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키리크스가 폭로한 주한 미국대사관의 2008년 5월 29일자 비밀 외교전문의 일부 내용이다. 당시 국회부의장이자 '상왕(上王)'으로 불렸던 이상득 의원이 알렉산더 버시바우 주한 미국대사를 만나 "이명박 대통령은 미국·일본 양국과 잘 협력할 것"이라며 이렇게 말했다는 것이다.
이미 널리 알려진 이 발언을 다시 언급한 이유는 최근 한일 군사협정 체결 움직임이 급물살을 타고 있고, 이것이 미국과 일본 전략가들의 오랜 숙원이었던 한-미-일 삼각 동맹으로 이어질 공산이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MB 임기 첫 해에 나온 이상득 의원의 발언이 빈말로 끝나지 않고 있는 셈이다.
위키리크스가 폭로한 내용에는 이런 것도 있다. 2010년 2월 천영우 당시 외교부 차관은 캐슬린 스티븐스 주한 미국대사를 만나 북한이 곧 붕괴될 것이기 때문에 한국 주도의 한반도 흡수통일 필요성을 강하게 제기했다. 이에 대해 스티븐스는 "강력한 한일관계가 일본으로 하여금 통일된 한반도를 받아들이는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주장하자, "천 차관은 스티븐스 대사의 주장을 인정했다."
미국은 MB 정부의 종북(終北)주의적 대북정책, 즉 '기다리면 북한은 망할 것이고 그 때 가서 흡수통일하면 된다'는 단세포적 접근을 한-미-일 삼각 동맹 추진의 기회로 이용하려고 한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미국의 의도는 상당 부분 충족되고 있다.
한일 군사협정, 초읽기에 들어갔나?
사실상(de facto)의 한-미-일 삼각 동맹을 구축하기 위한 핵심적인 필요조건은 한일 군사협력 강화다. 한-미, 미-일 양자동맹에 더해 한일간에도 군사 네트워크를 연결하면 미국 주도의 3자 군사 관계를 구축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과거사 및 독도 문제, 일본의 군사 대국화 및 동북아 신냉전 출현에 대한 우려로 한일 군사협력 강화는 이전 정부까지 금기시되어왔다. 그런데 MB 정부 들어 그 금기가 깨지고 있다.
이는 양국 정부의 최근 움직임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한국의 국방부와 일본의 방위성에 따르면, 한일 군사협력 체결이 초읽기에 들어간 분위기다. 김민석 국방부 대변인은 5월 말을 목표로 "일정과 의제를 협상하고 있다"고 밝혔다. 일본 방위성 역시 "양국 국방장관은 작년에 군사정보 보호와 군수 지원 분야에서 협정 체결을 추진키로 합의했다"며 "우리는 군사협정 체결을 위한 회담의 속도를 높이고 있다"고 밝혔다.
이러한 움직임을 반영하듯, 이르면 5월 말에 김관진 국방장관이 일본을 방문해 다나카 나오키 방위상과 회담을 갖고 군사비밀보호협정(GSOMIA)과 상호군수지원협정(ACSA)을 체결할 것이라는 소식이 흘러나오고 있다.
▲ 한미 군사훈련에 참가하는 한국 공군 F-15K 전투기. ⓒ연합뉴스 |
MB 임기 첫 해에 한-미-일 안보 대화 합의
이와 관련해 주목할 것은 미국이 사실상의 한-미-일 삼각 동맹 추진을 기정사실화하고 있다는 점이다. 미국은 '2011년 국가군사전략' 보고서에서 "우리는 일본과 한국 사이의 안보 관계를 증대하고 군사 협력을 강화하며, 지역적 안정을 보존할 수 있도록 계속 노력할 것"이라고 밝혀, 양자 동맹관계를 3자 동맹으로 전환시키고자 하는 의도를 분명히 한 바 있다.
