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일 파업 중인 전국언론노조 KBS본부(위원장 김현석, 이하 새노조)는 <Reset KBS 뉴스9> 3회에서 청와대 지시로 국무총리실 공직윤리지원관실 점검1팀이 광범위한 대상을 사찰한 후 작성한 '하명사건 처리부' 2619건을 단독 입수해, 그 내역을 공개했다. 내막은 충격적이다.
보도를 보면, 여태껏 사찰 대상으로 알려진 남경필 의원과 민간인 김종익 씨는 물론, 서울대 병원노조, 산부인과 의사, 촛불집회 관련단체 등이 모조리 사찰대상에 올랐다. 재벌, 야당 정치인, 노동단체, 언론인도 청와대의 감시를 받았다. 검찰이 2010년 법원에 제출 당시 '다른 민간인의 사찰 증거는 없었다'고 밝힌 수사결과는 거짓이었거나, 잘못된 수사였던 셈이다.
ⓒ<리셋 KBS 뉴스9> 방송화면 |
전 정권 임명한 공기업 간부 무차별 사찰
예전 사립학교 이사장을 지낸 후 개인사업 중인 박모 씨는 지난 2008년 총리실의 사찰대상이 됐었다. 그러나 정작 그는 사찰 사실도 모르고 있었다. 비밀리에 국가 공권력이 사적개인의 뒤를 캔 것이다. 박 씨는 정태근 의원과 식사를 한 것 정도 외에는 사찰 받을 일이 없다고 설명했다. 정 의원은 2008년 당시 '상왕'으로 불리던 이상득 의원에 반기를 들어 국정원의 사찰대상이 됐었다.
서울대 병원노조가 사찰대상이 된 이유는, 광우병 사태 당시 병원 벽보에 이명박 대통령의 패러디 그림을 그렸기 때문이다. 독재자에 대한 비판이 허용되지 않은 과거 군사독재 시절을 연상케 하는 부분이다.
노무현 정권 당시 임명된 공기업 임원의 사퇴를 정부가 압박한 정황도 나왔다. 공기업 인사가 줄줄이 교체될 때 '압박이 있었을 것'이라는 추측은 무성했으나 그 구체적인 증거는 처음 나온 셈이다.
보도에 따르면 이세웅 전 대한적십자사 총재, 김문식 전 국가시험원장, 김광식 전 한국조폐공사 감사, 박규환 전 소방검정공사 감사가 사찰대상에 올랐었다. 이들은 모두 노무현 정부 때 임명됐으며, 이명박 정부 들어 중도사퇴했다. 특히 하명사건 처리부를 보면 김 전 감사, 박 전 감사의 옆에는 '공기업 임원사표 거부'라는 설명까지 달려 있다. 이들이 청와대의 사퇴 압박을 거부하자, 압박할 거리를 찾기 위해 뒷조사에 나선 것 아니냐는 추측이 가능한 부분이다. 새노조는 "약점을 찾기 위해 뒷조사를 한 것으로 보인다"고 지적했다.
박 전 감사는 새노조와의 인터뷰에서 "참여정부 인사 중에 공기업 감사는 제가 마지막까지 있었을 것"이라며 "그러다 보니까 총리실 민간인 사찰팀에서 집중적으로 8번 정도 왔"었다고 말했다.
또 충남홀대론을 펴 정부와 갈등을 일으킨 이완구 당시 충남도지사도 사찰 대상에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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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무원, 재벌도 무차별 감찰
이 문건의 대부분은 고위 공무원, 공기업 인사들이다.
어청수, 강희락, 조현오 등 경찰 고위직들의 업무능력, 비위의혹 등을 감찰한 '공무보고서'가 작성됐다. 장수만 전 국방부 차관, 윤여표 전 식품의약품안전청장, 최성룡 전 소방방재청장은 물론 공기업 사장들도 모두 감찰 대상이었다.
이들 공직자에 대한 공무보고서를 보면 크게 '국정철학의 구현', '직무역량', '대외관계', '도덕성 및 복무기강' 등의 항목을 두고 별점 5개를 만점으로 개별 점수가 정리돼 있다. 누구를 만나는지, 조직장악력은 어떠한지, 도덕성에 문제는 없는지, 정부 국정철학은 얼마나 잘 따라가는지 등을 모두 확인했다.
그러나 이들 정보가 얼마나 신뢰성이 있었는가는 의문이다. 장수만 전 차관, 강희락 전 경찰청장에 대해 공무보고서는 도덕성 만점을 매겼으나 이들 둘은 건설현장 식당 비리에 연루돼 형사처벌됐다.
