률이 5% 미만에 그치고 있고, 비정규직은 육아휴직을 신청조차 할 수 없는 상태에서 정부가 전업주부에게 양육수당을 주면서 가정양육을 하라고 하는 것은 현실에서는 '여성들은 그냥 집에서 아기나 보라'는 것과 같은 말이 되어 버린다.

고등학교 졸업자의 80%가 넘는 학생들이 대학에 진학하고, 대졸자의 반이 여성인 상황에서 우리나라의 여성 경제활동 참가율은 아직도 50% 선에 그치고 있어 OECD 국가들 중 가장 낮다. 즉, 많은 여성들은 일 하고 싶어도 일자리가 없거나 일을 할 제도적 여건이 조성되지 않아서 전업주부가 된 것이다. 모든 여성이 일을 통해 자아를 실현할 수 있도록 정부가 도와주는 것이 경제의 발전에도 유익하거니와, 이것이 진정한 의미의 양성평등이자 여성을 위한 복지다. 정부가 여성들에게 가정양육의 인센티브를 강조하는 것은 국가 스스로가 저출산고령사회 대책에 역행하는 것이다.

실제로 국책연구기관인 육아정책연구소의 보고서를 보아도 현재 수준(월 최대 20만 원)의 양육수당을 주고서 집에서 가정양육을 하라고 할 경우에 동의하는 비율은 21.2%에 불과하였다. 지원 금액을 두 배 이상 늘려 월 46만 원을 지원하여도 가정양육을 하겠다는 비율은 35.8%에 그치고 있다(영아 양육비용 지원정책의 효과와 개선방안, 2011). 이는 정부가 국민의 세금으로 수행한 연구의 결과도 무시하면서 정반대의 정책을 펴고 있다는 사실을 잘 보여주고 있다.

직장을 구하지 못하여 전업주부가 된 분들이나 취직을 했어도 비정규직이어서 출산과 육아를 위해 어쩔 수 없이 전업주부가 된 사람들이 대부분인 상황에서 5만 원에서 최대 20만 원을 주면서 집에서 아기를 키우도록 강요하고, 전일제 이용도 못하도록 하는 것은 실효성 없는 정책이다. 제대로 된 가정양육 지원정책은 정규직이든 비정규직이든, 교사든 일반 회사원이든, 차별 없이 누구나 1년 정도의 육아휴직을 눈치 보지 않고 선택할 수 있도록 보장하는 것이고, 복직을 하여도 자리가 없어지지 않도록 보장해주는 것이며, 휴직기간 동안 평소 급여의 70% 정도를 받을 수 있도록 제도적으로 지원하는 것이다.

셋째, 정부는 이번 조치가 맞벌이와 가구소득 등에 따라 실수요자 중심의 보육서비스 지원을 위해서 필요하다고 하였으나, 이는 사실과 다르다. 오히려, 이번 정책을 시행할 경우 최대 피해자는 맞벌이 부부가 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수도권의 아파트에 사는 맞벌이 부부의 경우 전세 가격과 차량 가격, 그리고 부부의 연소득을 합산하면 소득 인정액이 정부가 정한 상한선을 넘어버리므로 0에서 2세까지의 아이 137만 명의 30%인 41만 명이 지원 대상에서 벗어나게 된다.

현재 보육서비스를 이용하고 있는 81만 명의 30%인 24.3만 명이 당장 내년부터 지원 대상에서 제외되어 버리므로 각종 학부모 부담금까지 고려한다면 이들 가구가 추가로 부담해야 할 비용은 월 20-45만 원이 될 전망이다. 또, 같은 소득을 가진 맞벌이 가구의 경우도 자녀가 4명이면 보육료를 지원 받을 수 있으나, 자녀가 3명인 가구는 지원 대상에서 제외되는 등 새로운 형평성 문제도 발생할 것이다.

물론, 정부의 이번 발표가 내용적으로 전부 잘못되었다는 것은 아니다. 시간 연장 형 보육을 확대한다거나, 학부모들의 요구에 맞도록 하는 시간제 단기 보육을 도입한다는 등의 정책은 부분적으로 합리적일 수도 있다. 그러나 보편적 무상보육을 시행함으로써 보육시설 이용량이 늘어나서 학부모의 불만이 터져 나오는 것은 질 좋은 국공립 보육시설을 더 지어서 해결해야 할 문제이지, 보육시설을 이용하지 못하도록 하거나 반일제로 이용을 제한해서 해결할 문제는 아니라는 측면에서 정부의 이번 정책 번복은 전면적으로 잘못된 것이다.

궁극적으로 보육서비스는 국방이나 치안과 같이 국가가 기본적으로 제공해야 할 책무가 되어야 한다. 특히, 우리나라와 같이 저출산과 고령화가 심각한 나라에서 아직까지 보육을 전면적으로 제공하지 않고 있다는 것 자체가 말이 되지 않는다. 이미 정부의 발표에 대해 대권 후보 3명이 모두 반대하고 있고, 국회에서 관련 법률을 통해, 또 연말의 예산심의를 통해 무산시키겠다고 공언하고 있으므로, 정부의 이번 정책 번복이 그대로 시행될 가능성은 별로 크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자신의 임기 이후에 시행될 정책을 차기 주자들과 아무런 의논도 없이 일방적으로 발표한 현 정부를 탓하고만 있거나, 모든 주자들이 정부 정책을 반대하고 있다고 해서 안심할 일만은 아니다. 더 큰 문제는 차기 정부에서는 어떻게 하면 더 효율적으로 질 높은 보육서비스를 제공할 것인지를 두고 대선 후보들이 경쟁해도 시간이 모자라는 이 시기에 아직도 무상보육을 보편적으로 할 것인지, 선별적으로 할 것인지에 대한 논쟁으로 시간을 낭비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보육시설에 대해 제대로 된 영양서비스와 보건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보건교사와 영양교사를 추가로 배치하는 정책이나, 보육교사의 수준을 높이고 '아동 대비 교사'의 수를 늘리기 위해 교사의 처우를 개선하고 '아동 대비 교사'의 수과 연동하여 표준 보육단가를 인상하는 방안, 그리고 평가인증 제도를 실효성 있도록 하기 위해 퇴출제도나 학부모 참여 평가단을 운영하는 방안, 0세나 1세 아이에게도 영어와 중국어를 교육한다면서 추가 부담금을 내도록 하는 문제와 서울시의 경우 각 구마다 평균 1만 명 정도의 대기자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법인시설까지 합해도 10%가 되지 않는 국공립 보육시설의 비중을 30%로 늘리는 방안을 두고 대선 후보들이 서로 경쟁하도록 해야 한다.

누가 복지국가 입장에서 보육정책을 제대로 이야기 하는지를 국민들이 잘 판단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이번 대통령 선거의 가장 중요한 쟁점 중의 하나가 되도록 해야 한다. 그리고 이에 소요되는 재원을 어떻게 마련할 것인지도 분명히 밝히도록 해야 한다.
▲ 어린이집 (사진은 기사 내용과 무관)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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