또한 2011년 6월 하순 워싱턴에서 열린 일본과의 외교+국방장관 회담(2+2 회담)에서 "호주 및 한국과 3자 안보·방위 협력을 강화"하기로 했다고 발표했다. 이는 미국이 미일동맹을 기축으로 삼아 동아시아 군사동맹을 한국과 호주까지 포괄하는 형태로 전환시키겠다는 의미이다. 미일 양국이 '2+2' 회담에서 이와 같은 입장을 공식적으로 밝힌 것은 이때가 처음이었다. 아울러 일본이 한-미-일, 미국-일본-호주로 구성된 두 가지 3자 안보 대화틀에 모두 참여하고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는데, 이를 통해 미국이 미일동맹을 아시아-태평양 전략의 중심축으로 삼고 있다는 것을 거듭 확인할 수 있다.
이러한 입장은 최근 들어 더욱 구체화되고 있다. 2012년 3월 미 의회 청문회에 출석한 국방부의 아태 담당 차관보인 피터 라보이(Peter Lavoy)는 "미국, 한국, 일본 3자 협력이 아시아-태평양 지역의 안보를 증진하는데 점차 중요한 틀이 되고 있다는 점을 인식하는 것이 중요하다"며, 3자 방위 협력 분야로 정기적인 고위급 정책 협의, 해양 훈련 및 다자간 반확산(counter-proliferation), 재난 구조, 해양 안보 구상을 강화하기 위한 정보 공유 등을 적시했다.
미국이 말한 한-미-일 3각 군사협력 체제에서 핵심을 이루는 것이 바로 미사일방어체제(MD)라는 점도 중요하다. 이와 관련해 미 국방부 핵·미사일방어 정책 담당 부차관보인 브래들리 로버츠(Bradley H. Roberts)는 2012년 3월 12일 미 하원 청문회에서 "미국은 일본·호주 및 일본·한국과 3자 대화에 참여하고 있다. MD는 이들 대화에서 다뤄지고 있는 주제다. 이러한 3자 대화는 국제적인 MD 협력을 확대하고 지역 안보를 강화하며 동맹국의 능력을 향상시키고자 하는 미국의 노력의 핵심적인 요소"라고 말했다.
보름 후 미 국방부 산하 미사일방어국(MDA) 주최로 열린 토론회에 참석한 매들린 크리던(Madelyn Creedon) 국방부 글로벌 전략담당 차관보도 '유럽 MD'와 흡사한 지역 MD 시스템을 아시아와 중동에도 구축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아시아에서는 한-미-일과 미-일본-호주 두 축으로 3자 대화를 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그렇다면 미국은 어떤 근거로 한-미-일 삼각 동맹을 기정사실화하고 있는 것일까? 이에 대한 실마리는 위키리크스가 폭로한 내용에서 찾을 수 있다. 위키리크스가 공개한 2008년 11월 4일 주한미대사관이 작성한 비밀 문서에 따르면, 이명박 정부는 임기 첫해부터 한-미-일 3자 안보 대화에 동의한 것으로 나와 있기 때문이다. 2008년 9월 10일 열린 한미 안보정책구상(SPI) 회의에서 한국측은 독도 문제를 들어 난색을 표했으나, 미국측의 강력한 요청을 받고는 "9월 22일 전제국 정책실장이 제임스 신(James Shinn) 국방부 차관보에게 서한을 보내 2008년 11월에 열리는 3자 대화에 참석할 의사를 밝혔다"는 것이다.
실제로 2010년부터 한-일, 혹은 한-미-일 간의 군사안보협력 강화 움직임은 눈에 띠게 증대되어 왔다. 한일 군사 협력 강화는 크게 두 가지 양태를 보이고 있다. 하나는 상호군수지원협정(Acquisition and Cross-Servicing Agreement, ACSA)'과 '군사정보포괄보호협정(General Security of Military Information Agreement, GSOMIA)'과 같이 양국의 군사 협력을 제도화하는 군사 협정 체결 움직임이다. 또 하나는 과거 한-미와 미-일로 나누어 진행되어 실시되었던 군사 훈련에 한일 양국의 군 인사가 교차 참관하는 '한-미-일 합동 군사훈련 기초 닦기'이다.