그럼에도 이러한 사찰은 공직자 인사에 막강한 영향력을 발휘한 것으로 보인다. 이상희 전 국방부장관의 경우 공무보고서는 "자존심이 강한 독불장군형"이라는 부정적 평가를 내렸고, 이 전 장관은 이 평가가 내려진 5개월 후 경질됐다.
장차관급뿐만 아니라 중간급 간부에 대한 사찰도 이뤄졌다. 지방경찰 총경급 100여 명에 대한 인사파일이 발견됐고 정부에 비판적인 글을 썼다는 이유만으로 경찰대 교수가 정부의 사찰대상이 되는 일도 벌어졌다. 경찰 내부에 비판적인 글을 올린 하위직 경찰에 대한 보고가 이뤄졌다는 의혹도 실제로 규명됐다. 전현직 경찰들의 모임인 무궁화클럽에 대한 사찰 보고서만 무려 150여 건이 발견됐다.
국회의원도 예외가 아니었다. 김유정 민주통합당 의원, 홍영기 전 서울경찰청장(민주당 입당)의 동향도 청와대에 보고됐다.
재벌 역시 감시 대상이었다. 강정원 전 국민은행장 외에도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이 비자금 사건 이후 사재를 내 설립한 '삼성 고른 기회 장학재단'이 사찰대상에 올랐다. 노조의 경우 화물연대, 현대차 노조 등이 정부의 감시를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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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인도 예외 아냐
언론인에 대한 무차별 사찰도 진행됐다. 보고서를 보면 'KBS, YTN, MBC 임원진 교체 방향 보고', '한겨레21 박용현 편집장', 'PD수첩 역대 작가 확인'이라는 작업문건이 적시돼 있다.
KBS의 경우 김인규 사장이 "KBS의 색깔을 바꾸고 인사와 조직개편을 거쳐 조직을 장악"했다는 보고서가 작성됐다. 정권의 방송장악 실태를 고스란히 보여주는 문건이다. 실제 김 사장은 이명박 대통령 동향출신 박갑진 씨와 수요회 출신 이정봉 씨를 각각 인사실장과 보도본부장에 임명해 조직을 장악했다.
수요회는 지난 2008년 김인규 씨를 사장으로 지지하기 위해 결성된 KBS 내 사조직이다. 동향보고서는 이와 같은 인사를 통해 "(김인규) 친정 체제 토대를 마련"했다고 적시했다. 이번 보고서로 인해 KBS가 그간 존재 자체를 부인해 온 수요회의 존재까지 확인된 것이다. KBS는 작년 10월 <오마이뉴스>의 '수요회' 관련 보도에 대해 손해배상소송을 냈고 승소한 바 있다.
김인규 사장과 관련해서는 정부가 그다지 좋게 보지 않는 듯한 보고서가 나와 눈길을 끈다. 동향보고서는 김 사장에 대해 "자신감이 지나치고 언행에 거리낌이 없어 경솔하게 비춰질 가능성이 많"다며 "12.5 봉사활동을 마친 후 기자들에게 'KBS가 친정부 방송해도 정부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하는 등 소신을 너무 쉽게 발설"한다고 지적했다. 실제 그간 KBS 보도가 친정부적으로 편향됐음을 아울러 입증하는 사례다.
KBS 새노조의 동향도 정밀 추적됐다. 이와 관련, 파업 중인 각 언론사 노조는 이날(30일) 오전, 이번 사태와 관련해 긴급 기자회견을 가질 예정이다.
총리실 공직윤리지원관실은 검찰수사가 시작된 지난 2010년까지 매년 이런 식의 하명사건 처리부를 만들어 왔다.
새노조 취재팀이 밝힌 이번 2600여 건의 문건은 검찰이 총리실 윤리지원관실을 압수수색하는 과정에서 찾아낸 일부 자료다. 취재팀에 따르면 이들 자료는 윤리지원관실 수사관 5명 중 단 한 명의 컴퓨터와 그가 보유했던 USB 메모리에서 검찰이 입수한 것이다. 나머지 4명이 보유했던 자료가 모두 인멸된 것을 감안하면, 실제 사찰내역은 상상을 초월할 것으로 보인다.
송명훈 기자(새노조 조합원)는 "총리실에서 증거를 인멸해 대부분의 자료는 사라졌고, 따라서 취재진이 들여다본 파일은 극히 빙산의 일각"이라며 "문건을 들여다보면, 아주 사소한 개인의 사생활까지도 정부가 정밀하게 들여다 본 것을 알 수 있다. 공직윤리지원관실이 어디까지 권한을 받았는지 의문이 들 정도"라고 말했다.
또 "(이명박 정부가) 정권을 유지하기 위해 '보이지 않는 손'을 가동했고, 이에 따라 소시민, 정권이 불리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철저히 사찰받는 시대에 우리가 살고 있는 셈"이라고 개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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