이러한 현상은 동아시아에서 미국 주도의 한-미-일 3각 동맹체제를 구축하려는 미국의 오랜 숙원이 반영되어 있다. <워싱턴포스트>가 미 합참의장인 마이크 멀린(Mike Mullen)이 2010년 12월 9일 도쿄에서 한일 양국은 "과거에 벌어진 일에 너무 집착하지 말고 협력의 필요성을 인식해야 한다"고 말한 것을 상기시키면서, "(한일 군사협력은) 미국 정부가 강력히 요구해온 조치"라고 보도한 것에서도 잘 드러난다. <아사히신문> 역시 "미국은 일본과 한국의 방위 협력의 필요성을 오랫동안 옹호해왔다"고 전했다.
또한 북한의 핵·미사일 위협론과 북한급변사태론을 포함한 한반도 유사시에 대한 공동 대응 수위를 높이고, 부상하는 중국에 대한 군사적 견제와 봉쇄를 추구하려는 안보 전략이 반영되어 있다. 아울러 한일 양국 정상이 말한 "미래지향적 관계"의 한 단면을 보여준다. 간 나오토(菅直人) 총리는 2010년 8월 한일강제병합 100주년을 맞이해 강제병합의 강제성과 불법성이 누락된 "사죄의 심정"을 밝히면서 군사 분야에서도 한일간의 협력을 강조한 바 있다. 이명박 대통령 역시 2010년 11월 일본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미일 군사훈련에 한국군 참관 등 한일 군사 협력에 대해 양국이 "서로를 이해하고 신뢰를 쌓아 올린다면 자연스럽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급물살 타는 한일 군사협력
기회를 엿보던 한-미-일 삼국은 천안함 침몰을 세 나라의 군사 협력 부상의 계기로 삼았다. 2010년 7월 하순 동해에서 실시된 한미 연합훈련에 사상 최초로 일본 해상자위대 소속 장교들이 조지워싱턴호에 승선해 이 훈련을 참관했다. 그 해 10월에 한국 주관으로 부산 앞바다에서 실시된 대량살상무기확산방지구상(PSI) 훈련에도 일본은 호위함과 P3C 초계기 등을 투입했다. 일본 자위대 함정이 한국 수역으로 들어와 군사훈련을 실시한 것은 해방 이후 처음이었다. 또한 2010년 12월 3일부터 10일까지 실시된 미일 합동군사훈련 '예리한 칼'에도 사상 최초로 한국군 장교 4명이 옵서버 자격으로 참가했다.
이와 관련해 로버트 윌러드 미국 태평양군사령부 사령관은 "한미 합동훈련에 일본 자위대 장교가 참관한 데 이어 한국 역시 미일 합동훈련에 옵서버 자격으로 참가했다"면서 "이는 미국의 입장에서 고무적인 움직임"이라고 평했다. 그러면서 "현재 협력 강화를 위한 논의와 공동 작전수행 능력을 감안할 때 3국이 앞으로 어느 시점에 합동훈련을 실시할 적기(good chance)가 올 것"이라고 말했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이명박 정부 들어 한국과 일본 사이의 군사 협정 체결 움직임도 본격화되고 있다. 2011년 1월 10일 방한한 기타자와 도시미(北澤俊美) 일본 방위상은 김관진 국방장관과 회담을 갖고 ACSA 체결을 우선 추진하되, GSOMIA도 점차적으로 추진키로 했다. 그리고 MB 정부 임기가 끝나기 전에 이들 협정을 마무리하려는 움직임이 가속화되고 있다.
만약 한일 양국 정부 계획대로 이들 군사협정이 체결되면, 그 파장은 상당할 수밖에 없다. 일본 군국주의의 최대 피해자였던 한국이 한반도 유사시 자위대 출동 등 일본의 군사대국화를 부추기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또한 독도와 위안부 등 과거사 문제가 해결되지 않은 상태에서 국가간 협력의 최고 수위에 해당하는 군사협력까지 동의해주는 것은 일본 정부에게 잘못된 메시지를 전달할 수 있다. 무엇보다도 냉전의 최대 피해자인 한국이 동북아의 신냉전을 부채질하는 결과도 가져올 수 있다. MB 정부가 한국과 한반도의 미래에 엄청난 부담을 떠넘기기 전에 제동을 걸어야 하는 것이다.
☞ 다음에 이어질 글: 한일 군사협정, 무엇이 문제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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